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일할 사람이 없다?
- 국내 고용시장에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극심한 취업난이 빚어지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난리다. 국민의 정부 5년 동안 22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이같은 기현상은 해소되기는커녕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실패한 고용실업정책,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영등포구 문래동 가공업체 밀집지역은 요즘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기계를 세워놓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그렇게 바삐 움직이던 작업풍속도는 이제 옛일이 됐다. IMF사태 이후 대량부도의 여파로 ‘골병’이 든 데다 최근에는 아예 일할 사람이 없어 기계를 세워놓고 있는 실정이다.
숙련된 기능공의 경우 임금이 월 200만∼250만원, 미숙련공인 경우 150만원 수준인데도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 그래서 아예 작업주문을 받지도 않는다. 자식에게 공장을 물려주려고 겨우 설득해서 몇 개월 같이 일해봤는데, 결국 그만둬버렸다는 사장들의 하소연을 어디서든 쉽게 들을 수 있다. 한동안 요란했던 노조 바람도 요즘은 거의 없다.
사정은 안산·시흥 지역의 공장지대도 마찬가지다. 납기일을 맞추지 못해 사장이 직접 철야 작업에 나서거나 관리직을 투입해 거래관계를 가까스로 유지하고는 있지만, 적게는 몇 명에서 많게는 수십여 명씩 인력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다. 중국으로의 공장이전을 생각해보지만, 조립공장이 국내에 있어서 물류비도 만만치 않고 새 사업을 벌일 만한 자금도 마땅치 않다. 구인광고를 내면 문의전화만 걸려올 뿐, 임금이나 공장위치 등을 알려줬는데도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선 산업현장의 이 같은 인력난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해소시켜주고 있는 게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영등포구 문래동에는 작업의 수준상 숙련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공장 밀집지대여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적을 법하지만, 이미 상당수가 일하고 있다. 안산·시흥지역은 이들이 없으면 아예 공단이 멈출 판이다.
때문에 외국인 불법취업자 추방문제가 불거지면 이들 공장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목을 매고 있는 입장에서 최근 1~2년 사이 법무부가 발표한 일련의 조치는 현실을 너무 모르는 데서 나온 것이라며 한 목소리로 비난한다.
인력부족에 관한 전문 연구기관의 최근 통계는 사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소기업청과 산업연구원이 조사한 ‘중소기업인력실태’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인력 부족률은 무려 9.4%에 달했다. 지난해(3.9%)보다 두 배 이상 폭증한 수치다. 이는 전국적으로 약 20만명의 인력이 모자라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이는 전국의 산업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제외한 통계다. 현재 국내 외국인 노동자 추산치는 약 35만명. 만일 이들이 없다면 인력 부족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지금 중소기업의 가장 절박한 문제는 자금지원이나 기술개발, 시장개척이 아닌 인력난 해소다.
필자가 청와대비서실 복지노동수석 시절 중소기업협동조합의 이사장들과 간담회를 해보면 결론은 언제나 외국노동력의 추가공급이었다. 사정이 이러했기 때문에 정부당국도 불법취업자가 공식적으로 25만명을 넘어서고 있는데도 사실상 방치해왔고, 이런 허점을 이용해 각종 불법행위와 인권유린이 자행되어 마침내 반한(反韓) 감정 확산이라는 부작용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아시아지역에서 조성되고 있는 반한 정서는 국내 기업들의 상품시장 개척에 큰 어려움이 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외국인 노동자 인권유린문제는 국제문제로 대두되었다. 또 35만명에 이르는 외국인 노동자 중 한국여성과 결혼하는 경우도 늘어 2세 출생이라는 문제로까지 발전했다. 앞으로 예상치 못한 값비싼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할 처지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고 있는데도 정부당국은 근본대책을 세우기는커녕 외국인 불법취업자를 2003년 3월부터 추방키로 했다가 다시 유예하는 등 땜질처방을 계속하고 있다.
