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또 하나의 유토피아로 유교적 이상국가가 있었다. 요순(堯舜) 이래 이상적 왕이 다스리는 중앙집권의 관료제도에 의해 예와 법이 완비되고 계급이 분화된 인공국가가 그것이다. 이는 청대 말 강유위(康有爲)의 대동(大同)사회에까지 이어졌는데, 우리 실학자들 또한 그런 유토피아를 추구했다. 지금에 와서 대동이란 대학의 축제명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는 지배자와 계급이 없는 무릉도원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독재자 왕의 계급 국가다.
이런 전통은 서양에도 존재한다. 플라톤에서 마르크스에 이르는 서양사상은 바로 유토피아를 추구한 것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소련이 해체되고 동유럽이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한 이래 유토피아는 끝났다고 여겨졌다. 반대로 그후 세계는 IT혁명으로 자유로운 개인이 국경을 넘어 모든 차이를 해소하는 새로운 인터넷 전자 유토피아로 나아가고 있다는 견해가 등장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IT혁명의 주체란 국적도, 소유관계도, 규모도 알 수 없이 다만 ‘유통만을 기다리는 화폐 축적’인 지구 규모의 자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인터넷, 이메일, 핸드폰으로 상징되는 IT혁명은 인간관계를 정보 교환으로 바꾸고, 정보의 가속화 및 원격화와 함께 정보유통 범위를 제한시킨다. 아울러 가족붕괴, 학교붕괴, 사교육 증대, 공기업과 대학의 민영화, 자본에 대한 규제의 완화, 빈부 갈등의 심화, 외국인과 여성을 포함한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 등을 낳고 있다. 그렇게 아이들은 죽어가고 있다.
이를 그럴듯하게 신자유주의라 부르지만 미국을 모델로 한 그것이 최종적으로는 군사력과 그 지배를 요구하는 막강한 국가권력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또 이는 가부장적 이성의 복권, 상징계의 회복, 국가 통일원리의 재구축이라는, 플라톤에서 마르크스에 이르는 낡은 국가 유토피아의 복사판에 불과하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영원한 미완성의 혁명
최근 이에 대항하는 새로운 유토피아가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데리다가 주장하는 권력화하지 않은, 환대·정의·책임에 입각한 새로운 세계 연대를 향한 꿈이다. 또는 리피에츠가 주장하는, 생산력 발전을 부정하고 개방·연대·관용을 특징으로 하는 공동체를 지향하며 영원한 미완성 혁명으로서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유토피아론이야말로 유토피아란 말을 지은 르네상스인 토머스 모어(1478~1535)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원리라 생각한다. 모어는 상대적이고 관용적이며 다원적인 르네상스 유토피아의 원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여름 유럽 여행의 마지막을 벨기에에서 보냈다. 그곳 앤트워프에는 우리에게 ‘플란더스의 개’라는 동화로 잘 알려진, 루벤스의 그림이 걸린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다. 동화 속 가난한 소년과 개는 그 그림 앞에서 꼭 껴안고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지금의 앤트워프는 두 생명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슬픈 세기말의 분위기와는 달리, 화려한 국제도시로서 거대한 건축물들을 자랑한다. 소년에게 루벤스의 그림은 유토피아였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그릴 수 없었던 가난한 소년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도 1516년 앤트워프에서 쓰여졌다. ‘유토피아’는 1515년, 양모 수출 금지령을 내린 헨리 8세의 명령으로 화자(話者)가 양모 무역협상을 하기 위해 브뤼지에 가게 됐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브뤼지는 베네치아가 동방무역의 중심지인 것에 대응해 유럽·러시아·스칸디나비아 무역의 중심지, 즉 북부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다. 지금도 브뤼지에는 모어에 관련한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모어는 루벤스의 그림이 걸린 대성당에서 친구의 소개로, 항해 도중 본 유토피아 섬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난다. 그는 유토피아가 브라질에서 인도 캘커타로 향하는 항로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16세기 당시 그 항로에 그런 도시가 있었으리라는 추측은 그야말로 상상에 불과했다. 모어의 ‘유토피아’가 당시 항해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그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모어의 상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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