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호

‘포스트 열린우리당 디자이너’ 이강래 의원

“정운찬식 ‘탈(脫)노무현 코드’가 통합신당 지향점”

  • 조인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ij1999@donga.com

    입력2007-04-09 14: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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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후보 대망론’ 뜨면 호남표 다시 뭉친다
    • 차기 대통령 취임 직후의 총선이 더 문제
    • ‘총선 대기자’ 많아…새 인물 모으기 어렵지 않다
    • 5월 말 창당, 정당 20%·후보 25% 지지율에서 다시 시작
    • 한나라 의원들은 공천에 더 관심…대선 패싸움 가속화
    • 오픈 프라이머리? 최대한 늦게, 최대한 불확실하게
    • 유권자 관심은 ‘네거티브’…‘제2 이회창’ 없다는 보장 있나
    ‘포스트 열린우리당 디자이너’ 이강래 의원
    2007년 3월, 범(汎)여권의 현주소는 어떤가. 겉으로 봐선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0%대 지지율은 변함이 없고, ‘검증’은커녕 무대에 올릴 만한 대권주자 후보군(群)도 보이지 않는다. 하마평에 오르는 인물들의 지지율을 합쳐야 겨우 한나라당 제3주자인 손학규 후보 지지율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하지만 찻잔 속은 그렇게 고요하지만은 않다. 자칭 타칭 여권의 기획통으로 불리는 이들이 ‘새 판’을 짜기 위해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구도가 형성되지 않은 채 섣불리 ‘인물’로만 맞서기에 지금 여권은 너무 무기력하다.

    범여권의 이른바 ‘통합신당’ 밑그림을 디자인하고 있는 이강래(李康來·54) 의원도 이들 중 한 사람이다. 정치권에서는 지난 2월 23명의 열린우리당 의원이 집단탈당할 때부터 ‘이강래 프로덕션의 작품’ ‘이강래 각본, 정동영 감독, 김한길 주연’이란 말이 나돌았다. 이 의원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지지율 고공비행 중인 한나라당 후보들을 향해 “네거티브 한 방이면 끝날 수도 있다”고 발언,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 의원은 1990년대 민주당 총재 기획특보에서부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거치며 7년 넘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생활을 했다. 2002년 대선 때도 민주당 대선 전략기획실장을 맡는 등 지난 세 차례 대선에서 모두 기획업무를 맡았고, 두 차례의 서울시장 선거전략을 짜는 데도 깊이 관여했다. 이 의원을 만나 통합신당 구상과 이에 연동될 것으로 보이는 대선 판도 변화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들어봤다.

    ‘한나라당 절대권력’의 두려움



    ▼ ‘이대로 가면…’에 대한 여권의 위기의식이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선거용 탈당이니 기획 탈당이니 하는 비판이 있습니다. 솔직히 일정 부분 수용합니다. 다만 우리로서는 ‘그보다 더 큰 재앙이 예견되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말씀드릴 수밖에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나라당 지지율이 52%까지 나와요. 나머지 4개 정당을 전부 합쳐야 24%로, 절반도 안 됩니다. 2004년 탄핵 당시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딱 2주 동안 52~53% 나온 적이 있고, 17대 총선 직전에는 45% 안팎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과반 의석을 얻었지요.

    어찌 보면 지금 국회의원들에게 더 큰 문제는 대선이 아니라 차기 대통령 취임 50일 후에 치러지는 18대 총선입니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 때 시·도지사의 75%, 기초단체장의 67.4%를 한나라당이 싹쓸이했잖아요? 1990년 3당 합당 때 일시적으로 민자당 의석이 217석이 되면서 전체 의석의 73%를 차지한 적이 있는데,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에선 한나라당이 의석의 80%를 가져갈 겁니다. 대통령 취임 직후 국민지지율이 최고점을 찍는다는 건 상식이지 않습니까. 과반수 정도가 아니라 개헌 저지선까지 가는, 그야말로 제왕적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고,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여당이 탄생하는 것은 물론 한국의 정당정치는 실종되고 말 겁니다. ‘민주독재’ 시대가 열릴 거예요.

