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호

‘족집게 공습’으로 바그다드부터 초토화!

미 국방부 기밀자료로 본 이라크전쟁 시나리오

  • 글: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입력2003-01-30 17: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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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라크 하늘에 전쟁의 먹구름이 뒤덮이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이미 10만명 이상의 병력을 배치했다. 페르시아만 연안 일대는 중무장 군인들로 득실댄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작전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수도 바그다드를 지켜낼 사담 후세인의 비책은 무엇인가.
    ‘족집게 공습’으로 바그다드부터 초토화!
    이라크 침공을 위한 미국 부시행정부의 준비가 한창이다. 그 규모는 5개 기갑사단과 기계화보병사단, 공수·해병·특수부대를 망라해 10만명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아프간전쟁이 2001년 12월의 토라 보라 전투를 끝으로 일단 소강국면으로 접어든 2002년 초부터 미 펜타곤(국방부)은 ‘폴로 스텝(Polo Step)’이란 이름의 군사동원 계획 아래 이라크전쟁을 준비해왔다.

    이에 따라 2002년 여름부터 중동 쿠웨이트와 카타르의 미 군사기지 안 대형창고는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M-1A1 아브라함스 탱크, M-2A2 전투차량, 곡사포와 박격포, 헬리콥터들로 채워졌다. 미 공군도 항공기 엔진을 포함한 무기 부품과 탄약, 그리고 아프간전쟁에서 엄청난 위력을 보여줬던 정밀 유도(precision-guided) 무기들을 페르시아만 지역으로 옮겼다.

    유엔무기사찰단의 보고서 제출이 예정된 1월27일을 앞두고 미군의 전력증강작업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미군 최정예 부대인 제1기갑사단, 제1기계화 보병사단, 제1헬기 기동부대, 제101공수사단, 제3보병사단 등이 이라크전쟁에 참전할 부대들로 꼽힌다. 영국군도 걸프지역으로 속속 들어오고 있다. 항공모함 아크 로열호가 이끄는 항모전단이 걸프지역으로 옮겨왔다. 영국 정부는 2만명 이상의 병력을 걸프지역에 파견할 참이다.

    어찌 보면, 이라크전쟁은 이미 시작된 양상이다. 최근 한달 사이 미국과 영국의 전투기들은 1991년 걸프전 이후 이라크 남부와 북부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을 순찰하면서 이라크 방공포대를 겨냥해 공습을 펴곤 했다.

    ‘폴로 스텝’ 계획 아래 단계별 파병



    부시행정부가 내세우는 이라크전쟁의 명분은 사담 후세인의 테러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는 것이다. 나아가 후세인이 갖고 있을 것으로 믿어지는 생화학무기 등 대량파괴무기(MDW)를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주장대로라면) “공습만으로는 모두 파괴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라크를 침공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라크전쟁이 벌어지지 않을 가능성은 없을까.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은 올해 초 이라크전쟁 확률을 50% 아래로 전망했다. 1월27일 제출될 유엔무기사찰단 보고서에도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쓰여질 가능성이 크다. 이라크전쟁의 구실이 될 만한 내용이 없다면, 부시행정부의 매파들은 난감한 처지에 놓일 것이다. 그러나 군사전문가 미첼 플러노이(전략국제문제연구소)를 비롯한 일부 분석가들은 “유엔사찰단의 활동 결과가 부시행정부의 정책결정(이라크전쟁)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으로 내다본다. 미국의 이라크전쟁 의지가 그만큼 확고하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적법하게 이라크전쟁을 벌이기 위해선 유엔 안보리의 추가 결의가 있어야 한다. 러시아가 적극 반대하는 상황에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이라크공습은 적법성을 잃고 만다. 그러나 미국으로선 석유 이권이라는 국가이익이 걸린 문제다. 형식적인 적법성보다는 실리가 훨씬 중요하다. 코소보에 대한 공습(1999년)도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거치지 않아 국제법상으로는 불법이었다. 그러나 미국 정치학계는 그것을 적법한 것으로 해석, 코소보 개입을 정당화시켰다.

    이라크전쟁의 경우도 코소보와 같은 과정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21세기 유일 패권국가인 미국의 일방주의 정책에 제동을 걸어 멈추게 할 국가나 국제기구는 현실적으로 없다. 미 의회는 유엔의 동의 없이도 미국 단독의 군사행동을 이미 승인했다. 따라서 부시 입장에선 대(對) 이라크전쟁에 유엔의 동의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제프리 삭스(미 컬럼비아대 교수·지구연구소장)의 전망대로 “유엔의 지지가 있건 없건, 미국은 이라크와 반드시 전쟁을 벌인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라크전쟁의 본질은 석유다. 미국의 해외 석유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후세인정권이 있는 한 미국의 석유수급은 늘 불안하다.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석유가 많이 묻혀 있는 곳이 이라크이기 때문이다. 이라크가 ‘석유 무기화’를 주창하고 다른 산유국들(이를테면 이란·베네수엘라 등)과 함께 미국경제를 흔들기로 마음먹으면 골치 아픈 일이다.

    “미 대통령의 경제수석으론 함량 미달”이란 평가를 받고 지난 연말 물러난 로렌스 린지 전 백악관 경제보좌관은 지난해 11월 “이라크에 새 정권이 들어서면 300만∼500만배럴의 원유가 증산될 것이므로 전쟁은 경제에 유익하다”고 주장했다. 비정치적 발언이었지만 미국의 속내를 잘 드러낸 발언이었다. 이라크전쟁은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키고 친미 정부를 세워 사우디와 더불어 이라크에 안정적인 석유 공급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에 다름아니다.