정부당국은 외국인 불법취업자 문제가 심각해지면 출입국 관리차원에서 접근하고 반대로 인력난에 대한 아우성이 나오면 인력공급 확대카드와 고용허가제를 내놓는데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국내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일정 정도 외국인 노동력의 유입이 불가피한 만큼 사전에 정확한 장·단기적 종합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는 인력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지금처럼 즉흥적인 대책을 계속 내놓는다면 오히려 중소기업의 붕괴를 촉진하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외국인 불법취업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외국인력은 초기에 연마나 피혁의 소킹(soaking) 공정 등 단순작업에 투입됐으나 외국인력은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심해지면서 이제는 핵심공정과정에까지 참여하고 있다. 만일 이들이 해외로 추방된다면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력이 흔들리고 안정적인 기술인력 공급과 전수가 어려워져 공장 내부로부터 공동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인권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이들에 대한 고용허가제와 의료·산재 보장 등 보다 가시적 조치를 더이상 미룰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렇게 되면 값싼 인건비의 메리트도 사라진다. 사실 최근에 외국인력을 이용하고 있는 대다수 기업주들은 벌써부터 “말썽을 덜 피운다는 점말고는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제는 외국인력 공급확대냐 인권보호냐 하는 식의 접근으로는 문제해결이 불가능하다. 최근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단순노무직의 3D 분야에서 핵심기술인력에까지 번지고 있는 양상이어서 보다 종합적인 노동시장 차원의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중소기업의 기능인력 부족문제는 현행 학교 교육과정의 문제점과 맞물려 있다. 고학력 사회가 되면서 고졸자의 대학진학률이 85%를 넘어섰다. 뒤집어보면 그만큼 기능인력의 육성과 공급은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곧 교육개혁과도 직결된다. 이 글에서는 실업계나 전문대, 대졸자들의 중소기업 취업을 촉진하기 위해 작업환경과 근로조건, 복지문제 등 다각도의 대책이 효과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그치려 한다.
실업자는 도대체 얼마인가
중소기업에서는 인력이 전국적으로 20여 만명이 부족한데 다른 한편에서는 실업자가 그보다 몇 배 더 많은 게 우리의 실정이다.
정부가 발표한 공식 실업률이 2002년 11월말 현재 2.7%, 61만5000명으로 집계됐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국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주변에서 피부로 느끼는 실업지수는 그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61세 이상 고령층을 제외하더라도 구직활동을 아예 포기한 장기실업자를 포함한 실질실업자는 150만명을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통계청 통계의 허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장기실업자들은 특성상 취업관련기관에 구직등록은 물론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사실상 통계에서 제외돼 있다. 때문에 1년 이상 실업자가 1만7000명밖에 되지 않고 6개월 이상 실업자도 전국적으로 8만명에 불과하다. 이 통계에 근거해서 보면 고용실업정책의 대상은 서울시 18만7000명, 부산 5만1000명에 불과하다.
문제는 중앙정부나 각 지방자치체가 IMF사태 이후 급격하게 변동하고 있는 노동시장에 주목해 가구별 고용실태를 파악하면 훨씬 효율적인 정책수립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기준을 가지고 표본조사를 해왔기 때문에 피부로 느끼는 실업자 실태와 통계 사이에 거리가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구인난을 겪는 기업과 대규모 실업자군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기업은 기업대로, 실업자는 실업자대로 하루하루를 피 말리는 고통 속에서 보내고 있는 기형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 긴급한 현안이 해결되고 있지 않은가. 영등포구 문래동 인근의 양평동이나 신길동에는 특히 장기실업자가 많이 거주하고 있다. 안산·시흥지역에도 이런 남편을 제쳐두고 한푼이라고 벌어보려고 아이를 들쳐업고 나선 주부들이 적지 않다. 노래방의 부업전선에 뛰어든 여성 중엔 자식의 과외비를 충당하려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다. 생활력을 상실한 실업자 남편을 대신해 돈을 벌려는 여성들도 생각보다 많이 있다.
