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호

추하고 섬뜩해서 좋다? 눈에 띄네! 엽기광고

  • 글: 김홍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khongt@cheil.co.kr

    입력2003-01-30 16: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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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엽기광고가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혐오스러운 이미지가 좋은 느낌을 주는 이미지보다 더 주의를 끌기 때문이다. 광고에서 엽기풍 이미지가 범람하는 것은 우리가 엽기적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으로 증명해준다.
    2년 전에 히트한 016-NA광고(사진1)를 보면 놀라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흔히 츄리닝이라 불리는 운동복과 슬리퍼 차림에 무스로 머리를 마음껏 세운 불량배 같은 아이들이 다닥다닥 게딱지처럼 집들이 붙어 있는 달동네의 골목길에 모여 있다. 그뿐인가. 주인공의 아버지는 속옷차림으로 창 밖을 내다보며 침을 뚝 흘리면서 “나두 잘 몰라” 하고 외쳐댄다. 첨단 텔리커뮤니케이션의 서비스를 알리는 광고의 톤 앤 매너(tone & manner)는 그것과는 대척점에 놓인 의도적인 촌스러움과 불편함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로 치장돼 있다.

    요즘에는 잘나고 멋진 사람이 아니라 평범하다 못해 볼품없어 보이는 사람이 등장해 아름답고 황홀한 세상보다는 음침하고 괴기스러운 세상을 보여주는 광고가 늘고 있다. 멋진 모델이 등장해 환상적인 상황에서 제품을 주인공으로 부각시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고전적 광고문법이었다. 그 문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네거티브 접근법이 각광받는 것이다.

    하위문화의 중심 코드, 엽기



    지금까지 광고에서 네거티브 접근법은 터부였다. 우선 네거티브로 접근했다 하더라도 반드시 포지티브로 결말을 맺는 것이 관례였다. 예를 들어 자신의 차에 대담하게 ‘불량품(Lemon)’이란 헤드라인을 사용한 자동차 광고의 고전 폴크스바겐 비틀 광고도 결국은 수많은 검사 중 단 하나라도 통과하지 못하면 불량품 판정을 받아 시장에 내놓을 수 없다는 포지티브한 결론을 유도하기 위한 네거티브 접근법이었다.



    그러나 이젠 네거티브한 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광고들이 주류에 편입됐다. 추하고 악한 감정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광고가 세를 불리고 있는 것이다. 광고인들은 좋은 감정을 치밀하게 묘사하는 것 못지않게 인간 내면의 악한 면을 연구하고 드러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광고를 소비하는 인간은 선과 악, 양쪽의 감정을 동시에 지닌 동물이기 때문이다.

    네거티브 접근 광고의 선두에 엽기를 표방하는 광고가 자리하고 있다. 알다시피 엽기는 2000년 한국 대중문화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면서 갖가지 이미지를 만들어 전파했다. ‘기괴한 것이나 이상한 일에 강한 흥미를 가지고 찾아다니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엽기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골 때린다’ ‘깬다’ ‘썰렁하다’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의미의 용어로 정착됐다. 다시 말해 괴기가 됐건 개그가 됐건 간에 재미있고 색다르게 보이는 것은 모두 엽기라는 그물망에 건져 올려진다.

    불과 1,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엽기는 조직폭력배의 엽기적 살인행각과 같이 인간으로서는 차마 저지를 수 없는 비도덕적인 범죄 행위를 수식하는 용어로 쓰였다. 그러나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멱살을 잡고 싸우는 해프닝도 엽기이고 똥 모양의 기념품을 선물로 주고받는 행사도 엽기다. 이처럼 엽기는 단순한 사전적 의미를 넘어 ‘괴이하고, 메스껍고, 촌스럽고, 그러면서도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는 새로운 사회·문화적 의미를 획득하면서 하위 문화의 코드를 형성하고 있다.

    더 이상 엽기는 엽기적이란 한정적 수식어의 활용 패턴에 머물러 있지 않다. 이제 엽기 자체가 소비되는 시대다. 그 엽기를 활발히 소비하는 집단은 말할 것도 없이 10대, 20대다. 예쁘고, 바르고, 합리적인 것을 표방한, 그러나 알고 보니 거짓투성이었던 기존 가치관에 대한 대항문화로서 존재하기에 젊은 층일수록 엽기에 열광한다.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엽기란 단어의 영어 표현은 그로테스크(grotesque)에 가깝다. 필립 톰슨(Philip Thomson)의 저서 ‘그로테스크’에 따르면 그 의미는 ‘기괴하고 메스꺼우면서도 희극적이고 즐거운 반응을 일으키는 어떤 것’이다.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막연히 괴이한 어떤 것이 그로테스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해 그로테스크는 괴이하고 역겨운 내용과 희극적인 표현 양식 사이의 충돌이 빚어내는 야릇한 감흥을 말하는데, 지금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사회·문화적 의미를 획득한 엽기가 그와 비슷한 의미망을 형성하고 있다.

