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호

이선종 원불교 서울교구장

“종교가 왜 세력을 만들어 정치와 야합합니까”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7-04-11 14:1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원불교, 올해부터 군종장교 배출…‘4대 종교’로 우뚝
    • 생활 속에서 깨달음 추구, 현세 없는 내세는 무의미
    • 후천개벽시대, 한국이 세계정신 지도국 된다
    • 북한 자존심 살려주면서 강자의 마음으로 다가서야
    • 종교 지도자는 밖에 나가 싸우기 전에 자신과 싸워야
    이선종 원불교 서울교구장
    원불교는 1916년 소태산 박중빈이 전남 영광에서 창시한 민족종교다. 현재 신도 수 100만을 헤아린다. 현실참여 종교라는 평을 듣는 원불교는 올해 군종(軍宗)장교 배출이라는 숙원을 풀게 됐다. 오는 7월 첫 원불교 군종장교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간 군종장교는 개신교, 불교, 천주교 세 종교에만 허용돼왔다.

    원불교 서울교구장 이선종(李善宗·63) 교무(교역자)의 이력은 원불교의 활발한 사회활동을 대변한다. 새만금살리기, 반핵국민행동,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 천지보은회, 종교환경회의 같은 여러 환경단체의 공동대표를 지냈고, 지난 1월 서울교구장 취임 직전까지 3년간 참여연대 공동대표로 활약했다.

    봄비가 어질어질 내리는 3월2일 오후 서울 원서동의 은덕문화원을 찾았다. 창덕궁 돌담길을 끼고 걷다보면 왼쪽으로 보이는 고풍스러운 한옥이다. 520평의 이 한옥은 원불교 신자가 기증한 것이다. 지난 2년간 이 교구장은 손수 벽돌을 나르며 이 집을 개조해 문화원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기와와 벽돌, 나무가 멋들어지게 조화를 이루는 은덕문화원은 그야말로 도심 속의 자연이다. 마당 한가운데 거대한 소나무가 구렁이처럼 몸을 비비 꼬고 있었다. 원불교 정복인 검정색 한복을 입고 나타난 이 교구장의 모습은 단아했다. 손닿으면 베일 듯 가지런히 쪽 찐 머리에서 종교인 특유의 엄정한 기운이 풍겼다. 화장기 없는 얼굴엔 고단한 평화로움이 묻어났다.

    손수 차를 내온 그는 “집 짓는 데 무척 힘들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평생을 한옥에서 살았는데, 머리로 이해하는 한옥과 내 손으로 짓는 한옥엔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군종장교 1명 배정

    원불교에 배정된 군종장교는 1명.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군종장교는 모두 482명이다. 기독교(개신교) 목사가 265명으로 가장 많고, 불교 법사(135명), 천주교 신부(82명) 순이다. 이는 신자 비율에 따른 것이다. 바깥 사회와는 반대로 기독교 신자가 불교보다 많은 데 대해 국방부 군종팀은 “불교 신자는 중년 이상 연령층이 많은데 군은 젊은 층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비록 단 한 명이지만 원불교측의 성취감은 대단하다. 군종장교의 상징성 때문이다. 소수종교로 인식되던 원불교는 군종장교를 배출함으로써 3대 기성 종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상을 갖게 됐다. 바야흐로 ‘4대 종교’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교구장은 “소명의식이 없다면 해내기 힘든 일이었다”며 군종장교 배출의 의미를 설명했다.

    “포교 차원이라기보다 군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심어주자는 뜻에서 추진한 겁니다. 2세 또는 후진을 바르게 키우자는 것이 우리 교단의 중요한 이념이거든요. 그간 군부대에 책을 꾸준히 보내주고 도서관, 독서실을 만들어줬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넉넉한 교단은 아니지만 먹을거리도 좀 보내주고…. 이런 작은 정성들이 열매를 맺은 겁니다. 기성 종단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합리적으로 풀었습니다. 법은 공정하고 형평성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국회와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설득했죠.”

    이선종 원불교 서울교구장
    그는 원불교 방송국을 설립하는 데도 공을 세웠다. 방송국 추진위원회 사무총장으로서 장관을 직접 설득해 허락을 받아냈다. 원불교 방송은 다른 종교에도 문을 열어놓아 종종 스님과 목사, 신부가 출연해 설교한다.

