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호

2조원 들어간 KEDO 경수로, 어떻게 할 것인가

러시아 끌어들여 한국이 완공해 ‘윈윈 게임’ 카드 활용해야

  • 글: 강정민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핵공학박사 jmkang55@hotmail.com,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4-08-25 14: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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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른바 제2차 북핵위기가 불거지면서 공사가 중단된 KEDO 경수로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 그간 한국 정부가 투입한 공사비와 위약금 등 2조원에 가까운 돈이 허공으로 날아갈 판이다. 과연 이 엄청난 낭비를 막을 길이 없는가. 한국이 독자적으로 경수로를 완성하고 이를 러시아-북한-남한을 잇는 송전선과 연결한다면, 한국의 전력수급에 큰 보탬이 되는 동시에 북핵문제 해결의 카드로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2조원 들어간 KEDO 경수로, 어떻게 할 것인가
    1997년 8월19일 오후 2시 함경남도 신포시 금호지구에서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경수로 착공식이 열렸다.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만 축제 분위기였다. 이튿날 신문에는 ‘신포의 작은 통일’ ‘남과 북의 대역사’ ‘역사적 첫 삽’이란 제목이 1면을 가득 메웠다. 1993년 북한의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로 불거진 위기를 해결하며 체결된 제네바합의의 성과가 3년 만에 가시화되는 순간이었다.

    경수로건설 공사는 1994년 10월 북한과 미국이 서명한 제네바합의문에 따라 이행되는 사업이었다. 북한이 플루토늄 핵시설을 동결·해체하는 대가로 발전용량 1000MWe 경수로형 원자력발전소 2기를 제공하기로 했던 것. 또한 미국은 첫 경수로가 완공될 때까지 대체에너지로 북한에 매년 중유 50만t을 공급하기로 했다.

    이듬해 3월 한·미·일 3국은 이 사업을 담당할 KEDO를 설립했고, 12월에는 ‘경수로공급협정’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이후 KEDO 경수로는 DJ정부 햇볕정책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였다. 크고 작은 마찰음에도 2002년 7월에는 경수로 운영과 관련해 북한측 요원 25명이 남한에서 훈련을 받았고 8월에는 콘크리트 타설 등 공정을 본격화해 순풍을 탄 듯 보였다.

    그러나 착공 후 6년이 지난 지금 KEDO 경수로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2002년 10월 이른바 ‘제2차 북핵위기’가 불거진 이래 진척되지 못한 건설사업은 사실상 중단상태에 놓였다. 건설지연에 따른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북한과 장비·인원의 안전한 철수를 요구하는 KEDO측 입장이 맞부딪히며 진통을 겪다가, 급기야 2003년 12월1일에 경수로건설 중단이 공식 선언되기에 이른다.

    한국은 ‘일시중단’, 미국은 ‘폐기’



    당시 장선섭 통일부 경수로기획단장 등 한국 당국자들은 “주 계약상 명시된 유보조항에 따라 한시 중단된 것이며 이 용어 자체는 반드시 재개를 전제로 한다”고 강조했다. KEDO 집행이사국 간에 ‘1년 내 공사재개’를 위한 협의를 계속할 것이며 언제라도 공사를 재개할 수 있으리라는 낙관적인 전망이었다. 그러나 9개월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열린 6자회담은 경수로 문제와 관련해 어떠한 결정도 도출하지 못한 상태다.

    경수로사업의 재개를 낙관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태도에 있다. ‘일시중단’을 강조하는 한국측과 달리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영구중지’ 입장에 가까웠다. 2003년 11월 아담 어렐리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경수로사업 중단방침을 밝히는 정례브리핑에서, 일시중단을 의미하는 ‘서스펜션(suspension)’ 대신 종료의 뜻을 담은 ‘엔드(end)’를 사용했다. 이에 대해 미국 언론은 경수로 계획에 대해 미 국무부가 공식적으로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6자회담 등을 통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더라도 부시 행정부는 결코 경수로 같은 핵에너지 프로그램을 부활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2004년 6월말 현재 금호지구 현장에는 KEDO측 직원 6명과 한국인 115명이 체류하면서 경수로건설 사업재개에 대비하여 시설물을 보존 중이다. 6월말까지 투입된 경수로사업비 15억1000만달러 가운데 한국이 부담한 비용은 11억달러 안팎(약 1조3000억원). 이와는 별도로 추후 경수로사업이 공식적으로 ‘완전중단’ 될 경우 KEDO는 주계약자인 한국전력에 3억~5억달러의 위약금을 물어주어야 한다.

