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중동포 최수진씨는 “나는 북한에서 처음으로 사람다운 대접을 받았다.
- 나는 김일성 주석님을 숭배한다”라고 말하는 친북주의자다.
- 그러면서도 한민족이 크게 일어나 동북아에서 큰일을 하기를 바라는 민족주의자이기도 하다. 북핵 문제로 남북관계가 위기에 봉착했다. 친북 인사 최수진씨의 입을 통해 북한이 생각하는 최근의 한반도 문제와 해결책을 들어본다.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 셋째 아들이던 최수진씨는 열한 살이었다. 아버지의 사망으로 집 형편이 어려워져 그는 초급중학교 2학년을 중퇴했다. 무너져가는 집안에서 농사를 하던 그는 문화혁명 말기인 1975년 감옥 생활을 했다. 그는 힘들고 괴로웠던 문혁 기간에 많은 것을 느끼고 개선점을 찾아냈는데, 이것이 나중에 사업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수감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인민해방군이나 중국공산당 쪽으로는 나갈 수 없었던 것이, 그로 하여금 사업 쪽으로 눈을 돌리게 한 측면도 있다. 그의 진가는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추진하면부터 발휘되기 시작했다. 폐품 줍는 사업으로 시작한 그는 열처리 화학공장 쪽으로 영역을 넓히더니 급기야는 하얼빈에 민족호텔을 짓는 등 가장 성공한 조선족 사업가로 성장하였다. 이 시기 ‘흑룡강신문’ 사장인 홍만호씨는 최수진씨의 인생유전을 세 권짜리 책으로 출간했다.
최씨는 1985년부터 대북사업에 눈을 돌리며 북한과 가까워졌다. 이러한 이력을 가진 최총사장은 “나는 조선을 대표하는 사람은 아닌데…, 그저 내 생각일 따름이오” 하면서 남북문제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공존·공영·공리로 풀어 나가자
-최총사장께서는 민족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시는데 무슨 뜻입니까.
“세계는 부단히 변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우리 민족도 새로운 사고의 변혁이 있어야 번영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세계경제는 지구촌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국경 없는 경제 시대에서는, 내가 편안하려면 남을 편하게 해줘야 합니다. 남측이 편안하려면 북측을 도와주어야 하고, 북측이 편안하려면 남측을 도와주어야합니다.
민족 대단결을 이루려면 과거의 한 페이지는 덮어놓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사에 대한 평가는 훗날 역사학자들에게 맡기고, 지금은 우리 민족이 공존·공영·공리를 꾀해야 한다는 원칙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단계에서 북남간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상호간에 신뢰를 구축하고 피해의식을 해소(解消)하는 것입니다.
이는 몇 차례의 당국자 회담이나 이론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북과 남이 갖고 있는 우세한 점을 이용해 서로를 돕는 경제협력을 폭넓게 진행하는 것이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경제협력을 하자는 이야긴가요.
“북남경협의 기본은 북측의 SOC 건설입니다. SOC를 건설해 북측의 경제가 회복돼야 조선반도에 평화와 안정이 유지될 것입니다. 북측의 SOC 건설은 북측만의 일이 아니고 전민족의 일입니다. 경제적으로도 통일 후에 건설하는 것보다 지금 하는 것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총사장께서는 주축과 고리를 틀어쥐고 경제순리대로 남북경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오셨지요. 주축과 고리는 무엇이고 경제순리는 무엇입니까.
“바다에 던져 넣은 그물이 있다고 칩시다. 그물을 걷어 올려 고기를 잡으려면 아무데나 잡아당기면 안 됩니다. 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그물코를 꿰어 당기는 ‘벼리(綱)’를 당겨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경제개발을 할 때도 그 정책을 펼치면 인근 산업까지 연쇄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산업을 먼저 개발해야 합니다. 개발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부터, 파급효과가 큰 산업부터 개발해 나가는 것이 고리를 틀어쥐는 것입니다.
나만 이득을 보는 것은 경제순리가 아닙니다. 나도 이득을 보고 남도 이득을 보는 것이 경제순리입니다. 저는 이것을 공존(共存)·공영(共榮)·공리(共利)라는 ‘3공(三共) 정책’으로 정리합니다. 북과 남이 조선반도에서 공존·공영·공리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경제순리입니다. 경제협력의 주축이 될 수 있는 사업은 동부선 철도 및 서부선 철도를 연결하는 물류사업입니다.”
