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호

北 폐쇄-불능화-폐기 ‘쪼개기 전술’ 맞선 韓·美 ‘逆 쪼개기 전술’

先종전선언-後평화협정, 엇갈리는 속내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7-04-09 16: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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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지럽다. 2007년 봄, 한반도 주변의 급속한 해빙 무드는 지켜보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가 청사진일까. 섣부른 낙관과 미심쩍은 비관이 교차한다. 그러나 꼼꼼히 살펴보면 이미 가시권에 들어온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은 뚜렷이 구분된다. 이러한 구분을 가능케 하는 키워드가 최근 청와대와 정부 당국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의 분리’ 방안이다. 이제껏 평화협정이 체결돼야 가능한 것으로 생각했던 ‘전쟁의 종결’을 따로 떼어내 상징적인 수준에서나마 먼저 진행하자는 것이다.
    北 폐쇄-불능화-폐기 ‘쪼개기 전술’ 맞선  韓·美  ‘逆 쪼개기 전술’

    조명이 환하게 켜진 강원도 중동부 전선의 휴전선 철책 안에서 육군 승리부대 장병이 전방을 경계하고 있다.

    잘알려져 있듯 국제법적으로 6·25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53년 7월 체결된 정전(停戰)협정은 전쟁을 잠시 멈춰놓았을 뿐이다. 50여 년간 지속된 이러한 전쟁상태를 공식적으로 종결하려면 정전협정 당사자들 사이에 이를 대체할 평화협정이 체결돼야 한다는 것이 그간의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그러나 주요 당사자들끼리 “전쟁이 끝났다”는 선언을 발표하는 일을 먼저 진행하고 평화협정 체결은 다음 단계의 과제로 남겨두는 길을 택하면,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체적인 형태를 협의하기 위해 부딪쳐야 하는 여러 가지 난해한 쟁점 처리를 뒤로 미룰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조성렬 안보연구실장은 이를 두고 “종전(終戰) 선언으로 조기에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최대화하고, 이후 평화협정 논의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장애물은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사실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1990년대 후반 평화체제 문제를 논의했던 남·북·미·중의 이른바 ‘4자회담’ 당시에도 ‘상징적인 선언으로 전쟁상태를 끝내고, 대안적 평화체제 논의는 시간을 갖고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견해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이 최근의 한반도 상황에 맞게 구체적으로 적용되어 등장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 국가정보원 산하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 방안은 늦가을 무렵 청와대 안보실에 처음 정식으로 제출된다.

    이후 몇 차례 논의를 통해 다듬어진 구상이 청와대에서 “꽤 힘이 실렸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먼 길을 가야 하는 평화체제 논의 대신 일단 전쟁을 끝내는 상징적인 선언으로 조기에 ‘성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이 방안만이 향후 상황을 진행시키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정부 안에서 이에 대해 일종의 컨센서스가 있음을 부인하는 당국자는 없다.

    비슷한 시기, 워싱턴에서도 이에 힘을 실어주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다. 지난해 5월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필립 젤리코 전 국무부 자문관의 ‘발상의 전환’이 그것이다(292쪽 젤리코 전 자문관 관련기사 참조). 조지 부시 대통령은 11월18일 베트남 하노이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 폐기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6·25전쟁 종전 문서에 함께 서명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밝히고 나섰다. 외부적으로는 미 국무부 차원에서 준비된 일종의 ‘플랜’이 있음을 암시한 발언 자체의 무게가 화제가 됐지만, 한국측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을 분리해 생각하는 듯한 뉘앙스 역시 주요 관심 포인트였다.



    이후 진행된 1월 북미 간의 베를린 회동, 2월 6자회담의 진행상황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다. 한 정보당국 고위관계자는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의 분리를 포함한 다양한 아이디어에 대해 우리 정부가 (미국측에) 적잖은 노력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한 관련 실무자는 “북한이 핵 폐기를 초기 조치인 폐쇄와 다음 단계 조치인 불능화, 궁극적 핵 폐기 등으로 세분해 하나하나를 카드로 사용하는 ‘살라미 전술’을 택했듯, 미국과 한국도 상징적인 수준의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나누어 각각을 카드로 사용하는 ‘역(逆) 살라미 전술’을 사용할 수 있다”고 정리했다. 초기 조치의 완료를 종전 선언 논의의 시작과, 다음 단계 조치의 시작을 종전 선언 서명과, 궁극적 핵 폐기를 평화협정 체결과 각각 연계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가시적 성과’의 매력

    北 폐쇄-불능화-폐기 ‘쪼개기 전술’ 맞선  韓·美  ‘逆 쪼개기 전술’

    1953년 7월27일 오전10시 유엔군측 정전협상 수석대표인 해리슨 미 육군중장(왼쪽)과 북한측 수석대표인 남일 조선인민군 대장이 정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다.

