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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농성단 앞에서 공무원들은 고기를 구워 먹고…

온산부터 새만금까지… 최열의 환경운동 20년 회상기

  • 글: 최열

단식농성단 앞에서 공무원들은 고기를 구워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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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3월,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던 나는 역설적이게도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 특사로 풀려났다. 그리고 출감과 함께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때 상근자로 참여한 사람은 나와 정문화, 김태현씨 등 세 사람. 혈기왕성한 세 명의 젊은이는 이 땅에서 공해란 단어를 아주 없애버릴 듯 의기양양했지만 사무실을 냈다고 일이 잘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우선 운영비가 문제였다. 사재라도 털어 활동비로 보태고 싶었지만 5년 반 동안의 감옥살이로 생활비조차 없을 때였다. 그때 권호경 목사, 함세웅 신부, 한승헌 변호사, 이돈명 변호사 등 여러 어른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 특히 윤보선 전대통령은 두둑한 금일봉을 건네주시며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다.

어려움은 운영비 부족에서 그치지 않았다. 돈이야 빌리면 된다지만 외압을 견디기란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공해문제연구소’는 5공화국 들어 설립된 최초의 재야단체였다. 당국은 공해문제연구소를 환경공해가 아닌 ‘정치공해’를 다루는 ‘불순단체’로 간주했고 각종 정보기관을 통해 해체를 종용하며 갖가지 협박을 해왔다.

연구소를 출범시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포함한 민주화운동 동지들이 계훈제 선생과 박종태 전 의원의 회갑연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박종태 전 의원은 수감중에, 계훈제 선생은 수배중에 회갑을 맞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조촐하게 공동회갑연을 마련하려 했던 것이다. 이 계획이 알려지자 관계기관은 당시 초청인 자격이었던 함석헌 선생을 비롯한 주요 참석자들을 가택연금시켰다. 나도 용산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소동 끝에 결국 공동회갑연은 무산되었고 준비한 음식은 모조리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공해문제연구소를 설립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음식물 쓰레기 양산이었던 셈이다.

“우리 애들만은 살려주세요”



우여곡절 끝에 1982년 안양천 오염실태 파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공해현장 조사를 벌여나갔다. 이듬해에는 울산과 온산, 여천 등지의 공해현장을 답사하며 제법 체계를 갖춘 공해추방운동을 펼쳤다. 이 중 비철금속단지가 위치한 온산 지역의 공해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1983년과 84년 두 해 동안 공해연구소 조사단은 온산 지역을 30여 차례 이상 방문하며 공해 실태를 조사했다. 비철금속단지로 유명한 온산에는 당시 13개의 외국 공해업체 공장이 들어서 있었는데, 이들 공장에서 내뿜는 각종 유해가스와 연기 때문에 도시는 언제나 희뿌옇게 물들어 있었다. 조사를 끝낸 우리는 결과에 경악했다. 지역 주민 1만명 가운데 700여 명이 뼈마디가 쑤시고 눈병, 기침, 피부병 등 합병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환경이 오염되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이 아이들이다. 나는 이어 공장과 인접해 있는 모 초등학교 6학년 한 학급 학생 아동들을 대상으로 공해피해를 조사했다. 학교에 들어선 순간 나는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화초가 모두 말라죽은 교정. 고사한 플라타너스 아래 서너 명의 여자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핵폭발로 폐허가 된 죽음의 도시 속 교정을 연상케 했다. 6학년 한 학급 학생 52명 중 절반인 26명이 뼈가 쑤시고 눈병이 나거나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 지역에서 잡은 물고기, 조개, 미역 등 해산물과 농작물에서는 구리, 아연, 카드뮴 등 중금속이 기준치의 10배에서 100배까지 검출됐다.

상황은 심각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미약했다. 분노와 절망감에 싸여 착잡한 심정으로 바닷가를 거닐던 나는 우연히 한 해녀를 만났다.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하던 그 분의 말 한마디가 자괴에 빠져 고민하던 나를 일으켜세우는 기폭제가 됐다.

“선생님, 저는 살 만큼 살았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제발 우리 애들만은 살려주세요.”

이듬해인 1985년 그간의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에도 공해병인 ‘온산병’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환경청과 관련 부서에서는 관변 학자들을 동원해 사실을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뿐만 아니라 나는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경찰서에서 나는 공해추방운동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나를 심문하던 한 수사관은 “환경청이 환경운동은 돕지 않고 오히려 검찰과 경찰에 허위사실을 전달해 당신을 구속시키려 한다”며 “당신의 행동이 전적으로 옳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나를 당장 구속시켜라”고 했다. 그러면 이 문제가 널리 알려지고 세계의 환경단체들이 들고 일어나 공해추방에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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