    추하고 섬뜩해서 좋다? 눈에 띄네! 엽기광고

    컴퓨터 주변기기를 판매하는 아웃포스트닷컴 광고는 아이들 이마에 회사 이름을 새긴다는 발상으로 눈길을 끈다.(사진3)

    이제 광고로 눈길을 돌려보자. 엽기광고는 주로 절단된 신체, 흘러내리는 피와 같은 혐오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거나 이상한 생김새의 사람들과 을씨년스런 배경을 등장시킴으로써 프로이트가 칭한 ‘두려운 낯설음’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괴기하고 불안하고 황량한 느낌의 이미지가 수용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은 현대사회가 점점 더 도덕적이고 세련된 문명의 외관을 형성해 가는 데 반해 인간의 내면에는 폭력과 일탈의 욕망으로 가득 찬 악마주의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랑, 행복 등의 포지티브한 감정이 아니라 두려움, 혐오, 반감 등의 네거티브한 감정이 미학적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한화통신의 휴대전화 ‘마이크로 아이’ 광고(사진2)는 엽기의 미학을 가장 적절히 구사한 예다. 순박하게 행동하지만 형상은 외계인 같은 무서운 아이, 선하게 생겼지만 사탄을 연상케 하는 검은 복장의 여자, 신나게 돌지 못하고 폐허의 고철더미로 정지해 버린 회전목마…. 밝고 환해야 할 이미지를 음산한 이미지로 대치해 놓았다. 그 결과 화면 전체는 익숙하지 않은 일탈의 기호로 넘실댄다. 화면 전체를 관통하는 네거티브 이미지는 한번의 반전도 없이 광고 끝까지 이어진다.

    이처럼 친숙해야 할 이미지를 정반대의 낯선 이미지로 치환한 이 광고는 기괴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확실히 성공했다. 그 결과 상당히 기분 나쁜 광고라는 평을 들었음에도 그 기분 나쁜 이미지를 통해 절대 열세에 놓여 있던 한화통신 휴대전화라는 브랜드를 인지시키는 데는 성과를 거두었다. 부정적 이미지를 활용해서라도 극약처방을 해야 하는 시장 상황이었던 것이다.

    외국 광고의 경우도 엽기는 주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컴퓨터 주변기기를 판매하는 아웃포스트닷컴(outpost.com) 광고(사진3)는 유머 섞인 엽기를 통해 회사명을 확실히 알린다는 광고 목표를 정확하게 달성하고 있다. 광고의 첫 장면엔 아웃포스트닷컴의 대변인쯤 돼 보이는 사람이 등장한다. 어떻게 하면 아웃포스트닷컴의 이름을 알릴 것인가 고심했다는 멘트로 시작하는 이 광고는 그 방법으로 유치원 원아들의 이마에 아웃포스트닷컴이란 URL주소를 문신으로 새기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화면엔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 옆에서 온몸에 문신을 새긴 근육질의 남자가 아이들에게 문신을 새길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과 이마에 글씨가 새겨진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차례로 이어진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이마에 회사 이름을 새긴다는 발상 자체가 엽기적이다. 우리나라 광고 환경에선 심의에 걸려 아이디어 자체가 사장될 그런 광고다. 그러나 이 광고는 비도덕적인 행위를 찬양하는 일차원적인 광고가 아니다. 한번 웃어보자는 투의 톤 앤 매너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유머는 “이 광고를 보고 불만이 있으면 아웃포스트닷컴으로 접속하라”는 메시지에 잘 녹아 있다.



    혹시 불만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웃포스트닷컴에 접속할 것이다. 그럼 이 광고는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인터넷 사이트의 성공 여부는 일단 클릭해서 들어오게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광고를 보고 불만을 가져 연락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 광고는 부정적 이미지를 조장해 회사의 이미지를 증폭하는 역설을 사용하는데, 그 부정적 이미지를 실어 나르는 기제가 유머인 까닭에 사람들은 반감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센다스(sendas) 슈퍼마켓 광고(사진4, 5) 역시 비슷한 수위에서 엽기를 드러낸다. ‘단 하루 세일’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동원된 이미지는 손톱에 긁힌 자국이 선명한 어깨와 부러진 안경, 멍든 얼굴, 찢어진 입술로 등장하는 아줌마들이다.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사실을 과장 표현한 이 광고는 대부분의 세일광고들이 사용하는 수법, 즉 예쁜 모델이 등장해 ‘이렇게 좋은 가격에 이렇게 놀랄 만한 제품을!’이라고 외치며 감탄하는 표정을 연출하는 고답적 광고의 틀을 깨고 있다.

    신체가 잘려 나가고, 피를 흘리는 등 보다 적극적인 엽기 이미지로 승부하는 광고들도 주류를 이룬다. 이러한 광고는 혐오스런 이미지를 통해 ‘브랜드를 인지시킬 수 있다면’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데, 많은 수의 제품이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 브랜드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벨기에에서 제작된 파이아스(pias)라는 음반광고(사진6)를 보자. 그림엔 냉동고에서 고기를 끌어안고 첼로를 연주하는 몸짓을 취하는 푸줏간 남자가 등장한다. 칼에 베어 피를 뚝뚝 흘리는 고깃덩어리…. 마치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인간의 배를 갈라 걸어놓은 장면을 연상케 하는 이 광고는 ‘음악이 먼저(music first)’라는 개념을, 일하는 와중에도 음악에 빠져 넋을 잃은 사람의 이미지에 실어 풀어냈다.

