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호

영화를 통해 본 얘기가 있는 해양사

  • 고승철│저널리스트·고려대 강사 koyou33@empal.com│

    입력2009-07-28 16: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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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통해 본 얘기가 있는 해양사
    바다, 역사, 영화….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아우르는 역저(力著)가 나왔다. 해양사 전문가인 김성준(42) 박사의 ‘영화에 빠진 바다’가 그것이다.

    저자의 경력을 살펴보자. 한국해양대 항해학과와 고려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했다. 고려대 대학원에서 해양사를 연구해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분야의 전문가인 주경철 서울대 교수, 윤명철 동국대 교수, 주강현 박사 등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배와 관련한 현장 경험에서는 이들을 능가하는 듯하다. 저자는 해양사연구소(www.seahistory.or.kr)를 운영하며 해양사, 해양문학, 해양정보 등을 알리는 데 앞장서는 행동파 지식인이다.

    저자는 대학 강의에서 학생들이 해양사를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역사 소재 영화를 교재로 애용한다고 한다. “영화 속에 그려진 선박, 항해, 선원 생활 등을 추출해 해양사를 그리면 세계사와 바다 역사를 이해하는 데 좋은 방편이 된다”고 설명한다.

    해양인들이 가장 즐기는 소일거리는 무엇일까. 저자는 “단연 영화 보기”라면서 해양사의 주요한 소비자인 해양인들에게 쉽게 접근하는 길을 마련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책 여러 군데에 뱃사람에 대한 애정이 그득 담겼다.

    각 장(章) 앞부분에서 역사적 사실을 제시하고 관련 영화 몇 편을 소개했다. 이어 영화 줄거리를 요약하고 영화와 역사적 사실의 차이를 분석했다. 영화는 아무래도 픽션 요소가 많으므로 역사학자 시각에서는 사실(史實)과 부합하지 않은 부분을 당연히 지적하고 싶으리라. 곳곳에 넣은 고대 선박 그림과 지도들도 돋보인다.



    고대 해양사부터 출발해보자.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율리시즈’와 ‘오딧세이’가 소개된다. 마리오 카메리니 감독이 1954년에 만든 ‘율리시즈’는 한국에서도 히트했다. 율리시즈 역을 맡은 커크 더글러스, 율리시즈의 부인 역인 실바나 망가노의 연기가 돋보인 명작이다.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장면이다. 트로이전쟁에서 이기고 먼 항해 끝에 고국 이타카로 돌아온 율리시즈 왕은 오랫동안 정절을 지킨 페넬로페 왕비가 “율리시즈 국왕이 쓰던 활로 도끼자루 구멍 12개를 통과시킨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밝히자 이에 도전한다. 다른 청혼자들이 활시위도 당기지 못하는 데 비해 거지 차림으로 나타난 율리시즈는 거뜬히 활시위를 당겨 과녁을 명중시키고 왕비와 포옹한다.

    ‘클레오파트라’ 아카데미상 휩쓸어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여왕과 로마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룬 ‘클레오파트라’는 역사 영화의 고전으로 꼽힌다. 만키비츠 감독이 1963년에 발표한 이 영화는 로마의 지도자 카이사르가 그리스에서 폼페이우스 군을 격파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악티움 해전에서 패배한 클레오파트라가 독사에 물려 자살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클레오파트라 여왕은 과연 절세미인이었을까. 저자는 여러 사료를 훑어보고 여왕이 미인이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면서 “그렇게 미인은 아니었을지라도 여러 면(몸매, 말씨, 성격, 목소리 등)에서 매력적인 인물이었음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특히 그녀는 12개 언어에 능통해 어느 나라 사신이 오더라도 통역자 없이 대화해 호감을 샀다고 한다. 여왕이 독사에 물려 죽은 것이 사실인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명배우 찰턴 헤스턴이 감독, 주연을 맡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로마 장군 안토니우스가 이집트에 머물며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을 맺는 장면부터 악티움 해전까지 다루었다.

    이들 2편의 영화에서는 악티움 해전에서 로마 함선과 이집트 전함이 접근해 백병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자는 “실제 악티움 해전에서는 그런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 추정했다.

    중세 해양사에서는 바다의 약탈자 바이킹을 그린 ‘롱 십’과 ‘바이킹의 최후’가 소개됐다. 잭 카디프 감독의 ‘롱 십’에서는 전설에 나오는 황금종을 찾아나선 바이킹과 이에 맞서는 이슬람 술탄이 격돌한다.

    이탈리아 출신인 젠틸로모 감독의 ‘바이킹의 최후’는 노르웨이 바이킹과 덴마크 바이킹 사이의 다툼을 다루었다. 바이킹 내부의 갈등을 그렸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다. 바이킹은 어떻게 항해하고 어떤 선상 생활을 했을까. 이 책에 따르면 이들은 바람 강도와 방향, 파도, 새의 움직임, 바닷물 빛깔 등을 살펴 배의 위도 위치를 추정했다. 위도만 알아서는 한계가 있으므로 바이킹은 가능한 한 육지를 보면서 항해했다. 철새가 이동하는 길을 보면서 봄철에 출항했다가 가을 무렵에 돌아왔다. 바다에서 밤을 지샐 때는 가죽 침낭에서 잠을 잤고 청동제 취사도구로 식사를 준비했다. 고기와 소금을 뿌려 말린 생선, 버섯, 감자, 굳힌 우유, 맥주 등을 주로 먹었다.