직장에서 밀려난 많은 실업자들은 노동계의 구조조정에 격렬한 적대감을 갖고 있다. 섬유와 철강 등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산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인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맹렬하게 구조조정작업에 저항하고 있는 것은 그 이후의 운명을 주변 사람을 통해서 이미 체득했기 때문이다. IMF사태 이후 명퇴로 약간의 목돈을 손에 쥔 이들 대부분이 장삿길에 나섰다가 거덜나고, 재취업의 길이 쉽지 않은 현실을 주변에서 보아온 사람들이 어떻게 생업의 박탈을 수용하겠는가.
고용과 실업정책은 이제 한국사회의 핵심문제로 떠올랐다. 그 해법을 찾기 위해 우선 지난 5년 동안 진행된 고용실업대책을 점검해보자.
지난 5년 동안 정부가 실업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투입한 돈은 1998년 5조3000억원, 1999년 7조4000억원, 2000년 5조원, 2001년 2조3000억원, 2002년 2조1000억원(추계) 등 모두 22조원에 달한다. 실로 엄청난 돈이다.
형식적인 일자리 제공
물론 이 예산이 전부 국민의 세금에서 투입된 것은 아니다. 실업급여처럼 고용보험에 가입한 노동자와 기업주가 부담한 돈도 있다. 생활보호예산은 보건복지부가, 실업자 자녀의 학자금 지원은 교육인적자원부가 집행했다. 그러나 항목과 집행부서야 어떻든 대량실업에 대처하기 위한 실업정책의 산물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 천문학적인 재정 덕분에 일부 실업자들에게 일시적인 생활보호와 생계지원이 가능했고 그래서 극심했던 IMF사태 직후의 곤경을 일부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예산투입에 비해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산더미 같다. 무엇이 문제인가.
정부는 초긴축과 고금리정책을 통해 부실기업을 퇴출시키고 구조조정작업을 실시했다. 그 여파로 대량실업이 발생하자 이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으로 단기간 일자리제공사업과 직업훈련, 취업알선, 실업급여확대와 생계안정사업을 실시했다.
그러나 공공근로처럼 5조7000억원을 썼지만, 어디에 무엇을 썼는지조차 알 수 없는 사업도 있었다. 뚜렷한 목표와 내용의 점검 없이 생계만 지원하는 형식적인 일자리 제공으로 끝난 것이다. 이 예산을 처음부터 SOC(사회간접자본시설) 정비나 주거개선사업 등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사업에 투입했다면 국민세금을 길거리에 버린다는 비판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지방의 공공근로사업은 대부분 과거 취로사업처럼 운영되고 있고 해당부처와 지자체는 이런 방식의 예산낭비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일부 무자격자들이 엉성한 규정의 허점을 이용해서 공공근로에 참여해 적당히 시간을 때우고 있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부작용도 있었다. 지난해부터는 공공근로의 일당 금액을 낮춰서 부작용이 줄어들었지만, 장난감이나 가내수공업에 의한 조립제품의 경우 사람이 없어서 생산하지 못하는 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저소득층 가구에서 주로 해왔던 작업인력이 일당이 더 높은 공공근로에 흡수됐기 때문이다.
특히 기초생활수급자 가운데 근로능력이 있는 조건부 수급자들은 다른 일자리보다 공공근로를 선호했다. 어렵고 힘든 임시직보다 수입도 더 많고 일이 쉬운 공공근로가 좋았던 것이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공공근로 일당을 감액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개선책에도 불구하고 2002년도에 5000억원 이상의 공공근로예산이 투입됐다. 이를 폐지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공공근로를 폐지하면 45만명 정도의 실업인구가 증가한다. 이 수치는 현재 실업률의 70%에 해당되는 것이다. 실업률의 증가를 경제정책의 실패처럼 인식하는 정부 내의 분위기로 볼 때, 공공근로의 실상이 무엇이든 5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서 실업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면 그냥 유지하려 할 것이 아니겠는가.