    일본에서는 이미 1993년 중의원선거에서 사회당이 몰락하면서 사회 전체가 급격히 보수우경화한 바 있고, 견제세력의 복원이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저희로서는 정치지형 변화를 통해 선거구도를 바꾸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이번 대선에 지더라도 근소하게 져야 그나마 미래가 있다는 게 우리의 절박한 심정입니다.”

    ‘포스트 열린우리당 디자이너’ 이강래 의원

    지난 2월 열린우리당 의원 23명이 국회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당시 탈당은 ‘이강래 의원의 작품’이란 후문이 돌았다.

    ▼ ‘기존 구도 필패론’의 구체적 근거라면?

    “유시민 복지부 장관이 ‘패배할 확률 99%’라고 했다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단서는 ‘지금의 구도가 이어진다면’입니다. 첫째, TK(대구 경북)와 PK(부산 경남)가 지금처럼 굳건하게 결합된 적이 없다고 봅니다. 영남 전체의 응집력과 한나라당 지지율도 역대 최고 수준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여권을 향해서만 ‘지역주의 타파’를 부르짖는 동안 호남의 응집성은 와해됐고 영남은 아이러니하게도 노 대통령이 방어막이 되는 가운데 지역정서가 더욱 공고해지고 있어요. 둘째, 한나라당의 지지기반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념적 중도성향은 물론 믿었던 ‘중산층과 서민’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형국입니다. 살기 팍팍한 20, 30대의 시각도 많이 보수화한 것 같고요, 보수 언론의 전폭적인 지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 ‘새 판 짜기’의 로드맵이 만들어졌습니까.

    “정당법을 살펴보면 신당 창당 방법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당 대 당 통합이 있고, 두 번째로는 밖에 제3지대를 만들어놓은 다음 몇몇 인사가 먼저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새로운 이름으로 기존 정당을 흡수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2000년의 새천년민주당 창당을 떠올리면 됩니다. 새정치국민회의에서 몇 분이 나와서 당시 재야와 학계에 있던 새로운 인물들을 끌어들여 새천년민주당 간판을 올렸죠. 나머지 분들은 오전에 국민회의 해체를 결의하고 오후에는 민주당 창당을 결의하는 방식으로 합류했습니다.

    세 번째는 기존 정당을 완전히 벗어나서 헤쳐모여 식으로 뭉치는 방식입니다. 형식으로 보면 열린우리당 창당 방식과 비슷해요. 민주당은 ‘도로 열린우리당’이 되는 것을 우려해 첫 번째, 두 번째 방법을 모두 거부하고 있습니다. 많은 여권 인사 또한 노 대통령의 색채를 완전히 빼기 위해서라도 세 번째 방법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있어요.”

    김홍업 무소속 출마의 의미

    ▼ 시기나 인물구성 등 구체적인 안도 있습니까.

    “통합신당모임, 즉 열린우리당 탈당파와 민주당, 국민중심당 등 함께하기를 원하는 제3세력이 원탁회의협의체를 만들어 통합신당에 대한 결의를 하는 게 첫 번째 순서일 겁니다. 이들 세 개 정당 내지 모임은 국회법상 당적을 유지한 채 모여서 교섭단체를 만들 수 있으므로, 공감대가 확인되면 지체없이 통합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교섭단체에서 신당 창당 준비위를 구성한 다음에는 우리와 함께할 외부 인사를 광범위하게 끌어들일 겁니다.

    대선보다도 내년 총선을 목표로 이미 구도가 꽉 짜여서 빈틈이 없는 한나라당보다는 아무래도 우리 쪽에 관심을 두는 각계 인사가 많을 거라고 봐요. 교섭단체 구성은 늦어도 4월 중에, 인물을 모아 창당을 하는 것은 5월 말까지 해야 추후 오픈 프라이머리나 대선후보 확정 일정에 지장이 없을 것으로 봅니다.”

