2002년 6월호

전반전 진념 리드 손학규 역전골 터뜨릴까

  • 육성철 <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 sixman@donga.com

    입력2004-09-09 17: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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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는 서울과 함께 지방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지역이다. 민주당이 현직 경제부총리를 투입하고, 한나라당이 총력전을 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단 정치선거로 가면 손후보가, 경제선거로 가면 진후보가 유리할 듯하다. 손후보는 월드컵 열기를, 진후보는 게이트 정국을 넘어야 승산이 있다.
    경제학 용어 중에 ‘대체재’와 ‘보완재’라는 말이 있다. 쌀과 빵처럼 한쪽이 많이 소비되면 다른 쪽이 안 팔리는 경우를 ‘대체재’라 하고, 커피와 설탕처럼 소비곡선의 등락이 일치하는 경우를 ‘보완재’라 한다. 경기지사를 놓고 맞붙는 진념 민주당 후보와 손학규 한나라당 후보는 서로 대체재와 보완재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일단 전체적인 선거판세는 ‘대체재’의 성격을 띨 것으로 보인다. ‘일하러 왔습니다’라는 슬로건이 말해주듯 진후보는 철저한 ‘지역일꾼론’을 내세우고 있다. 4년 전 임창열 후보가 톡톡히 효과를 보았던 ‘CEO지사’ 전략으로 유권자들을 설득하겠다는 얘기다. 반면 손후보는 이번 선거에 ‘DJ정권 심판’과 ‘민생행정’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부여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전자에, 손후보는 후자에 무게를 싣고 있다. 따라서 선거의 쟁점이 ‘지역현안’에 치우칠수록 진후보가, ‘대선 전초전’으로 기울수록 손후보가 유리할 전망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경기도민들의 생각은 두 사람이 ‘보완재’ 성격을 가질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경기지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는 질문에 도민들은 ‘지역사회 발전’ ‘도덕성’ ‘개혁성’ 등을 우선적으로 꼽고 있다. 즉, 경기지역 유권자들은 진후보와 손후보의 강점을 골고루 갖춘 인물을 기대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실물경제통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진후보가, 개혁정치인으로 도정에 새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손후보가 높은 점수를 받고 있지만, 최종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두 사람 모두 상대를 벤치마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초 이번 6·13지방선거는 임창열 지사와 손학규 후보의 리턴매치 여부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임지사가 대법원에서 유죄취지 판결을 받고, 민주당이 임지사의 당내 경선 출마를 원천봉쇄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결국 경제부총리까지 사퇴하며 배수의 진을 친 진념씨가 경선을 통해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다.





    손후보가 선제공격에 나설 듯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진후보가 손후보를 간발의 차이로 따돌리고 있다. 민주당의 인기가 각종 게이트에 휘말려 추락하고 노풍마저 시들고 있는 상황에서 진후보가 우세를 보이는 것은 놀라운 결과다. 물론 진후보와 손후보의 지지율 차이가 오차 범위 내이긴 하지만, 손후보가 한나라당의 ‘호재’에 편승하지 못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의 정치문화에서 열세인 쪽이 적극적으로 공세를 펴는 것은 불문가지. 이번 선거에서도 손후보쪽이 진후보를 몰아붙이는 양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손후보 캠프는 초반에 대세를 잡지 못하고 월드컵이 시작될 경우 불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선거운동 초반에 진후보의 아킬레스건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는 구상이다.

    손후보는 경기도 시흥 출신으로 광명에서 세 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반면 진후보는 호남(전북 부안) 출신으로 후보 등록을 목전에 두고 경기도로 이사했다. 손후보측 한 관계자는 “도민들에게 ‘내 고장 일꾼을 뽑자’고 호소하면, ‘낙하산 공천’을 받은 진후보가 고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진후보는 “경기도민의 절대 다수는 경제전문가를 원하고 있다. 나는 1985년부터 과천 정부청사에서 일하면서 경기도와 인연을 맺어왔다”고 말했다.

    진후보가 정치 초년병임에도 손후보에 근소한 우세를 보이는 것은 그가 경제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가 회복되는 국면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냈다는 점은 진후보가 경기지사로 나설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손후보측은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을 꼼꼼히 따지면서, 진후보의 거품을 빼겠다는 전략이다. “진후보는 공기업 구조조정, 공적자금 투입, 하이닉스 해외매각 추진 등을 업적으로 내세우지만, 다수 국민들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 손후보측의 진단이다.

