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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農人 장영란의 우리 땅, 우리 맛 ⑨

솔잎 따서 콩나물 기르고 곶감 서리 맞혀 항아리에 가두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솔잎 따서 콩나물 기르고 곶감 서리 맞혀 항아리에 가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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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휴가를 받으면 산으로 바다로 떠난다. 자연을 찾아가는 거지. 우리는 도시로 놀러간다. 도시로 가서 큰 책방에 가고, 영화 보고, 마트에 가서 ‘쇼핑’도 한다. 한 끼쯤 외식을 할 때도 있다.

도시에서 자라난 나는 쇼핑 문화가 몸에 뱄다. 백화점이나 마트에 들어가면 처음 간 곳이라도 어디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어떻게 해야 싸고 좋은 물건을 고를 수 있는지, 척척 움직인다.

처음 시골로 내려와서는 가끔 도시로 놀러가고 싶어 안달을 했다. 핑계거리를 잘도 찾아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무진장’에서도 한가운데다. 무진장이란 무주, 진안, 장수의 준말로 산간오지의 대명사이다. 여기서 가까운 도시는 전주와 대전인데 거기까지도 꽤 멀다.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쯤 걸린다. 두 곳 다 낯설다.

그래서 아예 서울로 가곤 했다. 내가 줄곧 살아오던 곳이고, 부모 형제가 살고 있는 곳. 그러니 가면 반갑게 맞아 먹여주고 재워줄 곳도 있다. 면소재지에서 한번에 가는 버스도 있다.

서울 남부터미널에 내려 지하철을 탄다. 전동차가 다가오며 나는 냄새. 그 냄새를 맡으면 ‘음, 고향의 냄새’ 한다. 오랜만에 묵은 때 벗기고, 그 동안 참았던 일을 했다. 그리운 얼굴들 만나 수다 실컷 떨고. 도시 음식 먹고, 필요한 것들 찾아 충전을 했다. 그런 서울에서 이제는 사흘을 못 넘기겠다. 시골처럼 널널하게 거닐다간 다른 이들 걸음을 방해하게 생겼다. 먹는 것도 처음 한두 끼는 좋지만 하루가 지나면 싱싱한 푸성귀가 그립다. 무엇보다 시끄러워 정신이 없다. 한밤중에도 고요하지 않다.



서울에 가면 사흘을 못 넘기고 ‘가자, 가자’ 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아이들도 바뀌었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 서울서 자란 큰애는 서울에 꽤 가고 싶어했다. 가서 하고픈 것도 많았다. 그런데 여기 삶이 자리잡히면서, 많이 바뀌었다. 한마디로 지금 삶에 만족한다. 어디 가지 않아도, 뭔가 색다른 게 없어도 지금 여기가 좋은가 보다.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면서 이렇게 바뀐 듯하다. 한 해 두 해 세 해, 점점 뚜렷해진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묻는다. ‘피자 먹고 싶어서 어떻게 하니?’ ‘인터넷 못해서 어쩌니?’ 한데 아이들은 그런 욕구가 별로 없다. 욕구가 없으니 그런 것 없이도 잘산다. 물론 피자가 눈앞에 있으면 달게 먹고, 인터넷이 있으면 신나게 한다. 하지만 그것말고도 맛난 것, 재미있는 게 많다.

우리 아이들이 산골에서,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내는 걸 받아들이는 분도 이렇게 묻곤 한다. ‘심심해서 하루를 어떻게 보내니?’ 그러면 아이들은 말문이 막힌다. 하루가 얼마나 바쁜지. 심심할 겨를이 없이 지내는데 이렇게 물으니까. 그렇다고 하루에 하는 일을 시시콜콜 다 들어 보일 수도 없고.

아이들은 하고픈 게 많다. 나무로 수저를 깎고 싶기도 하고. 산에 가서 고추 말목을 해오고도 싶고. 도끼질하고 군불 때고, 뒷간 지붕에 올라가 눕고 싶기도 하다. 하루 세 번 끼니때가 되면 무얼 먹을까 그걸 찾아내 준비해야지. 책 읽어야지. 그때그때, 마음이 가는 대로 몸 움직여 이것저것 한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 여기에 살아 있다. 여기 있으면서 멀리 있는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아이들이 먼저 자기중심을 찾아갔다. 그러고 보니, 그 동안 아이들 핑계를 대고, 아이들을 유혹한 건 바로 나였다는 게 드러났다. 그런데 사람이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쉬운가. 아이들이 바로 선 걸 모르고 과거처럼 하다가 호되게 당하곤 했다. 그래 한동안 우리 집 문제아는 바로 나였다.

동장군이 밀어닥칠 때다. 겨울 같지 않게 화창하다가 하루 저녁 바람 불기 시작하면 밤새 기온이 뚝 떨어진다. 말 그대로 밀어닥친다. 그러면 온 세상이 얼어붙는다. 추워지기 시작해 바람 맞으며 허둥지둥 갈무리를 하려면 서글프기만 하고 일도 제대로 안 된다. 배추를 날로 먹으려 놔두었다가 꽁꽁 얼리지를 않나, 토마토 병조림이 얼어 터져 모두 내다버린 적도 있다. 짐승 우리 바람막이를 제대로 안 해줘 밤새 걱정을 하기도 하고. 수도가 얼면 겨우내 물 고생은 어떻고. 그러니 날 따실 때 미리 갈무리를 해야지.

저녁에 일찍 누워 아침에 늦도록 자고

11월에는 물이건 땅이건 새벽에는 얼었다가도 한낮에 해가 비치면 녹는다. 하지만 대설에 접어들어 얼면 봄이 올 때까지 얼어붙을 각오를 해야 한다. 땅 얼고 물은 얼어도, 산 속 옹달샘 물은 얼지 않고 퐁퐁 솟아난다. 신비한 일이다. 우리 집은 앞산 옹달샘에서 솟아나는 물 먹으니, 그 신비함 덕을 톡톡히 보고 산다.

우리가 ‘고구마 할머니’라 부르는 할머니가 있다. 농사 처음 할 때 그 할머니께 고구마 모를 얻었기에 그리 부른다. 그 할머니는 혼자 사시는데 겨우내 집을 안 비우셨다. 자식네를 한바퀴 둘러보고도 싶지만 집을 못 비우는 까닭이 있단다. 전에 집을 비우고 며칠 다녀오니 고구마 씨가 얼었단다. 고구마는 온기가 있는 곳에 두어야 한다. 그래 할머니는 고구마 씨를 방 윗목에 모셔놓고 겨우내 지켰다. 이렇게 집집이 고구마 씨 간직하며 겨울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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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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