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찻잔 속은 그렇게 고요하지만은 않다. 자칭 타칭 여권의 기획통으로 불리는 이들이 ‘새 판’을 짜기 위해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구도가 형성되지 않은 채 섣불리 ‘인물’로만 맞서기에 지금 여권은 너무 무기력하다.
범여권의 이른바 ‘통합신당’ 밑그림을 디자인하고 있는 이강래(李康來·54) 의원도 이들 중 한 사람이다. 정치권에서는 지난 2월 23명의 열린우리당 의원이 집단탈당할 때부터 ‘이강래 프로덕션의 작품’ ‘이강래 각본, 정동영 감독, 김한길 주연’이란 말이 나돌았다. 이 의원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지지율 고공비행 중인 한나라당 후보들을 향해 “네거티브 한 방이면 끝날 수도 있다”고 발언,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 의원은 1990년대 민주당 총재 기획특보에서부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거치며 7년 넘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생활을 했다. 2002년 대선 때도 민주당 대선 전략기획실장을 맡는 등 지난 세 차례 대선에서 모두 기획업무를 맡았고, 두 차례의 서울시장 선거전략을 짜는 데도 깊이 관여했다. 이 의원을 만나 통합신당 구상과 이에 연동될 것으로 보이는 대선 판도 변화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들어봤다.
‘한나라당 절대권력’의 두려움
▼ ‘이대로 가면…’에 대한 여권의 위기의식이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선거용 탈당이니 기획 탈당이니 하는 비판이 있습니다. 솔직히 일정 부분 수용합니다. 다만 우리로서는 ‘그보다 더 큰 재앙이 예견되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말씀드릴 수밖에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나라당 지지율이 52%까지 나와요. 나머지 4개 정당을 전부 합쳐야 24%로, 절반도 안 됩니다. 2004년 탄핵 당시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딱 2주 동안 52~53% 나온 적이 있고, 17대 총선 직전에는 45% 안팎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과반 의석을 얻었지요.
어찌 보면 지금 국회의원들에게 더 큰 문제는 대선이 아니라 차기 대통령 취임 50일 후에 치러지는 18대 총선입니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 때 시·도지사의 75%, 기초단체장의 67.4%를 한나라당이 싹쓸이했잖아요? 1990년 3당 합당 때 일시적으로 민자당 의석이 217석이 되면서 전체 의석의 73%를 차지한 적이 있는데,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에선 한나라당이 의석의 80%를 가져갈 겁니다. 대통령 취임 직후 국민지지율이 최고점을 찍는다는 건 상식이지 않습니까. 과반수 정도가 아니라 개헌 저지선까지 가는, 그야말로 제왕적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고,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여당이 탄생하는 것은 물론 한국의 정당정치는 실종되고 말 겁니다. ‘민주독재’ 시대가 열릴 거예요.
일본에서는 이미 1993년 중의원선거에서 사회당이 몰락하면서 사회 전체가 급격히 보수우경화한 바 있고, 견제세력의 복원이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저희로서는 정치지형 변화를 통해 선거구도를 바꾸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이번 대선에 지더라도 근소하게 져야 그나마 미래가 있다는 게 우리의 절박한 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