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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기던 쥐, 고양이를 물어뜯다

대우차 매각협상 1000일 秘史

  • 강의영 < 연합뉴스 산업부 기자 > keykey@yonhapnews.co.kr

쫓기던 쥐, 고양이를 물어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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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년 12월14일 GM이 대우차 일괄인수를 제안한 지 꼬박 1000일 만에 GM과의 매각협상이 마무리됐다. 협상파트너가 GM-포드-GM으로 뒤바뀌고, 자고 일어나면 수조원이 붙었다가 떨어지고, 회유와 협박, 꼼수와 말 뒤집기가 횡행한, 곡절 많은 협상 1000일 뒷이야기.


대우자동차가 마침내 팔렸다. 1999년 8월 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2년8개월 만인 지난 4월30일 미국 제너럴모터스(GM)로 넘어가는 본계약이 체결된 것. 대우차는 세계 1위 업체인 GM의 패밀리에 편입돼 어려움을 딛고 비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지만, 그 과정에는 갖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4월10일 정건용 한국산업은행 총재는 대우차 매각협상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다다랐다고 설명하면서 “GM이 칼자루를 쥐고 우리가 칼날을 쥔 협상이었다”고 토로했다. 대우차와 채권단이 협상에서 그만큼 철저하게 약자의 처지에 있었다는 얘기다. 대우차의 고위 관계자도 “우리에겐 협상 카드가 없었다”고 했고, 대우차 노조측은 “처음부터 굴욕적인 협상이었다”고 평가했다.

세계 유수의 업체들이 대우차를 갖겠다고 나서고 포드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을 때만 해도 우리가 느긋하게 칼자루를 쥐고 있었다. 하지만 포드가 느닷없이 대우차 인수 포기 선언을 하면서 칼자루를 스스로 GM에 ‘상납’한 뒤 지금껏 칼날을 붙잡고 버텨왔던 것.

유일하게 남은 대안이었던 GM은 급할 게 없다는 판단 아래 우보(牛步) 작전으로 일관하며 우리의 속을 태운 반면, 우리 당국자들은 “GM이 곧 온다” “○월까지는 끝내겠다”는 등 작전을 그대로 노출하며 조급성을 드러냈다.



칼날 잡고 ‘벼랑 끝 전술’

이번 협상결과는 채권단의 처지에선 헐값매각 시비를 낳을 수 있겠지만, 한국 자동차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그나마 선전(善戰)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초반부터 제기됐던 대우차의 하청기지화 우려가 어느 정도 해소된 점에서도 그렇고, GM측이 채권단과 공동출자해 설립할 신설법인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거나 떠날 수 없도록 본계약에 구속력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는 면에서도 그렇다.

협상에 참여한 한 인사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GM이 대우차를 꼭 가져갈 것이라는 확신이었다”며 “우리가 얻어낸 많은 부분은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떼를 써서 받아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GM이 막판에 협상결렬을 알리는 성명자료까지 준비하고 시한을 통보했으나, 우리는 그들이 그것을 발표하지도, 집에 가려고 비행기도 타지 않을 것임을 자신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의 ‘벼랑 끝 전술’이었던 것.

따라서 협상 초기에는 대우차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우리의 조급함 때문에 양해각서(MOU)나 최종 인수제안서에서 GM이 우리로선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도록 허점을 드러냈다면, 협상 막바지 과정에서는 “그런 조건이라면 차라리 다른 길을 찾겠다”는 대우차와 채권단의 일관되고 강경한 의지가 많은 부분에서 양보를 얻어내게 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대우차와 채권단은 협상이 지지부진할 때 ‘독자생존’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고, 협상이 가장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2∼3월에는 해외의 다른 업체들에 대우차 인수의사를 타진하기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GM이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72년 신진자동차와 50대 50 지분합작으로 GM코리아를 설립하면서부터. 그후 신진자동차 지분은 산업은행을 거쳐 1978년 대우그룹으로 넘어갔고, 합작회사의 이름도 GM코리아에서 새한자동차로, 1983년에는 대우차로 바뀌는 등 사연이 많았지만, GM은 1992년 말 대우차에 지분을 넘기고 결별할 때까지 20년간 50%의 지분을 꼭 틀어쥐고 있었다.

이번 협상의 GM측 실무책임자인 앨런 페리튼 아태지역 신규사업본부장은 새한자동차 부품담당 매니저 등을 맡으면서 한국 자동차산업과 인연을 맺은 인물이다. 새한 근무시절 그의 업무 파트너는 김태구 전 대우차 사장(당시 이사)으로 당시 두 사람은 각별한 친분을 맺었다.

제대로 진전되는 듯하던 제휴협상은 GM의 파업, 기아차 국제입찰, 삼성차 빅딜 등 국내외적 요인으로 사실상 중단됐고, GM으로부터 대규모 외자를 유치해 그룹 구조조정을 단번에 해결하려던 대우의 계획도 벽에 부딪혔다.

대우차에 단순히 돈을 대주는 것이 아니라 대우차를 갖고 싶어했던 GM은 1999년 8월 대우차가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발빠르게 이사회 동의를 거쳐 그해 12월14일 정부와 채권단에 대우차 일괄인수를 공식 제안했다. GM은 대우차 인수를 위한 배타적 협상을 요청했고, 정부와 채권단도 제한적 경쟁입찰 방식으로 방침을 정해 GM에 우선협상 자격이 부여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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