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호

‘휴대전화’가 아날로그 정치 눌렀다

여론조사 전문가가 본 16대 대선

  • 글: 노규형 리서치 앤 리서치 대표

    입력2003-02-04 15:2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16대 대선에서는 지역갈등 대신 이념과 가치관의 갈등 등 세대 차이가 두드러졌다. 한나라당의 정권교체 주장보다 민주당의 세대교체론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노무현 후보는 세대교체의 상징이 됨으로써 전체 유권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20~30대 유권자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휴대전화’가 아날로그 정치 눌렀다

    2002년 12월19일 서울 강남구 대치2동사무소에 마련된 투표소에 몰려든 유권자들

    16대 대선이 노무현 후보의 승리와 이회창 후보의 패배로 끝났다. 승자를 지지한 측과 패자를 지지한 측의 차이는 불과 58만 명으로, 박빙의 승부였다. 박빙의 승부였던 만큼 승리한 후보를 지지한 측의 감동 못지않게 패배한 후보를 지지했던 측의 좌절도 큰 것 같다.

    선거는 승자독식(Winner-take-all) 게임이기에 결과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선거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은 앞으로의 정치를 이해하는 데 더욱 중요하다. 16대 대선이 과거와 비교해 무엇이 달랐고 어떤 점이 변화했는지를 살펴보자.

    16대 대선결과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연령별 후보지지율이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휴대전화’가 아날로그 정치 눌렀다
    투표당일 KBS가 발표한 출구조사결과를 분석한 자료(표1)를 보면 20대, 30대에서 노무현 후보는 이회창 후보에 비해 20% 가까이 앞섰고, 40대에서는 비슷했다. 반면 50대에서는 18% 뒤지고 60대에서는 29% 가까이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40대를 기준으로 20∼30대 유권자는 노무현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50∼60대 이상 유권자는 이회창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전체 유권자 중 20대와 30대 유권자 수가 절반에 육박하는 48%이고 50대와 60대 이상 유권자가 29%인 점을 고려할 때, 후보간 득표수 차이가 58만표에 불과한 것은 20∼30대의 투표 참여율이 낮았기 때문이다.



    출구조사에서 나타난 20대의 투표율은 47.5%로 전체 평균투표율 70.8%에 비해 23.3%나 낮았다. 이는 1997년 15대 선거 때 20대의 투표율 68%보다도 훨씬 낮은 것으로, 전체 유권자 평균투표율과의 차이도 15대 때에 비해 더 많이 벌어졌다. 즉 젊은 유권자들은 과거보다 투표에 덜 참여한 셈이다. 투표 전인 12월14일 실시된 (주)리서치 앤 리서치(R&R)의 전화여론조사에서는 ‘반드시 투표할 것’이라는 응답자 기준으로 노무현 후보가 7% 정도 앞선 것으로 조사됐으나 막상 선거결과는 2.3%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20~30대 투표율 예상보다 저조

    이처럼 지지격차가 좁혀진 것은 선거 전날 있었던 정몽준 대표의 노무현 후보 지지철회 해프닝 탓도 있었으나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면서도 실제로는 투표하지 않은 젊은 유권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투표율이 낮긴 해도 앞서 설명했듯 노후보는 젊은 층으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노후보는 이후보에 비해 젊다는 차이점을 부각시키면서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끄는 선거운동을 전개, 16대 선거를 세대교체 선거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세대교체야말로 노무현 후보 승리의 결정적인 요인이다.

    ‘휴대전화’가 아날로그 정치 눌렀다
    16대 선거에 대해 유권자들은 세대 간 차이가 가장 크게 부각된 선거라고 평가한다. 선거가 끝나고 10일이 지난 2002년 12월29일과 30일 양일에 걸쳐 R&R은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대선 사후조사’를 실시했다(표2 참조). 80% 가까운 응답자들은 지역갈등이 과거에 비해 비슷하거나 약화되었다고 응답했고 더 심해졌다는 응답자는 17%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노무현 후보가 호남에서 90% 이상의 지지를 얻었고, 이회창 후보가 대구와 경북에서 70% 이상 얻은 것을 보면 지역갈등이 약화됐다고 보기 어려운 점도 있다.

