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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만에 빛 본 1980년 ‘신동아’ 계엄검열 삭제 기사 ‘4·19에서 10·26까지 학생운동이 걸어온 발자취’

“학생운동은 ‘살풀이’이자 미학적 생존양식”

  • 김도현 영남일보사 논설위원(1980년 당시)

27년 만에 빛 본 1980년 ‘신동아’ 계엄검열 삭제 기사 ‘4·19에서 10·26까지 학생운동이 걸어온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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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만에 빛 본 1980년 ‘신동아’ 계엄검열 삭제 기사 ‘4·19에서 10·26까지 학생운동이 걸어온 발자취’

고려대 6대 총장을 지낸 김상협 전 국무총리.

‘학생들의 데모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발표된 박 대통령의 8·25특별담화는 각료급에서 하겠다는 것을 굳이 이를 거절하고 박 대통령 스스로가 구술해서 원고를 마련하고 직접 낭독했다고 알려졌으며, 그 내용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강경한 것이었다. 학생데모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 아래 일제치하에서도 예가 없었다는 학교폐쇄까지 불사하겠다고 벼른 이 담화를 계기로 정부의 걷잡을 수 없는 강경책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담화는 너무 강경하다는 이유 외에도 많은 비판의 소리를 면치 못했던 듯하다. 우선 일국의 대통령이 학생을 1대 1로 상대한 듯한 인상이 어휘 등에서 짙게 풍겼던 것이다.…’

70년대에 이르러 긴급조치의 발동에 이르러서는 더 말할 나위조차 없다.

여기서 그동안의 학생운동을 보면 그 정당성에 대해서는 평가를 달리한다 해도 학생운동이 엄청난 시련을 견뎌왔다는 것은 부인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련 아래서도 학생운동은 끈질기고 줄기차게 계속되어왔다. 프랑스·독일·미국의 학생운동이 화려한 60년대를 보냈지만 지금은 오히려 침잠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 점 충분히 뒷받침된다 하겠다.

그리고 학생운동이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과제와 정면으로 부딪쳐왔다는 것 또한 학생운동이 파악하고 제시한 문제의식과 해결방향에 대한 평가와는 별도로라도 시인치 않을 수 없다. 즉 50년대에 있어 우리의 과제는 이승만(李承晩) 독재의 문제였는데, 60년 4·19는 이와 정면으로 맞섰으며, 63년의 군정 연장, 64·65년의 한일회담, 69년의 3선 개헌, 71년의 공명선거, 72년 이후의 체제·통일·산업대중의 문제는 모두 우리 사회 과제의 핵심이었다. 학생운동은 바로 이러한 문제와 대결했다.

한국 학생운동의 특징



지난 20년간의 학생운동의 흐름을 살피면 대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첫째, 학생운동의 주체성이다. 우리나라 학생운동은 언제나 그 계획·조직·활동에 있어서 학생 자신이 주체였다. 우리가 알기에는 특정 교수의 영향력 또는 특정 학설의 영향력이 학생운동에 미친 효과는 극히 미미하다. 학생운동의 과제가 될 사회에 대한 대상적 인식에 있어서 학설과 교수의 영향은 매우 클 것 같지만, 우리나라 학생운동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학설·주의·인식방법·인물이 없는 것 같다.

이 점은 서양의 학생운동이 한때 3M(마르크스·마오쩌둥·마르쿠제)을 외치던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민족주의적 전통, 민주주의적 교육, 사회정의감이 사회에 대한 인식의 바탕을 이루고 때로 프랑크푸르트학파, 해방신학 등 외래사조가 다소의 영향은 주었지만 이것은 실증주의나 다른 종교가 미친 영향에 비해서 절대적으로 압도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국내의 학자나 사상가·정치인이 미치는 영향도 절대적인 특정인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당국에서는 흔히 대규모 학생운동의 배후에는 공산주의나 북한공산집단의 영향이 있는 것처럼 볼 때가 있는데, 이 경우에도 그러한 영향이 설령 있다고 가정해도 주류에 대해 영향을 미치기에는 너무나 부분적인 것이라고 하겠다.

한국 학생운동의 사상과 조직에 있어서 이러한 특징은 외국처럼 특정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학생운동과 비교하면 취약점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보다 보편적인 사회문제에 대해 보편적인 인식을 갖게 하고 국민적 공감을 얻게 하는 데 유익한 점일 수도 있다.

둘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논리적 선행성과 보편성이다. 한국의 학생운동이 한국의 다른 사회·정치운동보다 선각자적 논리의 선행성을 가지고 사회적 출신 계층에 구속되지 않는 보편성을 띠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사실이라고 하겠다. 학생운동의 과제로 더러 학원 내부의 문제가 없지 않았지만, 보다 진지하고 본류가 되었던 것은 민족적·국가적·사회적 과제였다. 서양의 학생운동이 학제개편과 같은 것을 중요 관심사로 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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