    최근의 평화체제 관련 작업은 외교통상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관련 당국자들은 전한다. 미국과의 구체적인 조율은 외교부가, 아이디어를 다듬는 것은 국정원이 담당하는 모양새다. 지난 3월초 미국을 방문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만나고 돌아온 송민순 외교부 장관의 가방 속에 종전 선언 방안이 들어 있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13합의문 Ⅵ에 명기된 대로 ‘적절한 직접 당사국’들은 평화체제 문제를 다룰 별도의 포럼을 열게 된다. 종전 선언이 이뤄진다면 그간 개별적으로 진행돼온 논의는 이 포럼을 통해 공식화하는 단계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北 폐쇄-불능화-폐기 ‘쪼개기 전술’ 맞선  韓·美  ‘逆 쪼개기 전술’

    서명이 완료된 정전협정문.

    반면 평화체제 담당부서까지 갖춘 통일부가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한발 물러나 있음은 눈에 띄는 부분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2월27일 평양 남북장관급회담 참석을 앞둔 이재정 통일부 장관에게 “다른 말씀 마시고, 사전에 논의된 내용만 이야기하고 오시라”고 당부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는 종전 선언과 평화체제 등 관련 논의가 철저히 미국의 주도와 이에 대한 북한의 호응이라는 두 축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장관이 취임 이후 청와대와 사인이 맞지 않은 남북정상회담 추진 발언 등으로 몇 차례 구설에 휘말린 것도 영향을 끼쳤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분석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일련의 상황을 두고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6월 혹은 8월까지 남·북·미 3국의 6·25전쟁 종전선언 서명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북한이 순조롭게 2·13합의문의 ‘초기 조치’를 이행한 후 논의가 본격화하면, ‘다음 단계 조치’에 돌입하는 시점에는 종전선언에 대한 모멘텀이 충분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쟁 발발일인 6월25일 혹은 광복절인 8월15일을 선언 날짜로 검토하고, 사안의 비중을 감안해 ‘3자 정상회담’을 함께 갖자는 방안도 흘러나온다. 3국 정상이 모여 일단 상징적인 의미의 종전 선언을 발표하고 2·13합의문에 명시된 평화체제 관련 포럼에서 향후 평화협정 준비를 위한 갖가지 이슈를 논의하기로 힘을 실어준다는 것이다. 정상회담과 관련해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인 이 방안은, 그간의 남북정상회담 시나리오에 비해 국내 정치적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고 ‘전쟁의 종결’이라는 구체적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로서는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관계 당국자들은 설명한다.

    여기에 최근 국면 전개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미국 국내 정치 상황과 한국 국내 정치 상황은 ‘선(先) 종전 선언 방안’에 힘을 싣는다. 냉전 종식의 주역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동북아 냉전의 잔재’를 청산하고 싶은 부시 대통령의 속내와 안보에 있어 최소한이라도 결과물을 만들어야 다음 대선 국면에서 이라크 문제를 방어할 수 있는 미 공화당의 처지가 한 축이다. 다른 한 축에는 대선을 앞두고 분위기 전환을 바라는 청와대와 여권의 상황이 있다. 이들 모두에게 “공식적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은 끝났다”는 선언이 갖는 정치적 가치는 그리 간단치 않은 것이다. 이로 인해 대선에서 결정적으로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낼 수도 있음을 청와대가 간과할 리 없다.

