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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고발

귀환 국군포로 정착지원금 노리는 브로커들

70대 老兵 두 번 울리는 ‘한탕 비즈니스’

  • 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귀환 국군포로 정착지원금 노리는 브로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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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을 데려다 놓았으니 돈을 가져와라’
  •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탈출 사실을 폭로하겠다’
  • 귀환한 국군포로들이 받게 될 4억원 가까운 ‘목돈’을 노리는 브로커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 死線을 넘은 포로 가족을 두 번 울리는 ‘포로 사기’ 百態.
귀환 국군포로 정착지원금 노리는 브로커들

중국 주재 해외공관에 망명을 요청하는 탈북자들에 대한 중국 공안의 단속이 강화될수록 ‘은밀한’ 탈출을 보장한다는 브로커들이 기승을 부린다.

2002년 10월.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아파트에서 일흔이 넘은 노인이 자신의 방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이 노인은 식사조차 제대로 못한 탓인지 비쩍 마를 대로 마른 상태에서 허리띠를 묶어 목에 걸고 그 한쪽 끝을 장롱 모서리에 걸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름 최완종(육군 상사), 군번 1201522, 1950년 11월26일 한국전쟁에서 전사.’ 지난 1999년까지만 해도 이 노인은 이처럼 한국전쟁 전사자 중의 한 명이었다. 그러나 2000년 1월 목숨을 걸고 북한 탈출에 성공해 한국으로 귀환하면서 최완종씨는 ‘귀환 국군포로’로 신분이 바뀌었다. 50년 만의 금의환향이었다. 꿈에도 그리던 형제들을 만났고 까마득한 후배들의 축하를 받으며 전역식을 마쳤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3억원대의 국군포로 정착지원금까지 받았다. 한마디로 경제적·사회적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편안한 노후를 고향에서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최씨가 목숨을 걸고 선택한 땅에서 2년도 안 돼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최씨 가족들은 그 동안 최씨가 북한을 탈출하면서 두고온 가족들 걱정으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전했다. 최씨는 북에서 결혼해 부인과 5남매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씨의 사정을 잘 아는 귀환 국군포로들은 최씨가 3억원이 넘는 정착지원금의 사용처를 둘러싸고 가족들과 심한 갈등을 겪어왔다고 전했다.

최씨는 귀환 직후 조선족 브로커 한 명이 북에 두고 온 가족의 편지와 사진을 들고 와 ‘돈만 주면 가족을 모두 데려다주겠다’고 하자 그때부터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최씨와 함께 생활하던 친형 최모씨도 “중국에서 온 브로커가 가족들을 데리고 오는 데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정착지원금을 모두 북한에 보내겠다고 고집했다. 그때부터 가족들간에 갈등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씨 가족에 따르면 이 브로커는 귀환 국군포로인 최씨와 가족들에게 “나는 북한에 들어가면 김정일 장군을 직접 만날 수 있다”고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며 접근해왔다는 것. 결국 수천만원의 돈을 북한의 가족들에게 전해달라고 브로커에게 보냈지만 최씨의 집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중국의 브로커 역시 ‘가족을 빼내오는 데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며 최씨에 대한 설득을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돈을 보내야 한다’고 고집하는 최씨와 ‘전달 여부도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브로커에게 무작정 목돈을 넘길 수는 없다’고 반대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이 빚어졌던 것이다.



한 귀환 국군포로는 “최씨가 자신의 정착지원금 통장을 가족 중 일부에게 맡겨놓았다가 나중에 목돈이 빠져나간 것을 알고 크게 좌절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최씨 가족들은 이런 사실을 ‘주변의 모략’이라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최씨가 자살을 선택한 것은 평소 건강 악화와 우울증 때문이었다는 것. 그러나 이 브로커의 출현이 최씨의 자살을 재촉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귀환 국군포로들은 대부분 귀환 직후 일반 탈북자들이 받는 정착지원금의 10배 가까운 3억~4억원의 정착금과 보로금을 받게 되는데, 이들의 ‘목돈’을 노리는 브로커들의 폐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군포로들의 북한내 가족을 중국 등 제3국에 데려다놓았으니 돈을 내놓으라’는 요구에서부터 ‘돈을 주지 않으면 북한으로 다시 되돌려보내 처형당하게 만들겠다’는 협박에 이르기까지 고령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행각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돈만 챙기고 연락 끊어버려

광주에 사는 정모씨에게 53년 동안 얼굴도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소식이 전해진 것은 지난 2000년 봄이었다. 국방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통해 아버지의 이름 석 자를 듣는 순간 정씨는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국방부 관계자의 입에서 나온 아버지는 이미 한국전 참전 후 사망한 것으로 알고 50년 넘도록 제사까지 지내온, 그의 집안에서는 ‘사라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선산에는 아버지의 묘소까지 꾸며놓고 명절 때마다 차례도 지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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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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