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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숨은 인권운동가 ③

“편견 버리고 사회복귀 지원해야”

정신장애인들에게 꿈 심어주는 최재명씨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편견 버리고 사회복귀 지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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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장은 대학을 졸업한 뒤 외국계 지원기관에서 근무했다. 나라 전체가 먹고사는 일에 매달리던 시절, 최원장은 일선 사회사업가로서 소외계층의 아이들과 만난 것이다. 부모가 문을 잠가놓고 일을 나가는 바람에 방안에 갇혀서 하루 종일을 보내는 아이들, 당장 수술이 필요한 데도 돈이 없어 시름시름 죽어가는 아이들…. 최원장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의사는 빨리 수술하라고 재촉하고, 기관에서는 다시 일어날 가망이 없으니 이쯤에서 그만두자고 권하고, 그러면서 시간은 계속 가는 거죠. 천신만고 끝에 수술을 끝내고 병실에 찾아갔는데 머리를 빡빡 깎은 아주머니가 딸을 보고 환하게 웃는 거예요. 정말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가도 그런 일을 겪고 나면 마음이 뿌듯해지는 겁니다. 만약 수술을 포기했다면, 딸아이는 어머니의 해맑은 웃음을 영영 보지 못할 뻔했잖아요.”

사랑밭재활원은 정신요양시설로 출범했다. 대학에서 실습을 나간 것말고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최원장은 곧바로 숭실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장애인복지를 시작하기에 앞서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최원장도 한때 ‘장애인은 잘 보호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장애인 문제를 고민하면서 ‘지나친 보호는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최원장이 사랑밭재활원을 기존의 장애인 수용시설과 다르게 운영하기로 결심한 것도 그런 이유다.

“1980년대만 해도 정신장애인 하면 우선 가둬놓고 약을 투입하는 게 관행이었어요. 밖으로 나오면 위험하다는 인식이 강하게 지배한 거죠. 하지만 사랑밭재활원은 처음부터 열린 공간을 지향했어요. 그래서 장애인들이 얘기하고 놀 수 있는 ‘자유병동’을 만들고, 희망자에 한해서 들에 나가 일도 할 수 있게 했죠. 지금 생각하면 아주 초보적인 단계였는데, 그때는 그게 ‘모범사례’로 뽑히고 그랬어요.”

최원장의 말처럼 1980년 초에 정신장애인들을 외부로 끌어낸다는 것은 파격적인 조치였다. 최원장은 초창기 사랑밭재활원을 떠올리며, 만감이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인원점검을 하다보면 사람이 없는 거예요. 전직원이 뛰어다니면서 환자를 찾다보면 집에 가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얼마나 가족이 그리웠으면 그렇게 했겠어요. 그런 사람을 철창 안에 가둔다는 게 얼마나 가혹하고 무모한 짓입니까. 우린 힘들어도 그들에게 조금씩 자유를 주고, 그렇게 해서 하루라도 빨리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980년대의 정신장애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비화가 있다. 바로 1980년대 중반에 터진 ‘기도원 사건’이다. 당시 경기도의 한 기도원이 정신장애인들을 감금하고 강제노역에 동원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불시에 현장을 덮쳤는데, 수사과정에서 상습폭행과 시체 암매장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던져주었다.

‘기도원 사건’의 여파는 사랑밭재활원에도 미쳤다. 당국이 문제가 된 기도원의 환자들을 분산 수용하기로 결정했는데, 무려 129명이 사랑밭재활원에 배정된 것이다. 의사와 사회복지사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중증의 정신장애인들이 대거 몰려왔으니 사정이 어떠했을까. 최원장은 “가족도 포기하고, 환자도 아무런 의욕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치료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당시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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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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