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호

前 용산기지 이전협상 관계자의 직격토로

“전문가 부재, 형식 집착, 철군 두려움이 주도권 상실의 원인”

  • 글: 정리·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4-08-25 15: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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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22일 마침내 용산기지 이전협상이 타결됐으나 그 결과에 대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협상준비팀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가 협상진행에 대한 소회와 평가, 향후 개선방향에 대한 고언을 ‘신동아’에 토로했다.
    前 용산기지 이전협상 관계자의 직격토로
    지난해 4월 시작된 용산기지 이전협상이 일단락되었다. 협상에 관여했던 사람으로서 홀가분한 기분이 앞선다. 결과에 대한 미련은 이제 빨리 털어버리는 것이 개인을 위해서는 나을지 모르겠다. 다시 곱씹는 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용산기지 이전협상은 아직 완전히 마무리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큰 틀을 만들어왔다면 앞으로는 구체적인 사안을 놓고 협상이 계속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그동안의 과정을 돌아보는 것은, 누구를 공격하거나 문제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협상이 보다 합리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전협상 과정에서 빚어진 문제점은 반복될 수 있다. 그러한 악순환이 계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나름의 견해를 밝혀두고자 한다.

    용산기지 이전협상과 관련해 정부 안에서 논의가 시작된 것은 지난해 봄, 4월로 예정돼 있던 1차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를 준비하던 시점이었다. 이때만 해도 이전협상과 관련해 정부 관계자들의 인식은 일천했다. 1990년 맺어진 합의각서(MOA)와 양해각서(MOU)의 틀을 따르면 되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1차 FOTA가 끝나고 본격적인 합의문 작성을 위해 1990년 문서를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문제점이 하나둘 불거지기 시작했다. 6월에 이르러 1990년 합의문의 한계를 조목조목 지적한 보고서가 관계부처와 청와대에 회람되었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언론에서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지만 1990년 합의문은 엉망이었다. 기지이전 뒤에 남을 미군시설의 규모나 용산기지의 반환일정은 아예 명시되지도 않아 미국의 결정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대신 새 기지 건축비용과 이사비용, 이전기간에 장사를 못하는 영내(營內) 자영업자에 대한 손실보전은 물론 기지이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송의 청구권까지, 모든 이전관련 비용을 한국이 부담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특히 ‘한국측의 부담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는 식의 조항은 국가간 협정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건축과 관련해서도 문제점 투성이였다. 우선 용산기지 안에 자리잡고 있던 비(非)군사시설, 구체적으로 미 대사관 숙소의 경우는 어떻게 처리한다는 내용이 없었다. 새 기지의 시설종합계획(Master Plan·MP), 시설설계, 시공업체와의 계약 등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주요사항은 모두 미국측이 결정하도록 돼 있었다.

    정부 안에서 문제의식이 공유되면서 곧이어 우리측이 수정을 제안할 내용이 작성되었다. 우선 시설건축을 미국기준에 따른다는 내용을 한미 공동의 기준을 새로 만들어 준수하는 형태로 바꾸자는 제안이 있었다. 자영업자의 손실보전이나 청구권 관련사항과 ‘한국측의 부담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는 조항은 모두 삭제하자는 내용이었다. 대사관 직원숙소 등 비군사시설은 용산기지 이전일정에 맞춰 이전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상당히 강도 높은 수준이었다.

    이 무렵 열린 2차 FOTA에서 미국측은 용산기지 대체부지로 546만평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우리측에서 처음 검토했던 아이디어는 평택 지역에 있는 한국군 부대를 이전하고 거기에 미군을 입주시키자는 것이었다. 물망에 오른 기지의 규모는 대략 400만~500만평. 진입로 개설 등을 위한 극히 일부의 추가부지만 제공한다는 생각이었다.

    미국측이 기본계획서(Initial Master Plan·IMP)를 작성해 보내온 것은 이 무렵이었다. 책 세 권 분량인 IMP는 한마디로 자료 모음집이다. 현재 용산기지 근무자는 계급당 몇 명이고 1인당 필요한 사무실 면적은 얼마며, 기혼·미혼에 따라 달리한 숙소규모, 이전 시설의 내역·규모 등을 포함한 자료였다.

    이 IMP는 원래 5월에 우리측에 전달하기로 되어 있던 것이 한두 달 늦어진 데다 내용도 틀린 부분이 많았다. 그 오류를 지적하고 돌려보내는 데 상당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IMP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검토하면서 건축비용의 대강이 보이기 시작했고, 어떻게 협상을 진행해야 이전비용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도 윤곽이 잡혔다.

