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는 노무현 당선자. 노무현 정부는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신뢰받는 개혁 작업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권위와 기성이 밥 먹여주던 시절은 이미 옛날이 되었다. 권위주의는 평등주의, 형식주의는 실용주의, 그리고 집합주의는 개인주의로 점차 바뀌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고 있다. 디지털 혁명이 이를 재촉한다. 가상이 현실이고, 현실이 미래가 되는 가운데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 바로 5060의 한계와 2030의 가능성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한국정치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변화를 과감히 수용해야 한다.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는 새 정부의 향후 5년의 과제를 짚어본다.
누구를 위한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였던가
해방 이후 한국전쟁 다음의 최대 국난이라는 IMF 외환위기. 바로 그때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씨에게 거는 국민적 기대는 컸다. 그는 구조조정이라는 칼을 빼들고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에 착수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란 구호 아래 금융·기업·노동뿐 아니라 교육·언론·사법·의료·복지 등 여러 분야에 걸친 그야말로 광범한 개혁이었다. 개혁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인데도 김대중 정부는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을 5년 임기 안에 끝낸다는 야심찬 목표를 내걸었다.
당시 사형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던 한국경제가 되살아난 것은 분명 개혁의 성과다. 지금 일본, 중국, 대만 다음으로 세계 4위의 외환보유국이 됐고, 지난 5년 동안의 무역흑자 총액만 하더라도 무려 900억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 무려 160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느라 국가재정이 거의 200조원에 달하는 빚더미에 올라 있다. 우리 주식시장의 3분의 1 이상을 외국인들이 장악하고 있고, 대부분의 알짜 기업들이 외국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데, 당장이야 괜찮겠지만 앞으로 위협이 될 수 있다. 한국경제가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는 산업과 금융의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분야의 개혁은 복지를 제외하고 성공적이지 못했다. 교육·언론·사법의 경우 개혁 자체의 명분에 빠져 절차와 방식에서 주도면밀하지 못했다. 가장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준비 없이 무리하게 강행된 의약분업이다. 중형병원의 도산과 소형 약국의 퇴출은 그렇다 치고 외국계 제약회사와 대규모 병원이 실익을 챙기면서 소비자인 국민의 의약비 보험 부담만 올려놓은 결과를 놓고 잘된 개혁이라 할 수 있을까.
만약 김대중 정권이 김영삼 정권의 개혁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개발독재 이후 최초의 민간정권답게 김영삼 정권은 총체적인 개혁 청사진을 들고 나왔다. ‘통일된 세계중심국가’라는 미래 한국의 이상을 설정한 김영삼 정권은 교육·법·경제·정치·언론·행정·지방·환경·문화·의식 등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변화를 꾀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의 개혁은 법과 제도보다 인치에 의존함으로써 추진력을 잃고 용두사미가 돼버렸다.
개혁은 김대중 정권과 김영삼 정권의 공통된 특허 상표였다.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통해 수립된 민간정권으로서 이들은 해방 이후 쌓인 권위주의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나름대로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졌다. 그런데도 두 민간정권은 두 김씨 사이의 세계관 차이, 특히 정치적 입지와 이해 충돌로 인해 서로 개혁연합의 형성에 무관심했다.
흥미롭게도 김대중 정권이 내놓은 대부분의 개혁안은 이미 김영삼 정권에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하지만 김대중 정권은 개혁을 정권유지와 재창출이라는 권력동기에 의해 수단화함으로써 개혁의 연속성을 끊어버리는 커다란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김영삼 정권의 업적이라 할 금융실명제와 역사 바로잡기가 김대중 정권에 의해 뒤집힌 것이 단적인 예다. 집권을 위해서 이질적인 세력을 끌어들이면서도 개혁을 위해서 동질적인 세력을 외면했던 것이다.
두 민간정권 지도자의 개혁 추진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 흔히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고 한다. 여러 전선에 걸쳐 변화가 이뤄지기 때문에 개혁은 저항과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다.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국민적 합의와 지지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의 ‘3독(독선, 독주, 독단)’과 김대중 대통령의 ‘3과(과신, 과욕, 과시)’에 따른 ‘나홀로’ 스타일의 국정운영은 정부부처와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하는 데 장애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