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토공이 사업시행을, 현대아산이 시공을 각각 맡아 2007년까지 100만평을 우선 조성해 섬유, 의류, 전기, 전자 등 300여 업체를 입주시킬 예정인 1단계 사업부지는 6사단의 주요부대 위치와 상당부분 일치한다. 1단계 부지도 6사단 주요 부대도 모두 경의선 철도를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는 까닭이다.
북한은 2002년 11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개성공업지구를 내옴에 대하여’를 만들어 이 일대 행정구역을 개편하고 공단조성사업을 위한 법적 체계를 마련했다. 공업지구 전체는 개성시 산하로 편입되었고, 이 일대는 특별구역으로 설정됐다.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주요 전력들이 이전하는 것 또한 이러한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개성공단 예정부지이자 6사단 주둔지였던 벌판지대는 북쪽으로 송악산, 서쪽으로 오공산, 남쪽으로 진봉산에 둘러싸여 있다. 이들 산에도 군사시설이 밀집해 있기는 마찬가지다. 송악산에는 전쟁이 날 경우 김정일 위원장이 지휘하는 최고사령부가 설치될 예정이어서 이 시설을 관리하는 감시소가 자리하고 있고, 진봉산에는 군단사령부 감시소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진봉산 일대는 1960년대부터 김창봉 전 민족보위상(현 인민무력부장)의 현지지도 아래 산 전체를 엄청난 깊이의 갱도로 휘감은 고도의 군사기지라고 인민군 전력에 정통한 인사들은 설명한다.
“사실상 개성을 포기했다”
이러한 상황을 확인하고 나면 현재 진행되고 있다는 이 지역의 인민군 전력재배치는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는 진행중인 재배치 조처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우선 벌판 곳곳에 배치되어 있던 6사단의 4개 보병연대는 송악산 이북의 산악지역과 개풍군 지역으로 주둔지를 옮기고 있다고 군 관계자들은 전한다. 이와 함께 사단 직할인 전차대대와 장갑차대대의 탱크와 장갑차 50여대, 고사포대대, 경보병대대 등도 자리를 비웠다. 이들 중 일부는 주변 산지의 갱도 진지로 흡수되었겠지만 대부분은 후방으로 이동한 것으로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3개 박격포대대와 화학중대 등 군단 직속 부대들도 이전 움직임이 관측됐다. 이 지역에서 더 이상 군인들의 집단활동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현대아산이 북한측과 합의한 바에 따르면 특구 지역의 행정권은 상당부분 남측 인사들에게 위임된다. 개성 구(舊) 시가지는 앞으로도 계속 개성시 인민위원회가 관리하지만 새로 건립되는 공단지역과 배후도시는 새로 설립되는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행정권을 맡는다. 이 지도총국의 관리하에 경제행정을 전담할 ‘관리기관’이 주로 남측 인사들 위주로 구성될 예정이다.
북한 지도부 입장에서 행정권의 상당부분을 남측 인사들이 맡는 지역, 남한 사람들이 무시로 드나들 지역 내에 주요 군사시설을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변지역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남측 인사들이 언제든 육안으로 군사이동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단계 사업 착공만으로도 북한이 보병연대 등을 상당부분 이전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향후 2단계 사업이 본격화할 경우 인근 산악지대의 포병전력 등도 재배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우선 DMZ에 근접해 배치되어 있는 62포병여단의 장사정포가 자리를 옮겨야 한다. 이들 장사정포는 대부분 격발 때 엄청난 후폭풍이 일기 때문에 시설 및 병력 보호를 위해서는 개활지에 나와야만 포격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들의 사격터가 돼야 할 벌판지역에 공단 건설사업이 본격화되면 개활지를 활용할 수 있는 다른 지역으로의 이전이 불가피하다. 마찬가지 이유로 6사단 포병연대도 위치를 옮길 수밖에 없다.
송악산의 최고사령부 감시소와 진봉산의 군단사령부 감시소의 위치도 새로 설정해야 한다. 개성지역에 대한 방어력이 크게 약해진 상황에서 개전초기 형성되는 전선은 더 이상 DMZ 일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군이 큰 저항을 받지 않고 개성까지 밀고 올라오면, 전선은 송악산에 걸쳐 형성되고 진봉산은 고립된다. 이러한 상황전개가 뻔히 예상되는데도 인민군 최고사령부와 군단사령부 설치 예정지가 현 위치에 남아있을 리 없다.
이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개성 인근의 보병전력은 DMZ 경계를 담당하는 경비대대만 남게 된다. 이동한 병력 상당수는 송악산과 그 이북의 산지 곳곳에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개성공단 논의가 본격화된 2001년 무렵부터 송악산 북쪽 기슭에서 새로 대규모의 갱도를 파고 있다는 정보도 있다.
큰 그림에서 보면 현재 이뤄지고 있는 북한군 재배치는 군사분계선 코앞에 집중되어 있던 지상군 전력을 철수해 개성을 비워놓고 대신 송악산-오공산-진봉산으로 이어지는 개성 주변부 산악지역 뒤편으로 옮긴 것으로 정리된다. 한마디로 개성은 군사도시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포기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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