    ▼ 열린우리당 현역 인사들이 4, 5월 중에 대거 탈당해야 가능한 시나리오 아닙니까.

    “추진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는 4월3일 민주당 전당대회와 4월25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입니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신당에 참여했을 때 호남쪽 기득권이나 지분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부 공감대를 얼마나 조성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전남 신안·무안과 대전 서을, 경기 화성 세 곳에서 열리는 재·보선이 끝나면 통합신당 추진에 속도가 붙으리라 생각합니다.

    신안·무안에서는 김홍업씨의 무소속 출마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민주당 대신 무소속을 택한다는 것은 통합신당에 탄력을 주기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민주당 후보가 되면 민주당 독자생존을 지지한다는 얘기가 되니까요. 대전 서을은 국민중심당 심대평 대표가 이미 뛰고 계신 줄 압니다. 한나라당 후보와의 일전을 위해 민주당, 열린우리당에 간접적으로 후보를 내지 말아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화성에 대해서는 민주당, 국중당 쪽에서 ‘열린우리당이 알아서 하라’는 공감대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민주당의 상징인 한화갑 전 의원 지역구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또 열린우리당은 화성에서 지면 원래 갖고 있던 두 개의 의석(대전 서을, 경기 화성)을 모두 내놓게 되는 결과가 예상됩니다. 이렇게 되면 열린우리당은 지도부의 전략 수정, 즉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하는 대통합’ 노선의 대폭 변경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결국 당이 둘로 나눠질 것으로 봅니다.”

    ‘포스트 열린우리당 디자이너’ 이강래 의원
    ▼ 노선과 이념에서 기존 정당과 차별화가 가능할까요.

    “‘중도’라는 게 이념이나 ‘이즘’으로 설명될 수 있냐는 데 대해 이견이 있는 줄 압니다. 그럼에도 통합신당은 중도를 표방할 겁니다. 다만 여기서 ‘중도’라는 건 미국 민주당 정도의 노선을 뜻합니다. 공화당과 비교해보면 정책에서 중복되는 부분도 많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컨서버티즘’과 ‘리버럴리즘’의 미세한 차이가 보입니다. 예전 열린우리당의 정제되지 않은 행태들은 과감히 버려야겠죠. 유권자 쪽에서 본다면 현재 여당보다는 약간 오른쪽에 위치할 겁니다.

    대선에서 내세울 구호는 ‘업그레이드 코리아’ ‘선진 한국’이 될 것입니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에서 쓰던 것이 ‘뉴 코리아’ ‘다이내믹 코리아’인데 여기서 한 발 더 나간 것이라고 보면 되겠죠. ‘업그레이드’ ‘선진’과 비슷한 개념을 한나라당과 뉴라이트 등에서도 쓰는 줄 압니다.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시대정신에 맞는 콘셉트 자체를 배제할 순 없죠.”

    ▼ 열린우리당 사수파, 개혁당파, 친(親)노무현 그룹은 철저한 배제 대상입니까.

    “작은 차이를 확인하기보다 동질성을 찾고, 과거를 들춰내기보다는 미래를 봐야 하며, 뺄셈·나눗셈이 아닌 덧셈·곱셈의 정치를 하자는 게 신당의 목표입니다. 다만 ‘탈(脫)노무현당’ 역시 현재 정치 지형상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기도 합니다. 판단은 그분들이 알아서 하시겠죠. 끝까지 열린우리당에 남는, 노 대통령 관련 ‘코어 그룹’에 속한 분들과는 자연스러운 결별이 이뤄질 겁니다. 이 분들이 독자적인 후보를 옹립하다가 잘 안 돼서 나중에 우리쪽과 연합 형태를 제안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상황들은 변수가 많아서 지금 논할 단계가 아닙니다.”

    이번 대선 최대 변수도 ‘지역’

    ▼ 호남·충청 연합은 이번 신당에도 주요한 가치가 되겠네요.