    ‘아주 가까운 미래’

    이러한 이유로 인해 종전 선언의 가능성은 이미 가시권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 전문가와 당국자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그것도 짧으면 3개월, 길어야 5개월을 넘지 않는 ‘아주 가까운 미래’에 와 있는 셈이다. 문제는 정작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이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급변하는 상황 전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징적인 수준의 종전 선언’이 평화협정에 필요한 복잡한 문제를 뒤로 미룰 수 있는 카드인 것은 사실이지만, ‘공식적인 전쟁상태의 종료’인 만큼 그로 인한 상황 변화도 그리 간단치 않다. 특히 정전체제의 효력정지라는 측면에서 종전은 기본적으로 군사적인 이슈다. 50여 년간 유지되어온 한반도 주변의 군사구조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였던 유엔군사령부 문제가 있다.

    北 폐쇄-불능화-폐기 ‘쪼개기 전술’ 맞선  韓·美  ‘逆 쪼개기 전술’

    2006년 3월29일 충남 태안 만리포해수욕장에서 열린 한미합동군사훈련에서 한국군 해병대와 미군이 돌격장갑차로 상륙작전을 벌이고 있다.

    1950년 7월 유엔 안보리 결의 S/1588에 따라 수립된 유엔사는 공식적으로 16개 참전국의 연합조직이다. 다만 안보리 결의에 따라 통합군 사령관의 임명을 미국에 위임했을 뿐이다. 1953년 7월27일 유엔군 사령관과 북한인민군 사령관, 중국의용군 사령관이 정전협정에 서명한 이후 한국과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은 한반도에서 병력을 철수했고, 이후 반세기 동안 유엔사는 형식상의 조직체계만 남아 있을 뿐 사실상의 정전관리 임무는 유엔사령관을 겸임하는 주한미군사령관(겸 한미연합사령관)이 맡아왔다.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도 연합사령관에게 재위임한 상태. 정전협정에 의해 구성된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 역시 북한의 반발로 기능이 크게 훼손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각에는 전쟁의 종결이 선언된다 해도 유엔사를 반드시 해체할 이유는 없다는 견해도 있다. 이론상으로는 정전협정이 실효된다 해도 유엔사가 한반도 내에서 분쟁 예방을 위한 평화유지활동의 수행이라는 기능전환의 방식을 통해 계속 잔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로 국방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러한 논리에는 유엔사 해체 시점을 종전 선언이 아니라 평화협정 체결 이후로, 혹은 그 후에도 존속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깔려 있다.

    그러나 유엔사가 형식상 16개 참전국 파견인원으로 구성돼 있는 상황에서, 종전 선언 이후에도 한국과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이 계속 유엔사에 남으려 할지는 매우 의문스러운 것이 사실. 종전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유엔사의 폐지를 당연한 것으로 주장하고 조건으로 내세울 가능성 역시 매우 높다.

    공식적으로 유엔사를 해체하려면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국제법학계의 정설이지만, 유엔사의 실질적인 주체인 미국이 이를 추진한다면 안보리에서 추인하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주한미군사령관의 유엔사령관 겸직을 해제하고 유엔사에 파견한 지원인력을 철수하게 될 것이고, 유엔 사무국은 유엔사의 유엔기 사용 정지, 유엔사에 나와 있는 참전국 연락장교단 철수 등 구체적인 해체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되도록 빠른 시일 안에 유엔사를 해체하고자 하는 흐름과 종전 선언 이후에도 유엔사를 유지하고자 하는 흐름이 묘한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거칠게 말해 한국과 미국의 군 당국은 되도록 이를 유지하고자 하지만, 청와대와 백악관, 국무부는 종전 선언과 함께 유엔사를 해체하는 방안에 무게를 싣는 모양새다. “꼭 해체할 필요가 있느냐”와 “꼭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의 의견대립이다.

    두 가지 기능

    이 같은 대립을 좀더 정밀하게 들여다보려면 유엔사의 대표적인 두 가지 기능을 살펴봐야 한다. 하나는 정전협정을 준수·집행하는 ‘현재의’ 기능이며, 다른 하나는 유사시 한국 방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장래의 혹은 만일의’ 기능이다. 유엔사 해체 이후 한반도에서 돌발상황이 생기면 새로 대응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므로, 굳이 현재의 유엔사를 없앨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후자의 측면에서 유엔사가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는 견해의 근거로 제시되어온 것이 일본 내 미군기지 활용 문제다. 유엔사는 1951년 일본 정부와 교환공문을 맺고 한반도 유사시 일본 내 6개 주요 기지를 자유롭게 사용할 권리를 확보해둔 상태다. 북한의 남침이나 붕괴사태가 벌어질 경우 유엔사가 일본 내 미군기지를 근거로 신속하게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데, 유엔사가 해체되면 이러한 ‘즉각적인 개입’이 어려워진다는 것이 해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의 한 근거였다.

