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볕정책의 산물인 남북정상회담. 노무현 후보의 당선으로 햇볕정책은 이어지게 되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은 ‘햇볕론에 입각한 화해·협력 및 공존·공영정책(햇볕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대북정책의 목표를 평화·화해·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에 두고, 대북정책 3대 원칙으로 무력도발 불용, 흡수통일 배제, 화해·협력의 적극 추진 등을 제시했다. 이같은 대북정책은 안보와 화해·협력을 병행하는 이중접근전략(two-track approach)이다. 김대중 정부는 북한의 장기생존을 가정하고 남북한이 상호 호혜적 관계를 발전시켜 장기적으로 민족공동체를 건설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김대통령은 북한을 붕괴로 유도하기보다는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혁·개방의 길로 나가게 할 것을 기대했다. 따라서 변화를 강요하기보다 교류와 협력을 통해서 북한의 변화를 점진적으로 유도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김대중 정부는 “교류·협력은 남북관계의 연결고리가 되고,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여 통일한국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적극적인 햇볕정책 또는 포용정책을 추진했다.
김대중 정부의 기본 가정은 북한의 조기붕괴 가능성이 높지 않으며, 북한 정권은 자체의 힘으로 변하기 어려운 정권이라고 전제하고, 햇볕론에 입각한 대북 포용정책으로 북한이 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접촉과 제공, 대화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남북간 화해·협력, 공존·공영을 모색하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단기적으로 분단체제의 평화적 관리정책을 추진하고, 중장기적으로 포괄적 접근을 통한 냉전구조 해체와 ‘사실상의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한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이루기 위해선 좀더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접근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다섯 가지 과제를 한반도 주변국과 협력·공조해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남북간 대결과 불신의 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시켜 나가야 한다. 둘째,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정상화하는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셋째, 북한이 안심하고 변화와 개방을 추진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넷째, 한반도에서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통제·제거하고 군비통제를 실현해야 한다. 다섯째, 현재의 정전체제를 남북간의 평화체제로 바꿔야 한다.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남북이 서로 오가며 돕고 나누는 ‘사실상의 통일’ 상황이 이뤄질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다섯 가지 과제를 제시하며 포괄적 접근방법(comprehensive approach)을 통한 주고받기식 일괄타결을 모색했다. 포괄적 대북접근은 한·미·일이 공조하여 ‘우선 당면한 문제 해결 노력과 함께 근본적 문제 해결 노력을 병행’하는 것이다. ‘단계적으로 로드맵(이정표)을 만들어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방식’으로 단계적 접근(step by step)을 통한 일괄타결을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북·통일정책 7대 과제
김대중 정부는 출범 후 새로운 통일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명목상으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계승하면서 실질적으로 ‘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에 따라 대북·통일정책을 펴왔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3단계 통일론’에 따라 첫 단계인 ‘남북 국가연합’의 실현을 지향하는 통일정책을 추진했다.
김대중 정부는 대북·통일정책의 7대 과제로 ▲남북 기본합의서에 의한 남북개선 기반 마련(남북 기본합의서 이행을 위해 필요시 정상회담 추진) ▲정경분리 원칙으로 남북 경제협력 적극 추진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한 사회문화교류협력 활성화 ▲이산가족 재회 및 편지왕래의 조속한 실현 ▲남북한 주도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대북 경수로사업의 원활한 추진 ▲국민적 합의와 지지를 바탕으로 통일정책 추진(북한 라디오·TV방송의 단계적 개방, ‘통일교육지원법’ 제정) 등을 제시했다(1998년 2월12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의 정부 품질혁신을 위한 100대 국정과제’ 중 통일분야 과제).
이 7대 과제 중에서 ‘남북한 주도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국민적 합의와 지지를 바탕으로 통일정책을 추진한다’는 과제도 남남갈등이 나타남으로써 성공적으로 추진됐다고 보기 어렵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남북관계가 대립과 대결이 아닌, 화해와 협력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을 마련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대화는 ▲장관급 회담, 특사 회담 등 정치·총괄 분야 회담 10회 ▲국방장관 회담, 군사실무 회담 등 군사분야 회담 14회 ▲경제협력추진위원회, 실무협의회 등 경제분야 회담 19회 ▲적십자 회담, 아시아 경기대회 참가 등 사회분야 회담 8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51차례의 회담이 개최되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은 공동보도문 15건, 합의서 16건을 채택했다.
이밖에도 ‘정경분리’에 입각한 일관된 경제교류협력을 통해서 남북 경제공동체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남북간의 ‘보다 많은 접촉과 대화,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면서 금강산 관광객을 제외하고도 남북간 인적·물적 교류가 이전보다 20배 증대됐다. 다섯 차례의 이산가족 상봉단 교환을 통해 5400여 명의 이산가족들이 상봉하였으며, 생사·주소 확인 사업 등을 통해 총 1만2000여 명이 생사 및 주소를 확인하였다. 특히 금강산에 이산가족면회소를 설치·운영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이산가족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