    “결국은 지역, 이념, 세대 순으로 표가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노 대통령이 이념과 정책으로 가자고 했는데, 결국 그게 가장 큰 잘못이 된 셈이죠. 열린우리당이 전국정당을 선언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전국 어디에서도 지지를 못 받는 정당이 됐습니다. 전통 구도를 복원해야지요.”

    ▼ 그런 걸 ‘공학적인 접근’이라며 폄훼하는 세력도 있는데요.

    “현실정치, 아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열린우리당이 호남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결정타를 맞은 게 2005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 때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호남에 가면 열린우리당 비난하시는 분이 열에 셋 있다고 할 때 꼭 두 분쯤은 우리를 지지했고, 이 때문에 균형이 맞았거든요. 그런데 지난해 5·31 지방선거 때 가서 보니 열에 여섯 정도가 비난을 하는데, 말리는 쪽에는 한 분도 없더군요. 오죽하면 ‘마지막 텃밭’이라던 전북에서도 선거기간이 며칠만 더 길었으면 민주당에 도지사를 뺏겼을 거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대통령의 리더십 위기, 말 실수, 대(對) 언론정책 실패로 인해 실제보다 더 쌓여만 가는 부정적 이미지 등 어느 것 하나 희망의 신호가 없는 형국입니다. 개헌만 해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중요하고 옳다 해도 대통령은 실현 가능성 없는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상식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국민을 보세요. ‘취지는 동의하지만 지금은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걸 보면 노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국민은 이런 상황이라면 개헌 제안을 거둬들이는 대통령을 원합니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계속 강요하고 있죠. 노 대통령이 극복 못하는 한계가 거기에 있습니다. 지금의 열린우리당 안에서는 그런 한계를 계속 공유해야 하는, 더 큰 한계가 있는 겁니다.”

    ‘포스트 열린우리당 디자이너’ 이강래 의원

    2000년 이강래 의원(왼쪽)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특보를 하던 시절. 이 의원은 당시 DJ의 ‘정치감각’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 한나라당 후보군에 대한 열세를 반전시킬 계기가 있을까요.

    “이제부터는 한나라당 처지에서 큰 폭으로 지지율을 올리기 힘든 시점 아닙니까. 통합신당이라는 새로운 집이 5월말~6월초에 출범하면 정당지지율은 20% 정도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신당이 일단 꾸려지고 난 뒤 오픈 프라이머리에 참여할 후보들이 가시화할 텐데, 통상 유력 후보들은 당 지지율보다 높은 25% 정도에서 시작할 겁니다. 상대당 유력 후보는 55%쯤까지 각오하고 있어요. 거기서부터 본격적인 대권 레이스는 시작됩니다. 일단 선거구도가 1대 1 대결구도로 만들어지면 시간이 갈수록 격차는 좁혀질 겁니다.”

    ▼ 오픈 프라이머리에서 어느 정도의 흥행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지지율 3%를 넘는 후보가 없다는 게 오히려 결정적인 흥행요소라고 보고 싶어요. 그야말로 ‘깜짝스타’가 출현할 여건이 조성된다는 건데, 그러자면 드라마 같은 요소가 많이 가미될 겁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추대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우리로선 ‘추대’하는 순간 당의 미래는 없어진다고 보고 있어요. 불확실성에서 나오는 긴장을 최대한 살려야 하며, 한나라당 후보경선보다는 최대한 늦게 완료되는 게 바람직합니다. 정기국회가 열리기 직전, 9월 중순쯤 진행돼도 별문제가 없을 겁니다.”

    정운찬 정치감각 탁월

    ▼ 정운찬 전 총장이 통합신당의 오픈 프라이머리 후보로 나설까요.

    “정 전 총장이 결단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세상이 간절히 바라고 있지 않습니까. 서울대 총장까지 하신 분이 학문적으로 더 이룰 게 뭐가 있겠습니까. 탈 노무현 정당을 지향하는 신당 처지에서는 정 전 총장이 적합한 후보입니다. 현재 여권에서 거론되는 후보군 중에서 노 대통령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정 전 총장 아닙니까. 참여정부의 실패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인물이고요. 참여정부를 한나라당 못지않게 비판해왔지만 한나라당 쪽 인물은 아니라는 것도 우리 쪽에는 호재입니다.