    현재는 한국과 일본이 기존 사업비 분담비율에 따라 추가비용도 나누어 책임질 계획이지만 일본의 태도가 확실하지 않은 만큼 한국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외에도 한전을 비롯해 두산중공업,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KOPEC), 현대 동아 대우건설 등 공사에 참여한 100여 개 국내외 업체의 피해는 고스란히 별개로 남아 있다.

    경수로사업이 폐기되면 총 2조원에 달하는 비용이 허공으로 날아가버린다. 발전소를 짓지 못하게 됨으로써 비용을 회수할 방법은 전혀 없다. 한국의 재정적 손실에 대해 미국은 ‘모르쇠’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더욱이 사업 폐기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확고해 보인다.

    지난 5월 ‘워싱턴 타임스’는 미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전했다.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실무그룹 회의에서 리근 북한 외무성 부국장이 “농축 우라늄 핵 프로그램을 폐기할 경우 경수로 건설공사를 재개할 의향이 있는지” 미국에 물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측 대표인 조지프 디트라니 국무부 대북교섭담당 특사는 “북한이 우선적으로 모든 핵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한편 미 하원은 2003년 4월 경수로사업을 완전히 폐기시키는 내용이 담긴 ‘콕스-마키 수정안(Cox-Markey Amendment)’을 포함하고 있는 ‘에너지정책법(Energy Policy Act of 2003)’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 법안은 이후 상하원 협의과정에서 제외되었지만, 미 하원은 올 6월 들어 북한, 이란 등 미 국무부가 작성한 테리지원 리스트에 오른 국가에 어떠한 핵 기술이나 물질도 전할 수 없도록 하고, 경수로사업 재개를 금지하는 단서 조항이 들어있는 ‘2005 회계년도 에너지·용수 세출안’을 다시 한번 마련해 통과시켰다. 8월 중순 현재 이 세출안은 상원에 계류 중중이다.

    2조원을 살리려면

    현재까지 실무그룹 차원이 아닌 6자회담 본회담에서 경수로사업 재개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된 적은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6월 베이징에서 열린 3차회담에서 북한측은 핵프로그램 동결의 대가로 ‘연간 200만kWH의 전력량에 해당하는 중유 공급’을 요구했다. 이는 경수로 발전소 2기의 발전량에 해당하는 것. 북한 또한 6자회담을 통해 경수로사업이 재개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경수로공급협정은 사업의 ‘유보’기한을 최장 1년6개월로 규정하고 있다. 기술적으로도 이 이상 사업이 중단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정황을 살펴볼 때 경수로사업은 북핵 문제의 교착상태를 벗어날 획기적인 상황 진전이 없는 한 올해 내에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이래저래 한국정부가 부담하는 2조원은 먼지가 되어 사라질 판이다.

    어떻게든 사업을 살려 2조원의 돈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우선은 경수로사업을 KEDO로부터 떼어내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맡아 발전소를 완공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여건 조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경제성’이 있는지 여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당초 경수로사업의 예상 사업비는 총 46억달러. 이 가운데 한국은 70%에 해당하는 32억2000만달러를 부담하기로 했었다. 이미 15억달러의 사업비가 집행되었으므로 경수로를 완성하려면 앞으로 대략 31억달러(3조7000억원)의 추가지출이 요구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2조원을 살리기 위해 3조7000억원을 투입해야 하는 것이니만큼 그 이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우선 신포 경수로를 완공해 이를 남한에 연결하여 한국에서 전력을 사용할 경우 얻을 수 있는 경제효과를 따져볼 수 있겠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극대화된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을 거쳐 한국으로 전력망을 잇고 거기에 신포 경수로를 완공해 연결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이 그림은 어떤 장점과 경제성을 갖고 있는지, 지금부터 세부적인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잉여전력을 전력망 연계를 통해 주변 국가로 공급하는 국가간 전력망 연계는 세계적 추세다. 비록 개별국가의 에너지안보가 확고히 보장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지적되기는 하지만 신규 발전소 입지확보 어려움 해결, 발전소 건설비·연료비·운영비 절감, 폐기물 발생에 따른 환경비용 절감, 기후변화협약에 효과적인 대응, 발전원(發電源)의 다변화 등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는 까닭이다. 북미 및 남미, 유럽의 국가들은 국가간 전력계통을 이미 연계했거나 연계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극동러시아-북한-한국의 전력망 연계’라는 아이디어는 이 같은 장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일단 당사자 3국이 이에 대해 긍정적이다. 당장 극심한 전력난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은 물론이고, 앞으로 10년 후 전력수급난이 예상되는 한국, 그리고 극동지방의 잉여전력을 수출하고자 하는 러시아가 모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총비용 56억달러, 대체효과 80억달러

