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호

“주둔비 부족하다”는 주한미군, 금융권에 8000억 예치·운용

잠자는 한국 방위비 분담금… 날린 이자만 1000억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7-04-09 1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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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정부가 지급한 방위비 분담금의 상당부분과 시설 건설비용이 2002년부터 서울과 미국의 금융권에 예치돼 있었음이 확인됐다. 주한미군사령부는 그중 일부에서 이자수익을 거둬왔음을 인정했다. 지난해 11월 청와대와 국방부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지만, 진행 중이던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이를 활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이 일본식 지급방식을 택했다면 이자만도 엄청나게 절감할 수 있었다. 과연 ‘건강한 동맹’이란 무엇인가.
    “주둔비 부족하다”는  주한미군, 금융권에  8000억  예치·운용

    2006년 11월29일 외교통상부에서 열린 방위비 분담금 협정 체결을 위한 6차 협상. 우리측은 조태용 외교부 북미국장을 수석대표로, 미국측은 로버트 로프티스 방위비협상대사 등이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여의도와 강남의 금융가에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가을이었다. 주한미군이 수천억원대의 자금을 서울에서 운용하고 있으며, 이를 유치한 회사들이나 그로부터 재투자를 받은 회사들은 희색이 만면하다는 내용이었다. 매년 1000억원에 육박하는 자금이 꼬박꼬박 쌓이는데, 자금이 들어오는 시점이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에 방위비 분담금을 지급하는 일자와 대략 맞아떨어진다는 것. 뒤집어 말하면 주한미군사령부가 방위비 분담금의 상당부분을 사용하지 않은 채 금융권에 맡겨두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러한 사정은 11월 무렵 청와대와 국방부에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까지 관련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국방부는 주한미군에 관련사실 확인을 요청했고, 주한미군사령부는 수일 후 관련 내용을 대부분 인정하는 취지의 설명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한미군이 금융기관에 맡겨놓은 자금의 규모는 대략 8000억원 안팎이라고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들은 말했다. 이 금액은 금융권 관계자들을 통해서도 교차 확인되며,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미 국방부 재무제표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주한미군은 그간 여러 차례에 걸쳐 한국 정부의 방위비 분담금이 부족하다는 공개발언을 했다.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은 올들어 1월18일 외신기자클럽 초청연설에서 “한국이 주한미군 예산의 41%만 분담하기로 해 3%(1000억원)가 부족하다”며 “심각한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달 내에 한국인 고용원과 군수 보급물자 등에 대한 감축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또 3월7일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균형된 방위비 분담은 ‘동맹의 힘’과 관련해 기본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정부 일각에선 방위비 분담금의 상당부분이 금융권에 맡겨져 있다는 소식을 마침 진행 중이던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한국측의 지렛대로 활용할 만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국방부 등 주무부서는 ‘방위비 분담금은 이미 미군에 지급된 돈이므로 사실상 미국의 예산’이라는 취지에서 이 문제를 협상과 연계하지 않는다는 최종 방침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직후인 12월6일 한미 양국은 미국측과 2007년도 분담금을 7255억원, 2008년도 분담금은 이에 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액수로 확정하고 협상을 마무리했다. 2006년도 분담금에 비해 451억원가량 늘어난 규모였다.

    흥미로운 것은, 금융권에서는 맡겨진 자금 가운데 상당부분이 부동산 관련 펀드에 투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주식이나 채권과 비교할 때 부동산에 대한 투자는 국내 정서상 사뭇 의미가 다르다. 8000억원이라는 자금규모를 감안하면 한국 정부 예산에서 지급된 자금이 주한미군을 거쳐 부동산 가격 상승에 일조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 투신권 관계자들 사이에는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이 국제적인 부동산 투신업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말도 나왔다. 예를 들어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고문으로 일하는 칼라일그룹의 경우 부동산 등을 비롯한 4대 부문에서 550억달러를 운용하는 대표적인 사모펀드 회사다.