    그러나 노후보가 영남에서 20∼30% 가까운 지지를 얻고 강원에서 40% 이상의 지지를 얻는 등 전국적으로 고르게 득표한 점을 고려하면, 15대에 비해 당선자의 지역간 득표편차는 많이 줄어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응답자 중 56%는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간 갈등이 이번 선거과정에서 과거에 비해 더 심해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학력이 높을수록, 젊은 층일수록 이번 선거에서 보수와 진보 갈등이 더 커졌다고 보고 있고 화이트 컬러층도 60% 이상이 이념갈등이 더 커졌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응답자 10명 중 9명은 이번 대선에서 ‘나이 든 세대’와 ‘젊은 세대’간에 생각의 차이를 많이 느꼈다고 대답했다. 응답자의 57%는 ‘매우 많은’ 차이를 느꼈다고 하고 32%는 ‘다소 차이’를 느꼈다고 한다. 이런 세대 차이에 대한 인식은 20대의 자식세대나 50대 이상의 부모세대나 마찬가지였다.

    세대 차이를 경험한 사람들이 가장 심각하게 여기는 것은 북한과 미국에 대한 인식 차다. 응답자의 31%는 북한에 대한 생각에서, 응답자의 24%는 미국에 대한 생각에서 세대 차이를 느꼈다고 한다. 응답자의 과반수 이상이 나이 든 세대와 젊은 세대 간에 북한과 미국에 대한 생각에 큰 차이가 있다고 느끼고 있다.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과정에 지역갈등은 심화되지 않은 반면 이념 갈등이나 세대 차이는 심화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세대 차이는 이념 차이를 수반한다.

    ‘휴대전화’가 아날로그 정치 눌렀다
    조선일보는 2002년 초 주요 정치인들의 진보·보수 성향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바 있다(표3 참조). ‘보수-진보 척도’를 종(Y축)으로 하고 정치인의 연령을 횡(X축)으로 했을 때 표시된 점의 위치가 높을수록 진보에 가깝다.

    가장 보수적인 정치인으로 김종필 총재가 꼽힌 것은 일반인의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정동영 의원이 김근태 의원보다 더 진보적이라거나,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보다 더 보수적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또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박근혜 의원을 매우 진보적인 김근태 의원과 비슷하게 보고 있고 민주당 중진인 한화갑 의원보다도 더 진보적인 정치인으로 보고 있는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러한 의문은 정치인들을 연령 순으로 나열한 횡축을 보면 풀린다. 즉 가장 젊은 정동영 의원이 가장 진보적인 정치인으로 인식되고, 나이가 많은 한화갑, 김중권 의원 등은 이회창 후보나 김종필 총재와 마찬가지로 보수적인 정치인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볼 때 16대 대통령선거가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의 3파전이 됐을 경우 나이만으로 본다면 정몽준 후보가 가장 진보적으로, 노무현 후보는 중도적으로, 이회창 후보는 보수적으로 인식됐을 것이다.

    게다가 대북 문제를 두고서는 정몽준 후보가 중도보수에 가까웠으므로 3파전에서는 후보자의 연령 면에서나 대북정책 면에서 보수와 진보가 각을 세우는 선거구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몽준 후보가 배제되고 노무현 대 이회창의 2파전이 되자 두 사람의 나이 차는 곧 이념대결이 됐고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가 대결하는 선거구도가 됐다.

    또 한 가지,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중요한 잣대가 바로 북한에 대한 태도다. 2001년 3월 R&R은 전국 성인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남북관계와 한미관계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하고 질문했다.

    응답자 중 45%가 한미관계, 50%는 남북관계라고 대답했으나 연령별로 응답률이 크게 달랐다. 20대에서는 63%가 남북관계, 35%가 한미관계라고 대답했다. 30대는 52%가 남북관계, 45%가 한미관계라고 응답했다. 이에 비해 40대와 50대는 한미관계를 50%, 남북관계를 40%로 대답했다.

