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와 검찰이 정면대립하고 있는, 아니 재계가 검찰의 칼날 앞에 노심초사하고 있는 상황이 결코 편할 리 없는 현명관 전경련 부회장을 11월12일 인터뷰했다. 인터뷰에 배석한 홍보팀 관계자는 “부회장님께서 언론과의 개별 인터뷰에 응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인터뷰 초기 현 부회장은 ‘삼성그룹 비서실장’ 출신다운 ‘의례적’ 답변으로 일관했으나 질문과 답변이 오갈수록 속마음을 드러냈다. 어떤 대목에서는 상기된 얼굴로 기자의 질문을 끊어가며 반박하기도 했다. 검찰 수사와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대해서는 ‘이전투구(泥田鬪狗)’ 등의 용어를 써가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검찰을 극비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왜 갔고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아시다시피 경제가 대단히 어렵거든요. 우리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업의 설비투자와 내수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투자의 60%를 담당하고 있는 5대 그룹으로 수사가 확대되다 보니 경제가 더욱 걱정이에요. 그래서 이런 상황을 검찰에 계신 분들한테 이야기하고, 기업들이 100%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하니 가능한 한 빨리 대선자금 수사를 종결하는 것이 우리 경제 회복에 대단히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협조를 당부하기 위해서 찾아갔습니다. 검찰도 SK 이외에 5대 그룹으로 수사를 확대하면서 가장 고민한 것이 그 문제이고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삼성의 대선자금과 관련해서 조사를 받았다는 보도도 있었는데요.
“완전 오보입니다. 낭설이에요. 생각해보세요. 내가 삼성그룹 비서실장을 그만둔 것이 1996년입니다. 만 3년 동안 비서실장을 지냈으니까요. 그런데 삼성 비자금이 그 사이에 갖다 준 것도 아니고…. 난 지금 삼성그룹이 뭘 하는지도 몰라요.”
비자금으로 수사 확대는 곤란
-전경련이 대선자금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검찰 수사의 방향은 일반적 비자금이나 부당 내부거래 쪽으로까지 향하고 있는데요.
“그게 곤혹스러운 부분이에요. 그런 혐의가 있어서 조사한다면 어쩔 수 없는 거죠. 다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기업들의 이야기에 신뢰성이 없다고 생각해 비자금으로까지 수사 영역을 확대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거죠.”
-검찰에 찾아가서 그런 이야기도 했습니까.
“딱 꼬집어서 비자금 수사하지 말아달라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고 가능하면 최단기간 내에 수사가 끝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비자금이라는 게 뭡니까. 대선자금을 어떻게 조성했느냐를 캐는 게 비자금 수사입니다. 그렇게 되면 수사가 장기화하는 겁니다. 비자금 조성 경위를 캐다 보면 분식회계니 뭐니 또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SK 사건처럼 대선자금 문제만이 아니고 일반적 기업 경영과 관련한 부분으로 확대되는 거죠. 기업이 수사에 협조하면 대선자금 제공에만 국한시켜서 빨리 끝내자는 것이 검찰의 생각이죠. 그래야 조기에 종결되니까.”
-그런데 일반 국민 중에서 과연 기업들이 100% 검찰 수사에 협조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불법 대선자금을 모두 밝히면 자금 조성에 따른 책임문제, 즉 민사상 손해배상, 주주들의 비난이 이어질 텐데요.
“맞아요.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제공한 대선자금은 다 떳떳하게 불겠죠. 그러나 불법적 자금의 경우 민형사상 책임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흔쾌히 말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