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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교도관 발걸음 소리에 심장이 얼어붙었다”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거듭난 사람들의 심경 고백

  • 글: 황일도 shamora@donga.com

“월요일 아침 교도관 발걸음 소리에 심장이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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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집행은 보통 평일 오전에만 이뤄진다. 때문에 사형수들은 어서 아침이 지나가기를, 빨리 주말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반대로 다시 평일이 다가오는 일요일 밤부터 월요일 아침은 사형수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시간이다. 사형수들만이 앓는 ‘월요병’인 셈이다.

김씨가 서울구치소에 들어온 이후 있었던 사형집행은 모두 네 차례. 운동시간 등을 통해 서로 얼굴을 익힌 사형수들은 집행이 있을 때마다 이번에는 누가 죽었는지 확인하며 살아남았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미처 오후가 되기도 전에 구치소 곳곳에 소문이 퍼져 나간다는 것. 그 중에서도 김씨는 문민정부 집권 말기인 1997년 12월 스물세 명의 사형수를 무더기로 처형한 날을 잊지 못한다.

“정권 말이라 다들 긴장은 했지요. 그렇지만 사형수 경험을 했던 김대중 후보가 새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올해는 집행이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지요? 그날 아침 일찍 ‘오늘 가겠구나’ 하는 직감이 들더군요. 사람이라는 게 영적인 동물이니까요. 준비를 해야겠다 싶어 찬물로 목욕을 하고 모든 것을 정리한 후 유서를 썼습니다. 방 형제들에게 뒤를 부탁하고 기다렸지요.

아니나다를까 열시 반쯤 되었을 무렵 담당 교도관이 ‘사공XX 김정호 면회!’하고 부르더군요. 준비했던 옷을 갈아입고 방문을 나섰습니다. 복도를 걸어나가면서 방마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사형장 쪽으로 가지 않고 접견장 쪽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멀리 서울구치소 담당 목사님이 충혈된 눈으로 서 계신 것을 보고 나서야 ‘아! 집행이 이미 끝났구나, 이번에는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도관을 따라 면회실에 가보니 오늘 집행이 있는 줄도 모르고 오신 어머님이 깜짝 놀라시더군요.



방으로 돌아오니 동료들이 ‘죽으러 간 사람이 살아왔다’며 환호성을 질렀지만 저는 이날 깊이 깨달은 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연습’을 시키신 거라고요. 한번 두번 사형집행이 있을 때마다 함께 지내던 이들이 먼저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지켜보며, 심경이 담담해졌습니다. 집행에 입회했던 직원 분들이 그들이 갈 때도 담담하고 아름답게 갔다고 전해주셨고요.”

아버지 무덤 잔디에 거름이 되어

지난 30년간 100여 명의 사형수들을 지켜본 이상혁 회장에 따르면 사형수는 대개 비슷한 심리적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우선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기까지는 담장 밖에 있는 가족들을 다그친다. 더 비싼 변호사를 고용하라고 성화를 부리는 것은 물론이고, 판사에게 뇌물을 써서라도 자신을 구해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다가 형이 확정되면 한달 가량은 밥도 먹지 않고 울기만 한다는 것. 이후에는 멍하니 벽만 쳐다보며 두 달을 보낸다. 이 때는 구치소 종교위원의 면담도 거절하고 혹 만난다 해도 묵묵부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종교에 의지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젊은 시절 잠시 교회에 나갔던 김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재심청구나 헌법소원을 위해 기록을 복사하는 등 분주했던 김씨도 목사인 집안 어른의 설득으로 기독교에 귀의하고 나서 “언제 집행이 있어도 달게 받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구치소 종교위원들과 면담하며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회장의 말이다.

“감형된 사형수들이 주위 동료를 생각하며 감정을 자제할 수 있는 것도 이미 오래 전 죽음을 초월했기 때문일 겁니다. 어떤 사형수는 교수대 앞에 서서도 ‘내 목이 강한지 저 밧줄이 강한지 나랑 내기하자’고 교도관에게 농담을 걸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렇게 생사를 초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공포에 깜짝깜짝 놀라거나 사고를 치는 등 불안한 모습도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수에 비해 징벌방에 갇히는 경우가 잦습니다. 구치소 입장에서도 사형수는 다루기 힘든 존재인 셈입니다.”

사형수를 만날 때 가장 금기시되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질문이다. 1994년 1월부터 김씨를 만나온 이회장이지만 면담중에는 물론 편지를 통해서도 김씨가 살해한 아버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김씨가 보낸 편지 가운데서 아버지에 관한 언급은 단 한 번뿐. 죽으면 장기는 기증하고 남은 시신은 화장해 아버지 무덤에 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무덤 잔디에 거름이라도 되어 남은 가족에게 속죄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들의 옥바라지를 위해 집까지 다니기 편한 곳으로 옮긴 김씨의 어머니 장희옥(가명·57)씨는 기자의 질문에 끝내 말을 아꼈다. 이제 막 시작된 아들의 무기징역 생활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자신의 가족에게 일어났던 엄청난 비극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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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일도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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