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식반이 현장에 도착했다. 두 채의 방갈로는 서울 삼성동에 사는 소모씨(42·D통상 대표)가 예약한 것이었다. 사체는 소씨와 그의 부인 정모씨(42), 아들(14·서울 E중 3년)과 딸(12·서울 E중 1년)로 추정됐지만 당장 확인할 길이 없었다. 유전자 감식을 위해 부산에 살고 있는 소씨의 부모가 급히 날아왔다.
사건이 발생한 휴양림 출입구는 비수기의 경우 관리인이 24시간 출입을 체크하지 않는다. 누가 언제 어떻게 들어오고 나갔는지 아무도 지켜본 사람이 없었다. 3월29일 현장을 조사한 화재 감식반은 현장에서 휘발유 냄새가 나는 등 방화가 분명해 보인다는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자살이냐 타살이냐는 여전히 물음표였다.
현장에서는 모두 4개의 열쇠가 나왔다. 아파트 열쇠, 방갈로 열쇠 2개, 그리고 현장에서 전소된 부인 정씨의 쏘나타 자동차 키. 남편 소씨의 자동차 키는 보이지 않았다. 소씨의 감색 그랜저 승용차는 화재현장에서 200m 가량 떨어진 주차장에서 발견됐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언덕자락과 숲에 가로막혀 방갈로에서 시야가 미치는 곳은 아니었다.
휴양림 관리팀장 이영섭씨(34)는 남들이 지나친 부분에 주목했다. 그랜저의 지붕에 붙어있는 두 점의 잿가루. 시체가 발견되기 전날인 25일 밤에는 안개가 자욱했고 이 때문에 차에 남아있던 물기가 재를 붙여놓은 것이다. 경찰은 승용차의 한쪽 면에서 강한 열에 그을린 자국도 찾아냈다. 잿가루가 날려 자동차까지 날아갔다고 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게다가 지난밤에는 불이 거의 번지지 않았을 만큼 바람도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현장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었다. 불타는 방갈로를 뒤로한 채 사망자의 그랜저를 몰고 주차장까지 빠져나온 사람, 그는 과연 누구인가. 사건은 급속히 타살로 방향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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