    극동러시아로부터 한국까지 전력망을 잇는 작업은 크게 북러 연계와 남북 연계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북러 연계 방안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의 청진까지 약 380km구간에 500kV(러시아의 표준 고압송전 전압) 송전선을 건설하는 것이다. 남북 연계는 이 송전선을 이어받아 청진에서 서울 근처까지 약 900km구간에 765kV(한국의 표준 고압송전 전압) 송전선을 건설하는 것이다. 러시아와 한국의 표준 송전전압이 다르므로 청진에 대규모 변압시설을 건설해야 한다(청진에서 서울까지 한국의 표준 송전전압에 따라 전력망을 구축하는 것은 향후 통일에 대비해서도 의미가 크다. 북한 관통 송전망을 러시아 표준에 맞춰 건설할 경우 통일 후 남북 전력통합과정에서 막대한 설비변경 비용을 추가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극동러시아-북한-한국을 잇는 전력망에 KEDO 경수로를 연동시키는 방안을 통해 한국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구체적으로 계산해보자.

    앞서 설명한 것처럼 경수로를 완공하는 데 추가로 필요한 비용은 대략 31억달러다. 북한문제에 정통한 미국의 노틸러스연구소가 산출한 바에 따르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의 금호 근처를 지나 한국으로 전력망을 연결할 경우 변압시설을 포함하여 송전선을 건설하는 데 대략 25억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업에 소요되는 총 비용은 대략 56억달러인 셈이다.

    반면 완공된 KEDO 경수로는 블라디보스토크-북한-한국간 전력망에 연간 2GWe의 전력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사실 북한은 전력망 사정이 엉망이어서 안전상의 문제가 워낙 크기 때문에, 경수로가 완공된다 하더라도 블라디보스토크-북한 또는 한국-북한 고압 송전선이 건설되지 않으면 경수로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직접적으로 이용할 수도 없다.

    덧붙여 러시아는 이 전력망을 통해 자국내 수력발전으로 얻은 잉여전력 약 3GWe를 한국으로 수출할 수 있다. 한국은 이로써 5GWe 분량의 안정적인 전력공급원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 발전용량 1GWe급 경수로 1기를 짓는 데는 대략 16억달러가 소요된다. 정부가 자체적으로 발전소를 건설해 5GWe의 전력을 생산하는 대신 블라디보스토크-북한-한국간 전력망을 이용한 수입으로 대체한다면, 대략 80억달러의 원전건설 비용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벌써 총비용 56억달러를 상회하는 이득이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이득도 있다. 원자력발전소는 가동 기간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또한 수명을 다하고 나면 원전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방사성폐기물이 발생하며 그 처리에도 상당한 비용이 소요된다. 그러므로 블라디보스토크-북한-한국간 전력망을 이용한 전력수입은 환경적으로도 큰 도움이 될 뿐더러, 발전소 운전수명을 40년으로 가정할 경우 총 방사성폐기물 처분비용으로 경수로 1기당 약 10억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

    극동러시아로부터 전력을 수입함으로써 같은 용량의 국내 화력발전소를 대체할 경우, 화력발전소 건설비용 절감은 물론 아황산가스 등 대기오염 가스 및 이산화탄소 등 지구 온난화가스 발생을 대폭 줄여 환경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

    물론 여기에는 러시아로부터 수입해오는 전기 값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극동러시아의 전력이 상당한 잉여 상태임을 감안하면 한국이 자체적으로 발전소를 건설해 최장수명까지 가동하는 것보다 훨씬 경제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보스토크-북한-한국간 전력망 가설비용과 경수로 건설비용 전액을 한국이 부담하더라도 이득이라는 것이다. 물론 KEDO 경수로에 이미 투입된 2조원이 사장되지 않고 활용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이 방안은 한국의 심각한 전력수급 사정을 해결해줄 길을 열어 준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한국의 발전설비는 가동중인 19기 원전을 포함하여 2003년 말 현재 총 47.4GWe이다. 2002년 8월에 작성한 정부의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르면, 전력수요가 연평균 3.4% 증가한다고 가정할 경우 국내 전력수요를 만족하기 위해서는 2015년까지 77.0GWe의 발전설비 용량을 확보해야 한다.

