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수능을 표준화 학력검사로 대치하면 ‘학력관리 개선’과 ‘공정한 입시관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 본고사, 논술 등 대학별 추가 학력평가의 진행 여부도 재론될 여지가 없다. 표준화 학력검사의 타당도와 신뢰도만 높이면 다른 학력평가의 필요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응시자가 학교설립 이념이나 개별분야의 특수한 요구를 충족하는지 알아보고 싶다면 면접과정을 거치도록 하면 된다.
학생의 내신성적과 표준화 학력검사 결과를 근거로 대학이 자율적 학생 선발권을 갖는다면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표준화 학력검사 결과를 소수점 이하 두 자리까지 표시하면 1만명 가운데에서도 석차를 뚜렷이 알 수 있다. 통계적으로는 10만명 이상의 집단에서도 석차를 가릴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석차의 차이가 갖는 현실적 의미가 크지 않기 때문에 다른 변인들을 고려해 학생을 선발하도록 할 수 있다.
고부가가치 창출 교육
우리 국민 대부분은 학교에서 성실하게 생활하고 열심히 학업에 전념하면 그것이 곧 출세의 길이라고 믿고 필승의 신념으로 정진해왔다.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했을 때 과거에는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만 하면 됐다. 농업이 주산업이던 시절에도, 공업이 주류를 이루던 사회에서도 성실과 근면은 최고의 덕목이었다.
그러나 20세기 말 이후 이보다 더 중요한 덕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에 없는 새로운 기술로 고부가가치를 지닌 신상품을 개발해내는 것이다. 이동통신, 반도체, PDP, 조선, 자동차 등 첨단기술 분야는 지금과 같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우리 경제가 뒷걸음치지 않고 플러스 성장을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든 힘이다.
이제까지 우리 교육은 조상들의 문화적 유산과 선진국의 문물을 전수하기에 급급했다. 전수와 계몽, 깨달음과 성숙 이 교육의 화두였다. 선진국의 제도를 도입하고 과학기술을 학습해 그것으로 산업을 일으키고 무역을 하면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는 신기술, 신상품, 신서비스를 개척하는 첨단 지식과 기술이 우리 경제를 지탱해주는 힘으로 자리잡았다.
발명과 발견이 소수 엘리트의 천재적 창조물이라 존경받던 시대는 가고, 그것이 다중(多衆)이 실천하는 일상적 활동으로 여겨지는 시대를 맞고 있다. 단순히 공부 잘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인재를 얼마나 길러내느냐에 교육의 성패가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 교육계는 아직 전근대적 시대의 꿈에 깊이 빠져 새 시대의 도전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교육경쟁력은 주로 우수한 대학 진학이나 각종 국가고시 합격, 일류기업 취업률 같은 것으로 평가돼왔다. 국내 학교간 경쟁이 전체 경쟁의 범위였다. 그러나 세계는 이미 국제 경쟁사회로 변모했다. 교육도 세계 강대국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 그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은 아직까지 농업사회의 교육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공업화 이전에도 치열한 입시경쟁이 있었다. 초등학교 상급반 학생들이 별을 보고 집을 나가 자정이 지난 뒤에야 집에 들어오는 처절한 입시경쟁을 벌였던 것이다. 이 같은 입시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취한 정책이 결국 평준화로 계속 발전해왔다.
하지만 평준화는 입시과열의 병리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었지,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은 아니었다.
평준화 제도 한편으로 국제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 마련한 정책이 바로 과학고, 체육고, 예술고,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나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한 것이다. ‘시험을 잘 보는 인재, 취직을 잘 하는 인재를 얼마나 길러냈는가’가 기준이 된다면 이들 학교는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공부 그 자체만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성취를 이뤄내는 것이다.
독일의 ‘엘리트 업’ 프로젝트, 월반(越班)을 허용하는 영국의 교육개혁안, 미국 시카고 교육위원회의 학교구조조정안 등 교육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개혁안들이 앞다퉈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세계 교육의 흐름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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