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백두대간 종주기⑬|진고개에서 한계령까지

설악산 공룡능선에 단풍드니 가을나그네 바빠진다

  • 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설악산 공룡능선에 단풍드니 가을나그네 바빠진다

2/6
한편 오대산 주능선에서 백두대간을 타려면 상원사에서 1시간 남짓 올라선 뒤 동대산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를 만나야 한다. 결국 백두대간은 오대산 주능선을 빼놓고 동쪽 줄기만 걸치고 지나가는 셈이다.

택시기사는 자신이 잘 아는 민박집으로 필자를 안내했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등산객들로 가득했다. 할 수 없이 길을 돌아 내려오다 예전에 민박집을 운영했다는 농장으로 찾아가니 비닐하우스 채소를 재배하는 50대 부부가 필자를 맞았다. 요즘은 민박 손님을 받지 않는다며 손사래를 치는 그들을 설득해 타향으로 유학을 떠난 아들 방에 짐을 풀었다. 일단 손님이 들자 집주인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출출한 속을 달래라며 과일과 과자를 차려내고 다음날 아침 등산로 입구까지 태워주겠다며 필자의 걱정까지 덜어주었다. 역시 산골마을의 넉넉한 인심이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바라보니 별빛이 장관이다. 하늘 가득 촘촘히 박힌 별들의 행렬이 산 너머로 이어지고, 하늘과 산이 만나는 공지선을 따라 오대산의 시원스런 산세가 부드러운 실루엣을 연출한다. 별자리를 살피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옥수수 밭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콧날을 스쳐 콧속 깊숙이 빨려든다. 바람에 취해 한참을 서성거리는데 집주인이 잰걸음으로 다가와 빨리 들어가라고 재촉한다. 안방에서는 TV뉴스 일기예보가 흘러나온다. ‘내일 아침에는 강원도 전역에 서리가 내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동대산에서 바라본 노인봉

10월3일 새벽. 주인집 아주머니의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이불을 걷어내고 몸을 일으키자 한기가 느껴졌다. 간단히 세수만 하고 밖으로 나오니 밤사이 내린 서리에 사방이 하얗다. 주인집 아저씨는 하룻밤 묵고 가는 나그네를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채소를 운반하는 트럭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진고개까지는 10여분 거리.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저씨는 백두대간에 대해 조목조목 물었다. 그는 백두대간 밑에서 평생을 살아왔지만, 집 앞으로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줄은 몰랐다고 한다.



진고개 휴게소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동대산으로 향했다. 날이 밝으려면 30분 남짓 기다려야 하지만 이 구간의 등산로는 어둠 속에서도 쉽게 식별할 수 있을 만큼 뚜렷하다. 몸이 채 풀리기도 전에 1km가 넘는 긴 오르막을 통과하자니 온몸이 뻐근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등줄기에 땀이 흥건해질 무렵 동쪽 노인봉 너머에서 붉은 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오대산 마니아들이 감탄해마지 않는 노인봉 일출이 시작된 것이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나뭇가지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감상했다. 새벽공기에 묻어나는 산내음이 더없이 향긋하다.

동대산(1434m) 정상에 이르자 먼저 출발한 등산객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첫눈에 단단한 내공이 느껴질 만큼 빈틈이 보이지 않는 산꾼이다. 동대산. 말 그대로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 가운데 동쪽에 우뚝 솟은 산이다. 오대산은 본래 중국 산서성 청량산의 다른 이름으로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당나라 유학 당시 공부했던 곳이다. 그가 신라로 돌아와 한반도 전역을 순례하다가 이 산에 이르러 청량산과 매우 닮았다 해서 붙인 이름이 바로 오대산이다. 이때부터 우리 민족은 문수보살이 1만명의 권속을 거느리고 오대산에 살고 있다고 믿어왔고, 그런 연유로 고려시대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에서 “오대산은 불법이 가장 흥할 곳”이라고 적었다.

동대산에서 두로봉(1421m)으로 향하면서 아침 햇살이 산 주위로 퍼져가는 광경을 감상했다. 처음에는 나뭇잎 사이로 조금씩 스며들던 기운이 어느새 나무를 붉게 물들이고 숲 전체를 태웠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구름 한 점 없는 것이 마치 비취색 바다가 펼쳐진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어찌 보면 물 항아리를 거꾸로 세워놓은 듯하고, 달리 보면 오대산 자락이 바다에 빠져 있는 모양새다. 얼마나 오랫동안 머리를 젖히고 걸었던지 고개가 아플 지경이다. 배낭을 풀어놓고 아침을 먹는 동안에도 필자의 시선은 눈부시도록 푸른 하늘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산에 미친 60대 노인

강원도 평창군과 홍천군이 갈리는 두로봉에서 신배령으로 가려면 거추장스런 잡목지대를 두 번 통과해야 한다. 이 구간의 나무들은 벌써 단풍철을 지나 초겨울의 문턱에 이르렀다. 한 부모 밑에 여러 형제가 있듯이, 같은 산이지만 살아가는 양태는 골짜기마다 제각각이다. 나뭇잎들은 이미 바짝 말라 쭈글쭈글해졌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들도 수두룩하다. 낙엽이 수북한 길은 딱딱한 길보다 걷기에 편하지만 이따금씩 고통을 안겨주기도 한다. 바로 낙엽 밑에 숨어 있는 돌멩이 때문이다. 잘못 디디면 발목이 삘 수 있으므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2/6
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목록 닫기

설악산 공룡능선에 단풍드니 가을나그네 바빠진다

댓글 창 닫기

2019/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