    2002년 여름까지만 해도 부시행정부 안에서는 이라크전쟁을 벌여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다.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후세인이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하고 있고, 따라서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에 불리하다는 판단 아래 하루라도 빨리 이라크전쟁을 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는 달리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이라크전쟁이 금세 승리로 끝날 것이란 낙관론을 배격하면서 “허약한 탈레반정권과 후세인의 이라크는 다르다. 최악의 경우 참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걱정하는 편이었다.

    공군과 해병대의 일부 장성들을 빼고는 대다수 고위 장성들도 대(對)이라크전쟁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이같은 분위기는 럼스펠드와 체니를 비롯한 부시행정부 내 강경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파월의 군경력(합동참모본부장, 1989∼93년)으로 미뤄 미 국무부와 펜타곤 안의 반(反)럼스펠드 장성들 사이에 어떤 묵계가 성립돼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기도 했다.

    물론 이런 의심이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1990년대 미 군부는 전통적으로 외부 군사개입에 소극적이었다. 그것을 대표하는 것이 이른바 ‘파월 독트린’이다.

    이에 따르면 첫째, 무력 개입은 최후 수단으로 써야 한다. 90년대 초 후세인정권과의 긴장이 높아갈 당시 파월 합동참모본부장과 노먼 슈와츠코프 미군사령관은 이라크와 전쟁을 벌이기보다 경제제재 쪽을 선호했다. 둘째, 무력 개입은 분명한 정치적 목적이 있을 경우에 한정돼야 한다. 여기에는 베트남전 개입이란 쓰라린 역사적 체험이 바탕에 깔려 있다.

    물론 파월이 후세인체제 전복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후세인체제 전복은 2002년 초 부시가 ‘악의 축’의 으뜸으로 이라크를 꼽은 이래 일관된 부시행정부의 정치적 슬로건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 목표를 실현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졌다. 일부 고위 장성들은 현재 이라크에 가해지고 있는 공격적 봉쇄정책(이를테면 이라크 남부에 비행금지구역 설정, 경제제재, 페르시아만 일대에서 미 해군의 군사적 시위, 2만명에 이르는 미군의 걸프지역 주둔)으로 후세인의 위협을 완전히 막을 수 있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체니, 럼스펠드, 월포위츠 등 강경파들은 “경제제재도 점차 실효성을 잃어가고 후세인이 생화학무기에 이어 미사일, 핵무기 등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한다면 결국 미국에 위협적 존재가 될 것이므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 참에 탈레반체제에 이어 후세인체제를 붕괴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무엇보다 미군 최고사령관인 부시의 후세인체제 전복 의지가 강하다. 이라크전쟁은 이제 파월을 비롯해 부시행정부 내 온건파도 거스르기 어려운 큰 흐름이 됐다. 큰 그림으로 보면 펜타곤 고위장성들과 파월이 부시행정부 매파들에게 기(氣) 싸움에서 밀린 양상이다. 이제 럼스펠드는 “각론 부분에서 펜타곤 내에 이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민간 관리들과 군장성들 사이에 틈이 벌어진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미국 정치제도의 특성상 군부가 민간 정치인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제3세계 군부가 가진 막강한 영향력에 비해선 아주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부시행정부가 이라크전쟁을 벌인다면, 그것은 곧 후세인을 제거할 다른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뜻이다. 1973년의 칠레에서처럼 CIA 비밀공작에 따라 쿠데타를 배후조종할 수도 없고, 암살도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보브 우드워드가 쓴 ‘부시의 전쟁’에 따르면, 조지 테닛 CIA 국장은 부시 대통령에게 “후세인은 이라크를 마치 경찰국가처럼 집안단속하고 있다. 군사작전이나 다른 압력수단을 동원하지 않는 한 CIA가 이라크에서 성공할 확률은 10∼20%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부시는 2002년 초 후세인 축출을 겨냥한 CIA의 이라크 비밀공작 문서에 서명했다. 공작예산은 최소 1억, 최대 2억달러. 아프간에서 CIA가 쓴 7000만달러보다 많다. 테닛은 아프간전쟁 때처럼 CIA 비밀공작팀을 이라크로 들여보내 달러를 앞세워 이라크 고위장성들을 전향시킬 채비를 하고 있다.

    ‘족집게 공습’으로 바그다드부터 초토화!

    지난해 10월 백악관에서 미 상·하원이 승인한 대(對) 이라크전쟁 결의안에 서명하는 부시 미 대통령

    1991년 걸프전쟁 당시 미 군부는 6개월 동안 전쟁 준비를 했다. 후세인은 미국이 이라크군을 공격해올 것이란 점을 6개월 전부터 알고 있었던 셈이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다시 미국과 이라크 사이에 전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번에 미 군부는 아마도 기습작전을 펼 것이다. 유엔에서 무기사찰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고, 러시아나 독일이 미국의 일방적 군사작전에 제동을 걸고 있다. 후세인은 부시가 진격명령을 내리지 않고 말로만 위협하는 것으로 판단착오할 수도 있다. 그러나 펜타곤은 그동안 무시무시한 대규모 공습을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바그다드에 퍼부어 지휘체계가 마비된 후세인이 미처 손쓸 틈도 없이 정권을 붕괴시킨다는 전략을 검토해왔다. 이른바 RDO작전(Rapid Decisive Operations, 신속하고 과단성 있는 작전)이다.