    때문에 정부는 내년에 가동할 예정인 신규 경수로 1기 이외에 2015년까지 총 8기의 원전을 더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2014년과 2015년에 도입할 예정인 1.4GWe급 경수로 2기의 경우 지역주민의 반발에 부딪혀 아직 건설 부지조차 공식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부지선정과정에서 나타난 주민들의 극심한 ‘반(反)원자력 정서’을 고려할 때, 정부가 계획대로 2015년까지 원전 8기를 건설할 수 있을지는 매우 회의적이다.

    2016년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는 화력발전소도 마찬가지로 지역주민의 반발에 부딪혀 부지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2015년까지는 물론이거니와 이후 한국의 전력수급사정이 상당히 어려워지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블라디보스토크-북한-한국간 전력망이 건설되어 한국이 블라디보스토크으로부터 3GWe 이상, KEDO 경수로로부터 2GWe 분량의 전력을 수입한다면 전력수급 측면에서 급한 불을 끌 수 있다. 더욱이 향후 추가로 필요한 전력이 급격히 증가한다 해도 이 전력망을 통해 극동러시아로부터 전력을 안정적으로 끌어올 길이 열리는 것이다.

    단순히 신포 경수로를 한국과 잇는 대신 여기에 극동러시아를 끌어들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포 경수로의 경우 발전량이 2GWe로 제한되어 있어 경제성이 낮지만, 여기에 러시아를 끌어들이면 훨씬 큰 규모의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어 경제성이 확보된다.

    이 전력망이 완성되면 북한도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우선 경수로와 극동러시아로부터 끌어올 전력 가운데 일부를 ‘통과료’ 형식으로 북한에 공급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중심 전력망으로부터 간선을 끌어내어 북한의 극심한 에너지난을 일부나마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송전시설 사정이 엉망인 북한 입장에서는 북쪽 끝에서 남쪽 끝을 연결하는 종단 송전망이 ‘돈 한푼 안 들이고’ 설치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남는 장사다.

    이러한 까닭에 북한은 지난 몇 년간 동북아 에너지협력 관계 국제회의에서 전력계통 연계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지난 5월18일 서울에서 열린 ‘동북아 전력계통연계 국제 심포지엄’에 북한측 대표로 참석한 ‘조선에네르기민족위원회’ 박성희 서기장은 “동북아 6개국 전력계통 연계사업은 이제 실천단계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각국 당국이 이 사업에 깊은 관심을 갖기 바란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방안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그 과정에서 ‘북한이 갑자기 송전선을 끊으면 한국의 에너지사정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지 않겠냐’는 불안과 우려가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수입할 5GWe 분량의 전력은 2015년 무렵 국내 예상전력설비 총량의 6%에 지나지 않으므로 설사 북한이 단전(斷電)을 시도하더라도 국내 전력수급에 타격을 주기는 어렵다. 더욱이 북한이 이러한 극단적인 행위를 감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이 이용해야 하는 전력을 스스로 끊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전력망이 연결되면 북한은 전력수급 문제에 있어 러시아와 한국에 ‘종속적인 위치’에 놓인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핵 문제 등 갖가지 안보현안이 불거졌을 때 북한이 이른바 ‘벼랑 끝 작전’을 구사할 여지가 줄어들 수도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송전선과 경수로가 ‘놓을 수 없는 당근’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남·북·러의 에너지협력이 경제적인 효과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동북아 안정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을 의미한다.