지난 5년 동안 고용실업대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또 하나의 사업이 재취업사업이다. 실업자의 전직(轉職)훈련을 지원하고 취업을 알선하기 위해서 2조5000억원의 재원이 투입됐다. 이 훈련을 받고 취업한 사람이 공식적 통계로는 38% 전후인 것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이 통계는 정확한 것이 아니다. 각자 알아서 취업한 사람, 공공근로에 참여한 사람 등도 모두 포함됐기 때문이다. 전직훈련을 받고 그 분야에 취업한 실제 수치는 통계에 나와 있지 않다. 아마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필자는 이 희한한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2001년 5∼6월, 안산·시흥지역 실업자들을 대상으로 집중 실태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그 지역 고용안정센터에 등록한 실업자 가운데 실제 취업한 사람은 13% 수준이었는데, 이는 노동부 고용정보망 워크넷에 등록한 실업자 평균 취업률과 거의 비슷했다. 워크넷은 구인자와 구직자 간에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이른바 인력뱅크 역할을 하는 곳이다. 바꿔 말하면 고용안정센터가 구인등록을 한 사람을 대상으로 취업알선이나 전직지원을 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용정보센터의 취업시스템을 파악해보니 취업상담을 할 수 있는 자료조차 제대로 확보돼 있지 않았다.
경리직과 용접공 등 공단지역 입주업체들이 어떤 분야의 인력을 필요로 하는지, 상담 기록은 물론 현황도 제대로 파악돼 있지 않았다. 고용정보센터가 하는 일이라고는 취업을 위해 찾아오거나 문의전화를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형식적인 상담만 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이러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구인현황의 파악, 등록양식의 변경, 취업희망자 구직조건의 상세파악과 기록, 면담기록화, 동행면접 활성화, 구인요구직종에 맞는 취업교육과정 설치, 주거교통, 복지 등 제반 지원시책을 구체화했고, 그 결과 지역 취업률을 80%대로 높일 수 있었다. 이 대책문제는 후술하기로 하고, 재취업 훈련과 고용안정센터 문제를 더 검토해보자.
안산·시흥지역의 구인수요조사와 실업자조사, 그리고 고용안정센터의 업무분석을 통해서 필자가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첫째, 지난 몇 년 동안 대량실업사태가 계속됐는데도 구인난을 호소하는 기업들이 늘어났고 이에 대처할 기본작업이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둘째, 재취업이나 전직지원훈련과정과 예산배정에 있어 각 지역 구인·구직실태조사에 근거하지 않고 관련예산을 지역적으로 안배하고 그에 따른 학원시설과 인원배정 등 형식적인 이행점검을 한 게 전부였다.
셋째, 실업자의 고용을 지원하기 위해 1900여 명을 선발해 전국 고용안정센터에 배치했지만, 센터 직원 자체가 임시직인 데다 센터의 업무와 인원 배치, 성과 등을 평가해보면 실질적인 기여도가 아주 낮았다. 센터 직원의 65%가 취업상담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부 업무를 보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겉돈 고용정책
이 세 가지 사실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IMF사태 이후 대량실업과 구인난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이를 해결해야 할 정부의 고용과 실업정책이 국민들은 고사하고 기업주와 실업자에게 별 도움도 되지 못한 채 막대한 예산만 낭비했다는 것이다. 안산·시흥지역의 구인조사결과 가장 필요한 인력은 500여 명의 경리직 사원이었는데 이 지역 재취업 훈련과정에는 전산회계직 훈련과정이 아예 없었다. 당연히 훈련예산도 배정되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인력수요가 많은 용접분야도 인근에 용접분야 전문훈련과정이 개설돼 있었지만 지역의 수요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처럼 노동부의 고용실업정책이 겉돌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량 실업사태를 처음 겪어 노하우가 없는 탓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와 정부, 각급 지자체가 고용실업정책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요인이 더 크다. 안산·시흥지역의 실태조사 과정에서 안산시 관계자들도 참석해 함께 논의했지만, 지역주민들의 가구별 고용사정을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고용관련 행정은 공공근로의 배정인원을 소화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런 실태는 안산에서만 나타났던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전국의 기초나 시도단위 지자체 가운데 고용관련 행정을 담당하는 부서를 별도로 설치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정부 각 부처는 말할 것도 없고 주무부서인 노동부도 마찬가지였다. 노동부는 IMF사태 이후 고용정책실까지 신설해서 고용실업정책에 주력하도록 조직을 만들었지만, 고용정책심의회를 소집한 것은 고작해야 일년에 한두 번뿐이었고, 2001년에는 아예 한 번도 소집하지 않았다. 각 시·도·읍·면·동에 고용관련회의를 조직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필요조치와 점검을 하는 것이 당연히 노동부의 몫이었지만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
노동부가 한 일이라고는 통계청의 실업률에 근거해서 정부의 신년도, 또는 추경실업예산이 책정되면 각 지방사무소에 이를 분배해서 집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극심한 취업난에 대학생들이 아우성치면 청년실업대책이라고 해서 취업박람회 등 각종 이벤트성 사업을 홍보하고 정책실효성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따져보지 않고 예산을 집행하는 수준이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중소기업 체험프로그램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중소기업청에서 아이디어를 냈기 때문인지 중소기업청에서 관장하고 있는데, 고용정책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홍보만 요란하다.
