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 성향의 미국 민주당 내에서도 ‘급진’으로 알려진 하워드 딘(왼쪽) 대통령후보가 최근 민주당 대선후보 중 선두로 올라섰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오른쪽)은 공화당 내에서도 ‘극우’로 통한다.
우선 이 센터는 인권, 환경, 군사, 여성, 의료, 안보 같은 특정한 주제를 전면에 세우지 않는다. 그저 진보라는 이념적 성향만 내세울 뿐이다. 웹 사이트(www.americanprogress.org)에도 눈에 띄는 구체적 ‘미션’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들이 하겠다는 일은 대체로 네 가지이다. 미국의 진보적인 장기 비전 개발, 새로운 진보 사상 및 정책 제안 확산, 보수적 의제에 대한 효과적이고 신속한 대처, 대중을 상대로 한 진보적 메시지 전달 등이 그것이다. 얼른 보아서는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종잡기가 쉽지 않다.
포데스타가 만든 이 미 진보센터는 창립 이전부터 워싱턴 정가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워싱턴 시내 한복판 NW 15번가에 임시 사무실을 연 이후 워싱턴의 정계를 비롯한 언론계 학계 재계 인사들은 과연 이 센터가 무슨 일을 저지를까(?) 눈에 불을 켜고 있다. 우선 턱없이 광범위하게만 보이고 애매모호한 것만 같은 센터의 4가지 임무는 곰곰이 뜯어보면 다른 싱크탱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다.
첫째 이 싱크탱크는 ‘진보’라는 사상적 간판을 분명히 내세웠다. 둘째는 센터가 장기 전략의 산물임을 감추지 않았으며, 셋째 센터가 보수진영에 ‘대처’하기 위해 설립되었다는 점을 명시했고, 넷째 대중에게 진보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구체적 전술도 드러냈다. 한마디로 진보진영이 미 보수진영을 상대로 전면 대결을 선언한 출사표인 셈이다.
워싱턴 최초의 진보적 싱크탱크
2003년 10월23일자 ‘워싱턴포스트’는 미 진보센터 탄생에 대한 기사를 싣고 ‘진보 인사들, 그들의 싱크탱크를 갖다(Liberals Get a Think Tank of Their Own)’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기사의 제목대로라면 미국의 진보진영은 지금까지 그럴듯한 싱크탱크 하나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믿어지지 않지만 이는 사실이다. 포데스타의 미 진보센터가 화제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미 진보센터의 성격을 이렇게 규정했다.
“포데스타의 야망은 보수의 물결에 맞서서 진보적 의제(agenda)를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고, 진보의 대변인이 될 새로운 세대를 찾아내 교육시키고 장려하겠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미 정치 스펙트럼의 오른쪽에 있는 헤리티지재단에 맞서 정치 스펙트럼의 왼쪽에 존재하는 새로운 싱크탱크로 자리잡겠다는 것이다.”
헤리티지재단은 미 보수 우파의 사상적 거점이자 본산이다. 진보센터는 이런 헤리티지재단을 상대하겠다는 것이다. 싱크탱크는 말 그대로 두뇌 집단이지 이익 창출을 목표로 하는 기업이 아니다. 그러니 재원 없이는 출발 자체가 불가능하고, 출발을 했더라도 마르지 않는 재원의 샘물 없이는 한 발짝도 못 움직인다. 아무리 훌륭한 두뇌가 많이 모여 있고, 목표가 그럴듯해도 돈줄이 마르는 즉시 생명을 다한다. 헤리티지재단의 이름값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그만큼 재원이 튼튼하다는 얘기다. 재원이 튼튼한 만큼 헤리티지재단은 우파 사상 전파의 거점 노릇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헤리티지재단을 비롯해 케이토연구소(Cato Institute), 미 기업협회(AEI) 등 보수 싱크탱크들이 1990년대 10년 동안 보수 이념을 개발 확산시키는 데 쓴 돈은 무려 10억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헤리티지재단의 경우 180명의 직원에 인턴만도 60명이나 된다. 1년 예산이 3000만달러에 이르는 거대 공룡 헤리티지재단 연구원들은 라디오와 케이블 TV 토론 프로그램의 단골 손님들이다. 출범 당시 우파 사상을 부화시키기 위한 제한적 역할에서 벗어나 이제는 보수 이념의 도매상이자 프로모터이며 보수진영의 총지휘자가 되었다. 헤리티지는 보수 두뇌 네트워크의 중심축 역할을 유감없이 해내고 있다.
미 진보센터에 재정적 지원을 하는 사람들은 골수 민주당원들이다. 금융가 조지 소로스, 허버트 샌들러 같은 억만장자들도 지갑을 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공화당이 만신창이가 된 와중에 출발했던 30여년 전의 헤리티지보다는 넉넉하게 시작한 셈이다.
공화당 뒷북만 쳐온 민주당
미 진보센터는 보수 우파를 상대로 전면적인 이념 전쟁을 선포했다. 사실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한 이념은 개인의 소신에 불과할 뿐이다. 이념의 생명력은 어느 정도의 지지세력을 얻느냐에 달려 있다. 효과적인 확산과 전파가 이념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대중에게 이르는 소통 과정이 제대로 작동해야 이념은 뿌리내릴 수 있다.
포데스타는 이렇게 말한다. “그 내부에 강력한 소통(communication)의 힘을 발휘하는 공화당 싱크탱크의 위력을 우리는 지켜보고만 있었다. 우파는 단순히 정치 철학을 개발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그 철학을 잘 팔았다. 이것이야말로 소통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