    원불교에 대한 흔한 질문 중 하나는 불교와 어떻게 다르냐는 것이다. 원불교 교당에는 불상 대신 동그란 원이 그려진 사진이 놓여 있다. 원불교에서 우주의 근본원리로 삼는 일원상(一圓相)이다. 원불교 신자는 이 일원상 앞에 절을 한다. 경전인 원불교 교전 정전(正典) 교의편(敎義編)은 일원의 뜻을 이렇게 설명한다.

    ‘일원은 우주 만유의 본원이며, 제불 제성의 심인이며, 일제 중생의 본성이며, 대소 유무에 분별이 없는 자리며, 생멸 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며….’

    이 교구장은 “우주에는 형상이 있는 세계와 형상이 없는 세계, 두 개의 세계가 있다”고 했다.

    “불교는 형상이 있는 부처를 상징적으로 모시지만 우리는 형상이 없는 마음, 진리를 표상으로 섬겨요. 형상이 없는 세계가 형상이 있는 세계를 지배합니다. 형상이 없는 마음이 형상이 있는 육신을 지배하잖아요. 형상이 없는 하늘이 형상이 있는 땅을 지배합니다. 이렇듯 형상이 없는 진리가 형상이 있는 세상을 지배합니다. 원불교는 그 진리, 성자들이 일찍이 깨달은 마음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기독교가 하나님, 불교가 부처님이라면 원불교는 법신불(法身佛)이 신앙의 대상입니다.”

    가슴으로 느끼고 손발로 쓰는 교법

    원불교 신앙의 특징은 한 마디로 ‘성속(聖俗) 일치’다. 신앙과 생활이 한몸이다. 일상에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이다.

    “원불교는 교법의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를 추구합니다. 일상생활에 활용될 수 있는 수도가 가치 있는 수도라고 봅니다. 경산 종법사(원불교의 최고 어른)께서 교법의 인격화를 말씀했습니다. 교법을 머리에 이고만 살면 안 된다는 것이죠. 가슴으로 느끼고 손발로 써야 한다는 거죠. 불교는 출가 본위의 생활을 합니다. 불공은 절에서만 드리지요. 하지만 원불교는 달라요. 원불교의 불공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진리에 대한 불공과 천하만유(天下萬有)에 대한 불공. 원불교는 자신의 신법이 생활에 묻어나는 종교입니다. 어찌 보면 윤리 같고 도덕 같은데, 세속사람과 함께 생활하면서 맑고 밝고 훈훈한 역할을 하는 종교죠.”

    ▼ 원불교의 깨달음은 불교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대종사께서 대원정각(大圓正覺)한 후 자신이 깨달은 진리가 이미 3000년 전에 석가모니께서 깨달은 진리와 같다는 걸 발견하셨어요. 그래서 ‘내가 스승의 지도 없이 도를 얻었으나 도를 깨달은 수양과정이나 경로로 볼 때 부처님의 불법과 같으니 나의 연원을 석가모니에게 정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깨달은 분은 다 부처입니다. 원불교의 ‘원’은 일원상을, ‘불’은 각(覺)을 뜻합니다. 따라서 원불교는 일원상 진리를 깨닫게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 예전(禮典)에 규정된 통례(通禮)와 가례(家禮)를 보니 일상생활에 대한 규율이 엄하더군요. 길 물을 때나 밥 먹을 때의 예법까지 정해놓는 등 규제와 통제가 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규제 속에서 자라면 자유로워집니다. 출가교도나 재가교도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도록 인도하고 권장하는 것으로, 불편하다거나 규제가 심하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제가 20대에 원불교에 들어왔는데, 그렇게 길들어왔기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예법이 일상생활이 된 거죠.”

    ▼ 원불교는 종교 다원주의를 인정하고 종교연합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의 호응은 어떤가요.

    “어느 종교든 공동선을 지향한다는 목적은 같잖아요. 종교 간 화해와 협력 면에서 원불교가 한국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종교연합운동에 적극 나서 한국종교인평화회의와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어요. 고(故) 강원룡 목사의 경우 우리를 얼마나 칭찬했는지 말도 못해요. ‘내가 원불교 도움 없이 대화아카데미를 운영할 수 있었겠냐’고 말씀할 정도였죠. 원불교가 화목동이라면서.”