    그러나 이 부분은 미국과 일본이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하고 1999년 ‘미·일 물품역무상호제공협정 개정안’이 통과되어 미군이 일본 내 기지를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됨에 따라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남은 것은 정전관리 임무뿐인 셈이다. 그리고 바로 이 대목에서 유엔사 문제를 둘러싼 워싱턴과 주한미군사령부의 견해 차이가 드러난다.

    벨 사령관과 ‘파킨슨의 법칙’

    종전 선언으로 유엔사를 해체하는 경우, 이를 대체해 비무장지대 관리 임무를 맡을 군사관리기구의 창설이 불가피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학계에서는 다양한 연구가 진행돼 있지만, 쟁점은 과연 이 기구에 미국이 참여할지 여부다. 유엔사 해체 이후에도 현실적으로 미국의 참여가 불가피한 만큼 3자 공동기구를 새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남북군사회담 등 기존의 남북간 채널을 확대할 것인지로 요약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사실상 현재의 정전관리체계와 큰 차이가 없지만, 후자의 경우 미군은 정전관리 임무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이를 한국군에 넘겨주게 된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가 주한미군의 임무를 대북억제에서 벗어나 동북아 지역 전체를 담당하는 기동군화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현재 유엔군의 ‘모자’ 아래 맡고 있는 정전관리 임무는 사실상 거추장스러운 부분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임하는 동안 미국 정부는 북한과의 크고 작은 마찰에 모두 ‘직접 당사자’로 개입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워싱턴의 정책 부서들은 종전 선언으로 유엔사가 해체되면 대체 군사관리기구에는 되도록 미군이 개입하지 않는 방안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주한미군은 단순히 한미동맹에 따라 한반도에 머물 뿐, 유엔이라는 거창한 임무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심지어 미국측 당국자들은 종전 선언이 나오기 전이라도 정전관리 임무를 한국군에 넘기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한국측 담당자들에게 전해왔다. 전시작전권 문제를 협상한 지난해 하반기의 한미안보정책구상(SPI) 회의에서 미국측 관계자들은 전작권 전환으로 연합사가 해체되면 유엔사도 함께 해체하거나, 최소한 현재의 정전관리 임무는 한국군에 넘기는 방안을 꾸준히 제기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올해 2월7일 열린 SPI 회의에서도 한결같았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정작 유엔사령관을 맡고 있는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의 발언은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지난해 3월7일 벨 사령관은 미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유명무실한 상태인) 유엔사에 대해 미국 외 15개 참전국의 소임을 늘리고 유엔사가 유사시에 대비한 작전계획을 수립하는 데 참여시킴으로써, 유엔사를 진정한 다국적군 사령부로 만들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최근까지 벨 사령관은 유엔사 강화에 대한 소신을 피력하며, 전작권이 전환된 이후에도 유엔사를 통한 정전관리 임무 수행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이러한 벨 사령관의 강도 높은 의견표명에 대해 국무부 등 워싱턴의 당국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 미국측 안보부처 관계자는 “현재 주한미군사령부가 유엔사령부를 겸함으로써 누리고 있는 제도적 이점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정서가 깔려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사령관의 계급에서부터 유사시 군사분계선 접근권한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하향조정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듯싶다는 것이다. 최근 방한한 한 전직 미 국무부 관계자는 끊임없이 규모를 확장하고자 하는 관료조직의 속성을 가리키는 ‘파킨슨의 법칙’을 들어 이러한 분위기를 평하기도 했다.

    현재 주한미군사령관은 유사시 16개국 군대를 지휘해야 하는 유엔사령관을 겸임해야 하기 때문에 4성(星) 장군을 보임한다. 그러나 연합사에 이어 유엔사마저 해체되면 가뜩이나 병력이 감축되는 한국에 4성 장군을 두는 것이 펜타곤으로선 일종의 낭비에 가까워진다. 따라서 동북아사령부를 창설해 일본에 본부를 두고 주한미군을 이에 통합하는 방식 등으로 주한미군사의 지위를 조정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게 정설이다.