이처럼 정부 고용실업정책이 실효성 있게 준비되지 못한 채 겉돌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노동행정의 주된 관심이 파업문제와 같은 노정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노정문제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노동부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정부와 청와대, 언론의 관심이 거기에 있는 탓이다. 대형사업장에서 파업이 불거지면 우리 사회지도층의 관심이 온통 거기에 쏠리고, 경찰병력까지 투입된다. 대통령, 비서실장, 담당수석, 장관까지 나서는 상황에서 어느 관료가 노정관계를 제쳐두고 고용실업문제 해결에 발벗고 나서겠는가.
실효성 없는 노·정 업무
둘째는 IMF사태 이후 새롭게 대두된 대량실업문제의 해결을 위해 예산의 배정과 고용보험 등의 제도를 확대하면서 좀더 구체성 있는 방안들이 만들어지고 그에 입각한 노동행정의 변화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노동행정의 사령탑들이 노동관료들의 사고방식과 업무관행 등을 변화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정부 노동행정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노정업무(노사정책의 총괄·조정 및 분석업무)가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따져볼 때가 됐다고 본다. 노정업무의 실태와 개선방향을 점검해보자는 것이다.
우선 노동부의 노사갈등에 대한 조정과 지도기능을 보자.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노사간 갈등이 고조될 경우 노동부가 노사양측을 설득해서 일정한 수준의 양보안을 만들어냈다. 실제 노동부의 일선 직원들이 양측을 중재하기 위해 밤낮 없이 뛰어다녔다. 지금도 상황이 발생하면 담당직원들이 동분서주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 노사 모두 노동부의 중재나 설득을 달가워하지 않게 됐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이제 예전처럼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노동부의 중재안을 수용해야 할 이유가 별로 없고, 노조측도 노동부안을 검토해봐야 손해본다는 생각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측은 노동부를 협상의 지렛대로 이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노동부의 노정업무 가운데 또 하나의 비중이 신노사관계 조성에 있고 실제로 수백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노사관계 모범업체로 표창도 하고 홍보도 한다. 그러나 그런 사업장의 노사협력 선언은 대부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파기된다. 노사 양측의 상호필요에 의해 추진된 노사평화선언이었기 때문에 조건이 변화하면 파국을 맞는 것이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신노사관계 조성이라는 명분으로 수백억원의 돈을 쏟아부었다. 노사관계의 본질적 변화 없는 전시행정에 왜 세금을 낭비하는지 모를 일이다.
노사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 중 또 하나는 노사 양측 모두 정부가 상대방을 편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다. 노사 어느 쪽이든 불법행위를 하면 엄단하겠다던 정부가 2001년 레미콘 노사갈등 때는 사업주의 불법행위를 사실상 방치하면서 노동계의 대정부 불신을 증폭시켰고, 여천과 울산에서는 노조의 장기간에 걸친 불법행동을 수습하지 못해 경제단체의 불신을 샀다.
