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방식으로 정치자금 후원이 이뤄질 경우 이는 합법적인, 혹은 공식적인 후원금 주고받기가 된다. 기업들은 정당으로부터 발부받은 후원금 영수증을 세금감면 등 각종 대내외 증빙 자료로 사용한다.
정당 소속 후원회는 보관하고 있던 영수증들을 모아 매년 1회 1월 중순에서 2월15일 사이에 전년도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의 1년치 후원금 수입·지출액 총액을 해당 선거관리위원회에 보고한다. 이것이 ‘후원회의 수입·지출 명세서’다. 이 보고서는 후원금 수입을 개인, 법인, 익명으로 구분하고 있다. 후원금 모금은 중앙당 후원회뿐만 아니라 정당 시도지부 후원회에서도 할 수 있으며 후원금 회계처리 및 선관위 보고방식은 동일하다.
영수증 교환 없이 기업이 정당에 돈을 주면 비자금으로 전용될 소지가 커진다. 선관위에 보고하지 않아도 되므로 말 그대로 비자금이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정상적인 정치자금과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구분하는 일반적 방식이다. 영수증처리를 해줬느냐, 안 해줬느냐가 합법과 불법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2003년 11월10일 대검찰청 관계자는 이런 상식을 깨는 발언을 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검 관계자는 이날 “정상적 자금(후원금)의 외형을 갖췄다 해도 돈을 받은 쪽에서 비정상적으로 처리해 사용한 것은 불법으로 보고 있다”면서 “현재 이 부분을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후원금 영수증이 발부된 돈이라고 해서 100% 합법적으로 수입·지출이 이뤄진 정치자금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3개 지부 후원금 영수증 장부
‘신동아’ 취재에서도 영수증이 발부된 후원금 가운데 특이한 사실이 발견돼 관심을 끌고 있다. 민주당의 경우 지난 대선 때 중앙당 후원회가 거둬들일 수 있는 후원금 한도액이 일찌감치 차버렸다. 이에 따라 대선 직전인 11월과 12월 후원금 한도액이 남아 있는 민주당 서울·인천·경기·제주지부를 동원해 후원금을 추가로 모금했다.
‘신동아’는 최근 이상수 의원이 보유하고 있는 제주지부 후원금 수입 내역을 제외한 민주당 서울·인천·경기지부 후원금 영수증 관리대장과 관련 후원금 영수증 사본들을 입수했다. 3개 지부가 2002년 11월과 12월 개인 또는 기업 및 익명의 후원자로부터 거둬들인 후원금을 각 지부별로 정리해둔 자료다.
이들 자료에 기록된 대다수 후원자(업체)의 이름, 후원금액, 후원금을 낸 시기는 이미 일부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해당 언론은 ‘신동아’와 거의 같은 시기에 자료를 입수한 것으로 보인다. ‘신동아’가 입수한 자료는 이들 후원자(업체)들이 민주당 서울·인천·경기지부 중 어느 지부 후원회를 통해 후원금을 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인천시지부 후원회 영수증 관리대장’ 자료에 따르면 기아자동차(6000만원) 현대모비스(6000만원) INI스틸(7000만원) 현대하이스코(5000만원) 현대캐피탈(5000만원) 로템(5000만원) LG이아이(1억원) LG MMI(1억원) LG에너지(1억원) 해양도시가스(2억원) 서라벌도시가스(1억원) LG이노텔(1억원) LG마이크론(2억원) LG엔시스(2억원) LG MRO(2억원) LG CNS(1억원) LG경영개발원(1억원) LG투자신탁운용(1억원) LG선물(1억원) LG니꼬동제련(2억원) 극동도시가스(1억원) 대동종합건설(3000만원) 교보생명(1억원) 등 23개 법인이 2002년 11월28일부터 12월12일까지 총 24억7000만원의 후원금을 민주당 인천시지부 후원회에 납부했다. 이 자료는 “인천시지부 후원회 영수증 사용내역-무정액 63장(32억8710만원) 정액권 400장(100만원×400장)”이라고 기록해두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과 12월 민주당 인천시지부 후원회가 영수증 처리를 해준 법인 후원금 수입은 24억7000만원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 인천시지부 후원회는 2002년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1년 동안 법인으로부터 거둬들인 후원금은 모두 5700만원이라고 2003년 2월 인천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했다.
이 자료만 놓고 봤을 때, 민주당 인천시지부 후원회가 법인에게 영수증 처리해준 후원금 수입 중 24억1300만원이 선관위에 수입 신고하는 과정에서는 누락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