    주한미군司 “자금 예치는 사실”

    “주둔비 부족하다”는  주한미군, 금융권에  8000억  예치·운용
    관련내용을 확인한 ‘신동아’는 3월9일 국방부와 주한미군사령부의 설명을 듣기 위해 공식 질의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측은 3월14일 “주한미군 관련 사안이므로 주한미군사령부가 답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논평하지 않겠다는 답을 보내왔다. 같은 날 주한미군사령부 김영규 공보관은 기자와 만나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주한미군이 한국의 금융권에 적지 않은 규모의 자금을 예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 구체적인 액수를 우리가 확인해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예치한 자금은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2002년 무렵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미군 시설의 위치를 변경하면서 그에 따라 발생한 시설 신축자금으로, 이는 방위비 분담금과는 무관하다. 한국 정부로부터 원화로 지급받은 이 돈은 평택으로 이전하는 미군기지에 새로 시설을 지을 때 사용할 예정이다. 평택 이전이 늦어짐에 따라 자금은 한국의 금융권에 맡겨져 있고 주한미군이 그 수익을 얻고 있으나, 이율이 높은 수준은 아니다.

    다른 한 부분은 2002년 이후 한국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으로 주한미군에 지급한 돈이다. 그러나 이 돈은 이자가 발생하지 않는 계좌에 들어 있다. 미국 내 관련법이 방위비 분담금으로 받은 돈으로 이자수익을 얻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이 돈은 군사시설 건설자금 용도로 지급된 것으로 평택기지와 군산기지 건설 마스터플랜에 대한 한국 정부와의 협상이 늦어짐에 따라 아직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 또한 추후 기지건설 과정에 사용될 것이다.”

    김 공보관은 “이자가 발생하는 자금과 발생하지 않는 자금 비중을 밝혀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구체적인 예금 명세와 금융기관명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답했다. 다만 “방위비 분담금에서 나온 자금은 한국 금융권과 미국 금융권에 분산돼 있다. 한국 정부가 원화로 지급한 분담금은 한국 금융권에, 달러화로 지급한 분담금은 미국 금융권에 예치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방위비 분담금으로 받은 돈과 다른 명목으로 받은 돈은 명백히 구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벨 사령관은 앞서의 외신기자클럽 연설에서 “방위비 분담금(가운데 군사시설 건설비)의 50% 이상을 2사단을 평택으로 이전하는 데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02년 이후 한국 정부가 지급한 방위비 분담금 중 군사시설 건설비(MILCON)는 총 1조2000억원 규모. 그 가운데 달러화로 지급된 돈은 총 9080만 달러다. 벨 사령관의 발언과 김 공보관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달러화로 지급된 돈 전액이 미국 금융권에 예치됐다고 가정해도, 한국의 금융권에는 방위비 분담금 가운데 최소한 5000억원 내외가 예치된 셈이다.

    이 같은 계산은 미 국방부 웹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2007회계연도 1분기 재무제표’와도 대략 맞아떨어진다. 이에 따르면 2007년 1분기 현재 미 국방부의 달러화 현금보유액은 1조6589억달러이고 외환보유액은 8억3105만달러다. NATO와 일본은 방위비 분담금을 현금으로 지급하지 않으므로 외환보유액의 대부분은 한국 정부가 지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미 국방부 웹사이트에 있는 이전연도 회계자료를 보면 보다 분명해진다.

    2000년 6660만달러, 2001년 6890만달러에 불과하던 외환보유액은 2004년 2억1691만달러, 2005년 4억7950만달러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02년부터 방위비 분담금을 쌓아왔다는 주한미군사측 설명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2006년 같은 기간 외환보유액이 4억4106만달러였던 것이 ‘주로 한국 정부가 제공한 건설비용 3억2420만달러로 인해 증가했다’는 재무제표의 설명도 현재 외환보유액 대부분이 주한미군의 원화 예치자금임을 방증한다. 2006년 한국 정부가 제공한 MILCON 가운데 절반이 평택기지용으로 예치됐다면, 전년도 외환보유액과 합해 5000억원대의 원화를 예치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한국 금융권을 통틀어 맡겨진 주한미군의 원화자금은 8000억원 안팎, 그 가운데 평택기지 건설을 위해 쌓아둔 원화자금이 5000억원대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와는 별도로 한국 정부가 달러화로 지급해 주한미군이 미국 은행에 맡긴 방위비 분담금은 최대 800억원대까지 가능하다. 다만 미 국방부 재무제표는 달러화와 외환보유액을 총액으로만 적시하고 있어 투자대상 등 세부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주둔비 부족하다”는  주한미군, 금융권에  8000억  예치·운용

