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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암살단은 왜 북한 외교관 부인을 저격했나

북한·파키스탄 핵 커넥션 내막

  • 글: 이정훈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oon@donga.com

인도 암살단은 왜 북한 외교관 부인을 저격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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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회장은 강태윤이 경제참사관이 아니라 제2경제위원회 대표로 나왔다가 부인이 피살되는 변을 당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북한의 제2경제위원회는 군수산업 경제만 다루는 부처로 조선로동당 99호실로 불리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북한산 무기를 수출하기 위해 ‘창광무역’이라는 회사를 운영한다. 홍회장은 강태윤이 파키스탄 주재 창광무역 대표도 겸직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니까 ‘마이니치’가 보도한 창왕신용무역공사는 창광무역을 영어와 파키스탄어·일어 등으로 중역(重譯)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기(誤記)이거나 창광무역의 위장 명칭일 가능성이 높다.

김신애씨가 저격당할 당시 홍회장은 태국에 근무하고 있었다. 홍회장은 “때문에 김신애씨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사건이 일어난 다음 전해들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홍회장이 알고 있는 김신애씨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마이니치’나 ‘동아일보’의 보도 내용과는 크게 다르다. 그는 “김신애를 죽인 것은 파키스탄과 심각한 분쟁을 겪고 있는 인도측의 저격수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신애씨 사망 사건이 있기 전 북한미사일 전문가 17명이 파키스탄을 방문했다. 이들은 북한제 미사일을 갖고 와서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이들은 시험 발사 성공 후 황급히 북한으로 돌아갔다. 인도에서 저격수를 보내 이들을 살해할 것이라는 첩보가 있어 급히 돌아갔다고 들었다.

북한 미사일 전문가들이 떠난 후 인도 저격수들은 강태윤을 노렸다. 강태윤-김신애씨 부부는 단독주택에 살고 있었는데, 떠난 후 저격수들은 강태윤을 죽이기 위해 이 집 부근에서 잠복했다고 한다. 강태윤씨가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자 김신애씨가 나와 문을 열어주었고 강씨가 먼저 들어간 뒤 김씨도 뒤따라 들어가다 저격수의 총탄을 맞았다고 들었다. 사건 직후 저격수들은 재빨리 도주해 검거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홍회장은 김신애씨가 북한-파키스탄 간의 미사일 거래 정보를 서방 정보기관에 전해주었을 가능성에 대해 부정했다. “김신애씨는 남편이 하는 일에 관한 정보를 빼내 단독으로 다른 나라 정보기관에 넘겨줄 정도로 담이 큰 여자가 아니다. 정보를 넘겨주려면 우선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김씨는 자유롭게 구사할 수 없었다. 반면 강태윤씨는 1985년부터 로켓(미사일) 업무에 깊이 관여해 왔다. 따라서 인도의 저격수가 노린 것은 강씨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1998년 6월 부인을 잃고 파키스탄에서 사라진 강태윤씨는 또 다른 불행을 겪게 됐다고 한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1998년 사건 이후 강태윤은 북한으로 소환되었다가 1999년 1월 비리 혐의로 보위부에 검거되었다. 보위부는 외화벌이에 종사한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해, 작은 혐의점이라도 발견되면 무조건 사람을 잡아들였다. 이 와중에 강태윤도 체포된 것이다. 부인을 잃어가면서까지 북한을 위해 최일선에서 뛰었던 강태윤이 외화벌이 과정에서 발생한 사소한 부정으로 체포된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인도-파키스탄의 核경쟁

김신애씨 절명 사건을 중심으로 북한-파키스탄 커넥션을 추적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김신애씨 저격 사건이 있기 직전 인도와 파키스탄이 연쇄적으로 지하 핵실험을 했다는 사실이다.

김신애씨 저격 사건이 일어나기 27일 전인 1998년 5월11일 오후 3시45분, 인도는 라자스탄주 사막지대에 있는 포크란 핵실험장에서 지하 핵실험을 실시했다. 그 직후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인도 총리는 언론에 핵실험 사실을 공표하고 “인도는 핵무기 제조능력을 갖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날 인도는 자체 개발한 사거리 50km의 단거리 미사일인 ‘트리슐’의 시험발사도 성공시켰다.

인도는 1974년 비밀리에 핵실험을 벌인 바 있다. 그러나 그때 인도 정부는 핵실험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핵을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얼버무렸다. 그런데 1998년 5월에는 직접 총리가 나서서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했다. 왜 인도는 이렇게 행동한 것일까. 그 해답은 파키스탄의 핵개발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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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정훈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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