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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기구 톱 브랜드 파카 120년

전쟁과 평화의 목격자, 웃음과 감동의 마법사

  • 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필기구 톱 브랜드 파카 1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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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archives)를 가보겠냐”고 묻기에 “볼 수 있다면 영광”이라고 대답하자 파카 관계자는 열쇠 하나를 꺼내들더니 기자를 안내했다. 기자는 ‘세계적 명품 파카의 120년 역사가 그대로 녹아 있는 파카의 수장고는 얼마나 으리으리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머릿속에는 근사한 필기구 박물관을 그려 보았다.

그러나 정작 이 관계자가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건물 1층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허름한 창고 같은 사무실. 서너 평이 될까말까하는 이 사무실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먼지 쌓인 책상들과 서랍장 몇 개, 그리고 금고식 캐비닛 하나가 전부였다. ‘명품 12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수장고(收藏庫)라는 감동을 느낄 만한 구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1호는 여왕, 2호는 황태자

게다가 금고식 캐비닛은 디지털 키나 번호입력식 개폐장치도 없어 일일이 비밀번호를 맞춰가며 핸들을 좌우로 돌리는 구식 중의 구식이었다. ‘왼쪽으로 세 번 오른쪽으로 두 번, 다시 왼쪽으로 두 번’ 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구식 캐비닛 안에서 나온 만년필과 볼펜들은 쉽게 그 값어치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1000개 안팎의 소량만 생산해 한정판매한 제품들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일련번호 1952번이 붙어있는 엘리자베스 2세 즉위 기념 만년필의 경우 한정품 1호는 여왕이, 2호는 찰스 황태자가 보유하고 있다. 그 밖에도 2003년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정도(定都) 300주년을 기념하는 펜이나 프로골프 PGA대회 창설 100주년을 기념하는 펜 등 세계사의 중요 기념일을 맞아 특별제작된 펜들이 종류별로 가득했다.



수장고를 관리하는 파카 관계자는 “파카 창립 이후 만들어진 펜들을 일련번호를 매겨 저장하고 있는데 이미 8000번을 넘었다”고 귀띔한다.

펜에 대한 사전지식이 별로 없는 기자가 당장 궁금했던 것은 당연히 ‘어떤 게 가장 비쌀까’ 하는 것이었다. 돈으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명품을 앞에 두고 무례한 질문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가장 비싼 제품을 하나만 골라달라”고 하자, 이 관계자는 나치 문양이 그려진 금색 만년필 하나를 집어들었다.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후 독일군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나치 문양이 새겨진 파카 제품도 모두 없애버렸으므로 이 만년필은 세계적으로 4~5자루밖에는 남아 있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기자가 파카 수장고에서 직접 본 것이 두 자루이니 ‘나머지 2~3자루는 누군가가 지니고 있을 터. 그 사람은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카의 역사는 1888년 미국에서 시작됐다. 창립자인 조지 새포드 파카(George S. Parker)는 당시 교사로 재직하면서 박봉을 견디던 중 부업 삼아 만년필 대리점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던 중 고장난 만년필을 들고 찾아오는 학생들로부터 여러 가지 불만을 듣고 그때부터 새로운 펜에 대한 구상을 하게 됐다. 학생들의 불만은 주로 잉크가 뚜껑 사이로 샌다거나 펜촉 끝에서 잉크가 번져나간다는 것이었다. 이런 불만사항을 전해듣던 파카는 아예 직접 ‘튼튼하고 실용적인’ 만년필을 만들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것이 120년 동안 만년필의 상징으로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아온 파카의 탄생 배경이다.

파카는 회사 창립 이듬해인 1889년 첫 번째 특허를 획득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특허를 등록했고 수시로 디자인을 바꿔가며 남성용 명품의 ‘원조’로 인식되어왔다.

무엇보다 파카가 명품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지도자들이 중요한 역사적 순간마다 파카 만년필로 역사의 흔적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2차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영웅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독일군 항복 문서에 서명할 당시 ‘파카 51’ 만년필을 사용했다. ‘파카 51’은 파카 설립자인 조지 파카가 세상을 떠나고 3년 후인 1940년 출시된 제품.

아이젠하워와 함께 2차대전 승리의 주역이었던 맥아더 사령관 역시 1945년 도쿄만(灣)에 정박중이던 미주리호 함상에서 일본군이 항복 서명한 문서에 마지막으로 서명하면서 파카 만년필을 사용했다. 이때 맥아더 장군이 사용한 펜은 ‘파카 오렌지 듀오폴드’. 파카 듀오폴드는 지금도 ‘파카의 정신적 계승자’라고 불릴 정도로 명품 중의 명품으로 꼽힌다. 참고로 금장식을 입힌 듀오폴드 만년필은 우리나라에서 100만원이 훨씬 넘는 가격에 판매되기도 한다.

영국 황실 납품 시작

파카는 그동안 필기구의 기능을 진보시키는 데도 커다란 역할을 했다. 금세기 초에는 ‘럭키 커브(lucky curve)’라고 부르는 잉크 주입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당시만 해도 만년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잉크가 새는 문제점을 단번에 해결했다. 당시 ‘럭키 커브’는 ‘필기구의 혁명’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발명으로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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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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