    이선종 원불교 서울교구장
    ▼ 대부분의 종교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고, 현세보다는 내세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원불교는 현실에서 이상세계를 추구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양면성이 있죠. 미래가 없다면 희망이 없죠. 원불교는 과거 현재 미래의 3세를 봅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불토라면 어제를 잘 살았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고 오늘을 잘 살면 그만큼 내세도 좋아진다고 믿죠. 불교가 현실을 도외시한 결과 산중종교가 됐고 그 탓에 서구종교가 우리 정신문화를 지배하게 됐습니다. 원불교는 내세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현세가 없는 내세는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개인도 행복하고 세상도 행복해야

    ▼ 윤회나 극락의 개념은 불교와 같습니까.

    “똑같죠.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진리. 명지장단, 길흉화복, 흥망성쇠가 다 인과예요. 각의 종교에서는 다 그걸 믿습니다. 계시종교에서는 안 믿지만.”

    ▼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요.

    “마음의 눈을 뜨고 사는 것이죠.”

    ▼ 현세에서 깨달은 자는 사후세계에서 어떻게 되죠.

    “다시 몸을 받아 현세에 태어나는데, 영성의 빛, 복의 주머니, 인연의 주머니, 지혜의 주머니가 더 커지는 거죠. 깨달음은 다음 삶을 사는 데 밑거름이 됩니다.”

    ▼ 원불교는 개인구원보다 대중구원을 중시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구가 자전하면서 공전하잖아요. 수도자 개개인이 실력이 있어야 원불교라는 조직이 탄탄하지 않겠어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격이 있고 능력이 있으면 나라가 잘되는 것처럼. 자기 인격을 제쳐두고 세상을 구원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그렇지만 성불할 때까지 산속에서 선(禪)만 수행하겠다는 자세도 옳지 않아요. 일도 안 하고, 먹을 것도 남들이 갖다주고. 개인도 행복해야 하지만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도 행복해야 한다는 게 원불교 정신입니다.”

    ▼ 원불교도 불교처럼 깨달음이 곧 성불이자 구원인가요?

    “제생의세(濟生醫世). 내가 불법으로 인격화해서 이 세상을 불국토로 만드는 게 원불교의 사명이에요.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광대무량한 낙원을 건설하는 것. 대종사께서 그 무식하고 가난한 영광 땅에서 허례허식 폐지하고 미신 타파하고 저축조합 만들고 간척사업 벌여 주민들을 잘살게 만들었어요. 비가 와 마당에 곡식이 떠내려가는데도 가만히 앉아 있는 유가의 선비사상과는 달라요. 우리는 지극히 실용주의적입니다. 선도 법당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이라고, 언제 어디서나 선을 하고 선을 하는 마음으로 일상생활을 합니다.”

    석가모니는 인생을 고해(苦海)라 했지만 원불교는 ‘은혜의 바다’라고 부른다. 원불교에 따르면 사람은 태어나면서 네 가지 은혜를 입는다. 천지은(天地恩), 부모은(父母恩), 동포은(同胞恩), 법률은(法律恩)으로 이른바 4은(四恩)이라 한다.

    “네 가지 은혜는 당위론적 은혜가 아니라 존재론적 은혜예요. 그게 없으면 내가 세상에 태어날 수 없습니다. 그 은혜가 인다라망처럼 연결돼 있어요. 불교의 연기론(緣起論)과 비슷하죠. 이러한 근원적 은혜를 깨달아야 보은할 마음이 생깁니다. 이게 원불교 사상의 핵이에요.”

    세계 도덕의 모국으로

    천도교나 증산교 같은 신흥 민족종교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후천개벽(後天開闢) 사상이다. 원불교도 예외가 아니다.

    “수운 선생과 강증산 선생, 소태산 대종사께서 같은 말씀을 하셨지요. 정신문화가 중요해지는 때가 왔다고. 물질문명이 얼마나 발전하고 편리한 세상을 만들어냈습니까. 그런데 앞으로는 정신문화가 같이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대종사께서 다른 어떤 분보다도 후천개벽 사상을 구체화해서 현실에 적용했다고 봐요. 원불교는 후천개벽을 이끄는 종교로 성장할 겁니다. 대종사께서는 한국이 후천개벽의 주역이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 신흥종교들 중에 그런 주장을 펴는 종교가 많은데, 무슨 근거로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거죠?

    “앞으로 경제는 중국과 일본, 인도가 주도하겠지만 정신문화만큼은 한국의 지혜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20세기까지는 이스라엘 민족이 정신문화를 주도했다면 21세기 후천개벽시대에는 한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으로 부상해 대한민국이 세계정신의 지도국, 도덕의 모국이 될 겁니다. 이미 많은 선지자가 다녀갔어요.”

