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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중국의 로버트 김”

對北 공작원 첩보활동 돕다 간첩죄 복역중인 조선족 최모씨

  • 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나는 한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중국의 로버트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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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업가로 위장한 채 중국에서 첩보 활동을 벌이던 특수 공작원 한 명이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됐다.
  • 이 사건은 정부간 물밑 협상 끝에 이 공작원이 석방됨으로써 ‘없었던 일’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공작원을 도와 활동했던 조선족 사업가 한 명은 간첩죄로 체포돼 현재까지도 복역중이다. ‘중국판 로버트 김’이 돼버린 이 조선족 사업가에 대해 군도 정보기관도 모두 입을 닫고 있다.
“나는 한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중국의 로버트 김”

중국을 무대로 활동하던 특수임무 공작원의 체포는 우리 정보당국에 큰 충격을 던졌다.

지난해 8월 중순, 중국 베이징(北京) 북쪽 야윈춘(亞運村)에 있는 한 고급 식당. 몰려든 손님들로 종업원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식당 한쪽 구석방에서 40대 후반의 남자 두명이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를 열심히 상의하고 있었다. 비밀스런 눈빛을 주고받는 이들이 앉은 테이블 위에는 몇 가지 서류뭉치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러나 워낙 많은 손님이 몰려든 탓에 식당 안에서 이들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시아 선수촌’을 뜻하는 야윈춘(亞運村)은 이름 그대로 지난 1990년 아시안게임을 치렀던 곳이고 오는 2008년 올림픽을 치를 스타디움이 들어설 예정지다. 베이징 시내에서도 고급 주택단지에 속하는 곳으로 한국의 주재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다. 그런 만큼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지역이다.

사건은 두 남자가 식사를 끝낼 무렵 터졌다. 사복을 입은 중국 공안요원들이 들이닥쳐 두 사람을 체포하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서류뭉치를 한 장도 남기지 않고 압수해 가버린 것. 두 사람은 반항해볼 여유도 없이 중국 공안요원들에게 압송됐다.

위 상황은 이 두 사람이 체포될 당시의 상황을 가상으로 꾸며본 것이다. 당시의 정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지 며칠후 두 사람의 신원이 확인됐다.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한국인 현역 영관장교, 또 한 사람은 이 영관장교를 은밀히 도우며 활동해온 조선족 기업인 최모씨였다.

두 사람에게는 그동안 중국 정부와 정보당국이 확보한 북한 관련 정보뿐 아니라 중국의 군사정보를 빼냈다는 간첩 혐의가 적용됐다. 한국의 현역 영관장교가 사업가로 신분을 위장한 채 조선족 최모씨를 통해 중국 국가안전부(우리의 국가정보원에 해당) 등 정보기관의 핵심 관계자들과 접촉한 뒤 최근 북한군 이동 경로 등 북한의 핵심 군사정보를 여러 차례 빼내왔다는 것이다.



결국 이 사건으로 중국 베이징을 무대로 은밀하게 활동하던 우리 특수 공작원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물론, 그를 돕기 위해 신분을 감추고 활동해온 조선족 정보원까지 한꺼번에 노출되고 말았다.

신분 드러난 특수공작원

중국 공안에 검거된 한국인 현역 장교는 국방부 정보본부 산하 K중령. K중령은 지난 1995년경부터 베이징과 상하이(上海) 등을 무대로 대북 정보수집 및 공작 활동을 벌여온, 특수공작원이었다. 이 분야에서는 베테랑으로 꼽히는 인물로, 중국 내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도 현지 활동 능력을 인정받아 다시 몇 차례 중국 근무에 나선 바 있다. 그 정도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던 인물이었기에 K중령이 상대국 정부에 전격체포된 데 따른 우리 정보당국의 충격은 더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 정보당국의 해외 첩보활동에 치명적 오점을 남긴 이 사건은 정보기관 내부에만 소리소문없이 알려졌을 뿐 사건 발생 1년이 지나도록 외부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체포되자마자 수감된 K중령은 그 후 우리 정보당국과 중국측의 물밑 접촉 끝에 지난해말 석방돼 한국으로 무사 귀환했기 때문이다. K중령의 체포 및 구금 사실을 확인해 준 정보당국의 한 관계자는 “K중령이 3~4개월 복역한 뒤 석방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K중령은 국내 귀환 후 최근 대령 진급이 확정돼 내년 진급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K중령과 함께 체포된 또 한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K중령을 도와 북한군 관련 정보를 빼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최모씨는 한중 양국간 물밑 협상에서 배제된 채 중국 법정으로 넘겨졌다. 그에게도 역시 간첩 혐의가 적용됐다. 중국내 복수의 정보 소식통은 “최씨가 중국 법정에서 5년형을 받고 현재 베이징 시내 한 감옥에서 수감생활중”이라고 전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그를 통해 북한 관련 핵심정보만 빼내고 그의 신병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현재 최씨의 소재나 근황은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최씨는 미국의 군사기밀을 한국대사관 무관에게 제공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7년째 복역중인 로버트 김과 똑같은 신세가 돼버린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사건을 접한 관계자들이 이를 두고 ‘중국판 로버트 김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로버트 김과 최모씨가 다른 점이 있다면 로버트 김은 면회와 접견이 자유로운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앨런우드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는 반면 최씨는 면회와 접견이 일절 통제된, 현재로서는 소재를 알 수 없는 베이징의 한 감옥에 수감돼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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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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