이런 노사관계의 환경 변화와 각 주체들의 조건 변화는 노동행정의 역할을 왜소화시키고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이제 노동부는 ‘샌드백 신세’가 돼서 노사 양측으로부터 극심한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 전문가들은 인력과 예산에 비해 그 실효성이 극히 낮고 오히려 정부의 공신력과 신뢰성에 타격만 주고 있다는 점에서 노정업무를 별도 조직에 맡기는 방안을 제시한다. 이 가운데 노정업무를 중앙노동위에서 관장하는 방안은 검토해볼 만하다. 독립된 기구로서의 위상을 확보하도록 전문성과 인력충원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면서 노사간의 갈등과 이해상충을 조정한다면 노정간의 불신도 줄여나갈 수 있다. 물론 모든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또 최근 노사 갈등이 법적 분쟁으로 가는 경우가 많으므로 전문성 확보 차원에서 가정법원처럼 노사법원을 설치해 운영한다면 현재의 갈등구조를 상당부분 해소시키면서 법과 합리성에 근거한 노사관계 설정이 가능해질 것이다.
노정업무는 정부가 공안차원에서 개입해 해결할 때도 지났고 미봉책을 써봐야 매년 노사갈등만 되풀이될 뿐이다. 제도적 뒷받침과 합리적 기준, 상호인정의 룰을 정착시켜나가야 할 단계이다. 그렇게 해야 잘못된 타성에 빠져있는 노사 양측의 억지주장이나 일방적 요구에 대해 객관적인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이렇게 노동행정에서 노정업무를 분리하고 고용실업업무를 노동부의 주 업무로 삼는다면 현재 겉돌고 있는 고용실업정책, 기업의 구인난과 취업난, 대량실업의 문제가 비로소 제 길을 찾을 것이다. 주무부처의 명확한 업무설정, 객관적 현실에 기초한 목표확립, 다양한 접근 방법에 대한 철저한 검토, 담당자들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교육과 훈련 등 실로 해야 할 작업은 많다.
이에 앞서 무엇보다 실업실태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가 필요하다. 통계청의 실업통계는 일정한 의미가 있고 또 쓸모도 있다. 그러나 장기실업자 등의 파악에 있어 사각지대가 존재하므로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을 운용하기 위해서라도 실업실태에 대한 전면조사가 일차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을 쓰고 있는 국가 내부에서도 10% 전후의 고실업시대가 오면서 정책의 실효성에 논란이 일고 있다. 10%대의 고실업상태는 저성장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으로, 장기실업자의 비중 또한 높아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소화하는 데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그런 나라에서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5∼6%대의 고성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새로운 방안을 찾아내야 할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실업상태는 IMF사태 이후에 50대 이상의 고령자 실업이 증가하고 단순미숙련에서 고학력 기능직까지 다양한 집단이 노동시장에서 퇴출당한 상황이다. 특히 한국의 노동시장이 단순부품 가공산업에서 일부 중화학공업생산으로 전환되면서 숙련노동력도 증가했지만, 섬유 철강 조선 등에서 보는 것처럼 대다수 노동력은 단순기능의 노동력으로 구성돼 있다. 일부 다기능 노동자 훈련이 있었지만 그 비중은 미미한 실정이다.
특히 실업실태 조사에서 여성노동력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덜어줄 인력은, 이미 실업상태에 빠졌거나 아직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않은 여성과 청년 노동력을 중·단기간에 훈련시켜서 공급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업이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정한 인력을 부가가치가 높은 숙련노동력으로 훈련시키면 구조조정작업도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다. 일정한 기간 숙련노동력으로 훈련받고 전직될 경우 노동자와 노조가 구조조정에 반대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고용실업정책과 복지서비스 결합해야
그러면 어떻게 개선해야 할 것인가. 재취업훈련과정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력수요예측이나 각 지역의 구인수요에 근거해서 조직되지 못했다. 단순히 기존의 기술학원과 대학교를 형식적으로 참여시켰기 때문에 구인과 구직의 불일치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재취업훈련비는 대기업과 사설학원의 보조금이라는 비판까지 나온 것이다.
