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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부시의 압박이냐, 김정일의 돌격이냐

北·美의 북핵 게임

  • 글: 이정훈 hoon@donga.com

부시의 압박이냐, 김정일의 돌격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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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지구에 설치될 경수로는 한국이 설계하고 제작하는 ‘한국형 경수로’다. 하지만 이 경수로 설계와 제작에는 컨버스천 엔지니어링(ABB-CE)이나 제너럴 일렉트릭(GE) 같은 미국 회사가 제공한 핵심 기술과 부품이 사용된다.

대신 미국은 미국의 동의 없이는 이 경수로를 제3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또 미국은 이 부품과 기술을 제공하지 않을 권한도 갖고 있다.

금호지구 경수로 건설에 대해서는 미국도 불만이 많았다. 미국 비확산정책 교육센터의 헨리 소콜스키 사무국장은 부시 정부에게 북핵 문제를 자문해주는 인사다.

2001년 3월 한국에 온 그는 미 대사관 직원 관저에서 기자를 만나 ‘사견’임을 전제로, “북한은 IAEA의 특별사찰을 받지 않았으니 제네바 합의는 무산됐다. 따라서 미국은 미국의 중요 기술이 포함된 경수로를 북한에 짓도록 허가하지 않을 것이다. 금호지구에는 경수로 대신 중유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수로를 중유 발전소로 대체하자.’ 부시 정부 출범 이후 미국에서는 이러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동상이몽이었지만, 북한과 미국은 경수로 완공기간으로 적시한 2003년이 오기 전에는 ‘이몽(異夢)’을 고집할 트집을 잡지 못했다. 벼르고 벼르던 2003년이 왔으니 미국과 북한은 ‘다른 꿈’을 시현해보는 것이다. 정리해서 말하면, 작금의 북핵사태는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펼쳐졌을 때를 대비한 한국의 방안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북핵 사태가 벌어진 후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당선자는 “북핵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를 위해 중재역(仲裁役)을 자임하고 나섰다. 북한에 대해서는 남북회담을 통해, 미국에는 특사 등을 보내며 중재에 나설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한국이 미북간의 북핵 갈등을 중재한다는 것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대목이다.

“정몽준의 경고를 잊지 말라”

16대 대통령선거 직전 국민통합 21의 정몽준(鄭夢準) 대표는 김행(金杏) 대변인을 통해 “노무현 후보 지지를 철회한다”고 발표해 큰 충격을 주었다. 정대표측은 ‘노후보가 서울 명동에서 열린 합동유세에서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우리가 말린다’라고 말한 것을 지지 철회 이유로 거론했다.

정대표는 미국과 북한이 싸울 때 한국은 중재하지 말라는 것을 내걸고 노후보 지지를 철회했던 것이다. 정대표와 노후보의 갈등은 우리 사회에 ‘북핵 위기를 중재로 풀어가려는’ 세력이 있는 반면, ‘그러한 중재 자체를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제는 작금의 북핵사태가 우리에게 중재를 요구하느냐는 것이다. 주한 외교기관의 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외교전에서는 종종 외교전에 휘말린 나라가 중재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좋은 사례가 대만인데, 대만은 중국과의 긴장이 높아지면 ‘국제 항로인 대만해협이 중국의 위협 때문에 위험해지고 있다’며 국제 사회의 개입(중재)을 촉구한다. 이때의 국제 사회는 미국이다.

지금 북핵사태의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다. 한국도 중요한 당사자라고 할 수 있다. 북핵사태에는 이미 IAEA 등이 개입해 있는데 한국은 중재를 자임하고 나섰다. 이는 한미 공조에 균열이 일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외교관은 “지금 북한과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것은 중재가 아니라 양자택일이다. 중재는 당사자 중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쪽이 제3자에게 요청하는 것인데, 한국이 미국과 북한으로부터 중재를 부탁 받아야 할 제3자인가. 노무현 후보의 당선으로 지금은 정몽준 대표가 우스운 사람이 되어 있지만 돌고 도는 것이 정치다. 언젠가는 정대표가 내건 이유가 옳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북핵위기는 미국과 북한이 ‘미국의 패권질서 유지’와 ‘김정일 정권의 생존’이라는 목표를 갖고 벌이는 거대한 바둑판이다. 이제 양측이 심모원려(深謀遠慮)의 포석을 깔기 시작했는데 간섭을 기다리겠는가. 양 당사자보다 월등한 힘과 실력을 갖춘 세력도 중재하기 힘든 것이 싸움 초기다.

이 외교관은 “지금의 북핵사태는 중재에 나설 때가 아니다. 그리고 양당사자가 한국에게 요구하는 것은 중재가 아닌 지지다”라고 강조했다.

적잖은 한국인은 클린턴은 대북(對北) 유화론자였으나 부시는 강경론자여서, 미북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측의 판단은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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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정훈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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