    후세인도 그동안 미국의 공격에 대비한 준비를 해왔다. 2002년 6월말 바그다드 주변의 방공망을 구축 완료한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바그다드 시내의 고층건물과 정부청사 옥상에는 대공포를 설치했다. 대통령궁과 몇몇 중요 시설의 상공엔 밤마다 대형 바람기구들을 띄운다. 이라크 관리들은 후세인의 명령에 따라 띄운 그 기구들이 미군 헬기가 날아드는 것을 방해할 것으로 믿는다. 이란-이라크전쟁(1980∼88년) 당시에도 바그다드의 하늘에는 이란 공군의 공습에 대비해 그렇게 기구들이 떠 있었다.

    이라크군은 바그다드 주변 넓은 지역에 지상 1m 높이로 쇠막대기와 가시철망을 설치해놓았다. 미군 공수부대가 내리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이런 방어전을 위해 이라크는 수천 톤의 강철을 수백 대의 트럭에 실어 바그다드로 옮겼다. 인구 500만의 바그다드는 후세인의 최후 방어진지다. 미군 공습피해를 줄이기 위해 바그다드 시내 곳곳에 각종 전투장비들을 분산배치했다. 바그다드 주변엔 불도저로 판 참호들이 즐비하다. 이라크 정예부대로 후세인의 권력기반인 9만 병력의 공화국수비대는 바그다드 주변 티그리스강변에 참호를 파놓았다. 이 참호들은 바로 맞은편에 자리한 대통령궁과 바그다드 중심지를 지킨다. 현재 집권 바트당 소속 준(準)무장병력과 ‘사담 의용군’으로 알려진 일단의 무장병력들도 식량과 연료를 비축하고 있다. 그들은 여차하면 미군과 시가전을 벌인다는 각오다.

    2002년 여름 미 중부군사령부 토미 프랭크스 대장은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전쟁의 작전개요를 브리핑했다.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보고했다. 그렇지만 “아직 아무런 결정도 내려지지 않았다”는 게 펜타곤의 공식 입장이다. 그동안 펜타곤과 중부군사령부 사이에선 이라크전쟁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를 두고 많은 논의가 오갔다. 지금까지 논의된 이라크전쟁 작전계획의 가닥을 정리해보면 △이라크 작전계획 1003(OPLAN 1003) △다우닝 작전계획(Downing Plan) △‘바그다드 먼저’ 작전계획 △‘사막의 여우 II (Desert Fox II)’ 작전계획 등 크게 네 가지다.

    네 가지 작전계획 검토

    OPLAN 1003은 걸프전쟁 이래 지난 10년간 미 중부군사령부(CENTCOM)의 이라크전쟁 기본작전계획이다. 이는 주요 석유생산국인 쿠웨이트와 사우디 아라비아를 이라크의 공격으로부터 지킨다는 억지(deterrence)에 바탕을 두고 필요할 경우 이라크군을 공격한다는 개념이다. 이라크군 전체를 격파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다시 말해 이라크군이 쿠웨이트나 사우디를 공격해 들어올 경우), 압도적인 미 전투력을 시차별로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18공수단과 4보병기계화사단, 82공수사단, 101공습사단이 작전에 참여하게 된다.

    OPLAN 1003은 3단계로 이뤄진다. 1단계는 1991년 ‘사막의 폭풍(Desert Storm)’ 작전 때와 비슷한 군사력 이동이고, 2단계는 국경선을 따라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 3단계는 후세인체제를 붕괴시키는 반격작전이다. 1990년대에는 후세인체제 붕괴라는 작전개념이 설정돼 있지 않았다. 1998년 미국의 한국전쟁계획(OPLAN 5027)은, 만일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경우 북한 김정일정권을 붕괴시키는 쪽으로 수정됐었다. 후세인정권을 붕괴시키는 3단계 작전개념이 OPLAN 1003에 들어간 것은 부시행정부 들어와서다.

    OPLAN 1003에 따르면, 후세인정권을 전복하기 위해선 미군 지상군 병력이 20만명 이상 투입돼야 하고, 이 정도 규모의 동원에는 3개월 정도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이 기간 후세인도 미군의 공격에 대비해 군을 재배치하고, 외교적 공세로 미군의 이라크 공격 흐름을 교란하려 들 것이다. 전 CIA 중동지역 분석가인 케네스 폴락(부르킹스연구소)도 최근 저서 ‘험악한 폭풍(The Threatening Storm)’에서 이라크 공격에 최소 20만에서 30만의 미군 병력이 투입돼야 한다며 이렇게 분석했다.

    이라크 도심에서 후세인에 충성하는 병력과 시가전을 벌이려면 경보병이 투입돼야 한다. 또 전쟁 초기 이라크가 유정(油井)에 불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 공수부대 병력을 유전지대에 투입해야 한다. 공수부대는 아울러 후세인이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을 쏘지 못하도록 미사일 진지를 점령해야 한다. 그리고 전쟁이 어느 정도 끝나면, 치안유지를 위해 이라크에 일정 기간 미군이 주둔할 필요가 생긴다. 그러려면 적어도 20만~30만의 병력이 필요하다. 공습에 쓰여질 공군기는 700∼1000대다. 최초 공습에서 전쟁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1개월 정도 걸릴 것이다.

