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호

“‘국민후보’ 흔든 세력, 반드시 책임 물어야”

천정배 민주당 정치개혁특위 간사

  • 글: 이형삼 hans@donga.com

    입력2003-01-30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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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 개혁, 끝갈 데까지 간다
    • 개혁파 세력화 문제될 것 없어
    • 원칙 저버린 사람들은 물러나야
    • 동교동계를 개혁대상으로 보지 말라
    • 내각제 논의는 시기상조
    • 검찰 바로세우려면 ‘屋上屋’ 불가피
    “‘국민후보’ 흔든 세력, 반드시 책임 물어야”
    민주당은 늘 시끄럽다. 지난 1년 내내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군웅할거로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다 싶더니 그 군웅들을 전국의 체육관으로 몰고다니며 ‘경매시장’을 열었다. 그렇게 일껏 두령을 뽑아놓고는, 중원에 날랜 장수가 하나 떴다니까 둘이 일합을 붙여 맹주를 다시 뽑자고 난리를 쳤다. 신승(辛勝)으로 한숨을 돌린 맹주가 말꼬리를 잡히면서 도원결의는 하룻밤 새 물거품이 되고….

    하지만 유권자들은 그 시끄러운 정당에 재집권을 허락했다. 잡음과 혼란에서 오히려 생명력을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덩치만 컸지, 총재 한 사람의 카리스마에 잔뜩 주눅든 정당에선 그런 활기와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없었던 듯하다.

    그런 민주당이 이번에는 개혁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지도부 사퇴에서 지도체제 개편, 상향식 의사결정구조 도입, 중앙당 폐지, 신당 창당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개혁안이 백가쟁명을 이루며 떠들썩하다. 그 중심에 천정배(千正培·49) 의원이 있다. 천의원은 조순형, 신기남, 정동영, 추미애 의원 등으로 대표되는 당내 개혁파 신주류의 간판주자.

    천의원은 지난해 3월 노무현 후보가 단기필마로 민주당 국민경선에 뛰어들 때 노후보를 지지했던 유일한 현역 의원이다. 그는 선거대책위원회가 출범한 이래 노후보의 정무특보와 정치개혁추진위원회 총괄간사를 맡아 노후보에게 정치개혁안을 조언했고, 노후보가 당선된 후에는 당 개혁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아 민주당 개혁 드라이브를 주도하고 있다.

    국민이 OK할 때까지 개혁



    -아예 민주당을 해체하고 신당을 만들자는 얘기까지 나오더군요. 민주당 개혁의 폭은 어디까지로 예상합니까.

    “한 마디로 ‘국민이 OK할 때까지’입니다. 변화의 정도에 어떤 한계도 두지 않고 근본적, 획기적으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그래서 절차상으로는 ‘민주당 개혁’일지 몰라도 국민에겐 과거의 민주당과 전혀 다른 신당으로 보일 때까지 뜯어고쳐야 해요. 민주당이 지역적 한계를 비롯, 여러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하므로 개혁의 폭에도 제한을 둬선 안 됩니다. 끝갈 데까지 가봐야죠. 그 방안과 단계를 개혁특위에서 논의하고 있는데, 지도부 일부를 교체하는 정도라든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부정적 측면을 땜질하는 수준에 머문다면 당 개혁은 실패하고 말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후보 시절부터 여러 차례 정치개혁안을 건의한 것으로 압니다. 그 골자는 무엇입니까.

    “국민이 주인인 정당을 만들어 국민참여정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전국의 남녀노소 각계각층이 자발적으로 정당 활동에 참여토록 해 당의 풀뿌리 토대를 튼튼히 하고, 당 지도부와 공직 후보자 선출, 주요 정책 결정 등 당의 의사 결정에 관한 모든 권한이 이들 당원으로부터 나오게 해야 합니다. 지도부는 이들의 권리 행사 프로세스를 관리하는 체제로 바꿔야죠. 총재 한 사람이, 혹은 상층부의 권력 엘리트가 당을 장악하는 권위적 정당구조를 혁파해야 합니다.

    저희는 대선에서 ‘낡은 정치 청산’을 주된 슬로건으로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국민은 정치개혁을 하겠다는 정치인들의 말을 믿지 않아요. 한두 번 속아봤어야죠. 그래서 ‘우리 후보가 당선되면 정치를 이러저러하게 바꾸겠다’는 공약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저희가 선거캠프에 후보 직속 기구인 정치개혁추진위를 만든 것은 이때문입니다. 당선되고 나서가 아니라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정치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죠.”

    천의원이 총괄간사로 활동한 정치개혁추진위는 ‘3C 프로젝트’를 전개했다. 3C는 ‘Clean Clear Corea’의 머릿글자로, ‘Clean’은 반부패, 깨끗한 정치, 투명한 정치, ‘Clear’는 구태정치 청산을 의미한다. 가신과 측근에 의한 패거리 정치와 1인 사당(私黨)화,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돈 안 드는 정치를 구현해 국민정당으로 변신하겠다는 것.

