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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평

‘현산어보를 찾아서’

먼지 쌓인 고전에 생명을 불어넣다

  • 글: 안대회 / 영남대 교수·한문교육과 ahnhoi@yumail.ac.kr

‘현산어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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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전이 말미잘의 생김새를 보고 사람의 항문을 연상한 대목에 주목해서 저자는 말미잘이 항문과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 의심하고, 속명인 홍말주알은 어떤 의미일까 추적하다가 말(末)이 미(未)의 오자이며, 홍미주알은 다름아닌 붉은 미주알로서 탈항한 항문이라는 정약전의 연상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이름임을 밝혀낸다. 결국 말미잘의 미잘은 미주알의 줄임말이요, 말미잘은 사람보다 훨씬 큰 항문을 가진 어류라는 의미라고 추정했다. 석항호란 이름에도 항문이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추적은 타당하다.

정약전의 딱딱한 설명은 이태원의 추적과정에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로 바뀐다. 장황한 듯하지만 이러한 탐방과 추적, 유추와 확인의 모든 과정이 독자를 유인하는 이 책의 미덕이다. 책의 곳곳에서 물고기에 관한 지식과 흥미로운 사실이 번득인다. 청어가 잡히는 어획고에 일정한 주기가 있음을 발견한 정약전의 안목을 설명하는 대목, 연안에 출몰하는 다양한 고래의 생태에 관한 설명, 홍어의 생태와 특별한 맛을 설명하며 만만한 게 홍어좆이라는 속담의 유래를 소개한 대목들 역시 흥미롭다.

뻘떡기, 좆고기, 꾸죽, 검처귀

또 대립복에 대해 정약전이 매우 희귀하다고 했는데, 이태원은 장수삿갓조개에 해당하는 이 어종이 현재 정부에서 보호야생동식물로 지정한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것은 ‘현산어보’가 현재 해양생물을 조사할 때 직접적으로 참조할 수 있는 책임을 의미한다.

저자는 어느 지점에서 ‘현산어보’라는 본류를 벗어나 잡담으로 흐르는 듯하다가 다시 본류로 돌아오곤 한다. ‘현산어보’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다루어 보겠다는 저자의 좌충우돌식 ‘탐심’을 느끼게 된다. 물론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책을 읽다보면 부수적인 소득도 있다. 뻘떡기, 좆고기, 꾸죽, 검처귀, 총저리, 조전대미, 노래미, 오만동, 존지락 등등의 우리말 물고기 이름과 그에 대한 설명에서 손에 잡힐 듯한 귀여움과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또 ‘구쟁기 뒤보레 가불민 게드레기가 차지한다(소라가 똥을 누러 간 사이에 집게가 대신 집을 차지한다)’는 제주도 속담처럼 물고기를 둘러싼 속담에도 전문적 지식이 동원된다. 중간중간에 정약전 주변의 인물과 그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비롯하여 박물학, 물고기와 관련한 지식들은 덤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즐겁다.



이 책의 출간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우리 고전이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죽은 글이 될 수도 있고 이렇게 흥미롭고 현재적 의미를 지닌 보물창고도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은 인문교양서이지만 그 안에는 학술적으로 새롭고 진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나는 어류분야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저자가 탐방을 통해서 장창대라는 무명의 박물학자를 부각시키려 한 것이나, ‘송정사의’를 발굴하여 소개한 것은 작업의 부산물로서 참으로 소중하다. 또 이 책에 주석을 단 다산의 제자 이청의 가치를 부각시킨 것 역시 의미가 크다.

여기서 우리 고전을 다루는 새로운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각각의 고전이 서로 다른 의미를 발산하지만 이태원씨가 한 것처럼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을 해야한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면 과거의 저술이 과거의 생경한 지식이 아니라 눈앞에 벌어지는 현실과 대화할 수 있는 진정한 고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한 저작이 ‘현산어보’만은 아니다. 최근 ‘미암일기’ ‘열하일기’, 퇴계와 고봉의 편지를 새롭게 해석한 인문서들이 출간되어 눈길을 끌었다. 이 책들은 고전을 구태의연한 시각과 방법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참신한 해석과 시각을 동원하여 현대의 고급독자들을 사로잡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 원저자의 지식이나 학문적 역량을 뒤따라가기보다 한편으로는 압도하면서 텍스트를 자기화, 현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출판사와 독자들의 높은 안목도 가세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의 고전 목록에는 ‘흠영’ ‘이재난고’ ‘연경’ 등 잠재력 면에서 결코 ‘현산어보’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저술들이 있다. 그들이 현대의 독자들과 다시 만나기까지 또 다른 ‘이태원’의 등장을 기다린다.

신동아 200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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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안대회 / 영남대 교수·한문교육과 ahnhoi@yumail.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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