-물류를 통한 남북경협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조선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잇는 지역이기 때문에, 동북아의 물류중심이 될 때 그 가치가 올라갑니다. 남측 동부의 부산-속초에 철로를 놓고 이를 북측 동부의 원산-청진 철로와 잇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투먼-하얼빈-만저우리를 지나 러시아의 치타(chita)까지 연결된 철로를 개량합니다. 치타에는 유럽과 연결된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조선 동부 철도를 통해 조선반도를 유럽과 연결하자는 것입니다.
조선 서부로는 서울-평양-신의주를 잇는 철도(경의선)를 개선해, 이를 중국의 단둥-베이징과 연결하는 것입니다. 이 철도는 바다와 호흡하는 항구와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항구와 철도로 조선반도의 물류사업을 부흥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러시아는 치타에서 하얼빈으로 이어지는 만주 횡단 철도가 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를 지나는 러시아 철도를 통해 시베리아의 자원을 한국과 일본에 수출하려고 합니다. 북한에서 하얼빈-만저우를 잇는 철도와 북한 두만강 노동자구에서 하산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철도는 크게 다릅니다. 러시아의 생각과 최총사장의 생각은 서로 다른 것 같습니다.
“두만강 노동자구에서 하산-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치타로 이어지는 철도는 청진에서 투먼-하얼빈-만저우리를 거쳐 치타로 이어지는 철도보다 2000㎞가 더 깁니다. 어느 쪽이 경제순리에 맞는 노선인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요. 하얼빈 노선을 개발하는 것도 결국은 러시아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 러시아는 하얼빈-청진 철도 개선사업에 참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신의주특구는 성공 못해
-그러한 국제물류망을 구성하려면 여러 나라와 교섭해야 할 것 아닙니까.
“남측은 38선으로 막혀 있어 국제철로 련운(連運)협정을 잘 모르고 있겠지만, 철도수송문제는 국제련운협정대로 진행하면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사람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고 국경선에서 두 나라의 열차가 만나 화물만 옮겨 싣는 것이 국제 련운입니다. 그런데 조선반도와 중국에 깔린 철도는 표준궤라 기관차만 바꾸고 화물을 실은 대차(臺車)는 그냥 들어가도 괜찮습니다.”
-북한의 SOC 건설을 위한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자는 것입니까.
“앞서 말씀 드렸듯, (북)조선의 SOC 건설은 북과 남을 가릴 것이 아니라, 전민족의 일입니다. 동부철도(부산-속초-원산-청진) 건설 사업은 조선을 돕는 것 같지만, 사실 조선은 통과비만 벌 뿐입니다. 반면 남측은 대륙과 유럽에 연결돼 섬나라 신세를 면하게 되어 거액의 물류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변나라인 중국·러시아·일본도 큰 덕을 볼 것입니다.
조선반도에서 유럽을 잇는 철도가 구성된다면, 일본은 영국(영국-프랑스 해저철도인 유로스타)처럼 부산과 연결된 바다 철도를 놓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조선반도는 물론이고 전 동북아 경제권이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됩니다. 조선반도 횡단 철도를 주축으로 한 동북아 철도 연결은 한 나라가 아닌 모든 나라가 이익을 볼 수 있는 사업입니다. 따라서 자금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이 일어나 북과 남의 정부가 보증한다면, 7000만 동포와 해외 동포의 참여로 (가칭)조선통일발전은행 혹은 민족발전은행을 설립할 수 있을 것입니다. 7000만 동포가 주주형태로 100달러씩 투자하면 70억달러의 자본금이 만들어집니다.
자본금을 갖추면 국제금융시장에서 700억달러의 융자가 가능할 것입니다. SOC를 건설할 때는 얼마만큼 자금이 필요한가부터 계산할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가치와 투자 회수 가능성이 있는가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이 철도 건설은 경제순리에 맞는 것이라 자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중국계 네덜란드인인 양빈(楊斌)을 행정장관으로 앉혀 신의주 특구를 개발하려고 한 것은 경제순리에 맞는 것이었습니까.
“신의주특구는 조선경제를 국제경제와 융합시켜 경제개발을 하겠다는 조선정부의 강한 의지에서 나온 것인데, 과연 그러한 구상대로 될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특구로 개발되는 신의주가 조선 경제를 이끄는 기관차가 되려면 물류중심이나 유흥중심·금융중심·산업중심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신의주는 그러한 특성을 갖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는 오히려 신의주보다는 나진·선봉특구의 개발이 좋다고 봅니다.”
-한국에서는 나진·선봉특구 개발은 실패한 것으로 보는데요.