    대북·대미인식이 세대 갈라

    일제시대와 6·25를 경험하면서 외세와 북한으로부터 삶에 많은 영향을 받은 50대 이상의 나이 든 세대와 전쟁을 경험하지 않고 풍요로운 경제 속에서 자라난 젊은 세대 간에는 북한과 미국에 대한 태도가 크게 다르다.

    노무현 후보가 ‘미국에 사진 찍으러 가지 않겠다’거나 ‘통일을 위해서는 다른 것은 대충 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나이 든 세대는 불안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 북한에 동포의식을 느끼고 미국에 비판적인 젊은 세대들은 노무현 후보의 발언에 공감했다.

    더구나 대선기간에 있었던 미국의 북한선박 나포사건이나 대북 강경조치, 또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과 뒤이은 촛불시위 등에 대해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의 생각 차이는 너무나 컸다.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정권교체’를 내세웠고 민주당은 ‘세대교체’를 내세웠다. 2002년 9월24일 R&R이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이번 선거에서 정권교체를 더 중요시하겠는가? 세대교체를 더 중요시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응답자의 41%는 정권교체를, 다른 50%는 세대교체를 더 중요시하겠다고 대답했다.

    한나라당 지지자 중 68%가 정권교체를, 민주당 지지자 중 71%가 세대교체를 우선시했다. 정권교체와 세대교체가 각 후보 지지자들의 중요한 지지이유가 됐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조사가 실시된 당시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는 44%로, 단일후보로 예상된 노무현 후보의 38%보다 높았음에도 세대교체가 정권교체보다도 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휴대전화’가 아날로그 정치 눌렀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회창 후보가 지난해 12월20일 정계은퇴 선언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응답자의 42%를 차지하는 무당파의 60%가 세대교체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대교체는 젊은 층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었다. 20대에서는 64%, 30대에서는 55% 등 과반수가 세대교체를 지지했다.

    5년 전인 1997년 8월에도 R&R은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때도 응답자 중 46%가 정권교체를, 49%는 세대교체를 강조해 2002년 상황과 비슷했다. 이때는 한나라당 지지자가 세대교체를 더 중요시했고, 당시 국민회의 지지자들은 정권교체를 주장했다.

    결국 세대교체와 정권교체는 15대 선거와 16대 선거 모두에서 최대 이슈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 중대한 이슈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5년 전 15대 선거에서는 이인제 후보와의 단일화에 실패하는 바람에 세대교체를 주장하는 지지자들을 합치지 못해 패배했다. 이번 16대 선거에서는 세대교체를 주장하는 정몽준 후보와 노무현 후보가 단일화로 뭉치는 바람에 또 대통령의 꿈을 접어야 했다.

    노무현 후보는 낡은 정치 청산이라는 효과적인 구호로 세대교체를 호소하는 한편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이벤트로 선거주도권을 계속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비해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은 6월 지방선거와 8월 보궐선거에서의 승리에 도취해 부패정권교체라는 이슈를 계속 선점하지 못했다.

    정기국회 기간에는 공적자금조사를 다루지 않았으며 현 정부 실정(失政)도 공격하지 않고 화해조치를 취하는 듯한 인상을 줌으로써 국민들에게 정권교체의 심각성을 부각시키지 못했다. 게다가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 총재직을 일찌감치 사퇴하고 정치권과의 거리를 효과적으로 유지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선거에서 현 정권의 책임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되지 못했다.

    실제로 2002년 11월24일 R&R이 ‘정몽준씨와 노무현씨의 단일화후보를 김대중 정부의 후계로 생각하는가’ 하고 질문했을 때 응답자의 64%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선거가 시작되면서 정권교체 주장은 노무현 후보에게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후보는 정권교체의 부담을 벗고 세대교체의 상징으로 선거에 임함으로써 젊은 세대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게 됐다.