    OPLAN 1003에 따르면, 미군의 첫 이라크 점령지는 페르시아만 연안에 자리한 바스라 항구다. 이라크군이 완강히 저항할 경우, 이를 점령하는 데 수일이 걸릴 것이다. 그런 다음 티그리스 또는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바그다드로 진격한다. 이라크군은 미군의 진격속도를 늦추려 곳곳에서 저항할 것이고 이라크 기동타격대는 미군의 병참선을 끊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이라크군을 소탕하고 라파 고속도로를 이용하려면 여러 날이 걸린다.

    2002년 7월 미 중부군사령부는 OPLAN 1003에 바탕해 ‘중부군사령부 전투경로’란 문서를 작성했다. 이라크를 북쪽, 남쪽, 서쪽 3개 방면에서 공격해 들어가는 작전계획이다. 터키와 카타르를 비롯한 여러 기지에서 출격한 수백 대의 공군기들이 이라크 내 공군기지와 철로, 통신망을 폭격한 다음, 해병대를 비롯한 수만 명의 지상군이 쿠웨이트에서 이라크로 진격한다. 이 문서에 따르면 미군 특수부대와 CIA 비밀작전 팀이 적진에 침투, 미 공군의 정밀공습을 유도함으로써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생화학무기)와 미사일이 미군을 향해 쓰여지기 전에 파괴하는 임무를 맡는다. 이는 북부동맹군을 활용했던 아프간 모델에서 따온 것이다.

    다우닝 작전계획

    다우닝 작전계획(Downing Plan)은 9·11테러 직후인 2001년 10월 부시 대통령에 의해 백악관 국가안보부(副)보좌관으로 테러리즘 담당에 임명됐던 웨인 다우닝이 주창한 이라크전쟁 계획이다. 다우닝은 걸프전쟁 당시 특수부대 사령관이었고 4성장군으로 퇴역한 인물이다.

    이 계획은 아프간전쟁에서 북부동맹군을 활용한 전례에 따라, 반(反) 후세인 이라크 망명자들을 훈련·무장시켜 활용하고 미군 특수부대,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 공군의 막강 화력으로 이라크전쟁을 치른다는 것이다.

    아프간전쟁 승리 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선 대규모 미 지상군 투입 대신 반후세인 무장세력을 지상군으로 활용하면서 대규모 공습을 병행,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다우닝과 더불어 전직 CIA 요원으로 이라크국민회의(INC) 고문으로 있던 듀엔 클래리지가 INC 활용론을 내세운 대표적 인물이다. 클래리지는 1980년대 레이건행정부 시절 니카라과의 좌익 산디니스타정권에 맞서 싸운 콘트라반군을 배후에서 지원한 경력을 지녔다.

    반후세인 이라크 망명자들을 무장시켜 후세인을 전복한다는 계획은 오래 전부터 거론돼왔다. 1993년 11월 런던에 본부를 둔 이라크 망명단체 INC의 지도자 아흐마드 찰라비는 당시 클린턴 미 대통령에게 ‘게임 끝내기(The End Game)’라 이름 붙인 전쟁계획서를 제출했다. 1998년 클린턴 대통령은 ‘이라크해방법령(Iraq Liberation Act)’에 바탕, 이라크 내 반후세인 세력을 무장시키는 데 9700만달러의 예산을 지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INC는 2001년까지 200명의 훈련교관을 확보해 5000명의 이라크 청년들에게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전 미군 특수부대 출신들을 용병으로 충원하는 계획을 내놓았다.

    막강한 미 공군화력이 비행금지구역을 통제할 동안 이 병력이 남부 이라크를 통해 이라크를 침공한다는 계획이었다. INC는 반후세인 병력이 바스라 항구를 점령하면, 석유수출 길이 막혀 후세인체제가 곧 무너질 것이라 주장했다. 9·11테러 뒤 벌어진 아프간전쟁에서 북부동맹군의 활용도가 눈길을 끌며 성공을 거두자, 미국에서도 INC의 활용에 관심이 높아졌다.

    다우닝 계획의 골자는 INC가 주도한 무장병력과 미 특수군이 공습의 지원을 받아 이라크 남부를 침공, 이라크 내에 중포(重砲)기지를 마련한 다음 그곳에 이라크 임시정부를 세운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이라크군 내부에서 이탈자들이 생겨날 것이고,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 바그다드로 진격해 후세인정권을 붕괴시킨다는 것이다. 클래리지는 “(다우닝 계획의) 핵심은 후세인 지지세력들이 등을 돌리도록 이라크 내에 근거지를 마련하는 것이다. 바스라 항구를 점령한다면, 그것은 반후세인 기지로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INC의 이런 계획은 폴 월포위츠 미 국방부 부(副)장관이 이끄는 펜타곤 내 한 기획팀의 수정작업을 거쳐 2001년 12월 미 합동참모본부에 제출됐다. 그러나 군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 중부군사령관 출신 예비역 대장으로 부시대통령의 중동특사인 앤터니 지니는 “이라크는 아프간과는 다르다. 말도 안 된다”고 반대했다. 지니는 이 작전을 쿠바혁명 뒤 일단의 반카스트로 망명자들이 CIA의 지원 아래 쿠바로 쳐들어갔다 실패로 끝난 피그만(Bay of Pig) 작전에 빗대어 ‘염소만(Bay of Goats)’ 작전이라고 비판했다. 다우닝은 부시에게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2002년 7월 사표를 냈다.