    보다 구체적으로는, 일정액 이상의 정치 후원금은 수표로만 받게 해 근거를 남긴다든가, 돈세탁 방지제도를 확충해 검은돈이 오가는 것을 차단한다든가, 일반 당원들이 안방이나 PC방에서 입당과 당비 납부, 의사결정 참여 등 모든 정당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인터넷 정당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강조된 개념이 ‘3N’이다. 새로운 시대(New Stage)가 도래했으니 새로운 주도세력(New Stream)이 결집해 새로운 정치(New Politics)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 천의원은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젊은이들이 정치를 주도할 수 있을 때 정치개혁은 완성된다”고 했다.

    -당 지도체제는 어떻게 개편될 것으로 전망합니까.

    “아직은 얘기하기 이릅니다.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단일 지도체제로 가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고,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나 현재와 같은 순수 집단지도체제를 선호하는 분은 좀 있어요. 또한 상당수는 아예 당권이라는 개념을 없애버리자, 다시 말해 최고위원 등 몇 사람이 의사 결정을 좌우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에서 뽑혀 올라온 복수의 집행위원들이 책임지고 당을 이끌어가게 하자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서 토론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당 개혁파가 또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기도 합니다.

    “개혁파가 세력화하는 게 뭐가 나쁩니까. 개혁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세력화해서 우리 정치를 선도해야 나라도 개혁되는 것 아닙니까. 민주적 절차를 따르기만 한다면 세력화에 반대할 이유가 없어요.”

    -신주류 개혁파가 비타협적으로 과거 청산을 요구하는 바람에 당내 분란을 야기하고 대통령 당선자에게까지 부담을 주리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천의원을 비롯한 몇몇 개혁파 의원들을 ‘탈레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탈레반이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을 뜻한다면 나쁘지 않은 별명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상에만 치우쳐 나간다는 의미라면 받아들이고 싶지 않네요. 저는 지금껏 나름대로 늘 원칙을 지키면서도 현실적인 접근방법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당내에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4월 전당대회 이후 대선에 이르는 과정에서 세계 정당 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불미스러운 일이 우리 당에서 일어났습니다. 자신들의 총의에 따라 대통령 후보를 뽑아놓고, 더구나 당원뿐 아니라 국민들까지 참여시켜 정통성 있는 후보를 뽑아놓고는 그 당의 많은 국회의원이 그 후보를 흔들고 낙마시키기 위해 나서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어요. 한 배를 탄 정치집단이 그런 행위에 대해 아무런 반성이나 비판도 하지 않고 어떻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

    아울러 이런 점도 고려돼야 해요. 김대중 정부는 지난 5년간 여러 가지 훌륭한 성과를 냈다고 봅니다. 특히 경제분야나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아주 획기적인 업적을 남겼어요. 그렇지만 인사 문제나 부패 같은 실정(失政)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대통령 임기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 그동안 잘한 일은 국민에게 크게 평가받지 못하고 실정만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에요. 이렇게 된 것은 우리 당이나 대통령 주변에 그런 실정을 제대로 막지 못했거나,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직언하지 않았거나, 혹은 인사나 부패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개혁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이든 정부든 이런 결과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명확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고 봅니다.”

    심판받고 책임지게 하라

    -‘노무현 흔들기’를 한 사람들이 원칙을 저버린 것은 사실이지만, 노후보의 지지율이 워낙 낮게 나오니 어떻게든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부득이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는 상황논리도 나올 수 있을 텐데요.

    “국회의원들은 선거 전문가들입니다. 민심이라는 게 조변석개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한때 노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는 선거까지 4∼5개월이나 남은 시점이었어요. 시간은 충분했습니다. 자기 당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졌으면 어떻게든 그걸 끌어올리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 아닙니까. 저도 마지막에 가서는 단일화를 주장한 사람입니다. 당의 결정에 승복하고, 당이 뽑은 후보의 승리를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시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정치적 의무가 아닐까요?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렇게 후보를 흔들어대는 것 자체가 후보의 지지율을 추락시키는 요인이 됐다는 사실입니다. 당의 이익에도, 민주주의의 원칙에도 결코 부합하지 않는 행동이었어요.

