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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신종플루 음모론

제약사 자작극? 미군의 생물무기? ‘세계정부’의 인구 조절책?

  • 석유선│ 의학전문 프리랜서 sukiza@naver.com │

‘믿거나 말거나’ 신종플루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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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신종플루 음모론

신종플루가 거대 제약회사와 미국의 결탁으로 만들어진 부산물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인도네시아의 보건장관 시티 파딜라 수파리.

박스터는 이에 대해 “실험실 내에서 감염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며 “아마도 두 개의 인플루엔자가 실수로 혼합돼 벌어진 일 같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바이러스가 우연히 혼합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반박하고 있다. 더구나 미국 굴지의 제약사인 박스터의 연구소는 생물안전3등급인 밀폐연구설비를 자랑하는 최첨단시설이다. 이런 시설에서 일하는 숙련된 과학자들이 초보적인 실수를 저질렀다고 믿기는 쉽지 않다. 결국 백신을 팔기 위해 일부러 병을 조작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으며, 이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만에 하나 이 혼합 바이러스가 외부에 유출됐다면 사건은 더욱 무시무시해진다. 조류 인플루엔자는 사람 간에는 전염되지 않지만 인간 인플루엔자는 전염되기 때문에, 만일 인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혼합된 형태의 새로운 바이러스가 퍼지면 2차 감염이 발생할 확률도 매우 높아진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제3세계의 분노

앞서 등장했던 인도네시아 수파리 장관이 인플루엔자와 관련해 제약사 음모론을 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월 조류 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 샘플 공유와 백신 개발 뒤에 WHO와 강대국의 음모가 숨어있다며 ‘세계가 바뀌어야 할 때: AI 뒤의 신의 손’이라는 제목의 저서를 펴낸 적이 있다. 그는 이 책의 출판기념 토론회에서 “내 경험을 토대로 책을 썼고 증거가 분명히 있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수파리 장관의 책은 선진국 제약사와 WHO의 결탁으로 세계 여러 나라가 백신 확보 전쟁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는 결국 부를 축적하려는 제약사의 자작극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WHO는 서방국가의 제약회사들에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샘플을 제공하고 있고, 백신을 독점 개발한 회사들과 수익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파리 장관은 “선진국들은 백신 판매로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있다. 이들만이 백신을 개발할 수 있고 또 이를 이용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WHO가 인체에 치명적인 조류 인플루엔자의 H5N1형 바이러스 샘플(균주)을 인도네시아나 베트남에서 공짜로 가져다가, 이를 미국 등 선진국의 제약사에 공급해 백신을 개발한 뒤 조류 인플루엔자 발병 국가에 비싸게 되팔고 있다”는 비난이다.

인도네시아는 전세계 조류 인플루엔자 사망자 중 절반가량인 104명의 환자가 희생된 나라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조류 인플루엔자 사망자 샘플을 공유하도록 WHO가 지정한 국가에서 제외돼 있다. 인도네시아가 “선진국이 빈곤국으로부터 바이러스 샘플을 받아 백신을 개발하고 이를 비싸게 되파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2006년부터 WHO에 샘플을 제공하는 것을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선진국 제약회사들의 백신 연구과정에서도 인도네시아는 결국 배제된 상태다.

반면 수파리 장관은 이러한 상황이 선진국 제약회사와 WHO의 보복이라고 주장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006년 호주 정부를 고소한 적이 있다. 호주가 인도네시아의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샘플을 훔쳐다가 백신을 만들었다는 이유였다. 이때의 일 때문에 백신의 독점권을 원하는 선진국 제약회사와 WHO가 인도네시아를 ‘왕따’시키고 있다는 게 수파리 장관의 주장이다.

럼스펠드가 음모론에 오른 이유

음모론 자체를 믿느냐 여부와는 상관없이, 신종 바이러스 질환의 창궐 과정에서 벌어진 선진국 제약회사의 ‘백신 장사’와 WHO 대응정책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이들은 전문가들 가운데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WHO는 각국에 백신 준비와 항바이러스치료제를 구입하라고 당부하고 있지만, 대다수 국가는 그럴 기술도 돈도 없다는 것. 이 과정에서 치료제와 백신에 대해 특허를 갖고 있는 선진국 대기업들이 엄청난 이익을 올리고 있는 것 역시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실제로 이번의 신종플루 사태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보고 있는 제약사로는 타미플루와 리렌자의 독점 판매회사인 로슈와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조류 인플루엔자로도 이미 천문학적인 이익을 올린 바 있다. 2005년 미국의 ‘포천’지는 조류 인플루엔자의 공포에 휩싸인 상황에서 타미플루 생산자인 스위스 로슈사가 엄청난 이윤을 남기고 있다고 지목해 보도한 바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음모론은 새로운 물줄기를 만난다. 연결고리는 타미플루의 최초 개발자인 미국의 생명공학회사 길리드사이언시스(Gilead Sciences)다. 스위스 로슈가 타미플루 판매권을 유지하기 위해 2005년부터 3년 동안 이 회사에 지급한 로열티는 11조원이 넘는다. 흥미로운 것은 1997년부터 2001년 사이에 길리드사이언시스의 이사회 의장을 맡은 사람이 도널드 럼스펠드 전 미 국방장관이라는 사실이다. 현재도 이 회사의 대주주 가운데 한 명으로 각종 혜택을 받고 있는 그는, 국방장관 재임시절에도 지분을 포기하지 않았다. 더욱이 그는 미 국방부가 전세계 미군에게 타미플루를 일괄 지급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당시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어 조류 인플루엔자가 창궐해 타미플루 사재기가 일어나면서 수요는 전세계적으로 폭증했다. 로슈와 길리드사이언시스는 물론 럼스펠드 전 장관 본인도 돈벼락을 맞았다. 근래 들어 조류 인플루엔자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로슈와 길리드사이언시스의 이익이 2008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자, 이번에는 때마침 신종플루가 나타났다. 길리드사이언시스와 로슈의 주가가 다시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것은 불문가지. 인플루엔자를 둘러싼 제약사 음모론은 이런 얼개를 통해 구체화된 것이다.

미 국방부 얘기가 나온 김에 신종플루에 관한 또 다른 음모론을 들여다보자. 미군이 생물학 무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신종플루가 만들어졌고 유출됐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역사상 존재했던 수많은 바이러스 전염병 가운데 대다수는 자연발생적이었지만, 일부는 전쟁 상황의 전략전술 차원에서 인위적으로 유포됐다. 1,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은 세균전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인명을 살상했고, 현대에 들어서는 생물학전이라는 이름으로 바이러스가 무기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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