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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일기

해리 포터와 함께 상상의 나래를

  • 이옥순 < 한국아세아연구소 부소장·인도사학 >

해리 포터와 함께 상상의 나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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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남독(濫讀)이 심한 내가 해리 포터를 만난 건 겨우 지난 겨울방학이 돼서였다. 명색이 학자인지라 전공서적이나 연구와 관련된 인접 학문의 책을 읽는 데도 늘 시간이 빠듯하다는 것이 그 책과의 늦은 상면(相面)에 대한 변명이라면 변명일 게다. 방학을 틈타, 모처럼 200여 국가에서 47개 언어로 번역돼 세계적으로 1억권 넘게 팔린 그 책의 비밀을 캐보고 싶었다. 그렇게나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듯싶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이른바 ‘벤치마킹’의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비교와 분석이란 합리적 잣대는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나는 곧 작가 롤링이 정교하게 짜놓은 유머와 상상의 세계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번개 흉터를 지닌 11세의 해리를 따라 킹크로스역(驛)의 9와 3/4 승강장에서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떠난 나는 그와 함께 빗자루(님부스 2000)를 타고 하늘을 날며 퀴디치를 하거나, 유령과 마술사들을 만났고, 악당인 ‘그 사람’과 대결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든 것이다. 실로 오랜만에 나는 독서삼매(讀書三昧)를 경험하며,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을 단숨에 읽었다.

그렇게 이치를 따지지 않고 책 속으로 들어가던 어린 시절이 새삼 떠올랐다. 앞산과 뒷산의 거리가 1km도 채 안되는 강원도 산골에서 자란 내게 책 속에 펼쳐진 미지의 세계는 오늘날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읽는 아이들이 상상하는 마법의 세계처럼 흥미롭고 경이로웠다.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작은 산골마을의 일상은 대단히 지루했다. 현란한 TV도, 바깥 세상을 알려주는 그 어떤 미디어도 존재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나는 자주 흑백의 일상을 탈출해 컬러의 책 세상으로 들어가곤 했다. 거기에는 내가 가보지 못한 서울이란 곳과 수많은 나라들,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이뤄내는 복잡한 삶의 궤적이 가득했다. 나는 그것들을 마음껏 상상하고 꿈꾸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나는 도서반장이 되어 도서실 열쇠를 책임지는 ‘특권’을 누렸다. 돌이켜보면 작은 공간에 책장 서너 개와 1000여 권의 책이 전부인 초라한 도서실이었지만, 그곳은 어린 내게 광대한 우주와 다름없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책을 빌려주고 도서대장을 정리한 뒤 매일 두세 권의 책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주말엔 그 두 배를 읽은 적도 많았다. 동생을 돌보거나 집안일을 하느라 빌려온 책을 곧바로 읽지 못할 때에는 마치 먹을거리를 두고 조건반사를 실험당하는 개처럼 애가 탔다. 그러다 마침내 침침한 등잔불 아래 책을 마주하면 동굴 앞에서 ‘열려라 참깨!’를 외치는 알리바바의 두근거리는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나는 누가 옆에서 뭐라고 해도 듣지 못했다. 동생이 울고 있어도 잘 몰랐다. 결국 청각장애를 의심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버스를 타고 대처의 병원을 구경하게 되는 해프닝을 벌였다. 그러나 산골학교 작은 도서실의 책은 곧 바닥이 났고, 나는 배고픈 늑대처럼 책이 있을 법한 곳을 찾아 헤맸다. 오랜 남독 습관은 책이 귀한 그 시절의 유산이다. 지금은 어릴 적의 바람대로 늘 책에 묻혀 살지만, 욕심과 복잡한 생각을 가진 어른이 된 뒤에는 좀처럼 독서삼매에 빠져들지 못했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읽으면서 경험한 몰입의 즐거움이 소중한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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