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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유럽기행

처칠 생가 블렌하임 궁전

세기의 재상 잉태한 우드스톡 숲속 요람

  • 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처칠 생가 블렌하임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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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 생가 블렌하임 궁전

궁전의 첫 소유자이자 처칠의 8대조인 말버러 공작 1세 초상화. 그레이트 홀에 걸려 있다.

옥스퍼드역에서 버스로 갈아탄 필자는 정원에 난 들길을 따라 30분 정도 더 달린 후 우드스톡 정원 입구에서 내렸다. 블렌하임 궁전은 그곳에 있었다.

정문에서 궁전까지 평탄한 잔디밭 위로 난 길은 그 끝이 가물가물한 게 어림짐작으로도 1km는 되는 것 같았다. 길 양옆으로는 큰 키의 나무들이 숲을 이루었다. 파리 교외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보았던, 사람의 손길이 과도하게 가해져 인공미가 돋보이는 수목들과는 달리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라 눈도, 마음도 편했다. 산이 없어 탁 트인 시야에 모든 게 푸르고 깨끗하고 맑아 그 속을 걷는 기분은 더없이 상쾌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이날따라 이곳을 찾은 관광객이 무척 많았다.

궁전의 입구인 2층 구조의 동문(東門)을 통해 경내로 들어서자 왼편으로 ‘그레이트 코트’라 불리는 본관 건물이 좌우 양쪽으로 날개를 활짝 편 채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그 형태는 말발굽을 닮았다. 건물 정면에 말버러 1세의 공적을 기리는 전승기념탑이 있고 멀리 호수가 보였다. 전망이 참으로 시원했다.

3층 구조의 그레이트 코트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중앙은 공식행사와 그동안 수집해놓은 기념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전시동(展示棟)이고, 정면에서 보아 왼쪽(동쪽) 날개 부분은 성주(城主)의 생활공간, 오른쪽(서쪽) 날개 부분은 관리동으로 1층에 레스토랑이 있었다. 궁전은 둥근 기둥과 위아래로 길게 트인 창문이 조화롭고 아기자기한 인물상으로 장식된 벽면 등으로 섬세하면서도 우람해 보였다. 일반인은 전시동과 레스토랑만 출입할 수 있게 제한됐다.

전시동 입구에는 수탉을 낚아챈 모양의 사자 조각상이 양쪽으로 서 있다. 수탉은 프랑스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이 조각상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육중한 문을 힘껏 밀고 안으로 들어서자 곧바로 크고 높고 화려한 ‘그레이트 홀’이 나타났다. 위를 모두 터놓아 천장까지 높이가 무려 20m. 천장 한가운데에는 1716년 화가 제임스 톤힐이 그린 그림이 있는데, 말버러 1세가 블렌하임에서 대영제국을 향해 무릎 꿇은 모습은 기록화라기보다는 성화(聖畵)처럼 느껴졌다.

정면의 문 위엔 말버러 공작의 흉상이 놓여 있고, 체크 무늬가 선명한 대리석 타일 바닥 위로는 대형 카펫이 깔려 있었다. 여기에 식물문양의 주두(柱頭)를 가진 코린트식 기둥과 조각, 그림, 꽃 장식, 금빛 탁자 등이 어우러져 근엄하면서도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래서 이곳이 무도회장으로 쓰였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처칠의 알몸외교

홀을 지나 화살표를 따라 걷는데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들어보니 처칠이 2차 대전 발발 직후인 1940년 5월13일 총리에 취임하면서 국민을 향해 행한 연설 같았다. 조국 영국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국민을 향해 “나에게는 피와 땀과 눈물 이외에는 내놓을 게 아무것도 없다”며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다해달라고 호소한 그 유명한 연설이었다. 당시 처칠의 연설은 국민의 가슴을 움직였다. 영국 국민은 그를 전적으로 신뢰했고, 그가 명한다면 무엇이든 따르겠다고 맹세했다.

독일 폭격기들이 연일 영국의 도시들을 폐허로 만들 때 처칠은 연설과 피폭지역 시찰, 그 특유의 ‘V’자 사인으로 실의에 빠진 영국 국민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소련의 스탈린 등과 힘을 합쳐 승리를 약속하는 대서양헌장을 채택했다. 그가 미국을 대(對)독일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벌인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당시 영국은 독일을 물리칠 수만 있다면 간이라도 빼줘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처칠과 루스벨트’(존 미첨 지음)에는 이런 비화가 실려 있다.

“1941년 백악관을 방문한 처칠을 만나기 위해 노크를 하고 그의 방으로 들어가던 루스벨트는 그만 처칠의 알몸을 보게 됐다. 순간 당황해서 ‘실례했다’며 급히 방을 나가려던 루스벨트에게 처칠은 ‘보십시오, 대통령 각하. 저는 각하께 숨기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며 어색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자신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루스벨트였는데도 처칠은 그의 비위를 맞춰가며 조국, 나아가 자유세계를 지키고자 자신의 온몸을 던졌던 것이다. 이는 지도자라고 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국가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위신과 이해관계에 따라 처신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처칠은 남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인간적인 매력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런 인간적인 매력이야말로 리더십의 요체이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지렛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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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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