    ‘족집게 공습’으로 바그다드부터 초토화!

    지난해 11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미국의 대이라크 외교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

    다우닝 계획이 성공을 거두려면,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과 남부의 시아파 세력이 들고 일어나야 한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바그다드로부터 독립된 정치체제 수립을 바랐지만, 터키 등 주변국들이 이를 바라지 않는다. 쿠르드족은 8만5000명 정도의 병력을 지니고 있어 아프간 북부동맹군에서처럼 대리전(proxy war) 역할을 맡길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라크전쟁 참전에 소극적이다. 그들은 걸프전쟁 뒤 그런대로 바그다드정권으로부터 독립된 자치를 누려왔다. 미국의 동맹국인 터키가 쿠르드족의 독립을 바라지 않고 미국도 그럴 뜻이 별로 없다는 것을 쿠르드족은 잘 알고 있다. 전쟁 뒤에 올 불확실한 대가를 바라고 피를 흘리지는 않겠다는 태도다.

    이들은 한편으로 이라크전쟁이 일어날 경우 바그다드정권으로부터 받는 재정적 지원이 끊길 것을 걱정한다. 쿠르드족은 1995년 이래 유엔의 ‘석유 식량 프로그램(이라크 석유를 팔아 식량을 사들이는 프로그램)’에 따라 해마다 바그다드정권으로부터 석유판매대금의 13%를 받아왔다. 이는 쿠르드족 경제의 60%에 이르는 중요한 물적 토대다. 후세인정권이 무너진 뒤 이런 자금원이 끊길지 모른다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들 쿠르드족은 마수드 바르자니가 이끄는 쿠르드민주당(KDP)과 잘랄 탈라바니가 이끄는 쿠르드애국연합(PUK)으로 양분돼 주도권을 다퉈왔다. 이들이 합심해 미국을 도와 이라크전쟁에 나설 가능성은 별로 없다. PUK 지도자 탈라바니는 알 자지라 위성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군사력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미군이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쿠르드 땅에 온다면 환영한다. 미국의 물질적 원조도 환영이다. 그러나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목마 노릇을 한다거나 외국군대(미군)를 돕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럴 의무도 없다.” 이미 4개월 전부터 미 특수부대원 100여 명과 CIA 요원 50여 명이 쿠르드지역에 들어가 작전을 수행중이란 소식도 들려온다.

    이라크 남부의 시아파는 이슬람혁명최고위원회(SCIRI)가 중심세력이다. 이들은 친(親)이란계다. 미국과 이란 사이의 미묘한 갈등으로 시아파를 이라크전쟁에 활용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반후세인 망명세력들도 사분오열돼 있다. 아흐메드 찰라비의 INC가 가장 큰 단체이긴 하지만, 전체 이라크 망명자들을 대표하는 건 아니다. 이라크전쟁 발발 분위기가 높아감에 따라 이들 반후세인 단체들이 런던과 워싱턴에서 여러 차례 모였지만, 입으로만 단결을 외치는 정도다. 이래저래 이라크에선 아프간 모델이 적용되기 어렵다. 아프간 탈레반정권의 무장은 초보적 수준인데다 언제라도 배신할 수 있는 지방군벌들의 느슨한 연합체였던 데 비해 북부동맹군은 어느 정도 전투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라크는 공화국수비대의 막강한 화력에 비해 반후세인 세력의 전투력은 형편없다. 아프간 북부동맹군과 견줄 바가 못된다.

    “바그다드 먼저 친다”

    2002년 중반 들어 OPLAN 1003이 설정한 대규모 군사작전 개념과 다우닝 계획이 설정한 소규모 군사작전의 장단점을 지양한 새로운 작전계획이 미 국방부 내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중간규모의 작전 개념으로, 신속함이란 측면에서 OPLAN 1003과 다르고, 결정적인 무력개입이란 점에선 다우닝 계획과 달랐다. 이 새 작전계획은 막강 미 공군력과 5만~8만명 규모의 지상군이 결합하는 것이다.

    이 작전개념은 펜타곤 내에서 ‘안에서 밖으로(Inside Out)’ 또는 ‘바그다드 먼저(Baghdad First)’ 계획으로 일컬어졌다. 기본 특징은 걸프전 당시의 전략과는 반대로, 후세인체제의 심장부를 먼저 점령하고 다음 단계로 옮겨간다. 이를 위해 바그다드를 집중 공략, 후세인체제가 그 기능을 잃어버리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단기간에 대규모 공습을 퍼부은 다음 쿠웨이트에서 대기중인 7만~10만 미 지상군과 공수부대가 합동으로 신속하게 바그다드로 이동, 그곳의 중요기관과 무기저장소들을 점령, 접수한다는 전략이다. 2002년 11월 미 국방부는 한 단계 진전된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은 10일 또는 2주 동안 집중 공습으로 이라크의 방공(防空)시설과 지휘통신체계를 마비시키고 군사집결지를 분쇄한 다음 5만~8만명의 미 지상군을 투입한다는 전술이다.