    예를 들어 건축기준 부분만 해도 미국이 제안한 ‘미 국방부 기준’과 우리측이 제안한 ‘공동기준’은 크게 달랐다. 공동기준을 적용하면 2억달러 가까이 절약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지금 당장 공동기준을 만드는 과정은 번거롭겠지만 이후 유사한 사례마다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도 있었다.

    “100억달러가 어디에 들어가나”

    앞서 설명한 대로 당초 협상준비팀은 평택지역에 있는 우리 군 부대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미군시설을 지어 입주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한국군의 경우 기지이전이 쉽고 토지수용과정에서 분란도 적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이 경우 용산기지 이전사업이 3000억원 선에서 해결될 수 있다는 추산도 나왔다. 10월까지만 해도 이 방안에 대해 미군도 긍정적이었다. 지난해 7월 열린 3차 FOTA에서 양국이 2006년까지 이전을 마무리짓기로 합의한 데는 이런 배경이 담겨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안에 있었다. 해당 부대들이 극렬히 반대하고 나선 것이었다. 대체부지 제공부대로 검토된 해·공군 관계자들의 반발은 상상을 초월했다. 결국 이 아이디어는 백지화되었고, 대신 부지 300만~350만평을 제공하는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前 용산기지 이전협상 관계자의 직격토로
    IMP와 부지면적이 제시됨에 따라 대략적인 이전비용 총액도 계산할 수 있게 됐다. 당시 이전예정부지의 평당시세는 4만~6만원. 300만평이면 부지 매입비는 1800억원인 셈이다. 초기에 여유를 두어 부지 매입비를 2400억원으로 잡았다(지금은 땅값이 평당 20만원까지 올라 6000억원 규모로 뛰었다). 여기에 IMP를 분석한 이전비용을 합치니 20억달러 미만이 나왔다. 이전이 10년 이상 장기화할 경우의 추가비용을 감안해도 30억달러면 충분할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새 기지의 미군 주거시설을 한국정부가 모두 지어줄 경우 비용이 40억달러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올 7월 열린 10차 FOTA 합의결과는 용산기지 주택 중 4분의 1만 지어주는 것이었다.

    미국측은 “그 정도가 맞는 것 같다”고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들이 계산한 것보다 우리가 제시한 금액이 컸으니 표정관리하기에 바빴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 내부에서는 근거 없는 이견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정치권에서는 100억달러가 필요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군 1개 사단을 이전하는 데 평균 1500억원이 소요된다. 30억달러면 그 24배다. 도대체 100억달러가 어디에 들어간단 말인가.

    지난해 10월까지의 협상은 그 밖의 부분에서도 주목할 만한 진척이 있었다. 1990년 합의서는 완전히 새로운 체계로 바뀌었고 비용부분도 상당 부분 개선됐다. 청구권이나 손실보전 조항을 삭제하고 환경복구비용을 미국이 부담하기로 한 점 등은 긍정적인 변화였다.

    그러나 6월 무렵 협상팀 내부에서 제기했던 목표치와 비교해선 아쉬운 점이 있었다. 건축기준의 경우 한미공동사용시설에 대해서는 공동기준을 적용하고, 미군전용시설에는 미 국방부 기준을 적용하기로 대체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이사비용의 경우 한국이 운송용역을 제공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매우 뼈아픈 부분이었다.

    밀어닥친 폭풍

    그러나 이는 그 뒤에 닥친 난항에 비하면 약과였다. 파열음은 우리 정부 내부에서 터져나왔다. 새로 만든 합의문 체계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새 합의문은 기지이전의 개괄적인 원칙을 담은 포괄협정(Umbrella Agree- ment·UA)과 그 세부사항을 기술한 실행협정(Implementation Agreement·IA)으로 나뉘어 이 가운데 UA만 국회의 비준을 받는 형태였다. 그러자 국제협약에 대해 심의권을 갖고 있는 외교부 조약국에서 이 형식에 위헌소지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당시 외교부 조약국측이 제기한 문제는 이전협정이 국가예산을 사용하는 만큼, 일부만 국회의 비준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IA에 예산사용에 관련된 부분이 포함되는 경우 국회의 동의 없이 예산을 사용하게 되는 법적 문제가 발생한다는 지적이었다 - 편집자).