실업자와 취업노동자의 노동시장 이동문제는 노동부가 중심이 돼서 각 부처와 구조조정문제를 협의해 충분한 전직훈련과정을 설치하고 다양한 훈련과 생계지원예산의 확보, 취업상담 등 다양한 활동을 일관성 있게 전개할 때 비로소 그 성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한국경제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구조조정 작업과 함께 부가가치가 높은 고기술과 원천기술, 자본재생산 등 신산업분야를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실업상태의 노동자들을 재훈련시켜 중소기업의 인력난에 대처하면서 기존 산업 가운데 국제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분야와 기업의 구조조정 작업을 촉진하는 과정에 배출되는 노동력의 재배치 문제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이 중요한 일을 해당부처의 실무자들에게 떠맡기고 말아서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실업과 구인난, 경제체질 변화를 이루어갈 수 없을 것이다.
중앙정부는 종합적인 차원에서 고용실업정책을 수립하고 각급 지자체와 논의구조를 활성화해 각급 지자체가 자신의 문제로서 적극 개입하도록 해나가야 한다. 노동부가 정부차원의 전략적 고려와 정책을 만드는 기능을 수행하고 각급 지자체의 고용실업업무를 지원하는 체계를 수립하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우선 지자체 스스로 이같은 전문적 분야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현재의 지자체 기능과 편제를 그대로 둔다면 고용협의체는 활성화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별도의 인력을 배치하거나 기존 노동부의 지방조직을 확대하는 것도 시대흐름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는 고용실업정책과 복지서비스를 결합하는 차원의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일반 행정기능을 축소해 전자화하고 고용실업, 복지, 환경, 교통, 건축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기능을 강화하는 등 지자체의 기능을 대폭 개편하는 방향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애매한 형태의 주민자치센터식 접근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주요현안을 논의하거나 책임지고 해결할 주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단순노동력이든 숙련노동력이든 구인난을 겪는 중소기업과 실업자의 구직요구가 서로 엇갈리고 있는 것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해결하느냐가 중요하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원인 분석이 앞서야 한다.
현재 국내 중소기업들은 여러 가지로 악조건에 놓여 있다. 낮은 임금과 열악한 작업환경과 복지수준. 이런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직업훈련을 잘 시킨다고 해도 구인난은 해결되지 않는다. 거꾸로 ‘그렇기 때문에 외국노동력의 수입밖에 다른 길이 없다’는 사고방식도 사태를 악화시킨다.
그렇다고 정부가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인건비를 지원해 줄 수는 없다. 사기업에 국민세금을 그냥 주는 것은 더 큰 부작용을 만들기 때문이다.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을 되살리는 데 정부가 개입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기업체질의 변화를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필자가 주장하는 고용실업정책으로서의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대책은 기업의 구조조정을 합리적으로 촉진하고 단순노동력 중심인 노동시장을 고기능·다기술 노동력으로 재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또 신규 노동시장 진입자들이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근로환경을 만들어내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모색돼야 한다.
임금격차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은 아주 많다. 그 대안들은 여러 형태로 이미 정책에 반영돼 있기도 하다. 건설교통부는 저소득가정을 위해서 수십만호의 임대주택 건설 사업을, 보건복지부는 탁아사업을, 각 지자체는 마을버스사업 등을 하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이런 사업들이 사회정책적 차원에서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임대주택 제공이나 어린이집, 통근버스 운영 등의 방안을 제시하면 중소기업에 취업하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취업하겠다고 대답한다. 주거비용이나 탁아비용을 저소득 노동자대책의 일환으로 흡수하면 실질적인 임금소득 상승의 효과를 갖게 되는 것이다.
종합적인 작업환경 개선 필요
작업환경개선사업은 노동부와 산하기관이 장기간에 걸쳐 해온 사업이다. 기본목적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내용은 작업환경개선과 큰 차이가 없다. 환경부가 유독가스와 오염물질 배출방지를 위해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것도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의 작업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매년 수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는데 현실은 그대로다. 산업재해 인원도 외형적으로는 감소한 것처럼 보고되고 있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다. 규제가 완화되면서 안전사고는 더 늘어났다.