    1월18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 초청연설에서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주한미군의 심각한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달 안에 한국인 고용원 등에 대한 감축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주한미군측이 ‘이자를 지급받지 않는다’고 밝힌 자금의 경우, 수천억원의 예금을 맡은 해당 금융회사들은 이를 운용해 발생한 수익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한국 정부가 지급한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이 시쳇말로 ‘금융회사들의 눈먼 돈’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애초에 금융권에서 ‘주한미군 자금 8000억원’을 두고 구설이 생긴 것은 바로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사가 금융기관명 밝히기를 거절했으므로 정확한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자금을 맡길 회사를 선정한 원칙이 무엇인지는 그 투명성을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 전문가는 “한국 정부기관이 이렇게 자금을 운용했다면 당장 ‘게이트’ 의혹이 터져 나올 일”이라고 말했다.

    자금이 부동산 관련 펀드에 투자된 듯하다는 의혹에 대해, 법무법인 자하연의 김윤재 미국 변호사는 “미국 정부기관은 미국내에서는 자금을 운용하는 데 있어 엄격한 제한을 받는다. 불법적인 일은 물론 국가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운용은 금지돼 있다”고 설명한다. 물론 주한미군이 맡긴 돈이 한국의 부동산에 투자됐다면 미국 국외의 일이므로 법 위반은 아니지만, 우리 처지에서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에 대한 ‘신동아’의 추가질의에 주한미군사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우선 이자가 발생하지 않는 자금의 경우 자금을 맡은 회사들이 수익을 얻고 있는지 아닌지, 수익을 얻고 있다면 어떤 부분에 투자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자를 지급받지 않는 주한미군은 관여하지도, 파악하지도 않고 있다. 다만 불법적인 일이 없었음은 분명히 확인해줄 수 있다. 해당 금융기관을 선정하는 과정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이자가 발생하는 자금의 경우 돈을 지급한 한국 정부 담당부처와의 상의하에 계좌를 지정했고 지금도 그대로 있다.”

    “주둔비 부족해 470명 해고”?

    문제의 원인은 이들 자금이 소요시점보다 앞서서, 그것도 전액 현금으로 집행됐다는 데 있다.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에 현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주한미군의 소요를 제기 받은 한국 정부가 직접 건설계약을 하는 방식이었다면 이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리 없다.

    2002년부터 4년간 꾸준히 누적된 잔고가 8000억원이라면, 정기예금 복리이자 5%만 적용해도 최소한 1000억원 안팎의 이자가 발생한다. 전액 현금으로 지급하는 대신 한국이 건설계약의 주체가 되는 현물지급 방식이었다면 1000억원 내외의 이자는 고스란히 한국 정부 예산으로 귀속됐을 것이다.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현금으로 미군 시설비를 지원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방위시설청이 직접 건설계약을 맺는 현물지급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자금 운용의 적절성 여부를 제외하고도 짚어봐야 할 부분은 남아 있다. 먼저 ‘주둔비 부족’에 관해 그간 한미 정부당국이 밝힌 언급들이다. 앞서 설명한 벨 사령관의 발언 외에도, 지난해 12월6일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마친 뒤 외교부 당국자는 “2004년도 협상에서 분담금을 줄였더니 주한미군의 인건비가 줄어 한국인 근로자 470여 명이 해고되고 시간외근무수당 등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며 “이번에 증액된 대부분은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에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중앙일보’ 2006년 12월7일자).

    고용인원을 해고해야 할 만큼 극심한 비용부족 상태와 수천억원대 자금의 예치는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다. 금융권에 맡겨 이자를 받을 정도로 재량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돈이었다면, 인원해고를 막기 위해 쓸 수는 없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 김영규 주한미군사 공보관은 “인건비 문제와 관련해 주한미군사는 공식적으로 그런 설명을 한 적이 없으며, 자금이 부족해 한국인 직원을 해고한 사실도 없다. 다만 분담금 규모가 충분치 않으면 고용인원이 은퇴하는 등 자연감소가 생겨도 이를 충원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테이블에 마주앉는 두 기관의 말이 다른 것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일까.