    ‘바그다드 먼저’ 계획은 1991년 걸프전쟁 때와는 여러 측면에서 다르다. 걸프전에서는 군사시설과 이라크군이 주요 공격목표였다. 이에 비해 ‘바그다드 먼저’ 계획은 후세인체제를 떠받치는 제도적·물질적 토대를 무너뜨리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바그다드의 후세인 집무실(대통령궁), 경찰서를 포함한 보안시설물들도 공격목표에 포함돼 있다. 특히 후세인의 고향 티크리트도 주요 공습목표의 하나다. 그러나 교량이나 저수지 등 사회기반시설물들은 공습에서 제외된다. 바그다드 주둔군을 뺀 이라크 병력도 완강한 저항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한 공습대상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바그다드가 공격목표다. 그들을 공습하지 않는 것은 후세인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들기 위해서다.

    이 작전개념에서는 공습이 그 어느 경우보다 강력하다. 걸프전쟁이나 코소보전쟁, 아프간전쟁 때보다 훨씬 강력한 공습이 감행된다. 크루즈 미사일 공격은 물론이고 각종 전폭기들이 나서서 이라크 방공망과 생화학무기 공급체계를 파괴한다. 미 공군은 16대의 B-2스텔스 폭격기를 동원, 높은 열을 일으키는 2000파운드의 고성능 폭탄을 투하해 지하 벙커에 숨겨놓은 통신망을 두들긴다. 이럴 경우 B-2의 모든 편대가 폭격에 나서는 셈이다. 동시에 해군 함정들과 B-52 폭격기까지 출격해 후세인 대통령궁과 여러 정보시설물들을 향해 크루즈 미사일을 쏜다.

    ‘바그다드 먼저’ 계획의 전술적 최대 목표는 후세인의 목숨이다. 그가 몸을 피해 요행히 목숨을 건질 경우, 차선책으로 외부와 고립시켜야 한다. 이라크군에 대한 그의 지휘체계를 마비시키고, 대량파괴무기를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후세인을 죽이거나 고립시키기만 한다면, 전쟁의 승패는 판가름난 것으로 펜타곤은 판단한다. 후세인이 미처 손쓸 틈을 주지 않고 열흘 또는 2주 동안 바그다드를 맹폭격한 다음 빠른 기동성으로 미 지상군을 쿠웨이트에서 바그다드까지 일직선으로 진격시켜 이를 점령한다는 작전이다.

    미군의 진격로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습지대를 피해 이라크 남부와 서부를 뒤덮고 있는 사막을 가로질러 바그다드로 향하는 것. 걸프전 ‘사막의 폭풍’ 작전 때 미군의 진격속도를 감안하면, 일주일이면 바그다드에 닿을 것으로 군사전문가들은 내다본다.

    문제는 후세인의 전술도 시가전 중심이라는 점이다. 2002년 8월 후세인은 지방정부 관리들에게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할 경우 전선에서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주요도시들을 지키는 데 주력할 것”이라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라크군이 미군 공습에 노출되는 것을 피하겠다는 전술이다. 이럴 경우 시가전이 벌어져 많은 비전투원(시민) 희생자가 나오겠지만, 미군 사상자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미군 사상자의 증가는 곧 미국 내 반전여론을 악화시키는 것을 뜻한다.

    1993년 10월 소말리아 주둔 미군이 수도 모가디슈에서 군벌 아이디드 측근들을 체포하려다 격렬한 시가전 끝에 2대의 헬기(블랙 호크)가 떨어지고 특수부대(레인저)와 해병대원 18명이 죽었다. 당시 작전에 참여한 특수부대원들을 취재해 펴낸 책 ‘블랙 호크 다운(Black Hawk Down)’의 저자 마크 바우든은 “소말리아에서 당한 참담한 실패를 재연할 가능성을 피하려면 야밤에 바드다드 시가전을 벌여야 한다”고 말한다. 바그다드로 이어지는 전기선을 절단한 뒤, 깜깜한 밤에 적외선 투시장비 등 미군의 뛰어난 첨단장비를 이용해 전투를 벌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도 미군 희생자가 나올 가능성은 크다고 바우든은 전망한다.

    2002년 여름 펜타곤에서는 이라크전쟁 전술전략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민간 고위관리들은 첨단 군사과학에 바탕해 소규모 병력 동원을 주장했고, 군인 전략가들은 보다 많은 병력으로 이라크군에 맞서야 단기간에 압도적인 승리를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군사작전 누출 배경은?

    2002년 7월 펜타곤의 자문기구인 국방정책위에서는 이라크전쟁 계획과 관련한 미 군부의 보수적 시각(군사기술 진보를 고려하지 않고 병력 규모에만 집착하는 시각)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군부에서는 펜타곤 내 민간인 고위관리들이 미군의 전투력을 과신해 밀어붙인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나 민간 관리들은 1991년 걸프전쟁 이래 미국 군수산업이 놀라울 정도로 파괴력 강한 무기들을 개발해냈다는 점을 강조했다(이를테면 B-2스텔스 폭격기나 F15 전폭기로 공중 투하하면 고성능 레이저의 유도에 의해 두께가 6m 이상 되는 바위를 뚫고 들어가 동굴 안에서 폭발하는 GBU-37탄 등).

