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한일월드컵이 다가오면서 가장 바빠진 사람이 있다. 1986년 멕시코대회부터 5회 연속 월드컵 중계방송을 담당하고 있는 송재익(61) 캐스터가 그 주인공이다. 98프랑스월드컵 때까지 MBC에서 활약했던 송캐스터가 이번엔 SBS의 간판으로 나선다. 그의 오랜 파트너인 신문선 해설위원도 SBS에 둥지를 틀었다. 두 사람이 SBS로 옮겨오면서 방송사의 희비도 엇갈리고 있다. 축구중계 시청률 경쟁에서 수년째 고전했던 SBS가 단숨에 선두로 올라선 것이다.
송캐스터가 리드하는 중계방송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SBS 여의도 사옥에 나붙은 대형 현수막의 문구처럼 그는 ‘최고의 입담’을 자랑한다. 축구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도 중계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인터넷에 등장하는 ‘송재익의 코믹 멘트’를 보면서 배꼽을 잡는다. 그중에는 수작이 많지만, 졸작도 적지 않다. 수작은 수작대로 마니아를 길러내고, 졸작은 졸작대로 스토커를 양산한다. 현재 인터넷 상에서 송캐스터의 어록을 모아놓은 사이트는 무려 100여 개에 달하고 있다.
“저건 외딴 백사장에 혼자 처박힌 빈 콜라병 같군요.”(골대 뒤편으로 넘어간 어이없는 센터링을 보고)“심판이 대머리라서 얼굴로 물이 많이 흘러내리겠는데요. 참 안됐습니다.”(경기중 소나기가 내리자 대머리 심판을 보고)
“우리는 오늘 현해탄을 건너 불구경을 왔습니다. 한국이 신랑으로 신방을 차려놓고, 아랍과 일본 중에 신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한국이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뒤 일본 대 UAE전을 앞두고)
4월30일 오후 여의도 SBS사옥에서 송재익 캐스터를 만났다. ‘월드컵 D-30’ 특집방송을 마친 송캐스터는 앙드레김이 직접 디자인한 붉은색 재킷 차림으로 나타났다. 아침부터 내리던 빗줄기가 잠시 멎은 틈을 타 여의도공원에서 사진촬영차 포즈를 취하고 방송사 커피숍으로 향하는데, SBS사옥 벽면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최고의 입담 송재익’ 옆에 당연히 붙어 있어야 할 ‘최고의 해설 신문선’이 보이지 않았다. 송캐스터에게 “어떻게 된 겁니까?” 하고 묻자, 웃으면서 답한다. “바람에 찢어졌어요. 제 건 그냥 있고, 신위원 것만 날아갔어요. 바람도 사람을 구별하나봐요.” 시작부터 특유의 입담이 번뜩인다.
―월드컵 때도 오늘처럼 비가 오면 한국팀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아마 불리하겠죠. 우리가 체력에서 좀 밀리거든요. 한국축구가 아직까지 세밀한 경기를 펼칠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힘으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는데, 불행히 우리는 유럽팀과 붙잖아요. 미국도 유럽 스타일이고. 비가 오면 체력전으로 가야 하고 그렇게 되면 어려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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