    특히 최근 들어 더욱 수위가 높아진 벨 사령관의 발언을 둘러싸고 일각에서는 “종전 선언과 평화체제 논의로 유엔사 해체가 한층 구체적인 이슈가 된 것에 자극받은 것 아니냐”고 분석한다. 미 행정부 내부의 관련논의를 확인한 벨 사령관과 주한미군 사령부가 더욱 강경하게 이 문제를 치고 나오는 것 같다는 시각이다. 이는 달리 해석하면 종전 선언과 평화체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의지가 태평양 건너 ‘격오지’에서도 실감할 만큼 강력하다는 뜻이다. 지금부터 살펴볼 한국의 상황, 즉 핵심 군사당국에서도 관련 논의가 충분히 공유되지 못한 듯한 서울의 분위기에 비춰보면 미국 내부의 정보순환과 상황대응이 한결 빠르다는 것을 방증하는 부분이다.

    “어떻게 하면 안 없앨 수 있을까”

    종전 선언의 다른 한 축인 한국은 유엔사 문제에 대해 과연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일단 청와대는 유엔사 해체에 대해 특별히 나쁠 것 없다는 분위기임이 감지된다. 오히려 향후 유엔사를 강화하겠다는 주한미군측의 움직임이 사실상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유엔사를 통해 유사시 ‘사실상의 작통권’을 행사하려는 의도는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이 사실.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종전 선언이나 평화체제 논의의 ‘극적 효과’를 최대화하려면 유엔사 해체 같은 가시적인 조치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인식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까지 청와대 안보분야에서 일한 한 고위관계자는 “전쟁상태가 종결된다면 유엔사 해체는 당연한 순서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국방부와 합참의 견해는 이와는 사뭇 차이가 있다. 일단 정전관리 임무를 미군 없이 한국군 단독으로 맡는 상황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미군이라는 완충장치 없이 북한군과 크고 작은 마찰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여기에는 이러한 시스템이 한반도에서 위기를 관리하는 데 현재보다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깔려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방부 정책실을 중심으로 제도화된 종전 및 평화체제 관련 검토작업은 대부분 ‘유엔사가 해체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보다는 ‘되도록 유엔사를 해체하지 않을 방법은 무엇인가’에 가깝다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예를 들어 종전 이후 유엔사를 대체할 새로운 군사관리기구의 구체적인 형식이나 운용방안 등에 대한 준비는 뒤로 밀려 있다는 것.

    대신 군 주변에서는 워싱턴과 주한미군 간 생각의 차이를 활용해 되도록 유엔사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유도해 나가야 한다는 견해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벨 사령관의 발언을 빌려 워싱턴을 압박하자는 아이디어다.

    국방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만의 하나 유엔사가 해체되고 새로운 군사관리기구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당분간은 미국이 참여하는 3자구도가 최선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미군이 아예 이 임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경우, 당장 중국이 미군의 한반도 주둔 이유에 대해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 주한미군이 한반도 관리에서 손을 뗀다면 남는 주둔 이유는 대(對)중국 견제밖에 없다는 게 논리적 귀결이므로, 이는 향후 한중·미중 간의 외교적 마찰이나 대립을 불러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이 경제발전을 위해 동북아 안정을 제1목표로 추구하는 현재로서는 명시적으로 반발하진 않겠지만, 장차 미중 간의 대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국과 미국, 정책파트와 군 사이의 이러한 생각 차이는 아직까지는 수면 아래에 잠복해 있는 상태다. 그러나 전작권 논의가 마무리되고 북미관계가 급진전해 종전 선언 문제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관련 움직임도 빨라지는 상황. 양국은 2월8일 열린 SPI회의를 통해 올봄부터 유엔사 문제를 논의할 차관보급 외교·국방 실무그룹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일단은 전작권 전환 이후 유엔사의 지위 문제에서 출발하겠지만, 종전 선언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면 유엔사 해체나 새로운 군사관리기구에 대한 논의까지 포괄적으로 다뤄질 수밖에 없다는 게 당국자들의 전망이다.