    ▼ 우리 민족이니 그런 주장을 펴는 것 아닐까요.

    “그렇지 않아요. 사상적 기저와 문화를 보면 알 수 있어요. 5000년 문화를 가진 민족이에요. 요즘 한류가 뜨는데, 그게 그냥 되는 게 아니거든요. 인과론으로 풀어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외침을 받기만 했지 한 번도 다른 민족을 침략한 적이 없잖아요. 마음이 착하고 깨끗한 민족이기에 세계의 중심국이 될 수 있는 겁니다.”

    ▼ 남과 북이 갈라진 상태에서 민족간 갈등과 투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요. 전쟁 위험도 있고.

    “민족도 개인도 다 업이 있어요. 좌산 종법사께서 이와 관련해 남긴 말씀이 있어요. 첫째는 해원, 둘째는 사면, 셋째는 화해, 넷째는 수용, 다섯째는 협력, 여섯째는 합의입니다. 이것이 통일로 가는 길이라고 하셨어요. 우리 민족의 화두가 민주화와 통일 아닙니까. 이 두 가지가 다 이뤄지면 대한민국이 엄청 좋아질 겁니다. 대종사께서는 일제치하에서 원불교가 고난을 당할 때도 미래의 희망을 언급하셨어요. 우리가 지금 진급기에 접어들었어요.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말이에요. 티베트와 네팔에 갔다 온 분들 얘기가 지금 세계의 영적 기운이 한국으로 몰리고 있다는 겁니다. 앞으로 통일이 되면 세계 평화의 진원지가 된다는 거죠. 독일 통일과는 다르다는 거예요.”

    ▼ 핵전쟁 위험이나 지구온난화, 에너지 고갈 등을 이유로 지구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세상이 희망적으로 발전하는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지구도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지구 스스로 자정능력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인류가 많이 깨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희망을 줍니다. 그동안 숨 가쁘게 달려오기만 했어요. 산업사회와 정보사회를 거쳐 첨단산업사회에 이르면서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떻습니까. 지구라는 거대한 터전을 우리의 소유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깨우침이 자꾸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때일수록 종교의 기능이 중요한데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지금 종교가 존경받고 있습니까? 종교가 종교다워야 하는데, 권력이나 금력과 결탁해 간섭하지 말아야 할 데 간섭하면서 세상을 바르게 이끌지 못하고 있습니다.”

    ▼ 일부 종교단체의 경우 전시작전권 문제 등 정치 현안에 적극 개입하고 있는데요. 원불교는 어떤가요.

    “정치는 아버지이고 종교는 어머니입니다. 이 두 수레바퀴가 균형을 이뤄 굴러가야 합니다. 정치가 잘못하면 종교가 덕치로써 정치를 이끌어야 해요. 그런데 지금 그렇지 못해요. 기독교의 일부 보수우파 세력이 정부를 얼마나 힘들게 하고 있습니까. 종교가 왜 세력을 만들어 정치와 야합합니까.”

    남녀평등을 구현한 종교

    ▼ 종교가 비판받는 이유로는 무분별한 건축, 과도한 헌금 요구, 회계 불투명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원불교는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습니까.

    “아직까지는 병들지 않았습니다. 다른 종교들은 이런저런 명목으로 외부에서 지원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원불교는 그런 게 없어요. 신도의 성금과 농장 생산물 판매 수익금으로 유지합니다. 자기가 돈을 벌어보지 않으면 돈의 가치를 모릅니다. 남의 돈 쓰기는 쉬워요. 원불교는 영육쌍전(靈肉雙全), 이사병행(理事竝行)이 말해주듯 정신세계만큼 현실세계를 중요시하는 생활종교입니다. 기성 종교와 달리 성금을 무리하게 걷지 않습니다. 과시할 만한 건물도 없고요. 회계가 굉장히 투명합니다. 모든 돈은 교당 간부들이 교화협의회를 통해 관리합니다.”

    목사나 신부, 스님에 해당하는 원불교의 교무는 급여가 따로 없다. 매월 품위유지비로 30만원의 용금을 받는 게 전부다. 신참이든 고참이든 지위가 낮든 높든 액수가 같다.