    방위비 분담금, 어떻게 구성되나

    현금지급 비율 꾸준히 증가해 78%


    1991년부터 현금으로 지급되기 시작한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의 주둔에 관련된 경비 일부를 한국 정부가 부담함으로써 동맹관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첫해 1073억원이던 규모는 꾸준히 증가해 현재는 그 7배 규모다. 방위비 분담금은 크게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한국인 고용원의 인건비, 미군이 사용할 군사시설 건설비(MILCON), 한미 양국군이 공동으로 사용할 연합방위력증강사업(CDIP), 한국군이 미군에 제공하는 탄약관리 등 7개 분야의 군수지원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인건비와 MILCON은 현금으로 지급하고, CDIP과 군수 부분은 현물로 지원한다. MILCON은 한국 정부가 미군에 자금을 지급하면 미군이 계약주체가 되어 건설공사를 진행하는 반면 CDIP 사업은 한국 정부가 계약주체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현금지급 비율이 현물지원에 비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 1995년 61%이던 현금비율은 2006년의 경우 78.48%로 늘었다. 특히 현물로 지급되는 CDIP의 경우 전작권 전환에 따라 ‘연합’의 개념 자체가 사라지면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어, 현재의 총액기준 협상방식이 유지된다면 현금지급 비율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통상 봄에 시작해 6차례의 협의를 거친다. 협상마다 이번 협상결과가 언제까지 유효한 것인지를 결정하기 때문에 몇 년마다 협상을 하는지는 가변적이다. 5월에 시작한 2006년 협상의 경우 유효기간을 2년으로 정해 다음 협상은 2008년 봄에 열릴 예정이다. 협상의 한국측 주무부처는 그간 국방부가 맡아왔지만, 지난번 협상부터 외교통상부 북미국으로 바뀌었고 국방부는 지원업무를 담당한다(미국의 경우는 국무부 방위비협상 전담대사가 따로 있다).

    12월19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친 이번 협상결과는 3월2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상정됐다. 통외통위는 심사과정에서 자금운용의 투명성 미비와 분담금의 기지이전 전용부분을 문제점으로 지적했지만, ‘현실적인 차질을 고려해’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본회의에 계류된 비준안은 임시국회가 공전됨에 따라 3월15일 현재 아직 처리되지 않고 있다.


    또 하나 짚어야 할 쟁점은 기지이전 비용의 부담주체 문제다. 지난 수년간 기지이전 관련협상을 진행하면서 한국 정부는 “한국이 이전을 요구한 용산기지는 한국이 비용을 부담하고, 미국이 이전을 결정한 의정부 2사단은 미국이 비용을 부담한다”는 원칙을 밝혀왔다. 용산기지 이전비용 외의 방위비 분담금도 평택기지 건설 등 이전비용으로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언론의 의혹 제기에 대해 청와대와 국방부 고위당국자들은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고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8000억원 자금에 대한 주한미군사의 설명은 한국 정부의 확언과는 배치된다. 예치한 자금의 상당부분이 방위비 분담금에서 왔고, 이들 자금은 평택기지 등의 건설비용에 투입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방위비 분담금의 50% 이상을 2사단을 평택으로 이전하는 데 사용할 계획”이라는 벨 사령관의 발언을 감안하면, 2사단과 용산기지 이전에 들어가는 돈으로 추정되는 10조원 가운데 80%가량을 한국이 부담하는 셈이다.

    주한미군사측은 이에 대해서도 “(주한미군사는) 2사단 이전에 방위비 분담금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밝힌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간 한국 정부가 밝힌 원칙은 한국 정부의 견해일 뿐, 주한미군측은 그에 동의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설명이다. 방위비 분담금에서 군사시설 건설자금으로 제공된 부분을 평택기지 건설에 사용하는 것이 주한미군으로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세부명세 확인이나 결산감사 불가능

    상황을 정리하면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해진다. 자금운용의 적절성뿐 아니라 인건비 부족에 대한 주한미군측 주장이나 2사단 이전비용으로의 활용 역시 한국 정부가 직접 사업주체가 되는 ‘현물제공’ 방식이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논란이다.

    다시 일본의 경우를 보자. 주일미군이 필요한 군사시설을 제기하면 일본 정부는 협의를 통해 건설 여부를 결정한다. 방위시설청은 직접 계약주체가 되어 일본 정부 명의로 대금을 지급한다. 반면 한국의 경우 미군이 필요한 군사시설을 정해 그 자금을 요청하면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거쳐 전액을 MILCON 자금 명목으로 현금 지급한다.

