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역 없는 수사를 외치고 있는 함승희 의원(왼쪽)과 노관규 위원장.
특히 비자금 추적의 전문가로 명성을 날린 특수부 검사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두 사람은 요즘 대선자금 정국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전공’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들은 SK 비자금 사건으로 실체의 일각을 드러낸 정경유착 고리를 이번 기회에 완전히 끊어내야 한다며 전면에서 또는 막후에서 정치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이끌어내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10월29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2층 기자실.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노관규 위원장이 당 예결위원장 자격으로 한달여간 벌여온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대선자금 운용과 관련한 민주당 회계자료 기초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었다.
그는 “대선에서 민주당 노후보의 당선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분들의 이름이 거명될 수밖에 없는 데 대해 동료정치인 입장에서 마음이 무겁고 괴롭지만 정치개혁의 이정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고 소회를 밝혔다. 당 회계장부 조사 결과 모두 128억5000만원에 해당하는 허위회계 처리가 드러났으며 이상수(李相洙) 당시 민주당 선대위 총무본부장(현 열린우리당 의원)이 중앙당 경리국에 3차례에 걸쳐 허위 회계 처리를 지시해 실제 자금 흐름을 은닉하고, ‘세탁’해 사용한 의혹이 있다는 요지였다.
그는 특히 이의원이 제주도지부 후원회 명의로 사용했던 무정액 영수증 365장을 민주당에 반납하지 않은 데 대해 의혹을 제기하며 “대선이 끝난 후인 1월 23, 24일 17억원의 거액이 이 작은 지역에 입금된 것은 대규모의 ‘돈 저수지’가 따로 있다는 증좌”라고 분석했다. 돈세탁 여부 등에 관해 끝없이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조목조목 답변해나가던 그는 30분여에 걸친 ‘수사 브리핑’을 마치고는 “더 궁금한 것 없으시죠”라며 두 손을 털고 일어섰다.
일부 당직자들이 “이목이 집중된 사건인데 기자들과 농담도 하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도 취하라”고 권유했지만 노위원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검찰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다루려 한다면 신뢰를 받을 수 없듯 민주당이 이 사건을 노대통령과 신당에 대한 공격용으로 다룬다면 단순한 정쟁거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이유였다.
실제 군살없는 그의 조사결과 발표는 여권의 대선자금 전반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켰다. 검찰은 그의 발표 이후 이의원을 소환하는 것은 물론 SK 비자금뿐만 아니라 여야의 대선자금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해나갔다.
그는 검사 시절인 1998년 변호사와 판사간의 유착으로 문제가 된 의정부 법조 비리 사건 수사를 맡아 회유와 압력에 굴하지 않고 파헤친 주인공이다. 당시 수사 결과 의정부 지원 소속 판사 8명이 옷을 벗었으며, 나머지 판사 30명 전원이 다른 지역으로 전보되는 사법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앞서 1997년 대검 중수부 검사 재직 시절에는 심재륜(沈在淪) 중수부장이 이끄는 ‘드림 수사팀’의 일원으로,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 비리 사건을 맡아 대선 잔여금에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해 현철씨를 구속시켰다. 또 별명이 ‘자물쇠’인 한보 정태수(鄭泰守) 총회장의 입을 열고 수천억원 비자금 사건 비리를 파헤치기도 했다.
이 같은 수사력에는 검사 임용 전 8년간 세무 공무원 생활을 통해 익힌 경험이 큰 힘으로 작용했다. 전남 장흥 출생으로 순천 매산고 출신인 그는 학교 졸업 뒤 서울에 올라와 구로3공단에서 1년간 일했으며 1979년 세무공무원이 됐다. 이후 1992년 32세 때 늦깎이로 사법고시(34회)에 합격한 뒤 검사로서 세무장부 분석과 계좌 추적에 탁월한 솜씨를 과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