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잔틴 제국 최고·최대의 종교공간이던 하기아 소피아의 외관. 붉은 벽체 위에 돔형 지붕이 올려져 있다.
동과 서가 만나면서 아시아와 유럽을 자연스레 이어주고,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두 이질적 문명권을 각각 지배한 제국의 도읍지로 번성했던, 결코 예사롭지 않은 역사를 간직한 덕분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역사도시 이스탄불은 다행스럽게도 물가가 싸 여행자의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네스코가 198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한 이 매력적인 도시를 지난 여름 또 한번 찾았다. 그리고는 구석구석을 누볐다. 왕궁과 모스크, 박물관 등이 집중돼 있어 여행객들의 발길이 가장 잦은 카가로글루 지구(흔히 ‘舊시가’ 또는 ‘역사지구’로 불린다)는 물론, 비잔틴 시대에 이탈리아의 제네바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는 구시가 동쪽의 갈라타 지구, 갈라타 지구와 연결되며 현대 이스탄불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탁심 광장, 최신식 호텔과 오피스 빌딩, 쇼핑센터가 즐비한 베이오울루 지구, 그리고 1973년 개통된 보스포루스 대교 너머 위스키다르 지구까지 빼놓지 않고 살피며 발품을 팔았다.
완벽하게 열린 도시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스탄불은 강이 아니라 바다를 가운데에 두고 있다. 그러나 대양은 아니다.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을 갈라놓은 보스포루스 해협이라는 좁은 수로다. 폭이래야 넓은 곳이 4km, 좁은 곳은 1km도 채 안 된다. 보스포루스는 ‘황소 여울’이란 뜻이라는데, 여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제우스와 이오는 연인 사이였다. 제우스는 아내 헤라의 집요한 추적으로부터 이오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를 황소로 둔갑시켰으나, 헤라는 이런 사실까지 알아내고는 등에를 이용하여 황소로 변한 이오를 괴롭혔다. 황소는 괴로움을 더 이상 이기지 못해 여울에 몸을 던졌는데, 그곳이 바로 보스포루스였다는 것이다.
해협 위로 높고 긴 보스포루스 대교가 놓여 두 대륙은 하나로 연결되고 있지만, 해협도 명색이 바다인지라 세계와 통한다. 에게해와 지중해, 나아가 대서양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스탄불은 강을 끼고 발달했거나 분지에 자리잡은 도시와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열려 있다’는 것은 포용력이 강하다는 뜻이고, 그것은 다양성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슬람의 예배당인 모스크와 첨탑인 미나레트, 이슬람 여인들이 머리에 두르고 다니는 차도르, 양고기 구이의 일종인 도네르 케밥 등 이슬람 또는 아랍 문화적 요소가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양장과 선글라스, 맥도널드와 켄터키 치킨 같은 서구적인 것들도 섞여 있다. 젊은 연인들이 연출하는 키스신도 심심찮게 목격되는 곳이 바로 이스탄불이다. 이 도시가 가진 이런 이중적인 성격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하면 속단일까.
이스탄불이 바다를 끼고 있다면 그 바다에 섬이 없을 수 없다. 비록 크지는 않다 하더라도. 궁전 지구 아래엔 시르케시란 부두가 있는데, 섬으로 떠나는 배들은 거기에서 출발한다.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배도 다니고, 도심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색다른 풍경을 즐기고자 섬을 향하는 관광객들을 태운 유람선도 다닌다.
이런 지형을 가진 이스탄불에서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곳은 카가로글루 지구 한가운데로 달리는 디반 욜루(Divan Yolu)였다. 나는 매일 그곳으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숙소도 그 주위에 잡았다. 유럽대륙의 끝자락으로, 그 옛날 로마로 향하던 길의 출발점이기도 해서 왕조시대의 문화유산이 이곳에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새 이곳에도 패스트푸드점과 고급상가가 많이 들어서 현대적인 분위기마저 풍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