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나본-모본과 관련된 필자의 언급에 대한 지적이다. 리선생은 필자가 “인민문학출판사본을 높이기 위해 모종강본을 깎아내리는” 오류를 범했고, “인민문학출판사본은 바로 괜찮은 모본들을 몇 가지 모아 대조하면서 나관중본은 일부만 참고한 것”이라고 비판하였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여기서 ‘사실’이라는 것은 인민문학출판사본이 만들어진 과정을 말한다. 인민문학출판사본의 서문은 판본의 정리과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954년 본 출판사는 (판본을) 정리할 때 위와 같은 상황을 고려하여 명대 가정 임오년(1522) 서간본(과거에는 홍치갑인 서간본이라 칭했다)을 참조하여 교정하였다. 잘못 개정되고 개악된 일부 모본의 상황을 참작하여 교정을 가한 것이다. 이렇게 한 목적은 결코 고본에 집착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에 정리한 모본이 오류가 적고 읽기에 편리한 통행본이 되기를 바라서다.”
(원문▷)
여기서 우리는 인민문학출판사측이 모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했고, 나본을 어떤 의도로 활용했는지 알 수 있다. 리선생도 인정하고 있듯이 “세 번에 걸쳐 일류 전문가들이 모여 수많은 고서들을 대조하면서 정리했기에 오류가 가장 적고 주해가 가장 정확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삼국지가 울고 있네’, 금토, 148쪽) 인민문학출판사측의 주장을 존중할 경우, 필자가 인민문학출판사본을 높이기 위해 모종강본을 깎아 내렸다고 비판한 리선생의 말은 사실과는 명백히 다른 것이다.
유려한 표현을 해석의 오류로 착각
아마 삼국지에서 가장 복잡한 연구과제를 꼽는다면 바로 판본 문제일 것이다. 명청대에 출판업자들이 간행한 수많은 삼국지 텍스트 중 현존하는 것만 해도 무려 100여 종(명대 약 30종, 청대 70여 종)이 넘는다. 황석영본이 출간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자 이를 다룬 일부 기사 중에 나본을 저본으로 했다는 오보가 나온 것은 전문가들조차 헷갈리곤 하는 나본과 모본의 복잡한 관계를 기자들이 잘못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복잡다단하기 그지없는 삼국지 판본에 대한 연구는 국내의 정원기 교수, 일본 김문경 교수, 영국의 앤드루 웨스트(Andrew West) 등 전문가들이 따로 있어 여기서 필자가 언급할 처지가 못되며, 또한 최고 최선의 텍스트가 나본이냐 모본이냐를 따지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다만 필자의 언급에 대한 리선생의 지적이 적절치 못하다는 점만은 밝히고자 한다.
넷째, 리선생이 국내 삼국지 번역의 오류를 다섯 가지 유형으로 지적한 것에는 공감하지만 잘못 지적하거나 침소봉대한 부분이 많다. 지면이 제한되어 일일이 거론할 수 없으므로 몇 가지 예만 들기로 한다. 첫째, 관우가 죽음을 겁내지 않는다는 뜻인 ‘시사여귀(視死如歸)’를 황석영 선생이 “죽음을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정도로 여긴다”로 번역한 것은 중국어 사전에 나오는 “죽음을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본다”는 해석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한국인은 죽는다는 것을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곧잘 표현한다). 또 앞뒤 문맥으로 보자면 훨씬 유려한 표현이 되었음에도 리선생이 “황석영씨는 어림짐작으로 옮겼거나 시원치 않은 사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식으로 비난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