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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에세이

인내의 전략

  • 글: 강인애 경희대 대학원 교수·교육공학(iakang@khu.ac.kr)

인내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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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의 전략
영문과를 나온 사람들이 제일 고역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그럼, 영어는 잘하시겠네요?”라는 기대 섞인 질문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교육을 전공했다고 다들 자기애들에 대한 진지한 교육상담을 하려고 할 때마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 분야도 이제는 교육심리, 교육행정, 성인교육, 교육평가, 교육과정, 그리고 내가 하는 교육공학 등 여러 분야로 나뉘어 있다. 특히 내 분야에서 하는 일은 학교나 기업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교육이나 훈련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요즘 유행하는 온라인 교육과 같은 컴퓨터 활용 교육을 하는 것이므로, 애들의 학교생활이나 교우관계, 진로 등의 문제에는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문외한이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전공을 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전공자들에 비해서는 교육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론을 많이 접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교육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누가 물어온다면 나는 ‘인내’라고 대답하고 싶다.

내가 전공한 교육이론은 ‘학습자 중심’ 혹은 ‘학습자 주도’를 강조하는 ‘구성주의’다. 이는 일방적인 지식 전달과 흡수를 강조하는 기존의 교사 중심적 수업환경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수업의 수동적인 객체가 아니라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나는 과연 이 이론이 실제 교육현장에서 통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은 소박한 마음에서 지금까지 그 이론에 입각한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하지만 출발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X세대를 지나 N세대라는 명칭이 의미하듯이 기성세대와는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완전히 다르다는 요즘의 대학생들도 학교라는 특수환경에 이르면 어느새 ‘지식 흡입 스펀지’처럼 철저히 사회화되는 걸 자주 보게 된다.



이들에게 색다른 수업경험을 주기 위해 나는 우선 좌석 배치부터 달리한다. 모든 의자를 소그룹 별로 동그랗게 배열하도록 하는 것이다. 맨 앞에 우뚝 서 있는 교수용 탁자는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올려놓는 용도로 쓸 뿐 내 자리는 언제나 소그룹으로 모여 있는 학생들 옆에 남아도는 의자들 중 하나다.

내 임무는 본 수업에 앞서 토론할 주제나 질문거리를 제시하고, 다음에는 그 문제나 질문에 관해 학생들이 준비해온 것을 바탕으로 토론을 통해 의견을 모으고 그에 따른 그룹별 해결안을 제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나는 각 그룹을 돌아다니면서 토론 모습을 관찰도 하고, 간혹 ‘또 다른 학생’의 위치에서 토론에 참여하면서 그들의 생각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이미 10년이 넘도록 강의를 해왔건만 이런 수업의 첫 시간이면 언제나 학생들보다 더 긴장한 내 모습을 발견한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라도 되는 듯 비장함까지 갖추고 수업에 나서는 것이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학생들에게 내 수업방식을 설명하자마자 마구 쏟아지는 그들의 불안하고 불만스러운 시선과 싸워야 한다. 첫 1∼2주의 수업에서는 이런 방식이 너무 어렵다느니 막막하다느니 따위의 한숨 섞인 반응을 물리쳐야 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2주쯤 지나면 학생들의 절반은 포기와 체념의 상태로, 절반은 새로운 수업방식의 긍정적인 면을 스스로 발견하면서 수업 분위기는 역전된다. 바로 이때 나는 ‘인내’의 전략이 결국 성공했음을 느끼곤 한다. 토론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면 도대체 학생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막막함에 당혹스러워하는 그들의 눈빛과 마주칠 때는 이리저리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옆자리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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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인애 경희대 대학원 교수·교육공학(iakang@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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