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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논단

韓·中 관계의 과거와 미래

‘우호’ 착각 버리고 ‘자주’로 활로 찾아야

  • 글: 고성빈 제주대 교수·정치외교학 ksb@cheju.ac.kr

韓·中 관계의 과거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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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과 중국이 역사적으로 우호적 관계이기만 했을까. 사실(史實)을 살펴보면 그렇지가 않다. 우선 한사군(漢四郡)의 수백 년에 걸친 한반도 지배는 사실상 우리 역사에서 가장 긴 식민지배였다. 또한 명(明) 태조는 철령 이북의 땅을 내놓으라고 고려에 요구했었다.

중국은 긴 역사를 통틀어 한국에 무수히 내정간섭을 시도했다. 그러므로 양국의 우호관계는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종주국으로서의 지위를 한국이 묵종한 데서 기인한 것이었을 뿐, 진정으로 두 나라가 ‘평등하게’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것은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본질은 외면한 채 한국이 중국에 대해 지나칠 정도의 친근감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학자들은 필자의 명함에 한자가 씌어 있는 것에 놀라며 한국인들이 한자를 아주 세련되게, 빨리 쓰는 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양국인의 이와 같은 불평등한 상호인식은 단순히 정치 군사적 힘의 우열에 의해서 생성된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사상적, 문화적, 학술적, 정치적으로 뿌리내린 구조화된 인식이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진지하고 분석적인 접근과 노력이 필요하다.

달라이 라마 방한 막는 이율배반

한국인은 오랫동안 중국의 문화를 한국의 것으로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어떤 면에서는 한족의 문화를 이민족 통치하의 중국(청, 원 왕조)보다 더 동일시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미국 하버드대 페어뱅크와 라이샤워 교수는 공저에서 “중국과 조선의 문화는 거의 비슷하여 구분이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그 원인으로 “한국인은 외국어인 한자어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공부하고 과거시험의 교과서로 사용하면서 융통성을 상실했고 사상과 문화가 고착화 내지는 교조화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현대에 와서도 한국은 전통적 사상과 이념들에 대한 회고와 반성의 기회를 놓쳤다. 일제의 강점과 이후에 찾아온 냉전논리가 새롭고 자주적인 사상과 이념을 확립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버린 것이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최근 불거져나온 한반도 역사인식에 잘 나타나 있다. 근래에 중국학계에서 고구려를 중국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전혀 놀랄 일도, 더구나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들이 왜 한국에서는 이제야 논란이 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그만큼 우리가 중국에 대해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1996년 11월 방한한 고원동 베이징대 교수와 필자가 나누었던 대화를 소개한다.

필자 : 한국이 분단으로 인해서 발해(渤海)의 영토, 역사와 소원해진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고원동 : 발해는 중국의 일부분이었다. 중국은 예로부터 다민족 국가였다. 발해는 소수의 고려인(고구려인)과 다수의 말갈(靺鞨)족이 연합한 다민족 국가였다. 그리고 이후에 그 말갈족은 중국에 흡수되었다. 그러므로 발해는 중국 역사의 일부분인 것이다. 이민족인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와 만주족인 청나라 역사도 중국의 정통역사로 인정하고 있는데 중국에 동화된 말갈족이 다수였던 발해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인정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필자는 2003년 10월2일 제주대학교에서 열린 리빈(李濱) 주한 중국대사 초청강연(강연주제 : 한중 양국의 역사적인 관계와 청년의 사명)에서 리대사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필자 : 최근 보도에 따르면 중국 내에서 지식인들이 고구려사(高句麗史)와 발해사(渤海史)를 중국사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한다는데 이러한 논의는 지금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필자는 10년 전 베이징대에서 연구할 때부터 이러한 인식이 중국인들의 일반적인 대한국 인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견지에서 21세기 한-중 양국의 우호관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것은 ‘중국의 세계관과 동아시아관에 대한 한국의 복종을 전제로 한 우호적 관계’라고 보는데 이에 대한 대사의 견해는 어떤가.

리빈 : 어느 나라나 이웃나라와의 국경문제라든가 과거의 역사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문제들은 학술적인 논쟁과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지 이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지금 선생이 제기한 문제를 정치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한중 양국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리라고 생각한다.

아마 중국의 대다수 공직자들도 비슷한 대답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공식적 견해는 상당히 합리적이고 호혜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 같이 보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중국은 인도 및 베트남과의 국경문제에 대해서는 학술적, 과학적인 논쟁으로 보지 않고 무력을 행사, 국경분쟁으로 비화시켰다. 왜 그랬을까. 2000년 티베트 망명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한국 불교계의 초청을 받았을 때 한국정부는 중국의 눈치를 보다 비자발급을 거부해 그의 방한이 무산됐다. 중국은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종교적으로 보지 않고 정치적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한국 고대사에 대한 자국의 일방적 인식에 대해서는 학문적, 과학적 토론의 문제라고 둘러대고 있다. 우리가 중국측 논리에 쉽게 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아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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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고성빈 제주대 교수·정치외교학 ksb@ch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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