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도라의 상자
문민정부 때 대검 중수부장과 서울지검장을 지낸 안강민 변호사의 기억에 남아 있는 안대희(48) 대검 중수부장의 면모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안중수부장이 현 정부 들어 대검 중수부장을 맡으면서 갑자기 유명해진 것으로 보이겠지만 검찰에서 그의 이름은 일찍이 특수수사의 대가 반열에 올라 있었다. 드물게 초임 시절부터 특수통의 길을 걸으며 굵직굵직한 수사와 곧은 성격으로 이름을 날렸던 것.
대검 중수부는 요즘 일복에 빠져 있다. 그것은 안대희라는 부지런하고 강직한 검사를 부장으로 맞을 때부터 예고된 것이다. 과거 검찰이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할 때는 대검 중수부장이 정권 핵심부의 의중을 거스르거나 여권의 비리를 수사한다거나 하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 무모한 일을 지금 안중수부장이 하고 있다. 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을 재수사하며 노무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동지’라며 애정을 나타냈던 안희정씨에 대해 두 차례나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측근이자 대선공신인 염동연씨를 구속함으로써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하더니 현대 비자금 수사를 벌여 범여권을 쑥밭으로 만들었다. 이어 SK 비자금을 ‘마구’ 파헤쳐 대통령의 집사인 최도술 총무비서관의 비리를 찾아내는 개가를 올렸다. 이는 노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을 촉발했고 그 여파로 이제 안중수부장은 검찰 사상 처음으로 정권 출범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대선자금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행운아(?)가 됐다.
신화 속에서는 이 상자를 여는 것이 불행의 상징이다. 행운인지 불운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 좋아하는 그의 성격으로 봐선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이 수사에 신명을 바치고 있을 게 틀림없다. 최근 그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앞만 보고 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안중수부장이 세운 또 하나의 기록이 있다. 바로 야당 대표로부터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최고 실세”라는 평을 들은 것이다. 최대표의 이 발언은 비아냥거림보다는 호평에 가까운 것이었다. 대검 중수부가 아직 야당의 대선자금을 건드리지 않았을 때 나온 얘기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그의 반응이 재미있다.
“무릇 실세라는 것은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고 되는 것을 안 되게 하는 사람인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실세가 아니다. 이제 권력은 없고 의무만 남았다.”
“현존하는 최고의 특수통”
공적자금 비리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검사는 안중수부장에 대해 “현존하는 최고의 특수통 검사”라며 “수사검사들의 희망이자 가장 추앙받는 검사”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검사들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수준에 도달한 사람이다. 검사 그 자체다. 수사할 때 원칙에 예외를 두지 않는다. 주변 정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인적인 고려는 하지 않는다. 검사장이 됐어도 수사를 직접 기획하고 주임검사와 다름없이 일에 매달린다. 초임 때부터 특수부에 배속돼 왕성하게 수사했고 특수통 검사들이 갈 만한 자리는 다 거친 거의 유일한 검사다. 보직관리 차원에서 특수부 근무를 했던 이른바 ‘관리 특수’와는 차원이 다른 순수한 특수통이다.”
친분이야 어떻든 후배검사로부터 이 정도 찬사를 받는다면 나름대로 성공한 ‘검사 인생’이 아닐까. 이 검사에 따르면 안중수부장은 잔정이 없는 듯싶고 단호하고 직설적이다. 앞서 안강민 변호사도 말했지만 예의상이라도 속에 없는 소리는 못하는 성격이다. 이렇게 보면 피도 눈물도 없이 일만 하는 재미없는 인간으로 비쳐질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