    펜타곤 소속 국방과학부 데니스 보딘은 “미군이 이라크군을 궤멸시킬 수 있는 능력이 걸프전 때보다 훨씬 높아진 건 사실이다. 이는 미군의 군사작전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어졌음을 뜻한다”고 주장한다. 지난날처럼 머릿수를 앞세워 수십만 병력으로 밀어붙이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여기에 아프간전쟁 때처럼 CIA 현지 공작팀이 이라크 일선 지휘관들을 상대로 전향공작을 펴면서 필요한 경우 특수부대가 투입돼 미 공군의 정밀 공습을 유도한다면, 이라크전쟁은 걸프전 때보다 훨씬 소규모로 단기간에 끝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말하자면 아프간전쟁처럼 ‘공습 플러스 정보전쟁’이 이라크전쟁을 판가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프간전쟁에 이어 이라크전쟁을 지휘하게 될 미 중부군사령관 토미 프랭크스 대장은 펜타곤 내에서 ‘매우 신중한 인물’로 정평이 나 있는 군인이다. 그는 ‘파월 독트린’에서 말하는 압도적인 군 병력 투입이 승리를 가져온다는 전통적 발상에 기울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파월의 논리에 따르면, 압도적인 병력 투입은 미군의 희생을 줄이고 짧은 기간에 무력개입을 끝내고 철수할 수 있다. 점차적으로 병력을 투입하는 게 아니라, 단번에 적을 압도할 수 있는 병력과 화력을 투입해야 한다. 베트남전쟁 때처럼 군사개입을 조금씩 늘려가다 끝내 수렁에 빠지는 형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게 ‘파월 독트린’의 핵심이다.

    ‘족집게 공습’으로 바그다드부터 초토화!

    지난해 12월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앞두고 카타르의 시일리야 사막기지에 설치한 이동지휘본부. 각종 첨단장비들이 갖춰져 있다.

    그런 영향으로 중부군사령부 참모들 사이에서도 OPLAN 1003처럼 대규모 병력에 바탕한 재래의 정공법이 이라크에서도 유효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2002년 여름까지 드러난 중부군사령부의 미군 투입 계획규모는 최소 10만명선. 그러나 그 뒤 열린 펜타곤회의에서 민간 관리들이 그 규모를 6만8000명까지 끌어내렸다 2주 뒤 다시 군부의 강력한 주장으로 12만명으로 상향조정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렇듯 2002년 여름 OPLAN 1003에 근거한 중부군사령부의 이라크전쟁 계획을 둘러싸고 펜타곤 내부에선 치열한 설전이 벌어졌다. 민간인 전략가들은 신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한층 기동성을 갖춘 미군 전투력을 감안할 때 대규모 병력 동원은 구시대적 발상이라 비판했다. 5만명 정도의 병력과 대규모 공습으로 이라크를 기습 강타할 경우 20만명까지 동원하지 않아도 이라크전쟁을 단기간에 끝낼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2002년 7월초 중부군사령부의 이라크전쟁 계획이 외부로 새어나가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 언론에 보도된 것도 그 계획에 불만을 품은 민간인 전략가들이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린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바그다드 먼저’ 계획이 2002년 7월말 외부로 유출된 것도 이를 미덥잖게 보고 시가전으로 미군 희생자가 대량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여긴 펜타곤 고위장교가 유출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다른 시각도 있다. 워싱턴의 군사정보 싱크탱크인 세계안보연구소(Global Security)의 책임자 존 파이크는 유출된 정보는 사실상 “그릇된 정보(disinformation)”이며 “후세인 쪽의 혼란을 부채질하기 위한 펜타곤의 의도된 유출”이라고 여긴다. 미첼 오핸론(브루킹스연구소 군사전문가)은 ‘바그다드 먼저’ 계획에서 새로운 점을 찾아내기란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라크전쟁의 목표가 정권교체(regime change)라면, 미 공군력과 지상군 공격의 초점을 후세인에게 맞추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에서다. 그는 강력한 미 공군력이 후세인 공격의 선봉에 서더라도 25만명 규모의 지상군이 뒤를 받쳐줘야 승리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또 다른 군사분석가 패트릭 캐렛(세계안보연구소)은 “지금까지 펜타곤에서 논의해온 병력 규모는 13만명”이라고 전한다.

    ‘사막의 여우 II’ 계획

    미 지상군 규모를 줄이려는 펜타곤 고위 민간 관리들의 발상은 정치적 고려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정치적 부담을 가능한 한 줄이려는 발상이다. 이들은 “미군이 모든 이라크군을 공격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라크군 37만5000명 가운데 후세인 친위대인 공화국수비대 9만명을 뺀 나머지는 후세인을 위해 목숨을 버리지 않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바그다드를 집중공략해 후세인의 지휘체계를 마비시킨다면 그들은 항복할 것이고, 나중에 친미 이라크정권의 군사적 토대가 될 것이란 인식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에 여전히 적대적인 이란을 이라크가 견제할 수 있고, 북부 쿠르드족이나 남부 시아파의 동요도 막아 전후 이라크의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중동문제 전문가 앤터니 코즈만도 한 보고서에서 “미 지상군을 소규모로 파병한다면 전후 이라크 장악력을 상실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라크 남부의 친이란계 시아파나 북부의 쿠르드족이 분리독립을 주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분석이다.