    선거에서 승리했고, 다 과거의 잘못이니 이제 그만 덮어주자는 식으로 넘어가선 안 됩니다. 이것은 과거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 분들이 물러나지 않고 계속 남아 있다면 미래의 정치까지 담당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이건 우리의 미래와 직결된 일입니다. 우리 당과 한국 정치의 미래를 위해 책임 있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자고 주장하는 게 왜 분란입니까. 이것은 노당선자가 후보 때부터 표명해온 원칙에서 한치도 벗어난 게 아니에요. 당선자에게 부담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방법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지도부가 당장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어떤 분들은 당의 시스템 개혁을 통해 제도적으로 물러나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다만 책임을 묻는다는 게 지나치게 확대되어 무차별적인 탄압으로 변질돼선 안되겠죠. 따라서 대표적으로 책임이 큰 분들이 책임을 지도록 범위를 최소화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나머지 분들은 내년 총선 등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심판받게 하면 되겠죠.”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동교동계 해체를 지시해 노당선자에게 힘을 실어줬지만, 동교동계가 민주당의 뿌리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들을 개혁대상으로만 몰아간다면 부작용이 크지 않을까요.

    “동교동계는 ‘패권적 지역주의’에 맞선 ‘저항적 지역주의’의 산물입니다. 동교동계가 민주당의 뿌리고, 김대통령이 집권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여러 가지 성과에도 기여했을 겁니다.

    그러나 어떤 형태이든 지역주의는 우리 정치를 왜곡시킨 주원인입니다. 정치판을 지역구도로 고착시킴으로써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환경을 낳았고, 그 결과 정당은 제왕적 총재가 모든 권한을 한 손에 움켜쥐는 사당으로 변질됐습니다. 이런 지역구도는 혁파돼야 합니다.

    다만 이런 과제가 ‘동교동계를 개혁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데는 동의하지 않아요. 대통령의 동교동계 해체 발언은 노당선자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고락을 함께 해온 정치적 동지들에게 ‘이제 시대가 바뀌었음을 분명히 인식하라’고 충고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뜬금없이 웬 내각제?

    -당 개혁특위를 처음엔 15명 정도로 구성하기로 했다가 당내 이해관계를 반영하다 보니 32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결국 개혁서명파, 구주류, 탈당검토파 등이 다 포함됐는데, 이런 상태로야 개혁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 개혁은 두 측면으로 나눠볼 수 있어요. 사람을 바꾸는 인적 청산과 제도를 바꾸는 시스템 개선이 그것입니다. 그 중에서 개혁특위가 맡은 임무는 후자죠. 물론 후자가 전자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요.

    그런데 우리 당에는 후자, 즉 시스템 개혁에 관한 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적극적으로 나서는 의원들이 많아요. 단지 개혁파, 쇄신파로 불리는 의원들만 그런 범주에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대선을 앞두고 탈당한 후단협 멤버 중에도 과거에 당 쇄신과 발전을 위한 특별대책위원회 등에서 대단히 개혁적으로 활동한 분들이 있어요. 따라서 숫자가 많다고 개혁의지가 약화될 염려는 없다고 봅니다.”

    -최근 한화갑 대표가 “내각책임제를 거론할 때가 됐다”고 발언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나라당은 이에 화답하듯 “당론으로 내각제를 채택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민주당 일부 의원들도 싫지 않은 기색이었습니다. 당내에 내각제에 대한 공감대가 웬만큼 형성된 겁니까.

    “지금은 대통령을 선출해 취임을 앞둔 시점입니다. 더구나 남의 당 대통령도 아니고 우리 당에서 배출한 대통령입니다. 그런 대통령이 취임을 앞둔 마당에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내각제 얘기를 느닷없이 왜 꺼내는지 모르겠어요. 내각제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에 상관없이 지금은 그걸 거론하기에 적절한 시점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구당 개혁과 ‘돈 정치’ 타파 등 당장 시급한 과제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그런 안정된 토대 위에서 보다 큰 틀의 권력구조 개편논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대통령선거가 끝난 후 천정배 의원은 “왜 노무현을 지지했느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 돈도 조직도 없는, 그래서 당선 가능성이 가장 낮아 보이는 후보 중의 한 사람이던 노후보가 경선에 뛰어들었을 때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그를 밀어준 이는 천의원밖에 없었다. 후보 단일화 논란으로 당이 와해 직전까지 갔을 때도 그의 소신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천의원은 “그런 질문을 받으면 늘 밋밋한 대답밖에 내놓지 못한다”며 멋쩍어했다.

    “‘국민후보’ 흔든 세력, 반드시 책임 물어야”

    민주당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천정배 의원은 “개혁논의의 폭에 제한을 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선자의 원칙과 소신이 확고해요. 잇속을 채우기 위해 예사로 원칙을 무너뜨리고 소신을 꺾는 정치인이 허다한 현실에서 그는 매우 예외적인 존재죠. 정치적 희생을 무릅쓰고 끈질기게 지역주의에 대항해온 자세도 높이 평가합니다. 대통령으로서의 자질, 달리 말해 ‘상품성’도 골고루 갖췄어요. 그 양반이 5공 비리 청문회를 통해 한순간에 떴는데, 그게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아주 열정적인 사람인데, 그 열정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설득력이 탁월할 뿐 아니라 사안의 본질을 꿰뚫고 이해하는 능력도 뛰어나요. 지난 대선에서 유감없이 보여줬지만, 정치적 고비에서의 결단력 또한 대단한 분입니다.”