    그가 충청도 출신이기 때문에 호남 출신 후보가 나오는 것보다 표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충청 후보 대망론’이란 게 이번에는 상당히 휘발성 있는 소재로 작용할 겁니다. 민주화 이후 ‘이제는 한 번 할 때가 됐다’는 게 지역주민들로부터 상당한 설득력을 얻거든요. 분위기에 따라 1997년, 2002년의 호남·충청 연합구도를 능가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지금은 호남 민심(民心)이 분열돼 있고, 이런 구도가 지속된다면 호남에서 한나라당 후보의 두 자리수 득표율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판이 바뀌어 충청권에서 표 응집현상이 일어난다면 호남에서는 곧바로 연동되게 돼 있습니다. 지금의 호남은 열패감, 실망감 때문에 진정한 표심(票心)이 가려져 있는 형국입니다.”

    ▼ ‘초보 정치인’이라는 우려도 있는데요.

    “정 전 총장은 스승인 조순 전 시장을 도와 서울시장선거에서 기획을 맡았던 분입니다. 그때 그분의 감각이 참 훌륭하다고 생각했어요. 서울대 총장선거 보세요. 뒤늦게 출마한 열세를 딛고 한 달 만에 역전에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교수사회라는 게 어지간한 정치판은 저리가라입니다. 다른 후보들은 1년씩 준비해도 고배를 마시는 곳이에요. 그런데서 단기간에 리더십과 융화의 능력을 발휘한 점을 과소평가할 이유는 없습니다.

    문제는 오픈 프라이머리에서 본선까지의 과정입니다. 언론과 시민사회에서도 검증을 할 것이고, 당원들에게도 본인의 자질을 제대로 보여줘야 하는 숙제가 있겠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과정이니까 그 부분만 잘 넘기면 다른 후보들보다 훨씬 경쟁력이 있다고 봐요.”

    ▼ 한나라당 후보의 어떤 점을 공략하면 승산이 있을까요.

    “한나라당이 자충수를 두고 있다는 점이 저희로서는 고무적입니다. 한나라당은 국회의원 공천에 미치는 대표의 영향력이 저희보다 큽니다. 소속 의원들은 내년에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에 다음 총선에서 자기 밥줄이 걸려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죠. 그러니까 지금부터 치고받고 싸우는 것이고요. 이런 예견된 ‘절대권력’ 앞에서 벌어지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패싸움은 한층 심해질 겁니다. 얼마 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비리의혹을 폭로한 정인봉씨나 김유찬씨 모두 저희 쪽과 아무 관계도 없는 분들이잖아요.

    한나라당도 딜레마겠죠. 7월에 후보 경선을 마치자니 2002년처럼 될까봐 불안한 겁니다. 당시에는 후보가 연초에 확정되지 않았습니까. 지지율 50%대로 순항하다가 4~8월이 되며 35%대로 가라앉았고요. 이회창씨가 한나라당 후보로 뒤늦게 치고 올라오고, 그보다 늦게 정몽준 후보가 부상하면서 9~10월에는 17%대까지 내려앉았습니다. 후보 단일화가 없었다면 지지율 하락을 막을 방법이 없었을 거예요. ‘더 보여줄 것이 없다’는 게 우리 선거에서는 치명적으로 작용합니다. 그렇다고 9월까지 한두 달이라도 끌어보자니 앞서 말씀드린 내부 갈등 관리가 안 돼서 결국 후유증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 겁니다.”

    ‘네거티브’에선 꿀릴 것 없다

    ▼ 최근 한나라당 유력후보들도 ‘네거티브 한방이면 끝난다’는 발언을 하셨죠.