    이 교구장이 원불교에 입교한 것은 19세 때다. 21세에 출가했으니 40년 이상 교단에 종사한 셈이다. 현재 서울교구장 외에 여자정화단(貞和團) 총단장, 최고의결기관인 수위단원(首位團員) 등 요직을 두루 맡고 있다.

    이 교구장의 예에서 보듯 원불교에서는 여성 교역자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국내 종교 중 남녀평등이 가장 잘 구현된 종교라는 평을 듣는 이유 중 하나다.

    “대종사는 남녀평등사상을 가진 개혁가였어요. 깨달은 후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90년 전 한국 사회가 어땠습니까. 남녀차별이 굉장히 심했잖아요. 하지만 원불교는 초기부터 지도부를 남녀 동수로 구성하는 등 여성이라고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세계 종교사에 유례없는 일이에요. 가톨릭도 신부와 수녀를 분리하고 불교도 비구니 교육을 따로 합니다. 하지만 원불교는 남녀를 함께 교육합니다. 최고의결기관인 수위단도 남녀 동수이고 교정원(조계종의 총무원에 해당) 지도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이라도 실력만 있으면 종법사에 오를 수 있어요.”

    ▼ 신앙에 회의를 느끼신 적은 없나요.

    “신앙에 회의를 느낀 적은 없으나 사람에 대해 더러 실망하곤 했습니다. 왜 저런 사람이 여기 와 있나 하고. 하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을 안 합니다. 이 세상은 모든 성자가 모이는 곳이니 개인적 관점에서 싫다 좋다 할 게 아니라 다 받아들여 함께 제도(濟度)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죠.”

    원불교 여성 교무는 이 교구장처럼 다 독신이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지도자 노릇하는 데 결혼생활이 방해가 되기 때문”이란다. 교단에서 금지하는 건 아닌데 여성 교무들이 알아서 하지 않는다는 것.

    특별교구장으로 NGO 활동

    그의 이름이 일반에 널리 알려진 데는 참여연대 공동대표라는 이력이 영향을 끼쳤다. 그는 “거기서 많이 배웠다”며 참여연대 활동에 대해 만족감을 나타냈다.

    “무엇보다도 좋은 인연을 많이 만들었고요. 한국 사회의 흐름도 알았고 시민의 권익과 약자를 보호하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참 대단한 인력이더라고요. 한국 사회에 돈으로 인생을 살지 않고 깨어난 의식을 갖고 사는 젊은이가 많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 경남대 북한대학원 민족최고지도자과정을 수료했는데, 햇볕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북한에 접근하는 것에 찬성합니다.”

    ▼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관건이죠. 그걸 두고 우리 사회 여론이 갈라져 있지 않습니까.

    “개인간 관계도 자존심을 내세웁니다. 남북관계를 정말 민족문제로 생각한다면 우리가 그들의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좀더 다가가야 합니다. 제가 북한에 가보니 이미 게임은 끝났더라고요. 자기들도 알고 있어요, 남한 실정을. 약자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강자의 자격이라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우리가 좀더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몇 년 전 북한에 갔을 때 여성위원장을 비롯해 15명을 만났습니다. 제가 허리가 아프거든요. 인사말을 하는 자리에서 휴전선을 허리에 비유해 분단의 아픔을 호소했더니 어떻게 그토록 공감 가는 얘기를 하냐면서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햇볕정책은 잘했다고 봐요. 앞으로 남북관계가 굉장히 좋아질 겁니다.”

    ▼ 환경단체 일도 열심히 하셨는데, 교단 차원이었습니까, 개인적 활동이었습니까.

    “다 원불교 교단의 활동이죠. 교단에서 저를 특별교구장에 임명해 대외활동에 적극 나서도록 한 겁니다. 저도 NGO에 관심이 많았고요. 이래저래 관여한 단체가 30개 가까이 됐습니다.”

    그는 지난 1월 서울교구장에 취임하면서 참여연대를 비롯해 그간 맡았던 진보 성향 시민사회단체들의 공동대표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NGO와의 인연은 계속 이어질 듯싶다. 서울교구만 해도 20여 개의 NGO 단체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 예전 통례편 17장 ‘국민과 국제’ 제2절 ‘국민의 예’에 보니 ‘무엇이나 국가에 이익 되는 일이면 일반 국민이 다 같이 합심해 나아갈 것이니라’는 구절이 있더군요. 원불교가 반대해온 핵폐기장 설립이나 새만금 사업 등은 국익과 관련된 중요한 국가정책인데요.

