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호

미디어 시대, 윤리는 상식이다

  • 입력2008-05-06 19: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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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 시대, 윤리는 상식이다
    매일 접하는 방송 뉴스의 다음과 같은 마무리 코멘트는 낯설지 않다.

    “…국민의 혈세가 다시 한번 마구 사용된 겁니다.”

    흔히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잘못 사용했을 때 등장하는 마무리 코멘트다. 지방 도시에 대규모 공항을 건설했지만 무용지물이 됐다거나, 단체장이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군청이나 시청 건물을 지나치게 호화롭게 지었다거나, 은행이 제대로 된 담보도 설정하지 않은 채 대기업에 막대한 규모의 자금을 대출해줬을 때 약속이나 한 듯 이 코멘트가 등장한다. 보도 내용만 봐도 가슴이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데 기자의 마지막 코멘트는 공직자에 대한 적대감을 증폭시킨다. 이런 보도를 접하면서 우리는 사회를 증오하고 저주하고 분노를 느끼고 열심히 살아갈 의욕을 잃을 수도 있다.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안전불감증의 한 사례였습니다.”

    노력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 문제. ‘빨리빨리’에서 출발한 ‘설마’에 대한 과신. 기자의 이 코멘트는 청자로 하여금 오히려 자포자기를 유도하지 않을까? “그래, 우리 국민은 안전불감증에 빠졌어. 절대 고치지 못할 거야.” 부모가 칭찬하고 설득하고 기다리며 인내심을 보이면 자녀는 조금씩 호전된다고 하지 않던가. 기자는 왜 긍정적인 희망의 코멘트, 예를 들어 “안전에 보다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겠습니다” “안전에 대한 시민의식이 ○○년 전에 비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습니다”와 같은 코멘트는 하지 않는 것일까.



    “…○○당의 내홍은 깊어만 갑니다.”

    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내는 비교법을 환유라고 한다. 연기를 보면 화재·담배·굴뚝을, 백발을 보면 나이든 사람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당을 ‘내홍’으로 단정하고 이 단어가 시청자의 뇌리에 박히면서 ○○당은 분열된 당, 나아가서 정치인은 싸움만 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전달된다.

    우리나라 방송 뉴스의 뉴스 가치는 부정성이 시의성 다음으로 높다. KBS 뉴스를 영국의 BBC와 일본의 NHK 뉴스와 비교할 때 큰 차이를 보인 뉴스 가치가 바로 이 부분이다. 부정성이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취재·보도하는 뉴스 가치의 하나. 하긴, 발본색원해서 고쳐야 할 부분이 우리 사회 곳곳에 널려 있으니 뉴스 보도도 그쪽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방법이 문제다. 진정 부정적인 것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면 기자들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야단만 치는’ 코멘트를 날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뿐인가. 냄비식 보도도 문제다. 우리는 한 달이 멀다하고 대형 사건을 접한다. 김승연 회장 사건, 신정아씨 사건 등이 일어났을 때는 내용 없는 보도가 매일 톱뉴스로 등장했다. 어떤 때는 알맹이 없는 보도가 10여 분 동안 이어지기도 했다. 흥미진진한 모든 요소를 갖춘 이 두 사건 관련 보도는 일주일이 아니라 수개월 동안 인기 소재로 활용됐다. 새로운 사실이 없더라도 두 남녀의 사진을 나란히 띄우기만 하면 시청률이 올라가니 그럴 수밖에. 당시 SBS는 누구 눈치를 보는지 몸을 사렸고, KBS는 시청료 때문인지 공정성을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지만, MBC는 ‘셌다’. 비판의 강도뿐 아니라 선정성에서도 타 방송사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런데 매체들은 어떤 기준으로 뉴스 가치를 정하고 보도방향을 잡고 기자들의 코멘트를 허용할까. 기자들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신속하게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겁없는’ 코멘트를 날려도 되는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은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 기자가 아닐까.