    형식문제에서 비롯된 분란이 정부 내의 대립전선을 타고 점차 내용면으로 옮겨가면서 거세졌다. 협상팀이 국민을 속이고 있으며 협상내용이 오히려 1990년 수준보다 후퇴했다는 이야기가 떠돌면서 급기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관계부처 실무자들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관련회의가 잇따라 소집됐고 그 때마다 격론이 오갔다. 감사원의 감사도 이어졌다.

    필자가 지금도 의구심을 떨칠 수 없는 것은 형식상의 문제를 놓고 이렇듯 거친 논란을 벌여야 했는지 여부다. 문서의 형식이 잘못되었다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게 아닌가. 당초 합의문을 UA·IA로 나누는 안을 제시한 것도 외교부였고 이에 문제를 제기한 것도 외교부였다. UA·IA 분리안을 제안한 외교부 북미국을 제외하고는 특정형식을 고집하는 이도 별로 없었다. 분리할 필요없이 하나의 문서로 가는 게 낫다는 견해도 있었다. 외교부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었던 논쟁이 왜 밖으로 번져 관계자들은 물론 협상 자체에 영향을 미쳐야 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 문제로 한바탕 진통을 겪고 나서 과연 이전협상과 관련해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는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조사를 통해 명확한 문제점이 발견되어 협상에 반영된 부분도 없는 것 같다. 두 차례 감사에 나선 감사원은 제출된 자료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모두 기각처리 했을 뿐이다.

    미국의 협상전략

    협상팀이 세간의 비난에 시달린 것은 중대한 문제가 아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분란을 겪고 난 뒤 협상과정이 뒤틀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협상내용이나 세부사항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외부의 비판적인 시선을 의식해 ‘상부의 방향설정’이라는 명목으로 일방적인 지침을 내린 것이었다. 이제까지 이전협상에 관심도 없던 이들이 직접 협상에 나서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논점은 점점 무의미한 부분을 파고들고, 한미 양측 협상 담당자들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다.

    협상이란 기본적으로 밀고당기는 과정이다. 테이블에 마주앉은 이들끼리 호의를 바탕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것과 의심을 깔고 공격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대등한 협상파트너라면 지독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지만, 두 당사자간에 여러 모로 차이가 있다면 분위기가 적대적으로 흐를수록 당연히 약자에게 불리하다.

    지난해 10월까지 양측이 논의했던 대로 합의가 이뤄졌다면 외교부 조약국이 제기한 형식상의 흠결은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올 7월까지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 공전하면서 일부 내용은 오히려 지난해 10월보다 후퇴했다. 일부 정부 관계자들이 그간의 협상에 문제가 있다며 흥분해 뛰어나가기는 했는데, 정작 면밀한 사전준비와 전략이 없다 보니 뒷감당이 안 된 형국이었다.

    미국이 협상전략에 얼마나 탁월한지 테이블에 마주앉아본 사람은 안다. 협상을 제안하는 시점부터 기막히다. 미국은 1980년대 후반과 2003년, 즉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섰을 때 용산기지 관련협상을 개시했다. 우리측의 반응이 강경하면 주한미군 철수나 감군(減軍) 등의 카드를 꺼내 바짝 긴장시킨다. 여기저기서 ‘안보불안’ 소리가 터져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면 화들짝 놀란 한국은 끌려다니게 돼 있다.

    이번 이전협상도 유사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올 7월 합의된 내용에서 지난해 10월에 비해 후퇴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은 건축기준, 주택문제, 기타비용, 부지규모 등이다. 이들 항목에 대해 한국측이 집요하게 따지자 미국측도 초반의 여유 있는 입장에서 태도를 바꾸었다. 내부적으로 엄청난 준비를 거쳐 매우 강도 높은 안을 들고나왔다. ‘쫓겨가듯 내려가지는 않겠다’는 식이었다.

    건축기준의 경우 앞서 설명한 대로 지난해 10월 무렵만 해도 한미공동사용시설에 대해서는 공동기준을 적용하고 미군전용시설에는 미 국방부 기준을 적용한다는 원칙에 대략 합의가 이뤄진 상태였다. 그러나 최종합의에서는 모든 시설을 미 국방부 기준으로 한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6월 ‘모든 시설에 공동기준을 적용한다’는 우리측 목표와는 정반대의 결과다.