    손후보측은 도덕성과 개혁성 면에서도 진후보보다 우위에 있다고 분석한다. 진후보가 노태우 정권부터 줄곧 관료생활을 해온 반면, 손후보는 1970∼80년대에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에 몸담았기 때문이다. 손후보는 5월13일 열린 ‘경기도 후원회 및 필승결의 중앙연수’에서 “우리에겐 부정부패에 물들지 않은 참신하고 깨끗한 사람, 변화와 개혁의 선봉에 선 사람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진후보는 경륜과 경험을 강조한다. 진후보는 “전라도가 고향이라는 이유로 가정교사 자리도 얻지 못하고, 도시락도 먹지 못할 만큼 가난했던 시절부터 ‘우리 국민을 가난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변화와 개혁이라는 측면에서 저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지 않았고, 시대가 변하기 전에 스스로 자기혁신을 추진해온 사람입니다”라고 주장했다.

    1998년 6·4지방선거 당시 손후보는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임창열 후보의 약점을 폭로하는 이른바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했다. 손후보는 TV토론에 출연해 임후보의 사생활까지 거론한 일이 있다. 하지만 손후보의 네거티브 전략이 표심을 바꿔놓지는 못했다. 손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상대 후보에 대한 지나친 공격은 오히려 감표 요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철저하게 정책대결을 지향할 것이지만, 국민들이 검증을 요구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진후보는 이번 선거를 ‘성공한 경제인 대 훌륭한 정치인’의 싸움으로 몰고갈 태세다. 진후보가 손후보를 ‘훌륭한 정치인’으로 평가하는 데는 이중적 의미가 담겨있다. 두 사람이 서울대 선후배인 데다 서로 가깝기 때문에 치켜세운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손후보의 능력을 ‘정치적 영역’안에 가둬놓겠다는 전략이다. 마치 1996년 총선에서 서울 영등포을구의 김민석 후보가 인기 절정의 연기자 최영한(예명 최불암) 후보를 향해 ‘국보급 탤런트 최불암을 방송국으로’라고 외쳤던 것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진후보의 전략에 대해 손후보측은 경기도의 특수성과 손후보의 자질을 내세운다. 손후보측 관계자는 “경기도야말로 중앙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고도의 협상력과 업무조율 능력을 갖춘 도지사가 필요하다. 손후보는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한약분쟁이 터지자 특유의 조정력을 발휘해 양쪽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전력이 있다. 지금 경기도가 요구하는 리더는 전문가이기보다 비전을 갖춘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경기지사로 당선된다면 임기 내에 꼭 하고 싶은 사업’에 대해 두 사람은 똑같이 ‘삶의 질’ 향상을 꼽았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는 조금 달랐다. 진후보는 기본적으로 임창열 지사가 경기도를 잘 운영했다고 평가한다. 그는 “임지사가 이룩한 업적을 정치인에게 맡기는 것보다는 경제전문가가 맡아서 꽃피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 출마를 결심했다”는 말도 했다. 이를 위해 진후보는 ‘열린 도정’을 목표로 내걸었다. 도민들과 함께 경기도의 청사진을 그려나가겠다는 생각이다.

    반면 손후보는 현재의 경기도에 대해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땅’이라고 평한다. 그는 “경기도는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사는 곳, 서울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입니다. 교통은 혼잡하고, 교육은 피폐해지고, 치안은 날로 불안해지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손후보는 자신이 도지사에 당선되면 가장 먼저 불합리한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경기도를 동북아의 거점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진후보와 손후보의 선거캠프는 모두 수원시 영화동에 있다. 두 캠프의 거리는 300m 안팎이다. 현행법상 아직까지 선거운동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양측 캠프의 신경전은 대단하다. 서로 정보수집에 열을 올리는가 하면,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양측 모두 이번 선거는 “깨끗한 정책대결이 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정치선거로 치달을 경우 난타전이 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경기지사 출마를 결심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고 ‘한국의 신용등급이 두 단계 상승해 A등급이 되었을 때’가 가장 기뻤다는 진후보와, ‘민주화운동을 하던 시절 수배를 받는 바람에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이 가장 힘들었고 ‘첫딸을 얻었을 때’가 가장 기뻤다는 손후보. 두 사람은 살아온 역정만큼이나 스타일도 다르다. 과연 경기도민들은 보수정당이 추대한 ‘진보적 자유주의자’ 손후보와, 개혁정당이 공천한 ‘보수적 자유주의자’ 진후보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도 관심사다.



    제3후보 민주노동당 김준기


    이밖에 경기지사 선거에는 민주노동당 김준기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김후보는 서울대 농대에 다닐 때부터 농민운동을 했는데, 1980년대 운동권에서 널리 불렸던 ‘농민가’를 만든 사람으로 유명하다. 김후보는 재야운동가 출신답게 ‘미군기지 신설 반대’ ‘공기업 민영화 저지’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민노당 후보의 경기지역 지지율은 3% 안팎. 김후보는 앞으로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고, 노동조합의 지원을 끌어내 돌풍을 일으킨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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