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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교도관 발걸음 소리에 심장이 얼어붙었다”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거듭난 사람들의 심경 고백

  • 글: 황일도 shamora@donga.com

“월요일 아침 교도관 발걸음 소리에 심장이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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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해가 저물던 지난 12월31일 정부는 수년째 집행을 기다리고 있던 사형수 네 명에게 특별감형조치를 단행했다. 덜컹대는 철문소리, 방문 앞에 멈춰서는 발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다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 했던 이들은 이날 새 삶을 얻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들 중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두 사람이 전하는 사형수로서의 삶, 그리고 새로 얻은 생명에 대한 감격.
“월요일 아침 교도관 발걸음 소리에 심장이 얼어붙었다”
지난 1월6일, 멀리 청계산 자락이 건너다보이는 경기도 의왕시 포일동 서울구치소. 정문을 지나서도 한참 올라가 교도관의 안내를 받으며 구치소 교무동 현관에 들어서자 육중한 철문이 나타난다. 진눈깨비라도 내릴 듯 잔뜩 찌푸린 날씨 탓인지 복도는 평소와 달리 침침했지만 몇 달 만에 이 곳을 찾은 서울구치소교화협의회 이상혁(68·변호사) 회장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유리문을 통과해 계단에 오르자 강당이 있는 2층을 지나 3층 종교실의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개신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등 종교별로 마련되어 있는 종교실 가운데 한 곳에 들어서자, 지난 12월31일 특별감형을 통해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신분이 바뀐 재소자 김정호(가명·37)씨가 이회장을 맞이했다.

“다른 이들은 얼마나 낙심했을까”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한 김씨의 얼굴에 빛이 넘친다. 그러고 보니 옷도 녹두색 사형수복에서 파란색 일반 재소자복으로 바뀌었다. 가슴에 달린 명찰도 사형수임을 알려주는 빨간색이 아닌 흰색이다. 반갑게 손을 잡는 이회장을 바라보는 김씨의 눈가에 순식간에 눈물이 맺혔지만 감정을 자제하려는 표정이 역력하다. 벌써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새로 얻은 삶에 대한 감격이 많이 사그러든 것일까.

“그런 게 아닙니다. 처음 교도관님이 감형소식을 전해주던 날에는 차마 믿을 수 없어 ‘할렐루야!’를 목놓아 외쳤지요.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아들이 살았다는 소식에 새벽길을 달려오신 어머니를 부여잡고 웃으면서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비로소 어머니 얼굴에 빛을 찾아드렸다고 생각하니 더욱 기뻤고요.



그러나 문득 돌아보니 주위에 남은 사형수들이 보이더군요. ○○형을 비롯해 다른 스물세 명의 최고수(재소자들이 죽음을 연상시키는 ‘사형수’ 대신 사용하는 용어. ‘최고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편집자) 형제들의 표정도 아른거리고요. 그들은 얼마나 낙심했겠습니까.

내가 잘나서 감형 받은 것이 아니고, 내가 잘해서 혜택을 받은 것이 아닌데 이렇게 내놓고 좋아하는 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실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가슴을 치며 회개했지요.”

2남1녀 가운데 첫째인 김씨는 어머니에게는 더없이 착한 아들이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무랄 것 없는 모범생이었지만 그를 엇나가게 만든 것은 술만 마시면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아버지의 폭력이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소년원을 드나들면서도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지만, 어머니의 머리를 흉기로 찍는 등 아버지의 폭행은 계속됐다. 1992년 가을, 결국 김씨는 술에 취한 아버지를 공기총으로 살해하고 사체를 한강에 유기하는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 이듬해 존속살해 및 사체유기 혐의로 사형이 확정돼 수인번호 40XX번이 김씨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전국 56명의 미집행 사형수 가운데 최장기수이던 김씨는 아직 사형이 확정되기 전인 1992년 12월24일 구치소 내에서 세례를 받고 기독교에 귀의했다. 이후 3개월마다 한 번씩(지난해 9월부터 6개월에 한 번으로 변경) 방을 옮길 때마다 같이 지내는 수감자 600여 명을 전도해 ‘작은 목사’라는 별명도 얻었다. 지난 2000년 말에는 어머니를 통해 모아두었던 영치금 100만원을 소년소녀가장에 전해달라고 내놓기도 했다.

‘사형연습’ 거치며 죽음 준비

“대법원에서 사형판결을 받고 화장실에서 밤새 눈물을 흘리던 날부터 하루하루가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교도관의 발걸음 소리가 제 방문 앞에서 멈출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곤 했으니까요.”

외국영화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사형수에게 사형이 언제 집행되는지 본인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따라서 ‘최후의 만찬’ 같은 것은 없다. 어느날 아침 방문 앞에 교도관이 다가와 수인번호를 부르면 그것으로 끝이다. 미리 고지할 경우 일반수와 한방에서 기거하는 사형수를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 공포감에 시달린 한 사형수가 ‘재판이 진행중일 때는 사형이 집행될 수 없다’는 데 착안해 같은 방 재소자를 폭행하려 했던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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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일도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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