그 원인은 관련 예산이 노사나 지역단위에서 충분한 협의나 검토 없이 형식적으로 집행돼왔기 때문이다. 필자는 안산·시흥지역의 실태조사 과정에서 이 점을 확인한 바 있다. 기존의 작업환경개선 사업방식을 전면적으로 개편하도록 했지만 큰 변화를 이끌지는 못했다.
구인업체를 우선적으로 지원할 것, 진동소음, 악취 등 기본환경을 완전히 개선할 것, 자동화를 가능한 지원할 것 등의 요건을 충족시키려면 적어도 1억∼2억원 이상의 예산이 드는데 어떻게 1만개 기업의 환경을 개선한다는 것인가. 구인수요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황이 아닌가.
어쨌든 구인수요에 근거해서 작업환경개선을 추진할 때 가장 큰 난점은 역시 기업주들의 사고방식이다. 대부분의 기업주들이 환경개선에 돈을 투자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고 있고 실제 임대공장이 대부분이어서 금융권 대출담보도 어렵다. 소사장제로 운영되고 있는 조건도 제약요소다.
하지만 구인수요에 맞춰 인력공급을 안정적으로 해주고 작업환경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하면, 그렇게 개선하고 싶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구체적인 방안이 없기 때문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작업환경개선사업에 기업주들이 나서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지극히 부분적인 환경개선에만 정부예산이 들어갔던 것이다.
노동부, 산자부, 환경부 등 정부부처가 각급 조직별로 참여해서 작업환경개선사업 종합계획을 세우고 노사와 지역단체 등이 참여한 작업환경 개선위원회를 만들어 투명하게 운영하고 그 결과를 평가해나간다면 한국 중소공장들의 열악한 작업환경은 수년 안에 선진국형 공장 수준으로 변신할 수 있고 중소기업의 이미지도 개선될 것이다.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이 직원 복지를 향상시키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자본이 영세하고 재정의 안정성이 크게 떨어진다. 이같은 중소기업 자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정부 차원의 다양한 기업지원과 노동자우대제도를 시행해왔다. 그럼에도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복지수준 격차는 점차 더 벌어져, 그 지원제도는 구인문제를 해결할 유인요소(誘因要素)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각종 지원제도를 묶어서 구인난을 겪고 있는 기업에 취업하는 노동자들에게 제공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메뉴는 임대아파트 입주권이다. 현행 임대아파트는 일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입주우선순위가 정해진다. 주택분양과 비슷한 취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이나 생산근거지와 무관하게 도시외곽에 건설되면서 도시빈민과 자영업자들이 주로 입주해 있다. 입주자격을 상실했으면서도 나가지 않는 가구도 30%나 된다. 지난해에 3D 분야에 취업하는 노동자에게 2순위 입주우선권을 주도록 관련규정을 개정했지만, 임대주택의 입지조건은 이마저 어렵게 돼 있다.
그래서 신규 임대아파트 건설계획을 세울 경우 일정비율을 공단과 인접한 지역에 건설하도록 하면 임대아파트 카드는 아주 유효한 복지지원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학자금 대출과 장학금 지급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산하기관에서 저소득노동자 지원제도로 시행돼온 이 제도를 형식적으로 운용할 것이 아니라 열악하고 어려운 작업과정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지원되도록 전환할 필요가 있다. 보육시설의 설치와 운영도 복지부와 노동부가 충분히 협의한다면 인력 유인에 상당한 매력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략적이며 종합적인 사고이다. 각 부처가 단편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숱한 제도와 예산을 정비하고 현실에 적합한 정책수단을 개발해서 철저하게 실천하고 평가해나간다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는 없다.
구인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들과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아우성치는 대량실업문제를 현재처럼 방치하고 각 부처가 타성적인 행정서비스를 되풀이한다면 중소기업의 붕괴와 빈부격차의 심화, 복지예산의 폭증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구조조정작업의 종합적인 점검, 실업자실태조사, 각종 지원대책 정비, 철저한 집행과 점검평가 등의 작업을 추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