    개혁독재는 없을 것

    -노무현 당선자는 당·정분리 원칙을 천명했습니다. 우리 정치 현실에서 당·정분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노당선자는 원칙을 철석같이 지키는 분이에요. 당·정분리 원칙도 스스로 받아들인 이상 분명하게 지킬 것입니다. 그동안 정당들이 총재 중심의 1인체제로 되어 있다보니 얼마나 문제가 많았습니까. 특히 집권당 총재인 대통령은 여당을 지배함으로써 국회까지 지배하는 결과를 낳았죠. 이는 헌법이 보장한 권력분립 정신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낡은 정치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따라서 당·정분리는 반드시 실현돼야 합니다.

    다만 대통령이 비록 평당원이긴 해도 당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갖는 정치적 권위와 영향력은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강요하고 결정해선 안 되지만, 리더십을 가진 당원으로서 당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정부, 재계 등과 ‘코드’가 맞지 않아 잡음을 내고 있습니다. 개혁에는 반발이 뒤따르게 마련이겠지만, 인수위가 과잉 의욕을 보이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행여 ‘개혁독재’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하는 거죠.

    “조직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니 부분적으로 혼선이 있을 수는 있죠. 개혁을 너무 성급하게 밀어붙이는 게 아니냐는 얘긴데,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인수위의 수장 격인 노당선자를 신뢰하기 때문에 그렇게 확신합니다. 노당선자는 개혁의지는 누구보다 확고하지만, 개혁에 이르는 절차와 과정도 존중하는 사람이에요. 어떤 목표를 도그마화해 졸속으로 몰아가는 식의 개혁은 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절차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일각에선 ‘어, 이거 당선되고 나더니 개혁의지가 퇴색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한대요. 하지만 편의적으로 세상의 추이만 따라가면서 원칙을 허물 사람도 아닙니다. 지켜보자구요.”

    -노당선자가 인사에 다면평가를 도입하는 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겠다고 선언하고서도 자신의 측근들을 당선자 비서실과 인수위에 대거 기용한 것에 대해 시선이 곱지 못한데요.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적재적소입니다. 사람을 쓸 때는 그 사람의 능력과 자세, 정직성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에게 맡길 임무에 따라서는 당선자와 얼마나 오랜 신뢰관계를 맺고 있는가, 당선자의 철학과 노선, 정책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가도 중요한 평가요소가 된다고 봐요. 예컨대 내각으로 들어갈 사람이라면 객관적인 평가기준에 무게가 더 실리겠지만,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직접 보좌할 사람이라면 후자의 기준을 우선 고려할 수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당선자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사람들이 당선자를 곁에서 돕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적재적소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측근이라고 해서 그 사람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갖다 앉히는 것, 장관도 시키고 공기업에도 집어넣고 하는 일은 없어야죠.”

    ‘검찰 屋上屋’ 필요한 이유

    변호사 출신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인 천의원이 정치개혁 못지않게 열성을 쏟아온 분야는 검찰개혁이다. 그는 여·야를 초월한 검찰개혁 의원모임을 만들어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 검찰 인사 객관화, 검사의 직무상 상명하복 관계(검사동일체 원칙) 개선 방안 등을 연구해 왔다.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설치, 특별검사제 한시적 상설화,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등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노무현 당선자의 검찰개혁 공약도 그 ‘지적재산권’은 천의원소유라고 보면 된다.

    -노당선자의 검찰개혁 공약이 논쟁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검찰은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를 설치하고 특별검사제를 상설화하는 것은 옥상옥(屋上屋)을 두겠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는데요.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그간 검찰이 국민에게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사정기관으로 인식됐는가, 아니면 정치권력의 시녀로 비쳐졌는가를 문제삼는 것인데, 검찰개혁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런 본질적인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사소하고 기술적인 부분만 물고 늘어져요.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니 특검제니 하는 게 옥상옥이란 걸 누가 모릅니까. 귀한 세금 들여가면서 왜 그런 옥상옥 기구를 만들겠다는 겁니까.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다 무너지게 생겼으니 튼튼한 집을 하나 더 짓겠다는 거예요. 물론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잃은 데에는 검찰보다 정치권력의 책임이 더 크지만, 검찰도 자기 개혁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특히 검찰의 수뇌부가 국민의 평가를 겸허히 수용해야 해요. 검찰은 막강한 권력기구입니다. 자신을 개혁하지 않고서 어떻게 남을 제대로 사정(司正)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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