    자갈치 아줌마와 기타 치는 노무현

    2002년 5월 노무현 후보의 호감도를 조사했을 때 호감이 64%, 비호감이 23%였다. 특히 20대와 30대에서 호감도가 높아 70% 이상이 호감을 갖고 있었다. 1999년 6월에 조사된 이회창 후보 호감도에서 호감이 34%, 비호감이 64%였던 것과 비교하면 노무현 후보의 호감도는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또 이회창 후보에 대해 20대의 71%와 30대의 66%가 비호감을 가진 것과 비교해보더라도 노무현 후보에 대한 20대와 30대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노무현 후보는 고졸 출신의 인권변호사, 서민적인 풍모, 청문회 스타, 지역구도에 정면으로 도전해온 정치역정, 타협하지 않은 정치, 원칙 있는 정치를 해온 인물이었으며 이런 점들이 젊은 세대에 잘 맞았다.

    이런 좋은 이미지를 자산으로 삼은 노무현 후보의 선거운동은 주로 자신의 주 지지기반인 20∼30대를 겨냥했다. 선거운동은 PMI라 하여 정책(Policy), 미디어(Media), 인터넷(Internet)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정책 면에서는 군복무 단축을 내세워 젊은 층을 겨냥했고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진보적인 정책을 취했다. 또 선거홍보 면에서 부산 ‘자갈치 아줌마’를 내세운 서민적인 광고, ‘기타 치는 노무현’ 편의 감성적인 광고 등으로 젊은 층에 호소력 있게 다가갔다.

    아울러 노사모를 중심으로 한 자원봉사자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가두선거운동도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선거운동은 한나라당의 조직 중심 선거와는 판이했다. 정당유세가 없어지고 현수막이 없어진 선거에 적합한 선거운동이었다.

    노무현 선거운동의 백미는 인터넷 선거운동이다. 1997년 선거 때는 163만 명에 지나지 않던 인터넷 인구가 2002년 선거 때는 무려 2565만명이 되었다. 20대와 30대는 물론 40대까지도 인터넷이 주요 정보수단이 되었으며 특히 젊은 층에는 기존 미디어를 대체할 정도가 됐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젊은 세대와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는 나이 든 세대 간에는 정보를 획득하는 방법이 다르다. 나이 든 세대는 주로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수동적으로 정치정보를 획득하고 구독하는 신문과 유사한 정치성향을 갖는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정보를 받아들일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아 비판적으로 수용한다. 후보자의 홈페이지를 방문하기도 하고 인터넷신문에 접속해 쟁점중인 사안을 열독하거나 논쟁에 참여하기도 한다.

    세대 차이가 정보 차이와 중첩되면서 신세대와 구세대의 생각 차이는 더 벌어졌다. 더구나 기존 언론으로부터 홀대를 받은 노무현 후보는 인터넷 매체에 더 적극적이어서 인터넷언론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때마침 특정신문에 대한 안티운동으로 신문의 정치적 영향력이 과거와 달라진 점도 작용했다.

    노무현 후보에 대한 젊은층의 지지열기는 월드컵에 대한 젊은 세대의 응원열기와 비슷하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4강의 신화를 이룰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폴란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의 강국을 차례로 꺾음으로써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 동안 서양과 백인들에게 가졌던 공연한 패배의식을 극복하고 더 이상 주눅들지 않게 되었다. 그 동안 ‘대∼한민국’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젊은 세대의 열기도 이와 같았다. 지역구도에 ‘바보’처럼 맨몸으로 부닥치는 원칙의 정치인을 응원했던 노사모 회원들, 국민경선으로 뽑은 후보마저 저버리는 비정한 정당에서 위기에 빠진 ‘노일병 구하기’를 위한 젊은 직장인들의 온라인 성금, 돼지저금통으로 모은 64억원의 선거자금 등 모두가 ‘할 수 있다’는 젊은 세대의 자신감이 만들어낸 것이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바로 젊은 세대의 가능성이었다.冬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