    김계관, “군부 추궁 피하게 해달라”

    또 한 가지 살펴볼 부분은 북한의 내부다. 2·13합의를 전후해 평양의 태도가 전향적인 것만큼은 사실이지만, 문제가 현재의 한반도 군사체제를 근본적으로 건드리는 종전 선언이나 평화협정에 이르면 달라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핵 협상을 주도하는 외무성과 달리 ‘선군(先軍)체제’의 기둥인 군부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월 6자회담 기간에도 북한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군부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노골적으로 하소연했다는 후문이다. 북미 베를린 회동의 결과를 들고 귀국했을 때도 군부 고위관계자들로부터 심한 추궁을 받았다는 것. 의례적인 협상용 발언일 수도 있지만, 각급 회의석상마다 한미 연합훈련의 연기나 축소를 들고 나와 “그것조차 없으면 군부를 설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는 것이 회담에 깊숙이 관여한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3월10일 조선중앙통신은 3월25일부터 시작되는 한미연합전시증원연습(RSOI)과 독수리합동군사연습(Foal Eagle)이 “협상 파트너를 향해 총구를 들이대는 도발적인 행동”이라는 내용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성명을 전했다.

    이 같은 북한 군부의 반응은 종전 선언 이후에 북한에 몰려올 변화의 흐름과 관계가 깊다. 주지하다시피 북미 간의 극단적인 긴장을 명분으로 ‘선군체제’라는 배타적인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군부 처지에서는, 향후 변화의 방향이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군부가 관할하는 제2경제(군수경제)가 전체 GDP의 30% 가까이를 차지하는 현재의 시스템은 정전체제의 종결과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고, 현재의 시스템에서 물질적인 혜택을 누리고 있는 군부 인사들의 생존방식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청와대를 비롯한 한국 정부 역시, 북한 군부의 이러한 우려가 앞으로 전개될 평화체제 논의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이 때문에 지난해 하반기부터 청와대 안보실에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북한 군부에 직접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시도했다는 사실이 이곳저곳에서 확인된다. 평화체제가 가시화된다 해도 지금 북한 군부가 누리는 경제적 혜택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한 정부가 이를 ‘보장’할 수 있다는 취지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쟁의 끝, 평화의 길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상징적인 의미의 종전 선언’에 대해서도 이처럼 각국과 군부의 견해가 여러 갈래로 엇갈린다. 그럼에도 ‘일단 되는 데까지’의 의미가 강한 종전 선언은 2·13 프로세스의 진전과 함께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주한미군사와 국방부, 북한 군부가 세부적인 문제에 이견을 갖고 있다 해도, 결국 최고지도자들의 결심이 있다면 ‘딸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면이 그 다음단계로 진행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6월 혹은 8월에 종전 선언이 나온다면 다음은 이를 제도화하는 평화협정 논의단계다. 여기서는 더 근본적인, 다르게 말하면 더 힘겨운 쟁점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 앞서의 전직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평화체제와 관련해 다뤄야 할 군사분야의 쟁점을 점검했더니 대략 110개가 되더라”고 말했다.

    특히 가장 큰 차이점은, 종전 선언까지는 미국의 주도나 개입이 가능하지만 이후의 문제는 남북 간에 해결해야 할 이슈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굵직한 것만 짚어도, 주한미군을 계속 주둔시킬 것인가의 문제부터 서해북방한계선(NLL) 획정 문제, 국가보안법과 노동당 규약 개폐 등이 있다. 하나하나가 한국 사회 내부나 북한 군부 인사들 사이에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킬, 도저히 한쪽의 양보가 불가능해 보이는 쟁점들이다.

    종전 선언이 이뤄진다 해도 이후 평화협정의 체결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이 대목에서 나온다. 특히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평화체제의 완성은 2·13 프로세스의 종착역에 해당하는 ‘북한 핵의 궁극적 폐기’와 맞물려 있다. 북한이 이를 선택할 것인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평화체제의 수립은 미지수일 수밖에 없다. 전쟁 종료는 선언됐지만 평화체제는 수립되지 않은 이율배반적인 상태가 이후 수년간 지속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지럽고 복잡하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보인다. 2007년 봄 한반도를 강타한 해빙의 지형도는 현재로서는 여기까지다. 전쟁을 끝내는 길은 이제 종착역이 보인다. 그러나 평화가 완성되는 길은 아직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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