    미디어 세상이다. 미디어가 온통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기존의 신문·방송을 일컫던 ‘언론’은 ‘다양한 미디어’로 개념이 확장됐다. 디지털 혁명으로 매체 간의 경계도 모호해졌다. 그런 만큼 기자, PD, 영화제작자, 광고제작자, 연예기획사 등 미디어 종사자들의 윤리기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다. 정보 전달은 그 자체가 거대한 권력이니까. 그런데 어떤 윤리가 필요한 것일까. 촌지를 받거나 광고주나 정권의 압력에 굴복해선 안 된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거론된 윤리강령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사회 구성원들의 심리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대인 커뮤니케이션에서 상대방에게, 최소한 상처는 주지 않는 용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미디어가 전달하는 내용도 사회 각계각층의 구성원 집단에게 상처를 줘서를 안 된다. 극도로 무질서한 한국 사회에서 ‘삶’ 이 아닌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구성원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서도 안 된다.

    영국에서 일어난 실제 사례를 들어보자. 이 사례와 분석은 미국 제일의 미디어 윤리학자로 평가받는 클리퍼드 크리스천스 교수가 쓴 책에서 인용한 것이다. 두 명의 10대가 제임스 벌거라는 두 살배기 어린아이를 납치해서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영국의 TV는 이 10대들의 이름 보도를 금지한 영국 법원의 제한을 지켰다. 그러나 미국의 신문들은 아무리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하지만 10대들의 이름을 버젓이 게재했다. 영국 TV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보살핌 정신의 원칙을 지킨 반면 미국 신문들은 진실보도는 정언(定言)명령이라는 원칙을 지킨 것이다. 결과적으로 영국 TV는 청소년 피의자의 앞날과 그들의 부모에게 충성했고, 미국 신문은 그들의 독자에게 충성한 셈이다.

    미디어 종사자에게는 다른 전문직 종사자와 마찬가지로 여러 의무가 있다. 우선 출세보다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즉 스스로에 대한 의무다. 매달 돈을 내고 신문을 구독하고 TV를 시청하는 소비자를 위한 의무를 들 수 있다. 비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기업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조직에 몸담은) 언론인은 이 소비자를 위해 일하겠다고 서약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들에게는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받지 않는, 돈을 내지 않은 다른 사람들까지 생각해야 할 의무도 있다. 공익성은 언론의 첫째 지향점이기 때문이다. 언론인은 다른 전문직종과는 달리 법정의 명령조차 불복할 수 있고 보도포기 종용도 거절할 수 있다. 작업 동료에 대한 의무도 소중하다. 그러나 사회에 대한 의무가 으뜸이다. 책임을 ‘responsibility’와 ‘accountability’로 구분지어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 외부의 강제성 정도나 도덕적 법적 규범에 따라서 구분한 것인데, 전자는 언론인이 자발적으로 지는 책임을 말하고, 후자는 시민사회를 포함한 외부세력이 가하는 적절한 강제에 따른 책임을 뜻한다. 이제 미디어는 responsibility가 아닌 accountability의 시대에 돌입했다는 것이 이 같은 구분의 전제라고 여겨진다.

    미디어 시대, 윤리는 상식이다
    김춘옥

    1949년 경기도 김포 출생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프랑스 파리 제3대학 석사 (연극학)·파리 제7대학 박사(언어학)

    경향신문·KBS 기자, 코리아헤럴드 부장, 시사저널 국제·문화부장

    現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저서 : ‘신문방송, 취재와 보도’ ‘디지털시대의 방송론’ ‘방송저널리즘’ ‘미디어 윤리’(역서)


    메릴, 크리스천스, 람베스, 화이트. 미국 학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이 윤리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미디어 종사자에게는 전문직의 특성을 내세운 윤리가 아닌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일반적인 도덕성(general morality) 이 필요하다고. 디지털 혁명으로 시민의 의식은 이미 평준화됐다. 따라서 메시지 전달행위가 전문적인 작업이라는 이유에서 직업상의 잣대로 이뤄져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언론인에게는 직업에 기반한 윤리보다는 시민으로서의 윤리가 반드시 요구된다. 앞에서 사례로 든 두 명의 10대 관련 보도의 경우, 언론의 의무보다는 일반인의, 일반적인 생활에서 흔히 나타나는 ‘상식’ 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 종사자라면 진실이 무엇인가, 약속을 잘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슴에 새기고 편견을 없애기 위해 세계주의, 페미니즘, 복합문화 등을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미려한 문장을 구사하며 수많은 사람을 취재하고 인터뷰를 한다고 해도, 상식 수준의 도덕성이 결여됐다면 그가 보내는 메시지는 공감을 얻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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