    5분 출연에 500만달러 받아

    근대 해양사를 대표하는 영화로는 존 글렌 감독의 ‘콜럼버스: 발견’과 리들리 스콧 감독의 ‘1492 콜럼버스’를 꼽을 수 있다. ‘콜럼버스: 발견’에서 조지 코러페이스가 콜럼버스 역을, 레이철 워드가 이사벨라 여왕 역으로 나왔다. 말론 브랜도가 이단 심문관인 토케마다 신부 역으로 5분간 나오고 출연료 500만달러를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는 콜럼버스가 포르투갈 궁정에 지원을 요청한 후 기다리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영화는 극적 흥미는 그리 높지 않지만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다루었다는 점에서 역사 교육용으로 적합하다.

    ‘1492 콜럼버스’에서는 프랑스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콜럼버스 역을 맡았다. 이 영화의 오류는 *멘데스가 육지를 처음 발견(실제로는 육지를 처음 목격한 이는 로드리고 데 트리아나) *돌아올 때 서인도에서 배 3척이 출항(역사적 사실은 산타마리아 호 침몰로 2척만 돌아옴) * 마르틴 핀손이 부상으로 나비다드에 잔류하여 사망(귀국 후 세비야에서 1493년 사망) 등이다.

    ‘영국 영화산업의 창시자’로 불리는 알렉산더 코르다 감독이 1941년에 제작한 ‘해밀턴 부인’은 영국-프랑스 사이의 해상쟁탈전이라는 시대 배경 속에서 피어난 해밀턴 부인과 넬슨 제독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다. 비비언 리가 해밀턴 역을, 로렌스 올리비에가 넬슨 역을 열연했다. 당대 최고의 남녀 배우가 1940년에 결혼한 직후 함께 출연해 이목을 끈 작품이기도 하다.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넬슨은 총을 맞고 숨져가면서 “해밀턴 부인에게 내 머리카락과 재산을 주라”고 함장에게 당부했다. 넬슨은 나일강 해전, 코펜하겐 해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모두 승리함으로써 영국에서는 ‘바다의 신’으로 추앙되는 인물이다. 연전연승, 극적인 죽음 등에서 이순신 장군과 비견되기도 한다.

    최근세 해양사를 다룬 대표적인 영화로는 우선 존 휴스턴 감독 연출, 그레고리 펙 주연의 ‘백경’을 들 수 있다. 18세기에 미국의 고래잡이 어업은 중요한 산업이었다. 당시 고래 기름은 가정용 등불과 가로등에 쓰였고 고래 수염과 뼈는 다양한 재료로 활용됐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소설가 허만 멜빌은 ‘모비 딕’이라는 소설에서 포경선 선장 에이햅이 자신의 한쪽 다리를 망가뜨린 흰고래를 찾아 복수하는 이야기를 썼다. 멜빌 자신이 세 차례에 걸쳐 선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영화의 대본은 이 소설에 근거를 두었다. 진지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 그레고리 펙이 격정적인 성격을 지닌 에이햅 선장 역으로는 어울리지 않았다는 중평을 받았다. 에이햅이 백경을 만나 작살을 꽂으며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압권이다.

    ‘전함 포템킨’은 창작 요소 많아

    러시아의 에이젠스체인 감독이 제 1차 러시아혁명 20주년을 기념해 1925년에 완성한 ‘전함 포템킨’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고전 작품으로 꼽힌다. 1905년 러시아 함대에서 가장 강력한 화력을 지닌 포템킨 함상에서 일어난 봉기를 영화화한 것이다. 포템킨 함의 수병들은 급식으로 나온 썩은 고기 수프에 울화가 치밀어 항의한다. 이들은 자신들을 거칠게 몰아세우는 함장과 장교들에 맞서 함상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봉기를 주도한 수병 하나가 살해당한다. 병사들은 더욱 흥분하고 이들의 움직임이 배가 정박한 오데사 항구의 시민들에게도 포착된다. 시민들은 달걀, 채소 등을 건네며 병사들을 격려한다. 오데사 시민들은 시가지에서 시위를 하고 군인들은 총을 쏘며 시민들을 진압한다. 포템킨 함 수병들은 마침내 함선을 장악하고 자유의 깃발을 내걸었다.

    이 영화는 공산주의 체제의 선전용으로 만들어진 측면이 있긴 하지만 몽타주(편집) 기법, 시퀀스(연속 장면) 기법 등 영화예술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역사적 사실 측면에서는 창작된 부분이 많아 사실관계가 정확하지 않다.

    이 책은 끝부분에 ‘역사·바다·해양사’라는 간략한 논문을 실어 해양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참고자료와 각주를 상세히 달아 이 분야를 더욱 탐구하고픈 독자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한다. 책에 실린 영화 포스터, 사진 등이 컬러가 아닌 흑백이라는 점이 조금 아쉽다.

    영화를 통해 역사 공부를 더하고 싶은 독자는 ‘영화로 배우는 서양사’(김형곤 지음)를 읽어봐도 좋겠다. 건양대 교수인 저자는 교양수업 시간에 영화를 본 후 토론을 진행했는데 그 내용을 책으로 묶었다.

    바다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진 독자가 읽을 만한 책은 ‘문명과 바다’(주경철 지음), ‘장보고의 나라’(윤명철 지음),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주강현 지음), ‘지중해, 문명의 바다를 가다’(박상진 엮음) 등이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명화 DVD를 빌려와 감상하고 관련 도서를 읽으면 교양과 재미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리라. 큰돈 들이지 않고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고품격 피서법이기도 하다.

    ‘영화에 빠진 바다’ 김성준 지음/ 혜안/ 436쪽/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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