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9월 일본 외무성 간부들이 외무성 직원이 부정사건에 연루돼 체포된 데 대해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표결이 있던 2002년 12월3일 오전까지도 우리 외교부는 2, 3차 투표에서 탈락국가의 지지표를 흡수, 중국에 최소 2표 이상 앞설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었다. 이런 구도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는데 그 대책도 세워두었다고 했다. 대책이란 투표 직전 예정됐던 한·러 정상회담. 그러나 한·러 정상외교는 불발됐다. 급한대로 전윤철 부총리가 긴급 투입됐다.
11월29일 전부총리는 러시아로 날아가 러시아와의 최대 경제현안이던 ‘불곰2차사업’을 원만하게 마무리했다. 우리가 받지 못하고 있는 경협차관 원리금 중 5억3400만달러를 현금이 아닌 탱크 등 무기로 받는다는 것이 불곰2차사업의 줄거리다. 그것도 이 돈의 절반을 선급금으로 제공해 러시아의 공장을 가동케 한 뒤 생산한 물건을 들여오는 방식이다. 세계박람회 유치위원장이자 현대자동차 오너인 정몽구 회장까지 나서 현대자동차의 러시아 진출 문제를 논의하는 등 분주히 움직였다.
그러나 상하이를 후보지로 내건 중국도 가만 있지 않았다.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은 표결 전날 베이징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세계박람회 지지를 공식적으로 당부했다. 그것으로 게임은 끝났다. 16대 대통령 선거에 묻혀버렸지만 박람회 유치 실패는 정부와 민간이 함께 뛰어든 대규모 국제행사 유치전에서 실패한 첫 번째 사례다.
물론 세계박람회가 ‘외교 실패’의 처음은 아니다. 한-러 정상회담 탄도탄 요격미사일(ABM) 파문, 중국 정부의 한국인 신아무개씨 처형 사건, 마늘 파동, 한-칠레 FTA 체결에 이어 최근엔 불법 비자발급사건에 반미시위에 이르기까지 우리 외교의 실패사례는 이어졌다. ‘3류 외교’ ‘망신 외교’ ‘소방 외교’ 등 갖은 비판과 질책이 쏟아졌지만, 정작 외교부는 미봉책만 내놓고 있다. 과연 우리 외교통상부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그 해답은 있는가.
우리 현실을 살펴보기에 앞서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일본의 사정을 알아보자. 일본 외무성도 거듭되는 공직자 비리와 부정으로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지금 일본 외무성은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고 수백 가지 과제를 내놓고 고쳐나가고 있는 중이다.
2001년 1월25일 일본 외무성은 ‘마쓰오 겐(松尾元) 전 요인외국방문지원실장의 공금횡령의혹에 관한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1995년 10월부터 1998년 3월까지 3년여 동안 마쓰오 실장이 무려 5400만엔의 공금을 횡령해 이를 경주마 구입 등에 사용했다는 것이 보고서의 줄거리다.
개인주머니로 흘러간 공금
마쓰오 실장은 1992년 10월10일부터 내각 총리의 외국 방문시 숙박·교통 등에 대한 지원업무를 맡았다. 그의 횡령수법은 너무나 간단했다. 은행에 자신의 이름으로 계좌를 열고 여기에 내각관방 보상비를 입금한 후 신용카드로 결제했던 것. 조사 결과 그는 총 5개 은행에 예금계좌 8개와 우체국계좌 1개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계좌에 입금된 돈은 5억6000만엔(우리 돈 56억원), 반면 신용카드로 결제된 공금 누계는 2억5000만엔에 불과했다. 3억1000만엔의 예산이 고스란히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외무성 조사단은 그 지출명세조차 규명하지 못했다. 그는 유용한 공금으로 8080만엔짜리 맨션을 구입하고 최소 14마리의 경주마와 5개 이상의 골프회원권을 구입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마쓰오 실장이 횡령한 돈의 성격이다. 이 돈은 총리관저 예산으로 편성된 것으로, 국회의 예산심의는 고사하고 용도를 밝히지 않고 총리나 관방장관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내각관방 보상비였다. 대략 매년 15억엔 정도 편성되는데,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도 투명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특히 외무성 보상비의 총리관저 상납 의혹, 와인 구입·음식값 지불 등 외무성 직원들의 사적 유용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으나 명쾌하게 밝혀진 것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