    “무슨 근거가 있냐고 자꾸 묻는데,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 겁니다. 아시다시피 선거라는 게 ‘내가 당선돼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 포지티브 캠페인과 ‘다른 후보가 당선되면 안 되는 이유’를 말하는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이뤄지지 않습니까. 허위사실 유포나 폭로가 문제이지, 사실에 근거한 검증은 당연히 해야 하겠죠.

    세계 어느 나라 대통령선거에서나 이런 정당한 네거티브 캠페인은 벌어집니다. 얼마 전 미국 민주당의 대권주자 중 한 명인 오바머 후보도 언론의 검증 때문에 19년 전 대학생 때 교통범칙금 안 낸 사실까지 드러난 바 있죠. 선거를 하다보면 유권자는 포지티브 캠페인에 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까놓고 말해 언론에도 ‘기사가 되는’ 것은 네거티브 쪽일 수밖에 없습니다.

    잘은 몰라도 재산, 병역, 가족, 가치관 등에 대한 네거티브 캠페인이 벌어진다고 볼 때 우리 후보가 누가 되든 상대당 후보보다 불리하지는 않을 겁니다. 반대로 한나라당 후보들은 어느 분이 나와도 간단치 않을 거예요.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겪은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을 겁니다.”

    ▼ ‘선거기획 전문가’의 시각에서 이명박, 박근혜 후보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상대하기에 누가 좋고 나쁠 게 없어요. 이명박씨는 상품가치로만 보면 좋은 요소를 많이 갖고 있죠. 라이프 스토리만 봐도 ‘코리안 드림’이 연상되죠. 서울시장 하면서 청계천이나 버스중앙차선제처럼 가시적인 업적을 이룬 것 또한 큰 자산일 겁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현대건설 다루듯이 대한민국을 운영할 수 있을까, 한미FTA 시대에 1970년대식 개발논리를 앞세우는 것이 옳은 선택인가 하는 의문이 들고, 무엇보다 지금 그 정도로 부자가 된 과정에 대해 궁금증이 많습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인기는 본인보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많이 작용하는 거라고 봅니다. 당 대표하면서 보여준 리더십이 상당했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비칠 만한 이미지가 앞으로 발목을 잡지 않을까요? 지금처럼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남북 문제를 대하는 데 있어 시각이 한쪽으로 치우친 듯하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지금 구도 바꾸면 필승’

    인터뷰 초기에 이 의원이 강조한 ‘이대로 가면 필패’는 결국 ‘지금 구도를 바꾸면 필승’이라는 논리로 정리됐다. 처음엔 경제정책이 이슈를 선점하지만 결국엔 개인 검증에 관한 네거티브 이슈들이 유권자의 표심을 가를 것이라든지, 이번 대선도 ‘지역’에서 승부처를 찾는 후보가 이길 것이라는 예상은 설득력이 꽤 있다. 적어도 통계적으로 보면 정확한 접근이라 할 만하다.

    때마침 점차 가시화하는 6월 혹은 8월의 남북정상회담설은 이 시기에 통합신당 출범과 오픈 프라이머리 ‘오픈’을 계획하고 있는 여권엔 더없이 반가운 소재다. 종전(終戰) 합의, 경제교역 확대, 핵 폐기 선언 등 정상회담 선언문에 들어갈 조항에 대한 ‘카더라’발(發) 풍문은 물론, ‘DJP보다 강력한 DJI(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지칭) 연합’이란 조어들이 벌써부터 나돌고 있다.

    유권자 처지에서 이번 대선의 관전 포인트는 조금 더 늘어난 느낌이다. 먼저 이 의원의 호언대로 4월25일 재·보선 이후 열린우리당이 와해되고 통합신당 추진이 급물살을 탈지 지켜보는 게 순서다. 나아가 통합신당파가 현재의 불리한 정치지형을 딛고 ‘탈(脫)노무현, 비(非)열린우리, 비(非)민주’색을 가진 ‘참신한 인물’군을 6월말까지 신당에 참여시킬 수 있을지, 그 사이에 남북정상회담은 어떻게 정리될지 지켜봐야 이후의 ‘대선 구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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