“나진 개발을 책임진 일꾼들이 중심고리를 제대로 틀어쥐지 못하여 잠시 주춤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진특구는 자연지리적으로 황금의 삼각주입니다. 대량의 물동량이 있는 러시아의 원동(遠東)지방과 중국의 지린·헤이룽장성이 인접해 있고 바다로는 일본을 비롯한 국제시장과 연결됩니다. 한마디로 국제 물류중심·관광중심·무공해 자연환경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나오는 석탄이 연간 8000만t인데 자체 소비되는 것이 5000만t이니, 나머지 3000만t은 해외로 수출해야 합니다. 지린성 동부와 헤이룽장성에서 수출할 알곡과 기타 화물이 약 2000만t인데, 그중 500만t을 나진항으로 빼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남측의 포항제철과 광양제철은 연간 1780만t의 코크스탄을 호주 등지에서 수입한다고 합니다. 헤이룽장성에서 나진항까지는 국제 표준철도가 이어져 있으니, 헤이룽장성의 석탄과 알곡을 나진-청진항으로 운반한 후, 배에 실어 포항이나 광양으로 수송할 수도 있습니다. 운임은 나진항을 이용하는 것이 중국 다롄(大連)항을 이용하는 것보다 t당 60원 정도 쌉니다.
지금 남북이 공동작업 중인 동해선 연결 공사가 완공되면, 배뿐만 아니라 기차로도 석탄을 남측으로 보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진 지구가 동북아의 물류중심이 되면, 조선은 물론이고 중국과 남조선이 모두 만족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경제순리에 맞는 경제협력이라는 것입니다. 나진이 물류중심이 되면 이곳이 갖고 있는 다른 장점을 개발해 추가적인 발전을 도모합니다. 예를 들어 주변에 있는 청진을 산업지구로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물류중심은 관광중심으로 발전해 나갈 수도 있습니다. 나진-선봉지역에는 해수욕장이 즐비하고 도처에 온천이 있습니다. 서남쪽으로 내려가면 조선에서 가장 빼어나다는 칠보산이 있고, 북서쪽에는 백두산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원을 근거로 국제적인 관광산업을 육성하는 것입니다. 관광객의 입맛에 맞도록 이곳에 무공해 농업을 일으켜 ‘록색의 관광중심’을 만듭니다.”
북핵 사태는 미국이 왜곡
-남북 경제협력이 활발해지려면 우선 남북한 간 군사적 긴장이 해소돼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한국인은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남측의 여론에서 말하는 북측의 전쟁위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해하기 힘든 사고입니다. 남측의 군사력과 경제력은 아시아 지역에서는 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더욱이 세계 제일의 군사·경제 강국인 미군이 남측에 주둔하고 있는 이상, 현실적으로는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 위협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북측은 자신의 안전을 고려하여 선군(先軍)정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입니다. 한·미·일 공조와 함께 미국의 선(先) 타격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은 조선입니다. 조선이 선군정치를 하는 것은 남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전을 위한 자위(自衛)행위라고 보아야 합니다. 조선은 전쟁을 원치 않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피살사건, 광주봉기 등의 좋은 기회가 왔을 때도 조선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한국인들이 북핵문제 때문에 대단히 불안해하는 것은 어떻게 봅니까.
“미국은 지난 50년간 북측에 적대시 정책을 실행했습니다. 냉전이 끝나면서 사회주의 진영의 소련과 중국은 남측을 외교·경제적으로 승인했지만, 미국과 일본은 북측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중지하지 않았습니다. 1994년의 핵타결 일괄 방안도 실제적으로 먼저 위반한 것은 미국이었습니다. 2003년까지 경수로 2기를 완공하기로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터만 닦아놓았을 뿐입니다.
게다가 미국은, 북측이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이상 핵개발 권한을 갖고 있다’고 한 것(2002년 10월4일 강석주 외교부 부상이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 한 말인 듯)을 해석상·통역상의 차이를 이용해, ‘북측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약속한 중유 공급마저 차단해버렸습니다.
더욱이 미국이 핵 선제 타격·군사타격을 운운하고 있어, 북측은 자신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 강경한 태도로 나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북측의 이러한 자세는 남측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남측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한국은 핵보다 미사일을 더 걱정합니다. 왜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립니까.
“조선이 안전을 도모하고 생존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줘야 하는데 그 반대로 가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 형제국가들은 거의 다 무너졌는데, 남쪽은 한·미·일 공조를 해가면서 조선을 더욱 고립시키려고 합니다. 내가 편안하려면 남도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데 자꾸 불안하게 만드니 할 수 없이 자위(自衛)를 도모하는 것입니다.”