    “제가 저출산고령화문제 대책위원이고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입니다. 정부에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니지요. 새만금사업은 선진국에서도 우려하고 있어요. 제가 영국과 이탈리아에 가보니 ‘우리가 100년 전 겪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말라고 자료를 제공했는데 왜 참고하지 않았느냐’고 의아해하더라고요. 선진국에서 하는 얘기는 귀담아 들어야 하는데…. 그런 개발은 국가 발전을 위한 길이 아니라는 거죠.”

    ▼ 반핵국민행동의 공동대표로 활약하셨는데, 핵폐기장을 무조건 반대할 게 아니라 대안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원불교 성지인 영광에 건설하기 때문에 우리가 반대한다고 오도하는데, 그런 점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그건 부차적인 문제고요. 첫째는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광의 핵발전소만 해도 문제가 생기면 늘 은폐해요. 둘째는 전력을 너무 낭비한다는 점이에요. 미국과 소련에서 원전 폭발로 어떤 피해가 발생했는지 잘 알고 있잖아요. 장기적으로는 수력을 더 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손바닥만한 한반도에 핵발전소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에요. 아무리 국가시책이라도 반대할 건 반대해야죠.”

    ▼ 사학법 개정에 종교계가 거세게 반대하는데요. 원불교는 어떻습니까.

    “일부 사립학교들이 그간 얼마나 돈을 벌었습니까. 땅장사도 많이 하고. 이 얘기 다 못합니다. 우리는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방향이 큰 줄기에선 맞다고 봐요.”

    원불교는 현재 원광대를 비롯해 20개의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포용력과 남을 살리는 마음으로

    ▼ 바람직한 종교인의 자세라면.

    “첫째, 사회적 양심이어야 해요. 교역자, 성직자는 언제 봐도 진실해야 합니다. 둘째, 종교 지도자는 한 종교의 성직자로 머물지 말고 나라와 세상을 품을 수 있는 공심의 주인공이 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만날 내 교회, 내 법당, 내 성당만 생각합니다. 성자의 이념을 새겨야 공심이 나옵니다. 셋째, 헌신해야 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예우받고 대우받을 줄만 알지 헌신을 안 합니다. 공을 위해 나를 버려야 해요. 많은 사람이 색과 재물, 명예욕에 나가떨어집니다. 성직자도 예외가 아니에요. 끝없는 자기 절제가 필요합니다. 밖에 나가 싸우기 전에 먼저 자신과 싸워야 해요. 그래야 남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에너지와 지혜가 생겨요. 내가 살아보니, 남을 변화시킨다는 게 쉽지 않아요. 내가 거울이 될 때 상대방이 보고 ‘좋구나’ 하고 영향을 받지 않겠어요.”

    ▼ 소태산께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말씀했는데, 오늘날 물질은 점점 발전하지만 인간의 정신은 더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모든 가치의 중심을 물질에 두고 있기 때문이에요. 돈이 가치의 최고잖아요. 물질을 선용하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 물질의 지배를 받을 겁니다. 수도 없이 고급인력을 길러냈지만 인격자는 많지 않아요. 정신이 주가 되고 물질이 종이 돼야 합니다. 무엇보다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적인 마음을 버려야 해요. 분수를 알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해요.”

    ▼ 물질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느림의 철학’을 말하고 싶습니다. 요즘 사람들, 밥도 급하게 먹고 일도 급하게 하고 마구 쫓겨요. 과일과 채소도 속성으로 재배하는데, 자연의 섭리를 통과하지 않은 것은 맛이 덜하더라고요. 성급하면 인간관계 형성이 쉽지 않아요. 너무 조이지도 느슨하지도 않게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끝으로 그는 “철난 인생”을 강조했다.

    “살아보니 철이 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인생 여름엔 푸른빛의 예리한 판단력이 필요합니다. 젊은 시절엔 지혜를 터득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나이 들어선 포용력과 남을 살리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저는 이제 인생 가을이에요. 그간 후배들로부터 혼만 잘 낸다고 지탄받았는데, 이제 덕이 나올 때입니다. 앞으로 더욱 배우는 자세로 상생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작정입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취재진은 이 교구장의 안내를 받아 문화원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인터뷰하는 동안 그가 여러 차례 따라준 차만큼 정갈하고 소박한 방들이었다. 화려한 불상이 없어서 그런지 법당 분위기가 차분했다. 종교와 세속의 경계가 사라진 공간이었다.



    인터뷰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