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이러한 흠 없는 모범생의 이미지는 남궁원에게 평생 넘을 수 없는 어떤 굴레를 동시에 선사한 ‘절반의 축복’이었다. 1960년대 신화적 이미지의 미남배우로 007을 연상케 하는 액션물이나 멜로물, 전쟁영화, 사극 등을 두루 거치며 전성기를 누리던 그는, 1980년대 들어서는 점차 임금이나 양반, 사장 같은 이 사회의 권위를 표상하는 한정된 역할에 머무르게 된다. 평범하고 자상한 아버지나 신분의 벽에 괴로워하는 머슴 같은, 한마디로 ‘신발에 흙이 묻어 있는’ 그런 역할은 그가 소화하기에 너무나 지상에 가까운 인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1950~60년대 한국 영화계의 전성기를 구가한 배우들이 영화계를 떠난 1970~80년대에도 남궁원은 영화판을 지키며 그 중심에서 비켜서지 않았다. 1960년대부터 2000년까지의 이 긴 시간 동안 그는 크게 다섯 개의 이미지로 압축할 수 있는 다양한 연기를 구축하며 끝내 자리를 지켜왔다.
그 첫 번째는 ‘자매의 화원’이나 ‘남과 북’ 같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호남(好男) 혹은 신사의 이미지다. 데뷔 초창기였던 이 시기에 남궁원은 연기보다는 분위기와 외모의 힘으로 관객에게 어필한다. 두 번째는 신상옥 감독의 ‘내시’나 이두용 감독의 ‘내시’에서 엿보이듯, 잔인하고 이기적인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계급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 아마도 남궁원의 가장 오래된, 가장 길게 지속된 이미지였을 것이다.
세 번째는 ‘여섯 개의 그림자’ ‘국제 간첩’ ‘하얀 가마귀’ ‘전쟁과 인간’ 등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007류의 호쾌한 액션 영웅. 네 번째는 ‘청녀’ ‘화녀’ ‘산배암’ 같은 영화에 등장하는, 내면의 성적 욕망을 억압하고 있지만 결국 여성의 유혹에 넘어가는 우유부단한 중년 남자의 이미지다. 이들은 특히 1970년대 산업화의 와중에서 주변부의 신산한 삶을 살았던 여성들과 한 쌍으로 묶여 있는 역할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섯 번째로 일그러진 욕망과 집념에 사로잡혀 있는 광인의 그림자가 너울거리는 인간형. ‘다정다한’이나 ‘피막’ ‘화분’ 같은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 마지막 이미지는 남궁원으로 하여금 1970년대 이후 각종 상을 휩쓸게 만들어준 ‘대기만성형 연기’의 동력이 되었다. 1973년 최하원 감독의 ‘다정다한’에서 그는 아내와 자식이 살해당한 뒤에도 예술에 몰두해 삶을 버텨나가는 도공의 집념을 연기함으로써 대종상 주연상을 수상했고, 1980년 ‘피막’에서는 천대받는 피막지기 역으로 역시 대종상 주연상을 따냈다. 그리고 하길종 감독의 ‘화분’에서는 애증에 사로잡힌 동성애자의 모습으로, 이두용 감독의 ‘내시’에서는 사디즘적인 내시감이라는 악역을 소화하면서 그때까지의 이미지에 파격을 가한다.
지극히 모범적이고 정상적인 삶을 살았던 그가 지극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광인의 면모로 연기의 정점에 다다랐다는 모순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혹시 평생 무의식 깊은 곳에 품고 있었으나 실생활에서는 한번도 발휘한 적이 없는 그 자신의 그림자를 보여준 것은 아닐까. 남궁원이 어떤 연기자보다도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낼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백지 같은 배우’였음을 입증하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