    사시미(sashimi)라는 이름을 가진 사운드 디자인 회사의 광고(사진7, 8) 역시 호러 무비를 보는 듯하다. 생선회를 뜻하는 사시미라는 회사 이름과 신체 중 귀와 관련돼 있는 서비스의 성격을 연결해 사람의 귀를 잘라 생선초밥을 만드는 엽기 행각을 펼친다. 제품과의 가장 기본적인 관련성만 남겨놓은 채 나머지는 비주얼 스캔들을 통한 충격요법에 초점을 맞췄다.

    언제나 새로운 형식을 통해 노이즈를 불러일으키는 디젤(diesel) 진 광고(사진9)가 이 대열에서 빠질 수 없다. 몸에 꽉 끼는 진 재킷을 광고하기 위해 등장한 비주얼은 비만 흡입술을 시술하는 광경이다. 비만 체형의 남자가 알몸으로 수술대 위에 누워 있고 의사는 호스를 통해 지방을 뽑아내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는 수술복 대신 몸에 딱 붙는 디젤 진 재킷을 입고 있는 해프닝을 연출한다. 뒷골목에서 성행하는 ‘몰래 성형술’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 광고 역시 젊은 층의 코드에 맞는 블랙 유머풍의 비주얼 트릭을 선보이고 있다.

    추하고 섬뜩해서 좋다? 눈에 띄네! 엽기광고

    문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홍콩의 릭키 스튜디오 광고(맨위두사진)(사진10,11)<br>총에 맞아 쓰러진 남자가 존 피어스 정장을 입고 있다.(사진12)

    문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홍콩의 릭키 스튜디오(Ricky studio) 광고(사진10, 11)엔 잘린 신체의 일부가 등장한다. 상대편 조폭에 의해 살해된 듯 잘린 손목 하나가 하수구 옆에, 다리 한 짝은 쓰레기통 속에 버려져 있다. 손목과 다리에 선명하게 새겨진 문신이 눈에 들어온다. 잘린 신체가 문신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엽기를 활용했더라도 그 엽기를 유머로 감싸 안은 광고와 달리 이 광고는 리얼리티를 살리는 데 치중했기에 더욱 혐오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따져 보면 문신을 새긴다는 것 자체도 혐오스러운 일 아닌가. 서비스업의 특징과 같은 축을 형성하는 표현법을 사용한 셈이다.

    남성 정장 존 피어스(John Pearse) 광고(사진12)는 살인사건이 발생한 현장을 담은 보도사진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 총에 맞아 길바닥에 쓰러져 죽어 있는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은 물론 존 피어스다.

    캠페인 브리프 아시아(campaign brief asia)라는 잡지 광고(사진13, 14) 역시 극도의 엽기를 활용한다. 이 광고는 잡지가 너무나 재미있던 나머지 날 새는 것도 모르고 읽고 있다가 이에 열불 터진 전구가 떨어지자 그에 맞아 즉사한 사람의 모습을 담았다. 전구를 확대시켜 표현한 유머가 눈길을 끌기지만, 유머라 치부하기엔 이미지의 엽기 성향이 지나치게 강렬하다.

    이처럼 엽기를 기반으로 하는 광고가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혐오스런 이미지가 사랑, 호의와 같이 좋은 느낌(good feeling)을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요소보다 사람의 주의를 끄는 힘이 강하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엽기풍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는 정서적 긴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그 해소 방법을 찾기 위해 광고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고 말한다.

    추하고 섬뜩해서 좋다? 눈에 띄네! 엽기광고

    잡지가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날 새는 줄 모르고 읽다가 전구에 맞아 죽었을까?(사진13,14)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엽기광고는 더 그럴싸해 보이고, 조금 더 찬란해 보이기 위해 꾸며진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던 기존 광고와 궤를 달리 한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 세상은 아름다움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다. 더럽고 추하고 어두운 구석도 공존한다. 아름답지 않은 세상 역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라는 점을 광고가 반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광고가 일상인보다는 소비자라는 측면에서 타깃에 접근해 왔다는 사실을 말해 주기도 한다. 달리 말해 대중을 광고가 나가는 즉시 자신의 제품을 소비해줄 로봇으로만 생각한 것이지 자연인 그 자체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소비자에게 아름다운 이미지만을 심어주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이제 광고는 자연인으로서 타깃들의 내면 풍경을 읽을 수 있어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뻔한 아름다움보다는 추하더라도 정서적 반응을 끌어낼 수 있다면 광고는 네거티브한 접근법을 활용한다. 타깃은 소비자이기 전에 일상인이다. 그들에겐 아름다움을 즐기고 싶어하는 욕구 못지 않게 추하고 삐딱한 것에도 손을 들어주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엽기풍의 그로테스크한 광고가 지금 전세계적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이 사회가 더욱 엽기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광고에서 엽기풍 이미지가 범람한다는 것은 우리가 엽기적인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역으로 증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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