    주택문제를 살펴보자. 이 문제는 이전비용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한다. 미 국방부 기준으로 주택을 지어줄 경우 대략 한 채에 3억5000만원의 건축비가 소요된다(평균 70평, 평당 건축비 500만원). 1000채를 지어주면 3500억원이 든다. 지난해 10월 무렵에는 용산기지 근무자들의 숙소 1200채 전체를 한국 민간업체가 짓고 미군이 임대한다는 데에 대체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11월 이후 한국측이 공격적인 협상태도를 보이자 미국측 태도도 돌변했다. 전량을 다 무상으로 지어달라는 것이었다. 한국군의 군인아파트가 군사시설이듯 미군 숙소도 기지이전 범위에 포함된다는 논리를 폈다.

    결국 올 7월 FOTA에서는 용산기지 안에 있는 333채는 한국측이 무상으로 지어주고 나머지는 임대하기로 최종합의했다. 당장 1000억원에 가까운 돈이 추가로 들게 됐다.

    흔들리는 원칙, 후퇴하는 협상

    ‘합의문에는 규정되지 않았지만 이전과정에서 예상외로 발생하는 경비’를 의미하는 ‘기타비용(other expenses)’도 유사한 과정을 겪었다. 협상초기 이 부분은 ‘행정비용’이라는 의미로 논의되어 한국측이 부담하는 것으로 규정됐다. 미군 예산에서 복사비, 출장비 등의 소모성 경비로 반영되는 ‘administration expense’를 염두에 둔 개념이었다.

    그러나 11월 이후 한국 정부가 강경입장으로 돌아서 협상팀에 이 항목의 세부명세를 미국측에 요구하라는 지침이 내려오자 상황이 달라졌다. 결국 협상팀 구성원이 아닌 인사가 리스트를 달라는 요구를 미국측에 전달했다.

    그러자 미국측은 당초의 행정비용 개념이 아니라, 이제까지 논의되지 못했던 추가경비항목을 모두 열거하는 리스트를 작성해 보내왔다. 리스트엔 공병, 수송, 장비 등 상당한 내역이 포함되어 있었다. 협상팀은 이의를 제기했지만 “한국측이 달라고 해서 줬다. 이제 와서 왜 딴소리냐”는 미국측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부딪혔다. 결국 7월 최종합의에서는 엄청나게 범위가 넓어진 ‘기타비용’이 한국측 부담으로 정의되었다. 쉽게 말해 ‘통째로 뒤집어쓴’ 형국이다.

    관심이 집중된 이전기지 부지규모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당초 양측은 새 기지 몫으로 312만평 규모를 제공하기로 합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이를 뒤집고 300만평 규모로 다시 제안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주한미군 감축이 가시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지만 왜 300만평인지에 대한 산술적인 근거는 없었다. 정밀한 계산에 따른 지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엔지니어가 산출해야 할 수치를 왜 정책조정파트에서 내려보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더욱이 공개되지 않았을 뿐 양측은 작년부터 주한미군의 감축규모를 반영해 협상에 임했다. 312만평이라는 규모도 감축을 감안해 얻은 것이었다. 그런데 다시 한국측에서 감축을 들어 부지규모를 거론하자 미국측은 격렬히 항의했고, 오히려 함께 이전하기로 한 유엔사·연합사용 토지를 포함해 360만평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반박논리를 세우기 쉽지 않았다. 우리측 안의 근거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미국을 모르고, 협상상대를 모르고, 야전을 모르고, 건축을 모르기에 발생한 문제였다. 논란 끝에 올 7월 10차 FOTA에서 349만평으로 최종합의가 이루어졌다. 지난해 10월 거의 합의단계에 이르렀던 312만평에 비해 10% 이상 늘어난 규모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미2사단 이전비용 문제는 또 다른 하이라이트였다. 모두 새 평택기지에 입주할 계획이지만, 용산기지이전(YRP)과 2사단 이전을 다루는 연합토지관리계획(LPP)은 별개의 사안이어서 협상 담당자가 다르다. 사안이 다른 만큼 내부적으로는 공조하더라도 접근자체는 분리하는 지혜가 필요했다. 그러나 한국측에 그러한 ‘유기적 역할분담’은 존재하지 않았다. LPP 협상에서 YRP 문제가 논의되는 일까지 있었다.