    인건비도 마찬가지다. 주일미군에서 일하는 일본인 고용원들의 법적인 고용주는 일본 정부다. 미군측이 이들에게 지급할 임금명세를 일본측에 제출하면, 미군기지가 있는 지방현청에서 임금을 지급한다. 따라서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정뿐 아니라 그 지급과정에서도 적절성을 점검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미군기지 고용원의 고용주는 주한미군사령부다. 미군측이 필요한 총 인건비를 알려주면 협상장에서 총액을 결정한다. 한국이 이를 매년 세 차례에 걸쳐 지급하면 주한미군사령부가 고용원들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일본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소요 베이스’로 진행된다면 한국은 ‘총액 베이스’로 진행된다. 일본의 경우 각 사업 하나하나를 바탕으로 자금의 규모를 점검하지만, 한국은 총액을 전년에 비해 얼마나 늘일지 혹은 줄일지가 협상의 쟁점이 된다. 더욱이 미국측은 총 주둔비용의 구체적인 구성항목별 금액과 산출근거 등 신뢰성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데다(2007년 ‘방위비분담금 비준동의안’에 대한 국회 통외통위 검토보고서), 자금이 제대로 집행됐는지 감사할 수도 없다. 주한미군측은 “현재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이 미군 인건비를 제외한 총 주둔비용의 41% 수준이며, 최소한 50%는 되어야 공평한 분담”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한국측으로서는 실제로 41%인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방위비 분담금을 현금이 아닌 현물로 지급하게 되면 그 외에도 여러 장점이 있다. 우선 주한미군의 기지 및 시설운영에 대해 정밀한 현황파악이 가능하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원치 않는 분쟁에 개입되는 상황을 염려하고 있는 현재로서는 긴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건비 역시 한국 정부가 지급주체가 되면 한국인 고용원들의 직업 안정성이 높아질뿐더러 이들을 여러 모로 활용할 수도 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깊이 연구한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남창희 교수의 말이다.

    “방위비를 분담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에는 총액 베이스를 택한 것이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소요 베이스를 택할 경우 항목이 너무 많아 분담금이 많아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규모가 줄어들고 대북억제보다는 동북아 전체의 지역안정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지금은 소요 베이스로의 전환을 검토할 시기가 왔다. 실제로 국방부가 이러한 방식 변경을 검토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실현되지 않는지 궁금하다.”

    건강한 동맹의 논리

    국방부 또한 이에 대해 문제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2월말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김장수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합리적으로 분담금 규모를 정할 수 있도록 앞으로 방위비 분담금을 공식(formula)에 의해 정하도록 협의하자는 데 (미국측과)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전작권 전환일정을 한국측 주장대로 마무리하고 돌아온 이번 방문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미국측 처지를 배려하고 대신 전작권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고 온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한 바 있다. 국방부가 검토하던 ‘소요 베이스’로의 변경문제가 이번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채택되지 않은 것과 관련해 곱씹어볼 대목이다.

    한편 주한미군사측은 “주한미군은 금융권에 맡긴 자금을 포함해 모든 관련 현황과 계획을 분기별로 한국 국방부에 제출해왔다”고 설명했다. ‘신동아’는 앞서의 ‘소요 베이스’ 변경문제와 함께 주한미군의 8000억원 예치 사실을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활용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국방부에 질의했다. 그러나 국방부 정책홍보본부측은 “검토 결과 답변하지 않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고만 밝혀왔다.

    앞서 설명한 대로 최근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 운용방식은 한국내 정서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총액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동안에는 애초의 취지에 맞지 않게 운용될 개연성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다시 남창희 교수의 말이다.

    “방위비 분담금과 기지이전은 별개의 협정에 따라 이행되는 만큼, 분담금을 기지이전에 쓰는 것 역시 원칙적으로 미국식 법 정신에 맞지 않는다. 원하는 대로 주면 고마워 할 것이라는 건 건강한 동맹의 논리가 아니다. 가급적 융통성을 줄여 미국측도 전용(專用)의 유혹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진정한 동맹의 자세일 것이다. 공연히 시빗거리를 남기는 것이야말로 동맹의 건강성을 해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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