    일부 미 군사전문가들은 부시행정부가 지상군을 파병해 본격적인 이라크전쟁을 벌이지 않고 (다시 말해 전쟁을 통한 후세인체제 전복을 노리지 않고) 경고 차원에서 미사일 공격과 전폭기 공습을 하는 수준에서 그칠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이같은 분석의 근거는 9·11테러 뒤 흔들리고 있는 미국경제, 이라크전쟁의 고비용, 북한 핵문제 돌출로 비롯된 정치경제적 부담 등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이라크전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예상보다 심각할 것”이라 전망한 바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부시가 대규모 군사행동을 포기한다 하더라도 한차례 강력한 공습을 감행할 것이다. 이런 공습은 1998년 12월 유엔사찰단 철수 뒤 있었던 미사일 공격인 ‘사막의 여우’ 작전에 견주어 ‘사막의 여우 II(Desert Fox II)’라 일컬어진다. 1998년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사막의 여우’ 공습으로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 개발 프로그램이 몇 년 뒤로 늦춰지게 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막의 여우 II’에 따라 공습이 진행된다면, 3∼4일 동안의 대규모 공습에서 대통령궁과 주요기관들이 목표물이 될 것이다.

    ‘족집게 공습’으로 바그다드부터 초토화!

    이라크군도 만반의 전쟁준비를 갖췄다. 1월6일 바그다드의 무명용사 묘지에서 거행된 이라크 육군의 날 기념식

    미 공화당 매파의 한 사람인 테드 코치란 상원의원은 “현재로선 미국이 이라크를 침범할 이유가 없다”면서 ‘사막의 여우 II’ 수준의 군사작전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할리우드 영화 제목처럼 ‘뚜렷하고도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이 없는 상황에서 전쟁을 벌일 이유가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은 다시 석유 얘기로 돌아간다. 부시행정부가 대량파괴무기란 똑같은 안건을 놓고 북한과는 대화로 풀려 하고, 이라크에 대해서는 힘으로 풀려 하는 차이는 곧 북한에 석유가 나지 않는 데에서 비롯된다. 이라크전쟁을 이해하는 필수언어는 ‘석유’다.

    여러 전쟁계획 가운데 펜타곤이 어떤 것을 최종적으로 택하든, 미국이 짜고 있는 작전의 기본은 대규모 공습이다. 미군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이라크의 생화학무기를 어떻게 무력화시키는가다. 생화학무기가 숨겨진 곳을 폭격할 경우, 자칫 세균무기가 공중에 퍼져나가 두고두고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미군 첩보기가 의심스런 곳을 정찰하고 있지만, 생화학무기가 숨겨진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기란 불가능하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펜타곤 정례 브리핑에서 이라크군이 단거리 미사일을 병원이나 학교 등 민간시설물 지하에 교묘히 숨겨놓았다고 주장했다. 공습을 피하기 위해 회교사원 지하에 숨겨놓았다는 주장도 있다.

    이라크전쟁 수혜자는 군수산업체

    이라크전쟁에서 가장 큰 불확실성은 미군 공습이 시작될 경우 이라크군과 민간인들이 보일 반응이다. 만약 후세인이 이라크 군대를 도시의 민간인 주거지역으로 옮겨놓을 경우, 전쟁이 장기화하고 미군 피해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이라크전쟁의 꽃은 바그다드 공방전이다. 시가전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후세인 친위대 특수공화국수비대(Special Republican Guard)는 (민간인 피해 때문에 미군 공습의 이점이 사라진 상황에서) 미군에 완강하게 맞설 것이다. 대규모 시가전은 미군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전쟁 초기부터 후세인이 생화학무기를 쓰라고 명령을 내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동안 생화학무기가 없다고 공언해온 후세인이다. 그가 결정적으로 이들 무기를 쓴다면, 그것은 자신의 체제 생존이 걸린 바그다드 공방전에서일 것이다.

    3성장군이 우두머리인 미 국방부 국방정보국(DIA)은 후세인이 초토화작전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이라크로 미군이 진격할 경우 유정(油井), 발전소, 식량저장소 등을 불지르고 이를 미군의 만행이라고 선전할 수도 있다. 국제적인 반전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서란 풀이다. 이런 예측이 현실화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후세인이 미국의 전략적 무게중심(다시 말해 급소)을 ‘반전여론’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을 펜타곤은 꿰뚫어보고 있다.

    미국언론들은 벌써부터 후세인체제 붕괴 뒤의 이라크체제에 대해 성급한 논의를 하고 있다. 점령군 미군이 얼마만한 규모로 이라크에 주둔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다. 이를 보면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은 이미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라크 국민들이 과연 미군의 입성을 두손 들고 환영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후세인 독재에 반감을 지닌 이라크 국민들일지라도, 이슬람 민중들의 반미감정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필자는 이를 팔레스타인과 아프가니스탄 현지취재에서 두 눈으로 보았다. 이슬람 민중에게 부시는 람보 같은 이미지로 새겨져 있고, 미국은 ‘악의 축’일 뿐이다.

    1985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영국의 핵전쟁 방지 국제의사회(IPPNW)는 이라크전쟁이 3개월 동안 계속될 경우 25만명쯤 사망할 것이란 진단을 내놓았다. 전쟁으로 죽어갈 사람 대부분은 이라크 민중들이다. 이라크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미 군수산업체들이다. 록히드 마틴, 보잉, 아머 홀딩스, 노스롭 그럼만, 레이시온, TRW 등의 주가는 이미 아프간전쟁으로 올랐고, 이라크전쟁으로 다시 오를 전망이다. 이들 ‘죽음의 상인’들은 부시가 이라크로 진군 나팔을 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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