    당초 우리측은 ‘용산기지 이전비용은 한국이, 2사단 이전비용은 미국이 부담한다’는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은 2사단 이전비용까지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중요한 원칙에 있어서는 물러나서는 안 되는 것이 협상의 기본이다. 그러나 주한미군 감축과 재배치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원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직 2사단 이전비용을 한국측이 부담하기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협상이 당초와 사뭇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에 답하는 사람이 진짜 프로다. 한번 훑어보고 원론적인 이야기를 던지는 것은 초등학생도 한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대안 제시다.

    그런 의미에서 용산기지 이전협상 과정에는 아마추어가 너무 많았다. 협상과정에 참여하라는 요청은 무시하고 대신 협상이 상당부분 진행된 후에 언뜻 살펴본 문제점을 쏟아놓는 사람이 너무도 많았다. 물론 그들에게 해결방안은 없었다. ‘따지고 공격하는 것이 애국’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정부안에 그렇게 나서는 아마추어가 부쩍 늘어났다. 반면 체계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미국측과 맞서며 논리를 구축해나가는 전문가는 턱없이 부족했다.

    내용은 없고 형식에만 집착

    기지이전은 깊이 있는 연구를 필요로 하는 업무다. 미국측에는 이전협상을 시작하자마자 한국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미8군 법무감실의 법률전문가가 협상팀에 합류했다. 또 본토에서 기술사 두 명과 공학박사 두 명이 날아왔다. 이들은 지금도 굳건히 협상테이블을 지키고 있다. 반면 우리측은 갑작스레 불러온 기술사 한 명이 전부였고 그나마 이 관계자는 협상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공직을 떠났다. 법률 전문가는 아예 한 사람도 없었다.

    이러한 우리측 사정을 미국은 충분히 이용했다. 사안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테이블에 앉으면 미측은 슬슬 쟁점을 비켜간다. 협상기간이 길어지는 동안 다른 부서로 가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대신 쟁점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상급자나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후임자가 테이블에 앉으면 주요쟁점에 대한 논의를 밀어붙인다. 훤히 꿰뚫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한국 공무원들의 약한 고리가 어디인지 잘 알고 있다. 바로 ‘명분’과 ‘형식’이다. 내용상으로는 많은 것을 내줘도 협상을 지휘하는 이들이 상부나 대외적으로 내밀 명분만 있다면 결국은 수용하리라는 것을 안다. 한국은 내용만 달라지면 될 합의문을 1990년과 차별화하기 위해 굳이 새 형식으로 만드는 문제에 집착했다. 미국은 이를 들어주면서 엄청난 생색을 냈다. IA 조항 가운데 한국내에서 위헌논란이 일 수 있는 부분을 UA로 일부 옮겨주면서도 크게 양보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 대가로 우리가 내용 면에서 양보하기를 기대한 것이었다.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지난 7월의 합의내용이 크게 나쁘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집을 지을 때 아무리 계약서를 잘 쓴다 해도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듯, 기지이전도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꼼꼼히 따지고 들어가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시설공사와 관련한 설계, 감리, 감독 방법과 절차를 규정한 기술합의서(EMOU)를 조만간 마련해야 하고, 이전비용 산정에 필수적인 MP도 준비해야 한다. 전문기술업체에 용역을 맡겨야 하는 MP의 경우 양측이 서로 계약자선정권을 갖겠다고 맞서고 있다. 설계의 경우는 양측이 공동으로, 건설계약은 한국이 하는 것으로 방향이 잡혔지만 세부논의에 들어가면 전문가적 식견이 절실하다. 이전비용의 90% 가량을 차지할 건축비용 관련논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를 제대로 추진하려면 최소한 5~6개월 전부터 전문가그룹을 만들어 업무파악을 해야 옳았다. 협상팀 내부에서도 이러한 주장이 제기됐지만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정부 안에 마땅한 사람이 없다면 민간전문가라도 합류시켜야 했지만 역시 기대난망이었다. 몇 달에 한 번 모이는 자문위원단이 전부였다.

    고속철도 건설 같은 국책사업의 기획단을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멤버는 토목이나 기계, 전기 등의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그러나 용산기지 이전은 그러지 못했다. 그렇다고 협상 전문가들이 배치된 것도 아니었다. 지난해 봄 처음 논의가 시작될 무렵부터 범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어야 옳았다. 국방부 정책실과 외교부 북미국·조약국 등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건축 분야의 전문가를 보강해 효율적인 협의체계를 만들었어야 했다.

    부디 앞으로는 모든 논의가 미래지향적이기를, 껍데기보다는 내실에 추구하면서 진짜 전문가들이 차분히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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