-2002년 7월1일 북한이 실시한 경제개혁은 성공할 것으로 보십니까. 북한은 근본적으로 화폐가 유통되지 않는 사회라 실패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아닙니다. 성공할 것입니다. 7·1조치로 화폐 유통이 활성화되면 사회의 생산성이 자극 받아 경제활동이 왕성해질 것입니다. 조선은 조선식 사회주의를 건설할 것입니다. 동북아경제권의 요충지에 있는 자연지리적 우세를 살려, 물류산업을 크게 일으키고 관광사업·무공해 농업·경공업·과학기술을 발전시키며 빠른 시일 내에 일어설 것으로 믿습니다.”
-한반도에 평화무드가 정착하려면 군축이 선결돼야 합니다. 그래야 동부철도 구성과 물류중심 문제도 현실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일성 주석께서는 생전에 북과 남이 15만까지 병력을 줄이자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미 조선은 전쟁을 하겠다는 생각을 버린 지 오래입니다.”
-그런데 왜 북한은 남조선 혁명을 포기하지 않습니까.
“그것을 남조선에서는 적화통일 전략이라고 표현하던데, 김주석께서 생전에 남긴 조국통일 10대 강령에 이미 그것은 포기했다고 표현돼 있습니다. 대만과 중국이 그렇게 교류하지만, 간첩사건은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사소한 사건에 현혹될 필요는 없습니다.”
-햇볕정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족간에 햇볕정책을 하지 않으면…, 강경 혹은 싸움으로 가자는 것입니까. 당연히 햇볕정책 혹은 온화정책으로 가야합니다. 그러나 그 정책을 깨끗이 펼쳤어야지요. 정치선전 도구로 사용했으니 문제가 된 것입니다.
2000년 북남 정상회담을 앞두고 저는 ‘만남은 중요치 않다. DJ가 평화의 디딤돌을 하나 놓는다는 자세로 임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그리하여 (북)조선 사람들에게 ‘남쪽과 협력하니 경제가 살아나는 구나’하고 느끼게 해줬으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38선(그는 휴전선을 계속해서 38선으로 표현했다)부터 급히 열려고 하지 말고 북남 철도부터 건설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김일성 주석과도 가까웠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주석님은 공식적으로 한 번 뵈었습니다. 주석부에서 김주석을 모시고 처와 함께 기념촬영을 남겼지요.”
-김정일 위원장과는 비교적 가깝지 않습니까.
“저는 일반백성에 불과한데 어떻게 영도자님과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장군님께서는 제가 사심 없이 조선의 발전을 위해 건의하는 것을 참고해주실 따름입니다. 제가 투명성 높게 사업을 해왔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 상당한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압니다.
“영웅칭호·국기훈장 등 조선에서 줄 수 있는 영광은 거의 다 받았습니다. 김정일 장군님께서 벤츠 승용차까지 하사해 주셨으니까요…. 사실 저는 조선에 가서 처음으로 사람다운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런 은혜를 입었기에 지금 하는 사업이 잘 되지 않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과거에 잘 되던 때도 있었으니, 부침은 원래 있는 것 아니냐며 편안하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이 잘 되는 방향으로 써주시오
-하지만 북한과의 사업에서 5000만달러 이상의 손해를 보신 것으로 압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김철(김책제철소)과 황철(황해제철소)에 동업자 형태로 코크스탄을 공급해 왔는데, 전기와 수송 등에 문제가 생겨 양 제철소의 경영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5000만달러 정도의 대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조선과 운명을 같이하므로 조선의 경제가 어려우면 저도 어렵습니다. 조선이 ‘고난의 행군’을 하면 저도 ‘고난의 행군’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2002년 9월17일 북·일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남북한과 중국·미국 외에 일본·러시아까지 참여해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6자 회담을 제기했습니다. 적잖은 전문가들은 일본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기 위해 6자 회담을 제기했다며 비판하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6자가 아니라 8자 회담이라도 해야지요. 조선의 경제가 회복되지 않으면 조선반도에 평화가 없으며, 조선반도에 평화가 없으면 동북아 지구에 평화가 없습니다.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모델을 참고해서 한반도 평화기금 등을 조성하고, 동북아 경제권 구상 시간표를 만들어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합니다.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데 대해 깨끗이 반성한 후 조건없이 조선과 수교해야 하며, 동북아경제권 건설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덧 최총사장과의 대화는 8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서울보다 위도가 높은 베이징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긴 대화를 마치고 일어날 때 최총사장의 표정은 밝았다. 그로부터 이틀 후 기자는 최총사장을 다시 짧게 만났다. 최총사장은 다시 과거의 불안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무래도 당신을 만난 것이 잘못인 것 같소. 그러나 어쩌겠나. 우리 민족이 잘 되는 방향으로, 과거보다는 미래를 대비하자는 쪽으로 써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