    남·북·러 에너지협력에 대해 러시아는 더욱 적극적이다. 지난 2월초 일본 니가타에서 열린 에너지포럼에서 러시아 극동지역의 국영전력회사인 보스토크에네르고의 빅토르 미나코프 사장은 북한의 전력난을 최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북한-블라디보스토크 전력망 연계계획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북한의 청진과 블라디보스토크간 380km 구간에 500kV 송전선을 건설하면 0.3~0.5GWe의 전력을 북한으로 보낼 수 있게 되는데 건설기간은 3~4년, 건설비용은 약 1억6000만~1억8000만달러가 소요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보스토크에네르고는 한국에도 약 3GWe 규모의 전력을 공급하는 방안을 마련해두고 국가간 전력망 연결사업에 한국자본의 투자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미국의 반대를 극복하려면

    아무리 경제적인 효과가 뛰어나다 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몽상에 불과하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신포 경수로를 완공하고 이를 극동러시아-북한-한국간 전력망에 연동하는 방안은 몇 개의 벽을 넘어야 한다.

    가장 높은 벽은 KEDO 경수로 공사의 재개를 반대하고 있는 미국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한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줄 수는 없다는 것이 미국의 논리다. 이 같은 기본입장은 올 연말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케리 후보가 승리한다 해도 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경수로 건설의 핵심기술인 발전기 부분은 미국의 GE가 특허권을 가지고 있다. 전체 공정의 1%에 불과한 이 기술이 없기 때문에 한국은 독자적으로 경수로를 건설할 수도 없다. 앞서 설명한 ‘2005 회계년도 에너지·용수 세출안’ 등 미국의 원자력기술 및 부품이 북한에 제공되는 것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걷어내지 않으면 신포 경수로의 완공은 불가능하다. 즉 미 행정부뿐만 아니라 미 의회의 협조가 없으면 안 되는 상황인 것이다.

    미 의회가 북한에 경수로 공급을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수로가 완공되고 핵연료가 장전된 후 북한이 경수로에서 방출되는 사용후 핵연료를 탈취하여 그 속에 포함된 플루토늄을 추출하지 않을까 해서다. 경수로는 원자로 특성상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하에 있는 한 플루토늄 생산이 어렵다. 1994년 제네바합의 결과 경수로사업이 시작된 것도 북한 영변의 흑연로에 비해 감시가 쉽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NPT를 탈퇴하고 IAEA 핵사찰을 거부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미국의 우려는 충분한 타당성을 갖는다.

    이러한 우려를 해소하면서 KEDO 경수로를 완공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우선 경수로 및 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소유 및 운영권을 북한이 가져서는 안 된다. 발전소가 완공된 이후에도 북한측에 넘기는 것이 아니라, 한국 혹은 제3국의 법인이 관리·처분하는 시스템이되어야 하는 것이다. 운용인력도 북한주민이 아니라 한국 등에서 파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원전가동은 철저히 IAEA의 사찰하에 두는 한편, 북한이 사용후 핵연료를 무단으로 전용하는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 금호지구를 치외법권 지역으로 규정할 필요도 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금호지구를 개성공단 지역보다도 강력한 특구로 설정해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라면 미국이 한국의 경수로사업 독자재개를 반대할 명분이 약해질 것이다. 북한의 극심한 에너지난을 고려할 때 결국은 수용 가능한 조건이라고 판단된다.

    6월23일 베이징에서 열린 3차 6자회담은 비록 결정적인 해결의 전기를 마련하지는 못했지만, 이전의 두 차례 회담과는 달리 진전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대북 에너지 지원에 관한 부분이다.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면 그에 대한 보상차원에서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북한에 에너지를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 미국이 동의를 표했고 한국 정부도 북한의 조속한 핵 폐기를 전제로 보상차원에서 에너지를 지원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는 점이다.

    진정한 윈윈게임

    이는 결국 미국의 최근 입장이, 북핵문제가 풀린다 해도 미국이 나서서 북한에 에너지를 지원하는 일은 없겠지만 한국이 제공하는 것까지 막지는 않겠다는 것임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앞서 설명한 극동러시아-북한-한국간 전력망 연계 및 KEDO 경수로 연동 방안은 추후 6자회담에서 한국측이 제시할 수 있는 ‘당근용’ 협상카드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더욱이 이 방안은 단순히 북한을 돕는 차원이 아니라, 이미 투입된 2조원의 돈을 살려내고 한국 및 러시아도 장차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매력적인 제안이다. 북한은 극심한 에너지난을 해결하고, 한국은 향후 예상되는 전력 부족사태를 막으면서 싼 값에 전기를 들여오고, 러시아는 잉여전력 수출을 통해 경제적 실익을 챙기며, 미국은 한푼도 부담하지 않고 북핵폐기 보상책으로 생색낼 수 있는 카드. 진정한 윈윈게임이란 이런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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